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88)
너희들은 변호됐다-388화(388/641)
당장 차주한의 방으로 들어가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강민재는 참았다.
허민우는 깡치가 모든 걸 다 불었다고 말했고, 그렇게 된 이상 박진성은 풀려날 것이다.
하지만 차주한은 적으로 만났을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이다.
그가 황영찬에게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니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할 텐데.
그가 마음을 돌리지는 않을까.
“돌아 버리겠네…….”
차주한과 말다툼을 할 때 그의 표정과 말투는 진심을 말하는 것 같았고, 그의 성격상 한번 마음먹은 이상 결정을 돌릴 것 같지도 않았다.
강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오 사무장에게는 직접 말한다고 했으니 그렇다고 치고, 조봉준과 최종현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허망하게 자신의 방으로 가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문밖에서 누군가 커피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사무장이 왔나?
강민재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커피머신 앞에 차주한이 서 있었다.
지이잉, 소리와 함께 커피가 일회용 컵에 담겼고, 강민재는 그런 차주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 해? 커피머신 쓰려고?”
차주한의 물음에 강민재는 뭐라 대답하려는 듯 손을 올렸다가 곧 떨구었다.
차주한은 그런 강민재를 흘긋 보았다가, 제빙기에서 얼음을 꺼내 컵에 담으며 대꾸했다.
“나갔다 올게.”
그러고 보니 그는 겉옷까지 모두 걸친 상태였다.
“어디 가시는데요?”
차주한이 커피를 들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자, 강민재가 그를 붙잡으며 물었다.
“내가 그런 걸 강 변한테 일일이 다 일러 줘야 해?”
“황영찬 만나러 가시는 거 아니에요?”
“…….”
“허 경위님한테 깡치 조사 결과 들으셨죠. 그래서 지금 황영찬 만나러 가시는 거잖아요. 변호사님, 황영찬은 깡치하고 같이 박진성 씨 누명 씌운 사람이에요. 근데도 지금 이러시는 건 차장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아요? 적어도 맡으셨던 사건에 대해서는 함구하시는 게 예의 아니냐고요.”
“예의? 나도 차리고 싶지. 근데 예의 차리다 죽고 싶진 않아.”
차주한은 그 말을 남기고 매몰차게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 길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신의 방으로 와 줄 수 있겠냐는 황영찬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의 장소로 굳이 황영찬의 방을 선택한 것은 법조계에 떠도는 ‘차주한이 정말 황영찬의 품으로 돌아가는가’라는 의문이 사실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검찰청에 들어가고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황영찬의 방에 들어가는 내내 모두가 차주한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상관없다.
황영찬은 그의 실체를 아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평판이 좋은 편이고, 평판이 나쁘다고 해도 검찰로 돌아가면 어차피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
검찰청 앞에 차를 대고, 들어가기 전 담배나 한 대 피울까 싶어 그는 익숙한 장소로 향했다.
황영찬은 차주한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는 걸 광고하고 싶은 모양이니, 거기에 동참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그는 재떨이 통이 있는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고, 예상한 대로 순식간에 주목을 받았다.
다른 검사들과 다를 바 없는 옷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군거렸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차주한은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마저 피웠다.
이 정도 됐으면 소문은 충분히 났겠지 싶어 청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팔뚝이 붙잡혔다.
“야, 차 변.”
이예진이었다.
이예진은 차주한을 사람 없는 쪽으로 조용히 끌고 갔다.
뿌리칠 수도 없이, 차주한은 그녀에게 이끌려 갔다.
“차 변, 대체 뭐야?”
“오랜만에 뵙네요.”
“오랜만이고 뭐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검찰에 왜 돌아와. 민재한테 말도 안 하고 결정부터 내린 것 같은데…….”
“제 진로를 강 변하고 상의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꼴랑 변호사 두 명 있는 사무실에서 대표 변호사가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여기로 왜 돌아와! 이 지옥 같은 곳으로! 또 왜 황영찬 밑이야? 말이 돼?”
“말이 안 될 건 또 뭡니까.”
이예진은 할 말을 잃었다.
차주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진로를 자신이 정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다만 차주한은 예전과 달리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단독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이예진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차 변, 아무리 그래도…… 황영찬은 좀 아니지 않아?”
“부장님이 절 원하고 저도 검찰로 돌아가서 자리 잡길 원합니다. 어차피 친정 저격했다고 욕먹는 마당 아닙니까. 부장님 도움이 있으면 그래도 자리 잡는 데는 문제 없겠죠.”
“아니지. 네가 차장님의 일을 잘 해결해 드리고 나면 검찰로 돌아올 때 차장님이 도와주실 거 아니야. 순서가 틀렸다는 거야, 순서가. 돌아오는 거?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 근데 왜 차장님 사건 하다 말고 들어오냐고. 지금 우신이 일부러 차장님 멕이려고 이런다는 거 모르는 사람 있어? 차 변은 당연히 알 거 아니야. 우신이 차장님 왜 멕이려고 했게? 차 변이 김화영 씨 사건 맡았기 때문이잖아. 근데 차장님을 버리고 이렇게 혼자 빠진다고?”
