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16)
너희들은 변호됐다-417화(416/641)
#417화
[…아, 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최종현은 녹음기를 끄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조금도 밝지 않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였으며, 몹시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들은 나의 감상을 기다리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들어 보니 천사의 집 유학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학 보낼 아이들 선정 기준부터 확실치 않고요. 그리고 함께 해외로 떠난 아이들이라면 연락을 활발하게 주고받을 법도 한데, 고작 한 명 겨우 연락된다는 걸 보면 의도적으로 연락을 하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 같은 인상도 주고요.”
“그리고?”
조봉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조봉준과 최종현을 번갈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린아이들을 후원자라는 사람들에게 인사시키는 게 뭐랄까……. 장소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적절치 않아요. 그리고 기분 나쁜 눈빛으로 쳐다보다 김승희 씨를 내보냈다는 대목에선…….”
“대목에선?”
“성상납을 연상하게 합니다. 김승희 씨의 말처럼 아이들이 전부 외모가 뛰어났고, 남자아이들은 선이 가늘었다는 대목과 함께 생각해 보면 더욱더 강하게 연상됩니다.”
내 말에 조봉준과 최종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거라고 말해 주길 바랐는데 차 변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저도 아니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김승희 씨의 증언을 들어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전 삶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다.
L&B라는 회사는 고상준의 금고라는 것까지가 내가 알았던 전부였으니까.
천사의 집도 마찬가지다.
천사의 집 아이들 명의의 계좌를 차명계좌로 이용했다는 것 외에는 천사의 집의 활용처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유학을 빙자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참담하기 짝이 없다.
참담하고 끔찍하다.
그 말 외에는 이 상황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설마 14살, 15살, 이런 어린아이들에게도 손을 댔을까? 그 씹새끼들이?”
“글쎄요.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우신이라면 못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원자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마치 룸살롱 아가씨 고르듯 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최종현은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치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반면에 조봉준은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니. 이 개새끼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씨발! 이게 말이 돼?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 되는 거야?!”
“진정해. 다른 병실에 들릴라.”
최종현이 조봉준의 팔뚝을 붙잡으며 앉히려 하자, 조봉준은 손을 뿌리치며 최종현에게 고함치듯 말했다.
“형은 화도 안 나? 우신 새끼들이 애들 유학 보낸다는 명목으로 데려다가 그딴 짓을 시키는데?!”
“화나지. 근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벌써부터 화내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체력만 축나. 일단 김승희 씨가 연락되면 연결해 준다는 그 다른 사람하고 얘기해 보고 나서 확정 지어도 늦지 않아. 만에 하나 아닐 수도 있잖아. 정말 만에 하나.”
“최 기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직까진 우리의 지레짐작이지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정확히는 아니길 바라야 하는 거겠죠. 또, 세세한 부분까지 말해 줬던 김승희 씨가 성성납이나 성매매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김승희 씨 말을 듣고 짐작할 수 있다면, 김승희 씨도 여러 상황을 통해 성매매나 성상납을 떠올렸을 겁니다. 하지만 김승희 씨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니 일단 침착하게 더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승희야 지금 우신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말을 삼간 거겠지! 우리한테 힌트만 던진 걸 수도 있잖아. 그 연결해 준다는 사람 입으로 듣게 하려고.”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진정하십시오. 조사가 더 필요한 지점입니다. 우리끼리 어림짐작으로 벌써부터 분노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 역시 화가 끓어 올랐다.
가정을 잃은 아이들을 데려다가 유학을 보낸다며 몇몇 아이들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서 보도 자료 돌리며 칭송받고, 뒤로는 더러운 짓을 일삼았을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
생각해 보면, 유학이랍시고 일 년에 서너 명씩 일본으로 보내는데, 돌아와서 우신 계열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보도 자료 수는 지극히 적다.
하다못해 우신은 국내 유수의 대학교의 대학원생들에게 생활비와 IT 장비를 지원하고 그 대가로 졸업 후 우신에 입사해서 몇 년 동안 지원받은 것들을 갚게 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돈을 들여 유학을 보내 놓고 그 아이들을 다시 우신으로 데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아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해도, 못해도 일 년에 한 명씩은 우신에 입사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들이 김승희를 만나러 간 사이 내가 검색해 본 결과, 보도 자료로 나온 천사의 집 출신 유학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천사의 집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장학 사업을 시작한 지는 꽤 된 것 같은데, 그만큼의 수확이 없었다는 뜻이다.
“나도 차 변처럼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니 끼워 맞추고 싶진 않지만, 생각해 보니 만일 성상납이나 성매매가 맞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은 아귀가 맞아. 방출을 앞둔 17세에 뒤늦게 영재랍시고 유학을 보내는 거나, 유학 간 애 중에 여자아이들이 월등히 많다는 것까지.”
“그건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좆같네. 이 개새끼들…….”
“그렇네요. 그 송혜령 간사가 말한 영재 발탁하는 기관이 어디라고 했었죠?”
“일중일보랑 우신 복지 재단에서 전문가를 보내온다고 들었어.”
