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02)
너희들은 변호됐다-402화(402/641)
이튿날, 화군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오얏리 자가 새겨진 회중시계가 신고되어 경찰서에서 보관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화군 경찰서로 향했다.
“이 시계 맞나요?”
경찰이 시계를 가지고 나와 나에게 보여 주었다.
과연 이세형의 말대로 뒤로 뒤집어 보니 오얏리 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맞습니다. 혹시 누가 갖다줬는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묻자 경찰이 웃으며 말했다.
“경찰이 가져다준 거라, 사례는 안 하셔도 됩니다.”
경찰?
회중시계는 분명 화군 저수지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라니.
‘……허민우?’
허민우에게 회중시계에 대해서 알린 적은 없었다.
그가 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허민우가 우리의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셈이 되므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강민재가 부탁했나.’
허민우가 알게 된 까닭은 강민재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민재가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는데, 그때 허민우를 만나 부탁했나.
나는 이마를 짚었다.
강민재에게 한마디 해야 할 것 같다.
회중시계를 인도받은 뒤, 나는 바로 사무실 근처 시계방으로 향했다.
벽면이 시계로 가득 찬 매장 안에는 주인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유리 매대 앞에 회중시계를 내려놓았다.
“……아, 손님이 오셨네.”
내가 시계를 내려놓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건지, 시계방 사장이 하품하며 느릿느릿 말했다.
시계방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곳에 찾아온 것인데, 대체로 고가의 시계를 고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들었다.
사장이 장인이라고 불리기에, SD카드 손상 없이 잘 분해할 수 있겠지 싶어 온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니, 시계라도 고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신뢰도가 조금 하락했지만, 달리 갈 곳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시계 안에 SD카드가 들어 있는데, 시계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으니 SD카드 잘 살려서 꺼내 주시면 됩니다.”
“침수됐네. 이 비싼 걸 어쩌다가 침수시켰대.”
사장은 시계를 겉으로 몇 번 확인한 것으로 침수 사실을 파악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언제 오면 되겠습니까?”
“내일 저녁에 와요. 다른 거 먼저 해 줘야 하는 게 있어서.”
“알겠습니다.”
내가 사무실로 돌아가자, 강민재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방 안에서 튀어나왔다.
“시계 찾으셨어요?”
“시계방에 맡기고 왔어. 내일 저녁에 오래.”
“와, 드디어 이정찬이 남긴 자료를 찾는구나.”
“그건 그렇고, 강 변. 내 방으로 좀 와 봐.”
“왜요? 중요한 단서라도 찾으셨어요?”
찾았지.
강민재가 허민우와 내통하고 있다는 단서를.
“뭔데요?”
강민재는 신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의자에 앉으며 강민재를 올려다보았다.
“시계, 허 경위한테 부탁해서 찾았어?”
“…….”
강민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입술을 살살 무는 것을 보면,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허 경위가 저수지에서 만난 그 남자한테서 시계 받아다가 화군 경찰서에 분실물 접수한 거 맞지?”
“아니……. ……네.”
“아니면 아니고, 네면 네지 뭐야, 그 답변은.”
“아니, 허 경위님이 나서 주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건데 변호사님이 싫어하실 것 같아서 몰래 부탁드렸어요…….”
강민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허 경위한테 우리 일 부탁하지 마.”
“허 경위님이 불편해하실까 봐 그러세요? 경위님은 저희 도와주는 거 되게 보람차 하시던데…….”
강민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전 삶에서도 허민우는 최종현을 도와주고 싶어 했고, 내가 예림이 위조여권으로 출국했을 가능성을 제시했을 때도 은혜를 갚겠다고 했었다.
이번에도 깡치와 황영찬, 그리고 고상준의 비서실장까지 검거하는 데에 도움을 줬으니 그는 우리를 돕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 일에 엮이는 건 여기서 멈추는 게 좋다.
이전 삶에서도 우신에 살해당했던 사람이다.
이번 삶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렇기에 거리를 두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일이잖아. 강 변도, 최종현 씨도, 조봉준 씨도, 그리고 태식이도 다 목숨 걸고 일하고 있는데 허 경위한테 그런 준비가 됐을 거라고 생각해? 우신은 이정찬이 그 자료를 우리에게 넘기려고 한다는 걸 알고 이정찬을 죽였어. 허 경위는 그 자료가 우리 손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 도왔고. 허 경위가 위험해질 거란 생각 안 해?”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생각 못 했어요. 그냥, 변호사님이 전에 수사기관에 속한 동료가 한 명쯤은 필요하다고 하셔서 허 경위님이 되면 어떨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생각 하지 마. 허 경위는 안 돼.”
