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7)
너희들은 변호됐다-37화(37/641)
[<당신과 나의 거리>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그로부터 일주일 뒤, 포털 메인은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었다는 기사로 도배되었다.
이미 예측된 미래였음에도, 나은성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가처분 신청을 넣기 전, 우리는 기각될 거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쩌면 정말 방송 금지 처분이 떨어질 거라는 희망에 젖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강민재는 그녀의 감정 상태를 케어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다.
나은성은 나보다는 서글서글한 강민재를 좀 더 편하게 생각했기에, 그 역할은 강민재에게 더 적합했다.
촉망받는 인재를 데려다 놓고 허드렛일만 시킨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재판이든 의뢰인의 감정과 의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강민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은성 씨가 마음을 굳게 먹고 있어요.”
강민재는 사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그는 나은성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앞으로의 계획과 지금 여론의 음직임을 브리핑하고,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해 주었다.
나쁜 징후는 없었다.
혹시 푸른섬 미디어 쪽에서 나은성에게 접근할 것이 염려되어 태식이에게 사람을 붙여 놓으라 말해 두었지만, 달리 그런 움직임도 없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것은 성민정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증인 공개를 하지 않은 상황이라 당연하겠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유정원 역시도 내가 정혜진의 보조 작가 중에 증인을 선택한다면, 당연히 드라마계를 완전히 떠난 성민정을 고르리라 생각할 테니까.
물론 성민정에게도 그런 위험성을 설명해 주었음에도, 그녀는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이후, 사무실로 한 차례 찾아와 증언할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하지 못했던 말들이 남아 있었는지, 또다시 단것을 먹으며 울분을 토하고 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는 마치 병사들이 모두 죽은 전장의 한가운데 같았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고 아끼겠다.
얼마나 의지가 강한지, 우리가 증언해 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가 나서서 재판에 쳐들어와 발언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태식 씨 쪽에서는 소식 없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태식이가 보내 주었던 원래 대본과 수정된 대본을 교차해서 다시 한번 변경점을 확인했다.
원래 대본은 여자 주인공이 어렸을 적 집에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모친은 죽고 가산을 전부 탕진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그때, 지나가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구해 주면서 구원 서사가 발생한다.
두 사람이 과거에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과 동시에, 여자 주인공의 트라우마의 원형이 드러나는 회차다.
나은성의 시나리오와 일치했다.
하지만 바뀐 대본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돈을 노린 유괴범들에게 납치당하여, 여자 주인공이 사는 곳과 가까운 폐가에 갇힌다.
여자 주인공이 그것을 보고, 남자 주인공을 구해 준 것이 두 사람의 과거 접점으로 수정되었다.
본래 나은성의 시나리오에서는 화마에 휩쓸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여자 주인공이 기억을 잃는 바람에 남자 주인공을 못 알아본다는 설정이 있다.
하지만 아직 정혜진의 시나리오에서는 왜 여자 주인공이 기억을 잃었는지, 여자 주인공의 모친은 왜 죽었는지, 부친은 왜 알콜 중독이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이른바 ‘떡밥’을 회수하지 않고 대충 무마하며 해피엔딩으로 가려는 속셈 같았다.
그런 드라마는 차고 넘치니 정혜진이 떡밥 하나 회수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판사 배정됐습니다!”
골몰하던 차에 사무실 문 앞에 서 있던 강민재가 안으로 달려왔다.
법원에서 날아온 등기 서류였다.
중요한 것은 판사다.
하지만 판사 배정이 공정하게 됐을것 같지는 않은데…….
우신 그룹의 계열사인데다, 푸른섬 미디어에 빌딩 몇 채는 지어 줄 효자 드라마를 무장 없이 전장으로 내보내진 않을 것 아닌가.
“누구야?”
“부장판사는 김홍길 판사고요. 우배석하고 좌배석은 한지연, 이경민이요. 아시는 분 있으세요?”
“없어.”
“좀 알아보겠습니다.”
강민재의 말에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홍길 부장판사 위주로.”
우배석과 좌배석은 어차피 햇병아리들이고, 최종 결론은 부장판사의 몫이다.
김홍길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변론까지 가게 될까요.”
“태식이가 나은성 씨 대본 인쇄본을 못 찾으면 그렇게 되겠지.”
나은성의 멘탈을 관리하려면, 재판을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버티고 있는 것이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인쇄소에서 나은성의 대본이 출력된 이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안이 길어질 공산이 커진다.
* * *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 음식을 시킨 지 1시간이 지났으니, 아마 그것이 온 것이리라.
나은성은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배달 기사가 아니었다.
나은성은 지극히 경계하며 물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가 나란히 서서 나은성에게 묵례해 보였다.
“나은성 씨 맞으시죠?”
여자가 웃으며 물었다.
나은성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정장 입은 남녀가 갑자기 길을 물으면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는 거라고 하던데, 혹시 그런 사람들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름까지 알고 오진 않는다.
