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91)
너희들은 변호됐다-391화(391/641)
경찰들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밧줄에 엉킨 의자와 전기톱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 윤세연에게 이 폐공장 주소를 문자로 보낸 뒤 전화를 걸었다.
깡치에 대해 알려 주는 대신 단독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 변호사님, 방금 문자 봤는데 이 주소 뭐예요?
“기자님이 원하시던 겁니다.”
-제가 원하던 거요? 그게 뭐지? 단독인가?
“오늘 밤이 지나면 늦습니다. 경찰들이 다녀갔거든요.”
-지, 지, 지금 갈게요! 서울에서 별로 안 머네. 금방 가요!
윤세연은 허겁지겁 준비하는지 우당탕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단독 내용은요?
“현직 부장 검사와 우신 고상준의 비서실장이 깡치를 납치 및 협박하고 신체를 절단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
-허억, 세상에. 이게 내 단독이라니! 미쳤어, 미쳤어. 지금 현장에 계세요?
“네. 하지만 곧 철수할 겁니다. 피곤해서요.”
-아이구, 그럼요. 피곤하시면 가 보셔야죠.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윤세연은 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깜빡이는 전화기를 흘긋 보고는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디 기자한테 제보하시나 봐요.”
허민우가 나를 보며 물었다.
“빚을 갚아야 해서요. 그리고 보도가 빨리 나가는 게 좋습니다. 혹시라도 수사 과정에서 압력이 들어올 수 있으니, 국민에게 알려서 헛짓거리 못 하게 막는 차원에서요.”
“그건 그렇네요. 황영찬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고상준 비서실장이 개입되어 있어서 압력이 세게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현행범으로 체포되어서 빠져나가기 쉽진 않을 겁니다. 전에도 그랬듯 꼬리 자르기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은 다 알겠죠. 여태까지 누적된 사건들이 있으니까요.”
“이정찬을 죽인 것도 고상준 장남 비서실장의 과잉 충성으로 끝났었죠.”
“네. 이번에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고상준의 따까리를 잡는 것으로 고상준까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고상준을 잡으려면 밑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상준이 직접 저지른 일로 엮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에 수확이 없다고 하고 싶진 않다.
허민우의 말대로 고상준의 악행이 누적되고 있으니까.
“박진성 씨도 이거로 풀려날 수 있겠네요.”
“네. 그리고 검찰에 송치되면 황영찬이든 비서실장이든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박영기 차장님이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요.”
아무런 죄 없는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켰으니, 박영기도 칼을 빼 들 것이다.
게다가 국민 정서도 박영기와 함께할 것이다.
박진성의 무고함이 드러나면 박영기는 동정을 받을 테고, 제대로 뿌리 뽑으면 그 동정은 신뢰로 이어질 터.
그렇게만 된다면 박영기가 검사장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제 가시죠. 차 가지고 오셨어요?”
“아뇨, 황영찬하고 같이 왔습니다.”
“그럼 태워다 드릴게요.”
거절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집까지 갈 방법을 몰라서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올라가는 대로 처음 거짓 진술했던 택시 기사와 정비소 사장 위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희 쪽 정보원이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황영찬과 비서실장이 잡혔다는 사실과, 깡치가 진술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아마 그쪽도 더는 거짓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그런데 황영찬이 자신은 이 일과 관계없다며 빼면 어떡하나 싶습니다.”
“그러겠죠. 예상해 보면, 본인은 폐공장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그곳에 갔다거나, 자신도 영문도 모른 채 누가 오래서 갔더니 깡치가 있었다거나……. 여러 가지가 있지만, 뭐 그런 식으로 말할 겁니다.”
“그럴 땐 어떡합니까.”
“제가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았습니까. 깡치와 황영찬이 월화정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그걸 활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황영찬은 확실히 잡힐 겁니다. 택시 기사와 정비소 사장을 컨택한 것도 분명 황영찬일 테니, 황영찬을 잡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내 말에 허민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사진 찍으셨군요. 그때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땐 혹시 몰라서 그렇게 말했던 겁니다.”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변호사님도 조금은 흔들리신 거 아닙니까.”
