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399)
너희들은 변호됐다-399화(399/641)
허민우는 골목길을 걷다가 갑작스럽게 피습을 당해 허무맹랑하게 죽고 말았다.
괴한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러 허민우를 살해한 뒤, 그 길로 경찰서로 가 자백했다.
그저 아무나 걸려라 하면서 골목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던 허민우를 급습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허민우의 죽음이 우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민우가 예림을 찾는 과정에서 우신의 여린 살을 찔렀기 때문이리라.
돈 세탁 냄새를 맡고 천사의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최종현도 살아 있는데, 실종 아동을 찾겠다고 조사하던 허민우가 죽었다는 것은, 예림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은 2011년 8월 초.
예림이 사고를 당해 우신 병원에 실려 갔다가 천사의 집으로 가게 된 것은 2011년 8월 중순의 일.
일단은 예림을 지켜야 한다.
그게 허민우를 지키는 방법이니까.
“…….”
나는 세상모르고 잠든 허민우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래서 허민우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우신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나와 같이 행동하면, 더 빠르게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허민우가 왜 우신의 표적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지금 상황에서, 허민우가 우리와 함께 움직이면 더 위험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이 없다.
이전 삶에서 허민우의 죽음은 예림을 조사하면서 시작되었으니, 애초에 예림을 조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수밖에.
나는 허민우에게 담요를 덮어 주고침실로 들어왔다.
왜인지 잠이 오지 않아서, 내일 아침에 연락하려고 했던 태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어떤 개새끼가 이 시간에 전화를 걸고 지랄이야…….
태식은 자고 있었는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가 해 줄 일이 있어.”
-아, 변호사님?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굴 찾아 드리면 됩니까?
“찾아 주는 게 아니야.”
-그럼요?
“지켜야 해.”
-누굴요?
“전화 끊고 문자로 인적 사항이랑 주소 보내 줄게. 7살 여자애야. 교통사고든 유괴든 뭐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 주면 돼.”
-이상한 의뢰네요. 언제까지요?
“글쎄……. 9월 될 때까지 일단 지켜보고, 상황 보고 더 연장하든지 그만두든지 하자고.”
-알겠습니다. 근데 앞으로는 이 시간에 전화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짜 개꿀잠 자고 있었거든요? 꿈도 엄청 재밌는 꿈 꾸고 있었는데…….
“무슨 꿈인데.”
-여기저기 띠용띠용 하면서 날아다니는 꿈이요, 씻팔. 진짜 재밌었다고요.
“애냐…….”
-하여간 꿈 이어서 꿔야 하니까 저 자러 갑니다. 안녕히 주무십쇼.
“아, 그리고.”
-아, 꿈 이어서 꿔야 한다고요!
“지킬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누군데요.
“강남서 허민우 경위. 눈에 띄지 않게 뒤에서 잘 지켜.”
내 말에 태식은 한동안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 조용히 물었다.
-7살짜리 꼬마랑 허민우 경위가 사고당할 게 정해진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태식이 이렇게 예리했던가.
“사고로 위장해서 죽임을 당할까 봐 그러는 거야.”
-아하, 일단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애들한테 말 전해 놓을게요. 믿을 만한 놈들한테.
“그래. 꿈 마저 꿔라.”
-잠 다 깼어요, 젠장. 하여튼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그나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번 생에선 우신의 손에 죽는 사람이 없도록 막을 것이다.
반드시.
* * *
똑똑.
사무실에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대답하자, 오 사무장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박승호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변호사님하고 통화하고 싶다고…….”
박승호 변호사?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오 사무장에게 물었다.
“무슨 용건이랍니까?”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님하고 얘기해야 한다고만 하고.”
“그럼 전화 연결해 주십시오.”
“네.”
오 사무장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차주한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승호 변호사라고 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이세형 씨 아시죠?
박승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세형이라면 죽은 이정찬의 아들이다.
장애를 극복했다는 가짜 스토리로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지금은 감옥에 수감 중이다.
“네, 압니다.”
-저는 이세형 씨 변호사입니다.
본래 이세형의 변호는 태광에서 맡았는데, 이정찬이 죽은 후로는 태광과 헤어지고 새 변호사를 선임한 듯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세형 씨가 차주한 변호사님이 접견을 와 주셨으면 한다고 해서 전해 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이세형 씨가 말한 사람이 저 맞습니까?”
이세형이 나를 만나자고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세형은 나 때문에 자살 기도 한 척 쇼까지 벌인 사람이 아니던가.
-네. 차주한 변호사님 확실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접견 가 주실 거죠?
박승호가 물었다.
이세형이 왜 내가 접견 오기를 바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건질 게 있을까 싶어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방에서 나와 강민재의 방으로 들어갔다.
노크 없이 들어가서 그런지 강민재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강민재의 얼굴 앞에 박수를 한 번 쳤다.
“으아!”
강민재는 괴상한 신음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저 잔 거 아니에요.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잤어도 상관없어. 방금 박승호 변호사라는 사람이 연락 왔는데.”
“그게 누군데요?”
“이세형 변호인이라는데.”
“이세형 변호인이 왜 변호사님한테 연락을 해요?”
이세형은 아마도 나 때문에 자신의 사기극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생각해 나를 크게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나쁜 소리를 하려고 했다면 지금이 아니라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을 수감 직후에 했을 것이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몇 달 있으면 석방될 텐데 뭐 때문에 나를 보자고 했을지 나도 궁금하다.
