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85)
너희들은 변호됐다-385화(385/641)
차주한이 맞은편에 자리하자, 황영찬은 메뉴판을 넘겨주며 말했다.
“여기 이 코스 괜찮아.”
“그럼 그걸로 하시죠.”
차주한은 메뉴판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뭘 먹든 차주한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식도락을 즐기러 황영찬을 만나러 온 것은 아니니까.
그러자 황영찬은 작게 웃으며 사람을 불러 코스와 사케 한 병을 주문했다.
“자네가 이렇게 연락했다는 건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바로 운을 떼었다.
사실 황영찬은 그에게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 당장 답을 주려고 만난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뭔가 지친 듯한 기색의 차주한을 보니 자신이 원하던 답을 받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주한은 대답 대신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핸드폰 2개, 담배 한 갑과 지갑.
단출하기 짝이 없는 소지품을 보던 황영찬이 고개를 들어 올려 의아한 듯 차주한을 바라보았다.
“이게 뭔가.”
“소지품입니다. 녹음이나 녹화는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데 더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차주한은 안감이 보이도록 주머니들을 뒤집어 열었다.
그리고 마치 공항에서 검문하듯 두 팔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자 황영찬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그 정도 했으면 됐어. 자네가 날 만나러 온 시점에서, 난 자네를 일단은 믿어. 평소대로라면 날 만나려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제가 부장님을 왜 만나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기엔 너무 이르고…….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 만나러 온 거 아닌가?”
차주한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황영찬은 그 자체가 대답이라 생각한 듯 만족스럽게 웃었다.
“차 프로, 자네하고 내가 한솥밥 먹고 지낸 게 얼마야. 물론 그 뒤로 떨어져 있었지만, 자네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 난 자네를 잘 알아.”
2008년, 차주한이 갑자기 변해서 황영찬의 말에 거역하고 검찰을 나갔을 때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많은 검사가 조직에서 나오는 상상을 하고, 또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는 경우가 많다.
지독하게 많은 업무량에 치인 뒤 애걔 싶은 월급을 받으면 변호사가 된 동기들의 이야기에 위축되기 마련이다.
5년 차면 특히 그렇다.
그간 많은 것을 경험했기에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 밖으로 나가면 자신의 삶을 더 챙길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여긴다.
차주한도 그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검찰청을 박차고 나간 사람 중에 가장 잘 풀린 케이스라고 볼 수 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우신에 맞서는 이유가 뭔가. 이유를 알면, 내가 자네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네, 나한테 설득당하러 온 거잖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부장님은 제가 우신과 맞서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옛날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젠 누가 봐도 그렇다는 거 알잖아. 자네의 모든 행보가 우신의 반대편에 있어. 고진아부터 시작해서 명화제약……. 그 우신 회장 직계 비속들은 장남과 장녀만 남고 다 감방에 갔지. 자네 손에 말이야. 그런데도 아니라고 할 건가.”
차주한은 작게 웃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하나 해 나갔을 뿐인데 벌써 그렇게까지 도륙 냈던가.
그렇게 여기니 지금까지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왜 우신에 맞서는 거야.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거대 악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거대 악? 그래, 나도 법조인으로서 부정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진 않나.”
우신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우신은 분명 정재계 깊숙한 곳까지 손을 뻗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한 바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황영찬은 그 빛에 주목하기로 했을 뿐이다.
“필요악…….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담론들은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아. 내가 걱정하는 건 자네니까.”
황영찬이 운을 떼었다.
“이번 일까지 깊게 연루된다면, 자네는 정말 죽을지도 몰라.”
“…….”
“예전에 자네에게 세무조사가 들어왔었지. 하지만 그건 어떻게든 무마됐고, 그다음은 이정찬을 죽인 살인범으로 누명을 썼어. 그것도 자네가 보기 좋게 잘 무마했지. 그다음은 무슨 차례일 것 같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다지만, 이정찬까지 죽였던 우신이야. 자네라고 못 죽일 건 없지 않은가.”
틀린 말은 아니다.
차주한이 직접 경험했고, 당장 오늘도 그 트라우마로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다.
