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94)
너희들은 변호됐다-394화(394/641)
[황영찬 부장검사의 사설 금고에서 대량의 현금과 함께 장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장부에는 그간 황영찬 부장검사가 정재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받은 내역과 함께, 범죄 사실을 감춰 주었던 내역이 적혀 있어 크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장부는 이른바 황영찬 리스트로 불리며, 서울 고등검찰청은 장부 안에 이름이 오른 관계자들을 불러 강력하게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목진동에 위치한 사설 금고에서 나온 황영찬의 장부는 대한민국에 큰 광풍을 몰고 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황영찬 리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인데, 별명이 붙는 사건은 그만큼 화제성과 심각도가 높다는 의미다.
황영찬은 아직 재판을 받기 전이라 부장검사라고 불리고 있지만, 아마 재판이 끝나면 파면과 함께 징역형을 받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나는 적절하게 복수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신에게도 꼬리 자르기 당했기 때문에 재기 불능의 상황이다.
불법으로 받은 자금들도 전부 국고로 환수될 테니, 징역을 살고 나오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경찰 조사에서 황영찬에게 전부 뒤집어씌우고 홀랑 빠져나가려고 했던 우신 고상준의 비서실장 역시도 꼬리를 끊는 데에 실패했으니, 이보다 마음에 드는 엔딩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일로 고상준을 잡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고윤호와 고윤석은 확실히 빠져나갈 구멍 없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은 이 정도로 만족한다.
어차피 고상준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에겐 남은 카드가 있으니까.
“차 변호사님! 여깁니다!”
오랜만에 대박집에서 약속이 잡혔다.
이번에는 최종현과 조봉준, 강민재, 그리고 허민우가 함께였다.
원래는 강민재와 허민우, 셋이서 보기로 했던 것이었는데 허민우가 최종현과 조봉준 팬이라며 불러 달라고 해서 대인원이 되었다.
허민우는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크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입구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몇몇이 나를 알아본 것인지 흘긋대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일행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차 변 왔어?”
“네. 왔습니다.”
나는 빈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이미 즐거운 이야기 중이었던지, 나를 반기자마자 다시 멈췄던 대화를 시작했다.
“어쨌든 그래서 기자님 방송 다시 보기를 밤새 가면서 봤다니까요. 출근해서도 보다가 혼난 적도 있습니다, 하하.”
“허 경위님도 저희 방송 시청자였다니, 정말 몰랐습니다. 아, 경찰이 보고 있는 줄 알았으면 말을 좀 조심해서 했어야 했나?”
“아뇨, 아뇨. 날것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도 가끔 채팅 치고 그랬었다니까요.”
“채팅을 치셨어요? 닉네임이 어떻게 되십니까?”
“닉네임은 비밀입니다. 찾아보실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뭐 그런 걸 비밀로 하고 그러십니까. 그냥 알려 주세요.”
“비밀이라니까요.”
“아, 알려 주세요. 그럼 저희가 광고 건너뛰고 볼 수 있는 쿠폰 보내 드리게요.”
“비밀입니다.”
“너무하시네, 정말.”
“아니, 닉네임이 비밀이란 뜻입니다.”
“아……. 비밀이 닉네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하, 드디어 알아들어 주시네요.”
허민우가 속 시원하다는 듯 말했다.
테이블이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나에게 어색한 장면은 아니다.
이전 삶에서도 허민우와 최종현은 친했으니까.
물론 그때 이런 자리에 조봉준과 강민재는 없었지만.
“차 변호사님도 한잔하셔야죠.”
허민우가 내 앞에 놓인 잔에 소주병을 갖다 대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 가져왔습니다.”
“대리 부르면 되죠.”
“냅둬요. 저 인간 어차피 취하지도 않는데.”
“술이 세신가 봐요.”
조봉준의 말에 최종현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술이 약하진 않지만,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에 취했을 때 강민재에게 인생 2회차라고 말한 적도 있고, 그 자리에 동석했던 동진에게 미안하다고 술주정을 부렸던 것을 생각하면 허민우 앞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아니, 그래서 제가 차 변호사님 처음 뵀을 때……. 그때가 우신 놈들이 변호사님한테 이정찬 살해 누명 씌웠을 때였는데, 제가 존경한다면서 인사드렸거든요. 우신 뿌시는 거 멋지다고 그랬는데, 차 변호사님이 엄청 차갑게 본인은 그런 활동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한 시간쯤 경과했을 때, 허민우는 반쯤 취해 있었다.
나한테 쌓인 게 있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쁜 놈.”
최종현 역시도 눈이 풀린 채 나를 바라보며 맞장구쳤다.
“아주 나쁜 놈, 저거저거.”
최종현이 원래 나에게 말을 놓긴 하지만, 욕을 먹어 본 건 처음이다.
이전 삶에서도 먹어 본 적 없었는데.
“근데 아주 최 기자님하고 조봉준 씨하고 하는 방송도 도와주고 우신 관련된 사건 있으면 다 맡고 다니고, 누가 봐도 우신 저격하는 거 맞잖아요. 진짜 서운했습니다, 정말요.”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이번 사건 할 때도 저한테 사건에서 빠지는 게 어떠냐고 하는 겁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데요.”
“아니, 우리 허 경위님이 일을 얼마나 잘하시는데 차 변이 나빴네, 아주. 왜 빠지라고 해, 왜!”
“저는 제가 뭐 잘못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 변호사님이 저한테 뭐 얘기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서운합니다, 저!”
