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78)
너희들은 변호됐다-378화(378/641)
박영기의 집에서 나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였다.
그 뒤로는 박영기의 아내가 허민우에게 박진성의 안부를 묻는 등의 잡담이 오고 갔기에 그 밖에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그 정용만요.”
“아, 인천항 세관원?”
“네, 그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집으로 가는 길, 강민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팀장이라고 했나. 그 김기철이란 사람 말이야. 경찰에서 계속 걸려라 걸려라 하고 있다는.”
나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강민재에게 물었다.
“변호사님, 엄청 피곤하신가 보네요.”
“나도 사람이야.”
“여태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 주셨어야 말이죠. 그런데, 김기철이 뭐요?”
“그 사람이 정말로 이 일에 연관이 있다면, 택시 기사랑 정비소 사장이 튀었듯이 튀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겠……죠?”
“이미 튀었을지도 몰라.”
나는 인천항 세관으로 전화를 걸며 대답했다.
어차피 김기철은 이 사건에서 아무것도 흘리지 않았기에 참고인으로조차도 경찰의 조사를 받지 않았다.
김기철의 거래를 고발한다는 정용만을 만나기로 한 상황이지만, 김기철을 잡으면 더욱 수월해지는 것은 사실이기에 우선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네, 세관입니다.
“안녕하세요. 김기철 팀장에게 연락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김기철 팀장님은 퇴사하셔서 불가능하실 것 같은데요.
역시.
“개인 연락처를 알 수는 없을까요?”
-그건 개인 정보라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용만 씨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음, 정용만 씨도 지금 사표 수리되고 내일 퇴사 예정인 상태라 힘드실 것 같은데요.
“사표요?”
-네.
“짐도 다 싸서 나갔습니까?”
-그건 모르겠네요.
“알겠습니다.”
정용만까지 사표?
이거 느낌이 좋지 않다.
허민우와 만나기로 했으면서 사표를 냈다니.
물론 사표를 낸 상태로 허민우와 만날 수도 있지만, 그가 사표를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여태까지 경찰에 협조적이었고,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는데.
“뭐래요?”
“김기철은 이미 퇴사했고, 정용만도 내일 퇴사라는데.”
“내일 만나기로 했잖아요. 근데 왜 내일 퇴사해요? 김기철이야 여태 마약 유통하면서 번 돈이라도 있지, 정용만은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나는 바로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기철은 이미 날랐다고 해도, 정용만은 잡아 둬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내일 퇴사라고 했으니 내일까진 일을 할 터.
아직 잡기에 늦은 시기는 아니다.
“태식아, 사람 하나 더 뒤밟아야겠다.”
-이번엔 누굽니까?
“인천항 세관원인데, 정용만이라고. 내일 퇴사한다니까 오늘 퇴근길에 따라붙으면 될 거야.”
-내일 튀려고 하면 붙잡아요?
“그래야 할 것 같네. 일단 내일 우리 쪽이랑 약속이 되어 있으니까 우리를 안 만나고 튀려고 하면 그땐 잡아야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사람 하나 신문할 곳 알아봐.”
-아, 주문이 왜 이렇게 많아요.
“불만 있어?”
-있다고 하면 가만 안 둘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없습니다, 하하.
아직 퇴근 시간까진 시간이 남으니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쪽은 일단 이렇게 갈무리 지어 놓기로 하는 게 좋겠다.
내일 어떤 방법으로든 만나게 될 테니.
“허민우 경위님한텐 말 안 해 줘도 될까요?”
강민재가 물었다.
허민우와 일이 이렇게 되어 얽히게 되긴 했지만, 허민우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연락하고 싶지 않다.
그는 경찰이다.
우리가 증거를 잘 모아서 갖다주면, 박진성을 풀어 주기만 하면 되는.
물론 경찰의 수사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사건에서만큼은 허민우가 깊게 개입하는 게 싫다.
“그 사람한테 이걸 말해 주면, 허민우는 정용만한테 연락하려고 할 거야. 그럼 정용만이 내일 퇴사하기로 해 놓고 오늘 냅다 튀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굳이 알려 줄 필요 있을까?”