-나은성 씨, 혹시 푸른섬 미디어 쪽에서 접촉하려고 하면 변호사하고 얘기하라고 하시고 일절 대화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차주한 변호사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강민재 역시도 몇 번이고 그 점을 강조하곤 했다.
나은성은 주먹을 부르쥐며 말했다.
“푸른섬 미디어 쪽에서 오셨나요?”
“아, 네. 법무법인 태광의 유정원 변호사입니다.”
유정원이 명함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은성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저희 변호사하고 얘기하세요.”
“아, 나은성 씨. 안 그래도 그 얘기를 좀 드리려고 했어요. 그날 나오지 않으셨더라구요.”
유정원이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인상이 좋은 편이고, 동성이기에 그것으로 경계를 완화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나은성은 떨리는 눈으로 그녀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어쏘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잠깐 들어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혹시 불편하시면, 이 친구는 말고 저만요.”
유정원이 한 번이면 된다는 듯이 검지를 치켜세우며 부탁했다.
나은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저희가 이런저런 제안을 드렸는데, 나은성 씨가 안 계셔서 그게 다 전달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오해를 풀어 드릴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것도 나은성 씨가 아시는지 모르겠구요.”
유정원의 말에 나은성은 눈을 굴렸다.
푸른섬 미디어 쪽에서 3억을 제안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물론 나은성은 10억 이상의 금원을 제안해도 거절하라 말했으니, 차주한 변호사가 잘못 처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해를 풀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전해 들은 바가 없었다.
애초에 오해가 아니라, 전부 정혜진의 잘못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리고 개인적으로, 차주한 변호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시고 의뢰하신 건지도 궁금하구요.”
유정원의 말에 나은성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계속 묵묵부답이었던 그녀가 대답하자, 유정원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차주한 변호사 그 사람 변호사 경력 일천한 건 알고 계시죠? 이 사건이 겨우 두 번째예요.”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검사 출신이시고,”
“그럼, 원래 형사부 검사였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저작권 소송은 나은성 씨가 처음이에요, 그 사람. 저는 저작권 분야 프로페셔널이구요.”
유정원이 천천히 현관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 조정 때문에 만났을 때도 무례하기 짝이 없더라구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게 무슨…….”
“저는 나은성 씨가 그런 사람한테 휘둘려서 괜히 돈하고 시간 낭비하시는 건 아닌가 싶어서…….”
유정원이 말끝을 흐리자, 잠시 멍한 얼굴이었던 나은성이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괜히 이간질하시려는 거면 그러지 마세요. 저, 그런 걸로 속는 사람 아니에요!”
“나은성 씨. 그런 거라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재판에서 이겨 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 전 그럴 자신 있어요.”
유정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차주한 그 사람 법조계 평판이 어떤지 아십니까? 법조계의 악습이기도 합니다만……. 나은성 씨도 아실거예요. 한번 밉보인 변호사는 재판에서 이기기 굉장히 힘든 구조예요.”
유정원은 법조계 커뮤니티에 실린 차주한과 관련된 게시글 복사본을 가방에서 꺼냈다.
“한번 천천히 보세요.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봤으면 좋겠어요. 저희, 정혜진 작가 측 변호인이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피고소인과 고소인, 피고가 자신이 한 일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대가를 받게 만드는 것이 사명이에요. 저희도 무조건 정혜진 씨 편을 들 생각은 없어요.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대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게 목적이죠.”
어느덧 나은성은 게시글 복사본을 읽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런 건 믿지 않을 거예요.”
나은성이 종이를 구겨 버리자, 유정원이 한숨을 쉬었다.
“차주한 그 사람, 유명세만 좇는 사람이라는 거 혹시 눈치 못 채셨나요?”
유정원은 나은성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작은 원룸.
가구 역시도 대개 옵션 가구들이다.
결코 돈이 많을 것 같지 않은 그녀가 이런 큰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 선정도 선정이지만, 수임료가 관건이었다.
유정원은 나은성에게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혹시, 차주한 변호사가 나은성 씨에게 수임료를 너무 조금 청구하진 않았나요? 나은성 씨가 수임료를 많이 낼 수 없다는 걸 이해하면서요.”
“…….”
“나은성 씨. 이런 재판은 아무리 경력이 일천한 변호사라도 큰 수임료를 받아요. 그런데 차주한 변호사가,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그런 적은 돈으로 이 사건을 수임한 게 이상하지 않으세요?”
나은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차주한 변호사는 500만 원밖에 없다고 했던 그녀에게, 오히려 300만 원만 받겠다고 했다.
물론 성공 보수를 요구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자선 사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프로보노를 많이 진행했어야죠. 아니면 국선이 되든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이것도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 그건…….”
혼란스러운 나은성을 바라보며, 유정원은 어쏘 변호사에게 내려가 있으라 손짓했다.
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씨벌.”
그녀의 집 비상구 계단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상길은 재빨리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여자 변호사 나은성 집에 쳐들어옴 혀에 기름칠했나 뭐라 유창하게 씨부렸는데 못 알아들었고 차 변호사님 뒷담 존나 깜 어쨌든 나은성 흔들리는 것 같음 좆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