“인간적으로 사과해라.”
“사과해라, 차주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전 삶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모르는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나는 못 들은 척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갔다.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에선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담배나 한 대 피우고 들어오면 대충 화제를 바꿔 저들끼리 낄낄대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변호사님.”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갔을 무렵, 허민우가 내 옆으로 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왜 나오셨습니까.”
“술 좀 깨려고요.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허민우에게 라이터를 건네자, 그는 불을 붙이고 나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흘긋흘긋 나를 훔쳐보았다.
마치 눈치라도 보는 듯해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 말 있으면 하십시오.”
“변호사님, 저 때문에 화나신 건 아니죠? 농담 삼아서 한 말입니다.”
“압니다. 그리고 서운하실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이다.
이전부터 우리는 경찰 내부인 중에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왔고, 이렇게 허민우가 등장했는데도 나는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있으니까.
그는 계속해서 우리와 함께 행동하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내왔다.
내가 반기기만 했다면, 그는 진작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 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도움을 주었듯이.
“그럼 왜 사건에서 빠지라고 하셨습니까?”
허민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미 사건은 고검으로 넘어갔고, 잘 풀리고 있지 않습니까.”
“…….”
“들어가시죠.”
내가 말하기 싫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허민우도 더는 묻지 않았다.
“왔네.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
내가 담배를 피우고 온 짧은 시간 동안, 강민재와 최종현, 조봉준은 만취 상태가 되어 있었다.
볶음밥을 주문해 놓고, 젓가락으로 먹는 것도 아니면서 볶음밥을 테이블에 다 흘리질 않나, 남은 소주를 마시는데 넘치게 따르질 않나, 가관이었다.
“5분도 안 있었습니다.”
“그런가? 사장님! 여기 소주 두 병만 더 주세요!”
아, 집에 가고 싶다.
다시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강민재는 완전히 취해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고, 최종현과 조봉준은 만취해서 서로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기 시작했다.
허민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헤드뱅잉을 시작했고, 이 안에서 유일하게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나는 이번에도 뒷정리는 내 몫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이만 일어나죠.”
나는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났다.
그러자 강민재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허민우는 헤드뱅잉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계산하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들 나오세요.”
나는 그들을 남겨 두고 계산대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서로 어깨동무 한 채로 나오는 최종현과 조봉준, 강민재와 허민우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강민재가 허민우를 부축해서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허 경위님이 정신을 못 차려요. 무거워어엉.”
하, 일단 교통정리부터 해야겠다.
나는 최종현과 조봉준을 택시 태워 보내고, 강민재에게는 대리를 불러 주었다.
모두들 흩어지고 허민우만 남았는데,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마신 거지.
나는 이마를 짚으며 일단 그를 부축해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오천 원입니다.”
숙취해소음료를 사서 밖으로 나온 나는, 편의점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허민우에게 숙취해소음료를 건넸다.
그래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는지, 꿀떡꿀떡 잘도 마셨다.
자, 이제 집이 어딘지 물어보고 택시 태워 보내면 된다.
이전 삶의 지식으로 그의 집이 어딘지는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시점에 아직도 거기 사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허 경위님.”
“…….”
“댁이 어디,”
“우웨에에엑!”
그리고 그는, 대답 대신 내 구두 위에 장렬하게 토했다.
“……으으.”
그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헤드뱅잉을 시작했다.
여태까지 교통정리는 늘 나의 몫이었지만, 나에게 토한 사람은 허민우가 처음이다.
나는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차 트렁크에 여분의 구두가 있으니까 갈아 신으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참자.
“어으, 어어…….”
“허 경위님, 댁이 어디십니까.”
“어어으…….”
강민재도 그렇고, 왜 내 주변엔 이런 사람만 있는 걸까.
나는 허민우를 끌고 주차장으로 갔다.
일단 허민우가 토한 구두를 벗어 대충 가게 앞 쓰레기봉투 안에 쑤셔 넣고, 새 구두로 갈아 신었다.
허민우를 내 차에 태우는 건 상관없었지만, 차 안에 토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가게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얻어 손잡이를 허민우의 양쪽 귀에 걸어 주었다.
“토하려면 여기다가 하세요. 집까지 금방입니다.”
오늘은 할 수 없이 허민우를 우리 집에서 재워야 할 것 같다.
집 주차장에서부터 또 허민우를 질질 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일단 토할 만큼 하라고 화장실에 그를 던져 넣고, 나는 침실 욕실로 들어와 샤워했다.
허민우의 토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아서, 오늘 입었던 수트도 빨래 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거실로 나가자, 허민우가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으으…… 차 변호사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어우으…… 술 3리터는 토한 것 같습니다. 죽겠어요…….”
“여기 환 있습니다. 이거 드시고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가세요.”
“감사합니다…….”
허민우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환을 삼키고 다시 드러누웠다.
“그럼 저도 자러 가 보겠습니다.”
“변호사님.”
침실로 들어가려는데, 허민우가 문득 나를 불렀다.
“네.”
“이제는 저 신뢰하시는 거 맞죠?”
그의 모습에서 강민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할 말을 잃고 만다.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바라보았다.
“아닙……니까?”
“아뇨, 신뢰합니다. 처음부터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낯을 가려서요.”
“아, 그러셨구나.”
되도 않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술을 마신 허민우는 납득해 주었다.
“불 끄겠습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불을 끄고 소파에 누운 허민우를 바라보았다.
불현듯, 이전 삶에서 그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