“그건 그렇네요.”
[진실]내가 허민우 경위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을 강민재가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이다.
“댁에 다 왔습니다아.”
“고생했어. 내일 보자고.”
“넵.”
집에 들어가서 씻고 소파에 앉았더니, 태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사진] [사진] [정용만 뒤밟는 중]정용만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 두 장이 함께 와 있었다.
이쪽은 됐고.
나는 텔레비전을 켜고 뉴스 채널에 고정했다.
맥주를 마시며 뉴스를 보다 보니, 또 박진성과 관련된 보도가 이어졌다.
[……박 씨는 본인이 마약을 유통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여럿 제시했으나 증거가 모두 조작이 의심되는 점, 사실과 다른 점을 들어 경찰은 박 씨의 혐의가 짙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마약 검사가 음성으로 나왔다는 내용도 나왔다.
하지만 그렇기에 박진성의 혐의가 옅어진다는 말은 아니었다.
[경찰은 마약 검사상 음성이 나왔으나, 마약을 유통하는 모든 사람이 마약을 복용하는 것은 아니라며, 박 씨가 마약을 운반했다는 증거가 명확하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박 씨가 서울중앙지검 박영기 차장검사의 장남이기 때문에…….]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 먹은 언론이 다 그렇지.
박영기 옷 벗기겠다고 모든 언론이 우신 눈치 보는 꼴이 우습기만 하다.
* * *
이튿날, 허민우와 약속된 시간에 인천항 근처 카페로 향했다.
태식에게서는 아직 도망가는 것 같은 움직임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오늘 퇴사하는 게 정말이었는지 큰 리빙 박스에 짐들을 챙겨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하며 사진을 함께 보냈다.
지금은 집에 들어간 상태로, 태식 쪽도 정용만이 사는 빌라 앞에 차를 대놓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즉, 약속 시간에 허민우를 만나러 올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허민우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7시.
지금 시각은 7시 20분.
그쪽에서 인천항 근처 카페로 오려면 30분은 걸리는데 아직도 집이라면 할 말 다 하지 않았는가.
“정용만 씨가 좀 늦네요. 전화해도 안 받고.”
허민우가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여태까지 경찰 쪽에 고발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준 분인데 갑자기 안 나올 리가…….”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허민우는 정용만이 오늘 퇴사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여기서 적당히 시간을 벌다가 헤어지고 태식 쪽으로 붙는 게 좋겠다.
퇴사 소식은 나도 전화해 봤다가 얻어걸린 것이지만, 뭐가 됐든 경찰이 정용만에게 가진 신뢰는 매우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8시가 되었을 즈음.
“안 나오시네요. 그만 일어나죠.”
먼저 지친 허민우가 일어서며 말했다.
“이분이 이럴 분이 아닌데…….”
아쉽다는 듯 한마디 보태면서.
경찰이 그렇게 신뢰했던 정용만을 잠수 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아마 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고, 이걸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우신이니까.
“제가 서 들어가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허민우와 헤어지고 나서, 인근 주차장에 대놓은 차를 타러 가면서 강민재가 물었다.
“허민우 경위님한테 정용만 씨 퇴사했다고 말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이렇게 잠수 탔는데, 이제는 허민우 경위님이 정용만한테 전화해도 되잖아요. 이미 했고.”
“잠수 탔다는 것부터가 경찰에 도움을 줄 생각이 없다는 건데, 허민우 경위 연락은 받겠어?”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서로 들어가서 알아본다고 하니까 곧 알게 되겠지. 굳이 우리가 따로 만날 거라고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따로 만나서 경찰이 좋아할 만한 행동할 것도 아니고.”
“……정용만 씨 패게요?”
“설마.”
강민재의 차에 타서 태식이 잠복해 있다는 정용만의 집 앞으로 갔다.
과연 태식의 차가 골목에 정차한 채 숨을 죽이고 정용만이 산다는 빌라의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태식의 차창을 두드렸다.
“아, 왜요.”
태식이 숨을 죽인 채로 말했다.
“숨죽이고 있는데 왜 두드려요.”
“오바하지 말고, 집 몇 호야?”