“죽으면 끝이야. 자네 돈 많이 벌었잖아. 그거 다 쌓아 놓고 죽을 건가? 자네 부모님은. 자네 외동이잖아. 자네 죽으면 남은 부모님 마음은 어떻겠어.”
부모 잃은 자식은 살아도, 자식 잃은 부모는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차주한 역시도 이전 삶에서 명화제약 때문에 아버지를 여의고 단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그 복수도 다 하지 않았던가.
안트로졸은 세상에서 사라졌고, 명화제약도 상장폐지 되었다.
부모님도 건강히 잘 살아 계신다.
지금의 재력이라면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도 평생 먹고살 수 있다.
여기서 더 가야 하는가.
이미 차주한은 우신에 큰 내상을 입혔다.
이제는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데.
“그럼 경력검사 임용에는 왜 지원하라고 하신 겁니까.”
“그건 쇼야.”
“쇼?”
“물론 나야 자네가 검찰에, 내 곁에 쭉 있어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우신에게 보여 주는 퍼포먼스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군.”
황영찬의 설득으로 차주한이 다시 검찰로 돌아간다면, 우신도 차주한이 더는 앞길을 막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황영찬은 우신의 사람이니, 차주한이라는 큰 걸림돌을 치워 버렸다는 공을 인정받을 테고.
“검찰에 정 있고 싶지 않다면 1년만 있다가 나가. 그 뒤로는 평범하게 살아. 검찰에 있는 시간을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뒤로 나간 다음에 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든, 다시 정도로 돌아가든 해서 프로보노를 하든, 평범한 사건을 맡든, 그건 자네 마음이야. 하지만 우신은 자네가 또 변호사 사무실을 내면 불편해할 것 같아서 추천하고 싶지 않아. 돈도 많은데,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지금도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부모님이 앞으로 사신다면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함께 지내며 좋은 것도 먹고, 좋은 것도 보고 다니면 그걸로 행복해하실 분들이다.
“사람들에겐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하지만, 자네는 충분히 실현했어. 남들도 다 인정할 거야. 자네는 이제 쉴 자격이 있다고.”
“…….”
“내가 자네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나머지는 식사하면서 천천히 얘기할까.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아직 음식도 안 나왔어.”
황영찬은 그 말과 동시에 직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 * *
이튿날, 차주한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쉬겠다는 말을 오 사무장과 강민재가 있는 단체방에 보냈더니, 강민재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구속적부심 준비를 제대로 진행하라는 말만 메시지로 남겼다.
어제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도 잠을 설친 까닭에 일단은 늘어지게 자 볼 생각이었다.
“하아…….”
하지만 아무리 침대에서 침구에 둘러싸여 누워 있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수면제를 몇 알 먹었지만, 조금 더 피곤해질 뿐 잠드는 것은 실패했다.
결국 차주한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뜨거운 물을 틀어 놓고 샤워를 하자, 몸이 조금 더 노곤노곤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잠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차주한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하고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켰다.
[경찰은 마약 유통으로 수배 중이었던 강 모 씨, 일명 깡치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찰은 강 모 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현재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깡치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주한은 이마를 짚었다.
깡치는 분명 박진성을 배후로 지목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무리 구속적부심을 열심히 준비하더라도 박진성을 빼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황영찬은 이번 사건에 사활을 걸었을 것이다.
여태까지 우신에게 지령을 받은 것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사건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정말로 우신에게 버림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넓은 집 안을 초조하게 걸어 다녔다.
그러다 그는 운동복을 챙겨 헬스장으로 내려갔다.
“후우, 후우…….”
러닝머신 위에서 도망치듯이 달렸다.
그의 머릿속을 잠식한 생각은 점점 옅어지고,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의 두근거림만 남았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차주한은 흘러내리듯 러닝머신 위에서 내려왔다.
그다음에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운동복도 벗지 않고 서재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켜고, 법무부 사이트에 접속했다.
[2011년도 경력 검사 임용 지원 안내문]그리고 사이트에 접속해 지원 서류에 이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