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62)
너희들은 변호됐다-362화(362/641)
강민재와 저녁을 먹고, 재판을 방청하지 못했던 김찬영에게 간단하게 재판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브리핑해 주고 나니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으로 들어가려다, 사놓은 캔맥주가 떨어졌다는 것이 떠올라 편의점에 들렀다.
“만오천구백 원입니다.”
카드를 내밀면서 반대편 문을 바라보았는데, 널찍하게 늘어선 파라솔이 눈에 들어왔다.
날도 좋은데 바깥에서 한 캔 마시고 들어갈까 싶다.
모처럼 큰 산도 하나 넘었고, 오늘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비닐봉지에 맥주와 담배를 담아 바깥으로 나와 파라솔 앞에 앉았을 무렵.
“차주한 변호사님이시죠?”
익숙한 목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려왔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고부터는 밖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곤 했으므로, 그런 사람 중 하나인가 싶었다.
귀찮았지만 고개를 들자, 최종현과 조봉준이 내 맞은편에 앉아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내 시간을 방해받은 기분이라, 나도 모르게 뚱한 목소리로 물었나 보다.
최종현이 하! 하고 소리치며 조봉준에게 말했다.
“봉준아, 차 변이 지금 우리 귀찮아 한 거 맞냐?”
“맞는 것 같은데.”
“죄인에게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는 형벌을 내려야겠구만.”
……그리고 그들은, 맥주캔을 까지도 못한 나를 일으켜 세워 우리 집으로 끌고 들어왔다.
“차 변 집 되~게 오랜만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한텐 도통 연락을 안 했으니까. 그런 큰 건을 맡았으면서 우리를 무슨 씹다 버린 질긴 오징어처럼 내버렸으니까!”
“아, 우신 관련 사건인데 우리한테 말도 안 해 주고. 우리 그냥 버림받은 거 맞지? 차 변이 이제 급이 안 맞아서 우리랑 안 놀기로 한 거 맞지?”
“그런 것 같아. 아, 서럽다. 정말. 마누라한테 버림받은 고통이 이런 고통인 걸까?”
그들은 내 소파에 앉아 나를 째려보며 쉬지 않고 떠들어 대었다.
“무슨 급이 안 맞고, 마누라를 뺏긴 고통입니까. 상황이 그랬어요.”
“무슨 상황이 그래. 그냥 전화 한통 걸어서 하루 시간 내서 말해 줬으면 됐잖아! 아니다, 하루도 안 걸렸겠다. 그냥 저녁에 퇴근하고 말해줬으면 됐잖아!”
“맞아! 변호인 교체된 지 일주일만에 재판 들어가느라 바빴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준비할 시간 더 많았지? 차 변이 아무런 대책 없이 그런 중차대한 상황에서 재판 연기 안 하고 그냥 했을 리가 없어.”
그들은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말이 맞다.
최종현과 조봉준에게 사건에 대해 말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김화영에게 태광 쪽에서 변호를 받는 게 낫겠다고 말했을 당시는, 김화영과 김찬영의 비밀을 타인에게 누설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만일 그들에게서 얻어 낼 수 있는 정보가 있었다면 감안하고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사건의 경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상황도 아니었고.
김화영이 고상준의 세컨드라는 것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면, 우리가 늘 해 왔던 것처럼 방송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건을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봤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았는가.
“옷 갈아입고 씻고 올 테니까, 맥주나 마시면서 기다리세요.”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맥주 봉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고작 맥주 한 캔으로 화를 풀어 줄 줄 알아?”
그들은 새침하게 말했지만, 맥주캔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자, 최종현과 조봉준은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내가 법원에서 나오면서 짤막하게 인터뷰했던 부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발 참 안 받아. 그치?”
“그러니까. 사람들은 차 변이 그냥 잘생긴 줄 알 거 아니야. 존나 잘생겼는데.”
삐친 콘셉트로 갈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나를 칭찬하지.
나는 어색하게 1인용 소파에 앉으며 남은 맥주 한 캔을 들어 올렸다.
“차 변, 이제 준비 끝났으니까 우리 할 말 한다.”
“네.”
“그런 사건을 맡았으면서 어떻게 우리한테 한마디도 안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어?!”
“김화영 사건 잡아 놓고 어떻게 우리한테 말을 안 할 수가 있어! 이 사람이 아주, 아주 나쁜 사람이야, 아주.”
우신 관련된 일이라면 불을 켜고 달려드는 최종현은 특히 더 큰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방송으로 쓸 만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방송 아니어도, 우리가 도움 될 수도 있잖아.”
조봉준도 서운하다는 듯 한마디 보탰다.
최종현이 우신을 아무리 파 왔다고 해도, 치정 쪽은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김화영 쪽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고윤호, 고윤석의 범죄 사실이 밝혀졌으니 이들에 대한 수사에 들어갈 타이밍이다.
우리는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를 살해했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대체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집사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었고, 그걸 집사가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추측해 보면, 그들이 집사에게 얻어 낼 수 있는 거라곤 김화영에 대한 정보 같은 것들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그들은 집사의 시신을 당일 조연동 안가에 묻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정나진이 녹음했던 통화 내용만 봐도 그렇다.
그러다가 고상준이 집 안을 수색한다는 말을 듣고, 집 안에서 그때 시신이 발견되면 김화영에게 죄를 덮어씌울 수 없으므로 다시 파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의 수색 영장이 나오기 직전 다시 갖다 놓았겠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김화영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던 이유, 즉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흐음…….”
나는 팔짱을 끼며 침음했다.