“202호요.”
“알았어. 태식이 너랑 한 명 더 해서 1층에서 기다려.”
“넵.”
운전석에서 태식이 내리고, 조수석에서 태식의 직원이 내렸다.
“정용만 1층까지 데리고 나올 테니까, 나오면 바로 잡아서 뒷자리에 싣는다. 네가 뒷자리에 같이 타.”
“넵.”
나도 누군가를 납치하듯 해서 진상을 밝히는 게 썩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가장 빨리 듣는 처방은 폭력뿐이다.
물론 나는 폭력의 냄새만 풍길 생각이지, 진짜로 폭력을 사용할 생각은 없다.
그냥 잠깐 진득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정용만을 옮길 것이고, 거기서 대화한 후 풀어 줄 생각이다.
나는 빌라로 들어가 성큼성큼 202호로 향했다.
가족들이 같이 살고 있을 수도 있으니, 크게 일을 낼 생각은 없다.
202호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니, 안쪽에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누구세요?”
정용만의 아내이지 싶은 중년의 여자였다.
“아, 인천항 세관에서 나왔는데요. 정용만 씨가 퇴사하는 과정에서 인수인계 파일에 문제가 있어서요.”
“그걸 이 시간에요?”
“좀 급한 건이라 직접 나왔습니다.”
“아, 네. 잠시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용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문은 조금 더 넓게 열린 상태였다.
“무슨 일이시죠? 인수인계 파일에 무슨 문제가…….”
“잠시 내려와서 얘기하시죠.”
“어디서 나오셨습니까?”
“우신에서 나왔습니다.”
“우신요……? 거기서 왜……. 저는 전혀 우신과 연관이 없는데요.”
[진실]놀랍게도 정용만은 이 사건에 우신이 엮여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김기철 씨 일로 할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김 팀장님은 이미 퇴사하셨는데요.”
“그러니까 잠깐 내려와서 말씀 나누자는 겁니다.”
정용만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문을 닫고 나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태식과 직원이 정용만의 입을 가리고 그대로 뒷좌석에 실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았고, 태식은 다시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출발했다.
아직도 입을 가리고 직원에게 포박된 채 있던 정용만은 당황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직원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어 주라는 뜻이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입을 놓기가 무섭게 정용만이 소리쳤다.
“지금 뭐가 문제라서 이러는 거야! 당장 놔줘!”
“일단 가서 얘기하죠.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당신은 다시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고.”
“…….”
저 말은 반대로 말하면, 솔직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거란 뜻이다.
그 속뜻을 알아차린 그도 결국 얌전해졌다.
그사이 직원은 정용만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정용만은 휴대폰을 사수하려 했지만, 힘의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뺏기고 말았다.
차는 넓은 도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울룩불룩한 비포장도로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검은 천막이 쳐진 비닐하우스가 나왔다.
신문할 데를 찾으라고 했더니 왜 자꾸 악당 소굴처럼 보이는 데를 찾는 건지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해서 카페를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내려요.”
정용만은 순순히 내렸지만, 도망가려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용만이 달리는 것보다 직원이 훨씬 빨랐다.
금세 정용만을 제압하고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데려왔다.
그곳에는 낡은 의자와 망가진 소파가 마주 본 채 있었다.
설마 일부러 이런 걸 갖다 놓은 건 아니겠지?
“준비성 좋죠?”
태식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칭찬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렇게 더러운 소파엔 앉고 싶지 않다.
“잠시 묶어 두겠습니다. 대화가 온건히 끝나면 풀어 줄 겁니다.”
직원은 의자에 정용만을 앉히고 태식이 그를 테이프로 의자에 고정했다.
정용만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뒤를 따라붙은 강민재의 차가 비닐하우스 밖에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우, 먼지.”
비닐하우스 내부에 쌓인 먼지에 손사래를 치며 안으로 들어온 강민재는, 묶인 정용만과 대치한 채 서 있는 나를 보며 입을 벌렸다.
“변호사님, 옛날 생각 나요.”
“옛날 언제?”
“검침원 때요. 아, 그때 재밌었는데.”
그게 재미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