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09)
너희들은 변호됐다-410화(409/641)
#410화
나는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낚싯배 위.
한편에서는 시멘트 섞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은 다섯 명 정도.
놀랍게도 이전 삶과 동일한 조건이지만 한 가지 다행인 건 내가 아직 드럼통에 들어가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팔과 다리가 각각 꽁꽁 묶여 있었고, 내가 들어가게 될 것으로 보이는 드럼통은 내 바로 옆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표정 관리 잘하네. 아주 포커페이스야, 포커페이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낄낄대며 말했다.
나는 지금 표정 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해서, 또다시 발작이 올까 봐 침착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호흡을 가지런히 하고,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등의 노력 말이다.
현실을 자각할수록 몽롱했던 기운은 사라지고, 나는 점점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뺨을 스치는 습도 높은 공기, 바닷물 위에서 넘실거리는 배, 나에게 모인 시선들, 언제라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빠루와 못이 박힌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남자들까지.
“…….”
두근, 두근.
그때, 그렇게도 바라지 않았던 신체 반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했다.
“하아, 하아…….”
호흡이 가빠지고, 눈앞이 하얗게 질려갔다.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
적어도 여기서는.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에 하는 행동이 고작 숫자 세기라니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여기서 발작이 일면 저들이 나를 바로 드럼통에 집어넣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으윽, 하아…….”
젠장, 저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태식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저려 오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계속 심호흡했다.
침착하자.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발작이 왔던 것도, 이렇게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신체 반응에 묻혀 침전했다.
숨이 너무 가빠서 호흡하지 못할 것 같았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이대로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저들이 나를 담그기 전에 내가 먼저 발작으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강 변이 말한 대로 어디 한군데 시선을 집중시켜도 보았지만, 배가 너무 흔들려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죽기 전에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어떻게든 이성을 되찾으려 했지만, 내 신체 반응은 이를 철저히 방해하고 있었다.
“으윽, 으…….”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손과 발이 자유로웠다면 어디든 붙잡고 버텼겠지만, 꽁꽁 묶인 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 새끼.”
“약 꽂은 게 뭐 부작용 일어난 거 아닐까요?”
그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증폭되어 크게 들려왔다.
우습게도,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 너 미쳤어?”
남자는 옆으로 쓰러져 헉헉대는 나를 발로 밀었다.
“개수작 부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어차피 넌 여기서 죽어.”
남자가 내 목을 밟고 짓이기며 말했다.
“끄윽!”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본데.”
남자가 눈짓하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내 멱살을 붙잡고 일으켰다.
그리고 뺨을 후려갈겼다.
그렇게 폭력은 계속되었다.
입안이 터져 피가 났고, 배가 차여 호흡이 더욱 불안정해졌다.
빠루가 내 등을 후려쳤고, 못이 박힌 야구 배트는 내 허벅지를 강타했다.
젠장, 더럽게 아팠다.
고통 덕분에 발작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정도로.
여기서 조금만 더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차라리 드럼통에 들어가느니 여기서 맞아 죽는 게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가 온몸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분은 내가 태어나서 겪은 모든 고통 중에 가장 끔찍했으니까.
“이, 새끼가, 돌았나!”
바닥에 흐트러진 나를 마구 밟으며 남자들이 욕설을 뱉어 냈고, 나는 몸이 묶여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맞고 있기만 했다.
반항다운 반항도 하지 못한다니,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은 오랜만이다.
나는 펜이 칼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지만,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을 경험했더니 역시 법보다는 주먹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씨발, 회장님한테 무릎 꿇고 사죄하면 살려는 준다는데, 무슨 고집이 이렇게 세?”
“그러니까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겠죠.”
“시멘트 준비됐어?”
“예.”
“그냥 담가.”
담그라고?
시멘트 속에서 이전 삶과 똑같이, 그렇게 죽으라고?
이대로 내가 죽으면.
강민재는, 최종현과 조봉준은, 오 사무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한 번의 삶을 건너 겨우 다시 만나 살려 낸 부모님은?
안 돼.
난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살아서 내 동료들을 지키고, 고상준도 내 손으로 조져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드럼통 눕혀.”
남자의 지시에 따라 부하들이 드럼통을 옆으로 누였다.