차주한이 박영기의 일을 해결해 주면 고상준의 두 아들은 여죄를 단단히 물어 감방에 가게 될 것이고, 그 화살은 차주한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차주한은 지금 모두를 배신하는 행위까지 하면서 경력 검사 모집에 지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일일이 이예진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서, 이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야, 차주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실망이다, 너.”
이예진이 한마디 더 보탰지만, 차주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멀어지는 차주한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예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차주한 아니야?”
“경력 검사 지원했다며?”
한편, 청으로 들어간 차주한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
임용되고 나면 이러한 상황에 더 자주 놓이게 될 것이다.
애초에 그런 데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거니와 워낙 많이 겪은 일이라 상관없긴 하지만, 관료제 사회에서 눈에 띈다는 것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어느덧 차주한은 황영찬의 방 앞에 도착했다.
“부장님.”
“그래, 차 변, 아니 이제 차 프로라고 불러도 상관없겠지?”
노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황영찬이 일어나 차주한을 맞았다.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앉아. 차 한잔 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오는 동안 사람들 눈총 많이 받았겠어.”
“그걸 노리고 여기로 오라고 하신 거 아닙니까.”
“난 자네가 눈치가 빨라서 좋았어. 적으로 만났을 땐 그래서 싫기도 했고.”
차주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황영찬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강치현이 말이야. 전부 다 토설했다는 게 사실이야?”
“담당 형사한테 들은 겁니다. 제가 경력 검사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요.”
“하, 곤란하게 됐구만.”
황영찬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원래 시나리오대로라면 강치현이가 박진성이 배후라고 털어놓았어야 했는데, 대체 무슨 거래를 했기에 전부 다 분 거지.”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황영찬과 깡치가 월화정에 있었을 때, 차주한이 생각한 그대로였다.
깡치는 처음부터 잡혀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었다.
마약 수사에서는 사법 거래가 빈번하다.
더 배후인 놈을 알려 주면 너는 집행유예로 풀어 주겠다, 혹은 감형해 주겠다는 식으로 살살 꾀어서 대어를 낚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준비된 대어는 박진성이었다.
차주한은 피식 웃음 지었다.
“왜 웃어.”
“박진성을 도와 조사하면서, 깡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 사람만 잡아가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장님이 쳐 놓은 덫인 줄 모르고요. 그랬던 제가 우스워서 웃음이 났습니다.”
“이번에 내 꾀도 나쁘지 않았지?”
“완전히 당했습니다.”
“언제까지 차 프로한테 당하고만 살 순 없잖아.”
황영찬은 기분이 좋은지 미소 지으며 차주한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 꽉 쥐며 말했다.
“잘 돌아왔어. 돈도 많이 벌었다고 들었는데, 변호사도 해 봤으니 개업할 생각은 안 날 테고. 이제 우리 이렇게 손잡고 저 높은 데까지 가 보자고. 서운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고. 3년 전에 차 프로 나갔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나?”
“그땐 죄송했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하하, 그래. 자네도 이렇게 다시 돌아왔는데, 검찰총장 정도는 해 봐야지. 안 그래?”
“저는 큰 욕심 없습니다.”
“그래도 갈 수 있어. 자네가 날 밀어주고, 내가 자넬 당겨 주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주한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강치현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거래를 했다니 경찰은 아마 강치현이를 풀어 주겠지. 그럼 그때 접촉해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밖에 없지.”
황영찬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이는 아예 죽이거나 강도 높은 협박을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강도 높은 협박이라는 것은 죽일 듯이 패서 약속을 어긴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깡치가 사라지면, 물론 경찰과 일각에서는 모든 것을 토설한 사람이 사라졌으니 배후가 우신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여태까지 차주한은 우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어 왔고, 우신은 그런 의혹 속에서도 꿋꿋이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고 회장님 비서실장하고는 만나 본 적 있나?”
“아뇨, 없습니다.”
“우신 생명 진순기 대표는?”
“이름만 들어 봤지 잘 모릅니다.”
한때 이정찬의 살인 교사를 저질렀을 사람으로 꼽았던 진순기를 차주한이 잘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진순기가 이번 사건을 설계한 핵심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상준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책사 역할을 담당하던 그가 아닌가.
이번에 깡치로 한 번 차주한을 속이고 넘어간 것도 황영찬 솜씨는 아닌 것 같았는데.
“이번 참에 사건 제대로 마무리하고 진순기 대표하고 회장님 비서실장하고 자리 한번 갖자고, 하하하.”
황영찬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