“그것도 이상합니다. 보통은 영재라고 생각되는 아이가 있으면 보육원 측에서 목록을 뽑아 올려서 심사를 받게 할 텐데, 수십 명의 평범한 아이가 있는 보육원에 먼저 와서 그중에 영재를 뽑아간다는 게…… 뭔가 순서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그것도 이상하네.”
“일단 일중일보와 우신 복지 재단에서 보낸다는 전문가가 누군지, 영재 선발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김승희 씨 역시도 영재 선발 시험을 볼 때 다 찍었다는데도 선발됐다는 걸 보면 그 절차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중일보에 있을 때, 일중일보에서 천사의 집에 영재 선발 전문가를 보낸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는데, 세연이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해야겠네.”
윤세연이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 잠깐.”
그때 최종현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왜?”
“내가 천사의 집에 다니면서 알게 된 아이가 있는데. 그 애도 영재로 선발됐다고 했었어. 소은이는 아직 유아인데…….”
“뭐? 유아? 못 가게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애는 다음 달에 간다고 했어. 근데 우리가 방송으로 천사의 집 들쑤셔 놓은 게 있어서 천사의 집이 한가롭게 애들 유학 보낼 상황이 아닐 거야. 일단 내가 수시로 가서 지켜봐야겠어.”
“그래, 천사의 집이 지금 애들 유학 보낼 상황은 아니지.”
“일단 늦었으니까 내일 확인해 봐야겠다. 세연이한테도 내일 물어보고. 봉준아, 우린 가자. 차 변 쉬게. 집에서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는 거 있으며 더 알아보자고.”
“그래. 하, 정말 성상납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 정말 그게 진짜면 너무 화가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아.”
“김승희 씨가 연결해 준다는 그 사람을 만나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같이 유학을 떠났다고 했으니, 그 후원자라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같이 갔을 거고, 내보내진 건 김승희 씨뿐이었으니 그 사람은 안에 있었겠죠. 그러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때까진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너무 흥분하면 조사에도 방해됩니다.”
“그래, 차 변 말이 맞아. 일단 그렇게 짐작만 하고 있다가, 연락받으면 그때. 그때 분노해도 늦지 않아.”
“알았어.”
최종현은 조봉준을 다독이며 짐을 챙겼다.
조봉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일어났다.
“민재한테는 우리가 얘기 전달할 테니까 차 변은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몸 낫는 것부터 생각해. 그래야 활발하게 조사도 같이 할 수 있지.”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들은 병실을 나갔고, 나는 그제야 몸에 줬던 힘을 풀며 침대에 기댔다.
성상납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고, 벌어져서는 안 되는 범죄다.
그게 정말이라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
그 후원자들이라는 일본인들이 누구인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물론 우신에게 성상납을 받을 정도라면 일본 내에서는 지체 높은 사람들이겠지만…….
“변호사님.”
생각에 잠겨 있는데, 조용히 있던 태식이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성상납 생각하시죠?”
“…….”
“조봉준 형님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해 놓고 왜 변호사님은 그 생각하세요.”
장태식 언제부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 시작한 거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장태식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 생각 안 해.”
“하시면서.”
“안 한다고.”
“예, 예, 앨걨섑냬댸.”
“너 요즘 부쩍 기어오른다?”
“그러니까 생각 그만하고 쉬시라고요. 불 꺼드릴 테니까 얼른 주무세요.”
태식은 커튼을 치고 불을 끄며 말했다.
잠이 올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태식의 말대로 잠을 청하기로 했다.
* * *
그 뒤로 4주가 지났다.
온몸의 멍은 다 사그라졌고, 자상은 아직 치료가 필요했지만 많이 아물어서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
나는 그 즉시 퇴원하겠다고 대답했고 말이다.
“퇴원 축하합니다! 퇴원 축하합니다! 응응~하는 변호사님! 퇴원 축하합니다!”
응응~ 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퇴원하는 날 강민재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케이크에 촛불까지 꽂아 내 병실로 들어왔다.
그 뒤로는 최종현과 조봉준, 오 사무장, 그리고 허민우가 따라 들어왔다.
“아니, 민재 차 변 사랑하면서 왜 ‘사랑하는’이라고 안 해?”
“변호사님이 질색하실까 봐요. 얼른 촛불 끄세요, 변호사님.”
나는 한숨을 쉬며 촛불을 후 불어 껐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고생하셨어요. 수일이 형도 온다는 걸 제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 안 그래도 갈 사람 많다고.”
“변호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복이 빠르셔서 다행입니다.”
오 사무장과 허민우도 한 마디씩 던졌다.
“형님들은 덕담 안 해요?”
“우린 덕담보다 더 좋은 걸 가져왔지.”
“뭔데요?”
최종현과 조봉준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일단 천사의 집이 이번 달에 애들 유학 보내는 건 스톱 됐어. 소은이 유학도 일단 밀린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소식은…….”
최종현은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안녕하세요. 김승희입니다. 일본에 있는 친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름은 이가연이고, 메일은 gyl0[email protected]입니다. 곧 연락 갈 거니까 메일 바로 읽어 달라고 당부해 뒀습니다. 그럼, 고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