그래도 최종현은 우신 통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어쩌면 그가 아는 것 중, 내가 모르는 사실들과 연결 지을 만한 게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우리한테 아무것도 안 말해줄 거야?”
“방송에 안 쓰실 겁니까.”
“안 쓰지. 우리가 그런 상도덕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아?”
“하아…….”
“넘어온다. 넘어온다. 뭔가 석연찮은 부분, 그런 거 없어?”
“종현이 형이 알고 있을지도 몰라. 종현이 형 우신에 대해서 아는 거 진짜 많잖아.”
두 사람은 나를 본격적으로 꼬드기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
“…….”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은 얼음처럼 언 채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진짜인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진짜, 진짜…… 김화영이 고상준하고 내연 관계라고?”
“가십으로 소비할 거면 이야기 그만하겠습니다.”
“가십으로 소비 안 해. 아는 연예부 기자가 김화영 사건 뜨기 전에 김화영 누구 첩으로 있다는 소문 돈다고 말해 줬던 게 생각나서, 그래서 그런 거야.”
한창 잘나가던 연예인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처음으로 도는 소문이 바로 저것이다.
김화영의 경우 안타깝게도 사실이었지만, 통상적으로는 그다지 대응할 가치가 있는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엔 그게 맞아떨어져서 문제지.
“통화 녹음 파일에 고윤호, 고윤석 지칭하는 말 다 들어 있고, 그 둘 목소리에 김화영에게 덮어씌우자는 부분까지 다 들어 있었으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하지.”
“맞습니다.”
“그럼 다 나온 거 아니야? 선고기일에 김화영 무죄 나올 건 당연하고.”
“그렇죠.”
“그럼 문제없는 거네. 고윤호하고 고윤석이 죽인 거고, 김화영은 억울하게 몰린 거고. 그 집 주인이라는 이유로, 집사하고 평소 사이가 나빴다는 이유로.”
“네. 하지만 한 가지 아직 파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른 건 확실하게 밝혀진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추측은 되는데, 이건 파악이 전혀 안 돼요.”
“뭔데?”
“범행 동기.”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화영이 무죄로 풀려나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범행 동기는 나와는 크게 상관없을지 몰라도, 신경을 안 쓰기는 어렵다.
두 사람이 어떤 동기로 김화영에게 사건을 덮어씌우고 집사를 폭행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그리고 이를 막지 않는 이상 김화영에게 이 같은 위협이 한 번 더 닥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무엇보다, 범행 동기를 알아야 고윤호와 고윤석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옥죌 수 있다.
“그러네. 내연녀라곤 해도, 이미 30년 가까이 내연 관계였는데, 이제와서 안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러는 것도 웃기니까.”
“흐음.”
최종현은 턱을 괴더니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한참 동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조봉준은 최종현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의 메모장을 함께 확인했다.
“와, 무슨 메모가 이렇게 많아.”
“다 보물들이다. 오천억짜리야.”
“참 나.”
“……아!”
한참 동안 고민하던 최종현이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얼마 전에 그, 문화재단 있잖아. 갤러리도 소속돼 있는, 윤성희가 맡은.”
“우미 재단? 지금 딸래미랑 윤성희랑 둘이 하고 있잖아.”
“우신에서 거기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규모를 대폭 줄였었어. 우미 재단이 법인이잖아. 우신 물산 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 근데 그걸 거의 반 토막 이상 우신 생명이 사 간 거야. 그래서 우미 재단을 분리하려고 한다, 이런 말이 많았지. 이혼 준비하는 거 아니냐고. 그 재단 자체가 윤성희가 공들여서 키운 거니까 그건 줘야 한다, 이거지.”
“그래서 지금 고상준이 윤성희랑 이혼한다는 썰이 돌고 있는 거야?”
“그치. 근데 뭐, 둘 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혼할 이유가 뭐가 있냐, 이런 식인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서 좀 주시하고 있는 거지. 왜 저러나 싶어서. 근데 왜 저러나, 하고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건 이혼밖에 없는 거야.”
이혼?
이전 삶에서도 고상준과 윤성희가 이혼할 거라는 이야기가 가끔 돌았던 것은 기억난다.
물론 그때 당시 최종현은 ‘진짜 이혼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라며 그 소문을 뜬소문으로 취급했다.
나 역시 그들이 이혼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기억에 담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의 이혼이라면, 나 역시 생각 나는 것들이 있다.
“고상준이 김화영 씨에게 윤성희와 이혼하고 김화영 씨와 살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 윤성희가 이걸 알았나? 둘 사이 파탄 나서 서로 따로 산다는 얘기도 있었거든.”
“때마침 재단도 독립시키려는 것 같으니까, 그게 진짜인 줄 알고 고윤호하고 고윤석 붙잡고 엉엉 운 거 아니야? 네 아버지가 이혼 준비하는 것 같다고.”
이전 삶에선 고상준과 윤성희를 둘러싼 이혼설은 세간 사람들에게만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될 뿐, 두 사람은 당치도 않다고 여길 줄 알았다.
이번 삶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가진 믿음이 견고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익이 맞물려 있으니까.
하지만 사실 윤성희도 고상준을 의심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윤성희는 아들들에게 하소연했고, 가뜩이나 김화영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고윤호와 고윤석은 김화영이 없다면 이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화영을 죽일 수는 없으니, 적어도 김화영을 범죄자로 만들면, 김화영에게 고상준이 환승하는 일만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 모든 것이 윤성희의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김화영을 재기할 수 없게 만들면 고상준도 깨닫는 바가 있을거라 여겼다.
그날 고윤호와 고윤석이 집사에게 왜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집사의 죽음을 김화영에게 뒤집어씌울 충분한 이유가 된다.
범행 동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