내 말에 강민재는 의문을 품었는지,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만일 허 경위님도 목숨 걸고 우신 잡고 싶다고 하면요?”
“그래도 안 돼.”
“왜요?”
이전 삶에서 최종현은 안전했다.
강민재는 강관웅의 손자이니 안전할 테고.
조봉준은 이번 삶에 만난 사람이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최대한 지켜 줄 생각이다.
하지만 허민우는 이전 삶에서 너무나도 허무맹랑하게,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나는 허민우가 예림에 대해 조사하다가 죽었다는 것 외에는 그가 죽은 까닭을 모른다.
한마디로 그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기에 지켜 주고 싶어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확실하게 내가 지켜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애초부터 같은 팀이 되지 않는 게 낫다.
“허 경위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르잖아. 그 사람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라고 하더라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허 경위한테 기대지 마.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알겠습니다.”
강민재는 조금 풀이 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허 경위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도 허 경위를 좋아한다.
단지, 또 죽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변호사님, 허 경위님한테 종현 형님이랑 봉준 형님도 소개해 주시고, 우리가 방송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 주시고……. 허 경위님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방 밖으로 나가려던 강민재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허 경위는 믿는다.
최종현도 이전 삶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최종현의 영향으로 그 역시 우신 복지 재단에 대해 크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예림을 찾고 나면 그 조사를 돕기로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믿는다고 하면, 강민재는 또 몰래 허민우에게 무언가 부탁을 하려 들지도 모른다.
“안 믿어.”
“안 믿는다고요?”
“그래. 우리가 방송 지원하고 있다는 건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면 다 알고, 최종현 기자하고 조봉준 씨하고 친한 것도 알 사람은 다 알아. 저번 사건 같이 해결했고, 허 경위가 방송 팬이라고 해서 그냥 자리 마련한 것뿐이야. 어떻게 믿어, 이제 알게 된 사람을.”
“그래도 박진성 씨 사건에서도 우리 편이었고…….”
“그건 당연한 거고. 누가 봐도 박진성 씨가 누명 쓴 거였잖아.”
“정 검사님도, 박영기 차장님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그건 그 사람들 기준에서 그런 거고. 우리 일은 보안이 가장 중요한 거 몰라?”
“…….”
“아무튼 이제 나가 봐.”
나는 컴퓨터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강민재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가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 의자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나 역시 우리 일에 허민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번에도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 *
이튿날 저녁, 나는 다시 시계방에 갔다.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사장은 졸지 않고 돋보기를 끼고 시계를 보고 있었다.
“회중시계 맡겼던 사람인데요. 어떻게 됐습니까.”
“SD카드는 여기 있고, 시계도 잘 작동합니다. 침수 때문에 내부에 녹이 슬어서 그거 처리하는 데 품이 좀 들었네. SD카드도 잘 말렸는데, 이건 내 전공이 아니라 작동할지 안 할진 몰라요.”
그렇게 말하며 사장은 계산기에 시계 수리 비용을 입력해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얼마가 나왔든 SD카드만 살아 있으면 상관없기 때문에, 나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시계 조심히 잘 다뤄요. 비싼 건데.”
SD카드는 내가 갖고, 시계는 이정찬의 유품이니 이세형에게 돌려주는 게 좋겠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어요? SD카드 살았어요? 바로 한 번 넣어 볼까요?”
“잘 말랐는지 알 수 없어서, 바로 넣으면 고장 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 사무장이 SD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국정원한테 가서 물어볼까요?”
강민재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다.
국정원이 이런 것까지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청 기계도 뚝딱 잘 만들어 내는 걸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 길로 바로 국정원에게 갔다.
미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히키코모리라 항상 그 노래방이었던 본인의 작업실에 있는 편이다.
“어우, 퀴퀴한 냄새는 여전하네.”
강민재가 코를 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빼꼼 열렸다.
“누구슈. ……아, 변호사님!”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요?”
“물에 침수됐던 SD카드야.”
내가 SD카드를 꺼내 보여 주자, 국정원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침수된 것도 잘 돌아가냐고 물어보셨던?”
“어. 이게 지금 제대로 잘 마른 건지 모르겠어서, 확인받으려고.”
“아. 안으로 들어오세요. 좀 더럽지만, 발 디딜 틈은 있어요.”
“좀 더럽지만? 아주 더럽지만이겠죠.”
강민재가 한마디 보태자, 국정원이 강민재를 노려보았다.
“확 진짜 안 해 줄까 보다.”
어쨌든, 국정원은 자신의 방으로 가 SD카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컴퓨터에 연결해서 뜨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한 시간쯤 만지더니, 곧 우리를 향해 모니터를 돌리며 말했다.
“복구됐습니다. 데이터들 다 살아 있어요.”
모니터 안에는 네 개의 파일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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