허민우는 장난스레 말했지만, 나는 꽤 진지해졌다.
처음부터 나는 우신의 편이 될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떨치지 못한 상태였다.
우신에 붙고 싶진 않지만 죽고 싶지도 않다는 말은 어쩌면 상충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미 먼 길을 와 버렸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아깝다.
게다가 그렇게 쉽게 마음이 변할 거라면 애초에 이번 삶이 주어졌을 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는 분명 이 길을 가는 데 장애가 될 테지만,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건 내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검사 출신입니다. 적어도 깡패들이랑 어울리고 싶진 않습니다.”
“하하, 저는 차 변호사님이 강직해서 좋아합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는 검사님이 강직해서 좋아합니다.]이전 삶에서 들었던 허민우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허 경위님.”
“네.”
“사건을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건 어떻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기분 나쁠 법한 말인데도 허민우는 그런 티는 내지 않고 물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드세요?”
일개 변호사가 형사의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대로 바꿔 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내 거리를 두고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닙니다.”
“확실히 이번 사건 하면서 변호사님한테 많이 의존했던 건 사실입니다. 명색이 경찰인데 많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걱정 마시고 맡겨 주세요. 제가 잘 마무리해서 검찰에 넘길 테니까요.”
어느덧 허민우의 차는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들어가세요, 차 변호사님. 피곤하셨을 텐데 푹 쉬시고요.”
“네.”
나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을 정도로 피곤해서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윤세연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주한입니다.”
-변호사님, 하…….
아까 기분 좋은 하이 톤의 목소리였던 것과 달리, 윤세연의 목소리는 축 처져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취재 다 했는데 단독 빠꾸 먹었어요.
“위에서 막았단 말입니까?”
-네. 보도하지 말라네요. 하, 누가 일중일보 아니랄까 봐 진짜 또라이 같은 윗선 새끼들.
윤세연이 씩씩거렸다.
나는 내일 경찰이 발표하기 전에 자세하게 보도해 주길 원했다.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주면 그들에게 이미 압력이 들어가 보도되어야 할 내용이 잘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곤란해진다.
-변호사님은 오늘 보도되길 바라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 되면 단독도 아니잖습니까.”
-하아아, 진짜 환장하겠네. 미친 척하고 그냥 보도할까요? 그리고 장렬하게 잘릴까요? 그럼 최 선배가 저 받아 주려나.
“극단적으로 생각하진 마십시오.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이 대박 단독을 놓치다니! 진짜 회의감 느껴져요. 나 왜 기자 하고 있냐…….
윤세연이 한탄하는 동안 나는 고민에 빠졌다.
최종현과 조봉준의 인터넷 방송으로 첫 보도를 내보내기엔 아쉬운 점이 크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매체가 주는 가벼움 때문이다.
물론 최종현과 조봉준의 방송도 활용할 생각이지만, 첫 보도는 방송사에서 나가는 게 영향력이 크다.
그렇다면…….
“윤 기자님, 혹시 취재하신 거 저한테 넘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른 데서 보도해 준대요?
“확인해 봐야죠.”
-알겠어요. 어차피 쓰지도 못하는 거, 보도되면 좋죠. 메일로 쏴 드릴게요.
윤세연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바로 진혜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뉴스9 앵커인 그녀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직 9시까지는 2시간 남았다.
보도 자료 넘겨주고, 사건 설명하고, 그녀가 윗선에 허락받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네, 진혜경입니다.
“진 앵커님,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아, 변호사님. 전화번호가 바뀌셔서 몰랐네요. 오랜만에 연락 주셨네요? 무슨 일로…….
“지금 특종을 들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9에서 보도 가능한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특종요? 어떤 특종을 말씀하시는 거죠? 아, 일단 메모지부터 가져올게요.
“메일 주소 알려 주시면 보도 자료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서재로 이동하며 말했다.
메일함에 접속하자, 윤세연이 보내 놓은 보도자료가 와 있었다.
일목요연하게 설명이 잘되어 있어서, 진혜경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보여 주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진혜경이 불러 주는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다 읽으시고 보도 가능한지 연락 주십시오.”
* * *
진혜경은 전화를 끊고 메일을 확인했다.