“접견을 와 달라고 했대, 이세형이.”
“접견요?”
“일단 뭐라도 건질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가 볼 건데.”
“저도 갈래요!”
“그럼 준비해. 지금 가게.”
“지금이요?”
“궁금하잖아. 빨리 가야지.”
내 말에, 강민재가 씨익 웃으며 일어났다.
“저도 그래요.”
그러면서, 그는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우리는 그 길로 이세형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향했다.
접견 신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접견실로 안내받았다.
강민재와 나란히 앉아 잠깐 기다렸더니, 곧 수의를 입은 이세형이 유리벽 너머로 나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보통 체중이었던 이세형은 수감된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마른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과 내려간 입꼬리는 다소 음울하고 초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슨 일로 접견을 와 달라고 하셨습니까.”
내 물음에, 이세형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당신 생각하면 열이 뻗쳐서 잠이 안 오긴 하는데……. 그래도 더 열 받는 인간들이 있어서.”
우신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정찬과 우신은 한때 한배를 탔던 사이다.
하지만 이정찬이 대국민 사기극과 명화제약 건으로 추락하면서, 우신은 이정찬을 버렸다.
그뿐인가.
이정찬은 나에게 우신의 비리가 담긴 자료를 넘기기로 했지만, 전달하지도 못하고 우신에 의해 살해당했다.
물론 그땐 직접 죽인 사람들과 고윤수의 비서실장만 조명되어 처벌 받았지만, 이세형은 충분히 상황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정찬이 복수하기 위해 나에게 우신의 비위 사실을 알리려 했다가 우신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그러니 우신과 관련된 비리에 달려드는 나에게 만나자고 한 것이고.
그렇다면 이세형은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여기 들어와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우리 집안은 왜 풍비박산이 났나…….”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나도, 아버지도 참 죄가 많지. 국민을 속였으니까. 물론 당신 원망도 많이 했어. 당신만 아니었으면 우리 집안이 개박살이 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원망할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
“이세형 씨 말대로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 겁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버지가 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세형이 책상을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럼 우신을 원망해야죠. 이세형 씨 아버지를 죽인 건 우신이니까.”
“그래, 나도 알아요. 그래서 우리 집안을 풍비박산 낸 당신이 너무 싫지만, 더 좆같은 새끼들이 있어서 당신 보자고 한 겁니다.”
이세형이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씩씩대며 말했다.
“용건이 뭡니까.”
이세형은 이제 겨우 진정이 됐는지 씩씩거리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늘 가지고 다니던 회중시계가 있어요.”
“회중시계요?”
뜬금없는 말이라 생각했는지, 강민재가 물었다.
“그 안에 SD카드가 들어 있거든. 거기에 우신의 비위 사실이 담긴 자료가 있을 겁니다.”
“지금 그걸 이세형 씨가 갖고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이세형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그걸 갖고 있었으면 진작 줬겠지. 아버지 시신이 발견됐을 땐 없었어요.”
“그러면 우신이 가져갔을 확률은요.”
“우신이 그걸 가져가겠어요? 그 회중시계에 SD카드가 들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아버지 죽인 놈들이 핸드폰도 그대로 두고 갔는데, 회중시계를 가져갔을 리가 없죠.”
이세형의 태도는 다소 삐딱했지만, 그가 말하는 정보들은 꽤 쓸 만했다.
그러잖아도 이정찬이 나에게 넘기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마침 이세형이 이렇게 힌트를 주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도움을 얻었다.
“회중시계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은색이고, 뒤편에 각인이 있어요. 한자로 오얏 리 자요. 제가 생신 선물로 드렸던 겁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일어날 준비를 하는데, 이세형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꼭 우신 조져 줘요.”
“…….”
“우리 아버지 그렇게 만든 개새끼들, 다 족쳐 달라고.”
그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이런 부탁을 당신들한테 해야 한다는 게 참 웃기지만, 당신들 말곤 우신을 조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씨발, 나도 당신들한테 이러고 있는 거 참 웃긴데…….”
“이세형 씨 부탁 아니어도 그렇게 할 겁니다.”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일어났다.
접견은 그렇게 끝났고, 나와 강민재는 교도소를 나왔다.
“화군 경찰서로 가서 유류품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야지.”
“근데 우리끼리 가면 안 보여 주지 않을까요.”
강민재가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며 대답했다.
“일단 그 회중시계 내 거인 척 경찰 쪽에 분실신고를 해야겠어. 어차피 경찰에서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정찬 것으로 분류되진 않았으니까 내 거인 척 신고해도 될 거야.”
이세형은 이정찬 이름으로 나온 유류품 중에서는 없었다고 말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일단 시계는 경찰이나 낚시터에서 분실물로 보관하고 있거나, 아니면 저수지에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 경찰에 먼저 확인하고, 나머지 장소를 차례차례 추적하면 된다.
“허민우 경위님한테 부탁해 볼까요?”
허민우에게 부탁하면 경찰이 보관하고 있는 유실물도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찰 동료가 필요하다고 말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한결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내가 검찰에서 나왔고, 우리 중엔 수사기관에 속한 동료가 없기에 더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허민우가 된다는 것은 나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예림에게 이전 삶과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래서 허민우가 안전해진 것을 확인해야 겨우 마음이 놓일 듯하다.
“아니, 일단 우리가 찾아보고 안 나오면 그때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