나를 그 안에 집어넣을 속셈인 듯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어윽!”
나는 나를 붙잡은 남자의 머리에 내 머리를 세게 박고 그들이 당황한 사이에 배 모서리로 몸을 던졌다.
“이 새끼가!”
그리고 배 밑으로 떨어지기 위해 그대로 머리를 바다 쪽으로 숙이며 두 발로 바닥을 박찼다.
“아윽!”
그때, 복부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배에서 떨어지며 언뜻 보기에는 남자의 손에 식칼이 들려 있었다.
배에서 떨어지는 나를 어떻게든 죽이기 위해 칼로 쑤신 것 같았다.
묶인 몸으로는 헤엄칠 수 없었고, 몸을 꿈틀거리며 헤엄치려 해도 복부에서 느껴지는 악랄한 고통 때문에 더욱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점점 바다로 가라앉았다.
점점, 밑으로, 그렇게 가라앉았다.
* * *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고상준은 넓은 통창을 향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도 없는 고상준을 향해,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차주한의 손에 오래 쓰던 비서실장을 감옥에 보내고, 새로 인선하여 쓰고 있는 새 비서실장이었다.
전에 쓰던 비서실장과 비교하면 아직 미숙한 점은 있지만, 그에게는 쓸모가 있었다.
고상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차주한, 그놈은.”
“집에 침입하는 것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피곤했는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든 차주한의 목에 약을 투입해 무사히 데리고 나왔다고 합니다.”
“실수 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비서실장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조심스럽게 고상준에게 보여 주었다.
사진은 차주한의 목에 약물을 꽂은 모습, 차주한을 묶어 바다로 이동하는 모습, 배에 실어 바다로 나가는 모습, 마지막으로 드럼통과 시멘트를 준비하여 쓰러진 차주한과 함께 찍은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사진을 확인한 고상준은 비서실장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헛기침했다.
“이번엔 실패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회장님.”
“전부 다 포기하겠다는 말은 없었고?”
“네.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 그런 것 같습니다.”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면 살려 주겠다고 말하라고 했다.
하지만 고상준은 이렇게 된 이상 차주한을 살려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를 중간에 살려 보내면 분명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이를 이용해 자신을 궁지에 몰 궁리를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차주한은 보통 독종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우신의 짓이라는 풍문이 돈다고 해도 지금 단계에서 제거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잘못했다고 빌면 살려 주겠다고 한 까닭은 차주한이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비는 비굴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고고한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는 그의 모습이 싫었고, 고작 법조 경력 몇 년 되지도 않은 변호사 주제에 점점 우신을 죄오는 것도 보기에 나빴다.
벌레를 죽이는 것보다 쉽게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자신이 이만큼 봐줬으면 많이 봐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주한의 죽음은 몇 번의 경고를 했음에도 알아듣지 못한 그의 어리석음 탓이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돼.”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그들에게도 단단히 경고했습니다.”
실수가 발생하는 순간 모든 화살이 우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화살이 우신을 향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그 상황을 이용해 차주한이 우신을 어떻게 망신 줄지, 혹은 궁지로 몰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짜증이 치솟았다.
“내가 눈 뜨고 살아 있는 동안 차주한 그놈 얼굴 볼 일 없어야 할 거야.”
“예, 회장님.”
“이만 나가 봐.”
비서실장이 방 밖으로 나가자, 고상준은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고상준 주변을 맴돌았고, 그는 창가에 가까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신이 만든 대한민국이다.
우신이 후진국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여 우신이 아니었으면 놀고먹었을 사람들을 구제해 주었으며, GDP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차주한은 그런 은혜도 모르고 날뛰는 한낱 벌레만도 못한 놈이다.
그런 놈에게 언제까지나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드시 죽어야 해.”
재떨이에 시가를 내려놓는데, 재떨이 옆으로 날파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상준은 그 위로 손을 뻗어 날파리를 엄지손톱으로 꾹 눌러 죽였다.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눌려 죽은 날파리는, 고상준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온 손수건에 묻어 사라졌다.
고상준은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으며 다시 시가를 들어 올렸다.
차주한도 이 벌레와 똑같다.
거슬리니까 죽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