안경을 끼고 현장 사진 몇 개와 더불어 윤세연이 정리한 기사를 읽으니,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쳤어…….”
단독으로 나간다면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인 기사였다.
차주한은 늘 엄청난 특종을 몰고 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 박영기 차장 장남의 마약 유통에 대해서는 세간에 우신의 장난질이라는 말이 돌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명백한 정황을 포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혜경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9시까지는 2시간이 남았다.
사건이 일어난 폐공장 위치는 방송국에서 편도 1시간.
지금 기자를 보내면 때에 맞춰 내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국장의 허락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바로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진혜경인데, 지금 메일로 자료 넣어 줄게. 오늘 당장 송출할 수 있게 카메라 기자 데리고 거기로 가. 자료는 가면서 읽고.”
혹시 보도할 수 없게 되더라도 때에 맞추려면 지금 당장 기자를 보내 놔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들고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김우진 앵커에게 다가갔다.
“선배, 이것 좀 읽어 보세요.”
“뭔데?”
“특종요.”
진혜경의 말에 빠르게 보도 자료를 확인한 김우진은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고상준의 비서실장과 현직 부장 검사가 직접 연루된 사건은 사이즈가 꽤 컸다.
“이거 오늘 뉴스9에 내보낼 수 있을까요?”
“힘들 것 같은데……. 국장님이 허락하시겠어?”
“어차피 내일이면 경찰에서 발표할 거예요. 이거 놓치면 아까워서 밤에 잠 어떻게 잘 거예요. 그리고 이거 자세히 보시면 일중일보에서 내보내려고 준비 중인 자료예요. 여기 윤세연 기자 이름 보이시죠.”
“일중일보는 이 보도 절대 안 낼걸? 우신이랑 끈끈하잖아. 그래서 이게 진 앵커한테 토스 된 거 아니야? 우신 관련된 거 보니까 차주한 변호사 작품 같은데.”
“선배가 같이 국장님 설득해 줘요, 네?”
“야, 그러다가 우리 광고 다 떨어져 나가.”
“선배까지 이러기예요? 하……. 알겠어요. 저 혼자 가서 허락받고 올게요.”
진혜경은 노트북을 들고 씩씩대며 국장에게 갔다.
국장은 갑자기 나타난 진혜경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왜.”
“이거 오늘 단독 특종으로 내보내고 싶습니다.”
진혜경의 말에 보도 자료를 확인한 국장은 놀란 눈치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앵커 교체되고 싶어?”
“국장님!”
“우신에서 광고 빼면 어떡할 거야. 안 돼.”
“이미 기자들 다 보내 놨어요.”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국장의 언성이 높아지자, 보도국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여들었다.
“요즘 시청률 떨어진다고 걱정하셨죠. 이런 걸 보도해야 사람들이 뉴스를 봐요. 아무도 관심 없는 정재계 인사 패션 뉴스 같은 거나 내보내니까 아무도 안 보는 거라고요!”
“아, 글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보낸 기자들도 다 철수시켜.”
국장은 딱 잘라 말하며 의자를 돌려 진혜경을 등졌다.
그때, 자리에 앉아 있던 김우진이 진혜경 옆에 서며 말했다.
“이거 안 내보내시면 저 오늘 뉴스 진행 안 하겠습니다.”
“뭐?”
“진 앵커 말 뭐 틀린 거 있습니까? 매일 특종 가져오라고 회의 시간마다 말씀하셨죠. 그래서 이렇게 대형 단독 가져왔는데 왜 보도하면 안 됩니까?”
“단체로 뉴스9 앵커 교체되고 싶어서 이래? 내가 된다고 해도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하실 거다!”
“등 돌릴 시청자들 마음 잡을 기회입니다. 내보내야 한다고요!”
메인 앵커 두 사람이 압박하고 들어오자, 국장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대하는 이유랍시고 댈 수 있는 게 ‘우신에 밉보이면 곤란하다, 광고 빠진다, 앵커 교체되고 싶냐’뿐인 것에 자괴감도 들었다.
국장은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며 그들을 향해 의자를 돌렸다.
“그럼 니들 둘이 책임져. 나는 모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