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0)
너희들은 변호됐다-421화(420/641)
#421화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하니, 강민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변호사님 주무세요?] [주무시나 보네…….] [내일 일어나시면 연락 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어제 피곤해서 일찍 잤더니, 강민재의 메시지를 보지 못했나 보다.
지금이면 일어났을 시각이기에, 나는 강민재에게 전화를 걸며 부엌으로 향했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냉장고에서 물병을 까서 마시려는데, 강민재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메시지 남긴 거 이제 확인했는데. 무슨 일이야?”
─아, 어제 어쩌다 보니 할아버지한테 형님들하고 어제까지 얘기 나눈 거 말씀드렸거든요……. 괜찮죠?
“안 될 거야 없지.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가 말씀 들으시고는 내일모레 변호사님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요.
“나를?”
─네. 음, 뭔가……. 뭔가를 아시는 느낌이었어요. 제 느낌엔 우신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 아신 것 같진 않은 느낌?
“그래? 알았어. 내일모레 댁으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려.”
─네. 아, 그리고 옆에서 사무장님이 언제부터 출근하시냐는데요?
“다음 주부터 출근한다고 전해드려.”
─넵.
“끊는다.”
나는 마침 까놓은 생수와 약을 들이켜고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약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병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사실 병자는 맞지만…….
젠장, 이전 삶에선 수면제만 먹었었는데, 이젠 별 약을 다 먹는구나.
심지어 이걸 남한테 내보이기까지 하다니.
강민재 앞에서 발작하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다 내 업보라고 생각하자.
“차주한 님, 병원 잊지 말고 오세요. 보니까 4주 동안이나 못 오셨네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그래도요. 마음대로 단약 하시면 호전될 것도 더 나빠져요. 아시겠죠?”
“네.”
병원에 입원하느라 가지 못한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한숨을 쉬며 병원비를 계산했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있던 태식이 나에게 다가오며 슬쩍 물었다.
“변호사님, 성격 나쁜 거 고치려고 병원 다니시는 거죠?”
진심으로 묻는 말인가.
내 경호원 신분만 아니라면 한 대 치고 싶다.
“시끄럽고, 집으로 가자.”
“변호사님 지키는 거 재미없어요. 너무 찐따 같다고 해야 하나. 계속 집에만 계시고.”
“그럼 배 뚫린 채로 여기저기 싸돌아다닐까?”
“그건 또 그렇네요.”
태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운전석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 지키는 애들한테선 별다른 연락 없었지?”
“네. 그냥 평범한데, 형님들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요. 어디 갈 때마다 달고 다녀야 하니까.”
“그건 그렇지만,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좀 지켜보다가 경호 업무를 종료하든지, 방법을 좀 생각해 보자.”
“네.”
여태까지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가해진 적은 없으니 강민재나 조봉준, 최종현에게 붙여 놓은 경호원은 떼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지금 점점 우신의 깊은 약점으로 다가가는 상황이라 이제야말로 그들까지도 위험에 처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쉽사리 경호 업무를 종료하라고 할 수가 없다.
내가 겪은 일을 강민재나 최종현, 조봉준이 겪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살아 나온다고 해도 나처럼 PTSD를 앓게 될 수도 있고.
“어? 종현 형님이랑 봉준 형님 아니에요? 이야, 양반은 못 되시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으로 향했는데, 문 앞에 조봉준과 최종현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양반은 못 돼? 우리 얘기하고 있었어? 근데, 어디 갔다 와?”
“그냥 집에 있으려니 답답해서 산책 갔다 왔습니다.”
“집이 대궐같이 넓은데 밖에 나갈 필요 있나?”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며 현관문을 열자, 조봉준이 내 눈앞에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차 변 배 뚫렸다고 하니까 무려 전복을 사다가 죽을 끓여 주더라. 차 변 갖다주래.”
“나는 한 숟갈 얻어먹으려고 왔어.”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비닐봉지를 받아 들려 하자, 조봉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환자는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어. 내가 데워 올 테니까. 집에 냄비 있지?”
“냄비 없는 집도 있습니까?”
“차 변 집엔 맥주랑 라면밖에 없을 것 같아.”
조봉준은 부엌으로 들어갔고, 나와 최종현은 거실로 가 앉았다.
“어르신이 차 변 불렀다며?”
“강 변이 말했습니까?”
“응. 어젯밤에 차 변 자는 것 같다고 하면서 말하더라. 어르신이 뭘 좀 알고 계신 눈치 같다던데.”
“네. 그렇다고 듣긴 했는데, 뵈어 봐야 알겠죠.”
“무슨 자료라도 갖고 계시면 좋……. 어, 전화 오네. 잠깐만.”
최종현은 한쪽 엉덩이를 들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
“왜요?”
“김승희인데?”
김승희라면, 천사의 집에서 유학 갔던 사람 중 다시 귀국해서 우신 계열사에서 일하고 있다던 첫 번째 증인이다.
나는 전화를 받으라고 말했고, 최종현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 네. 김승희 씨. 어쩐 일이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저기,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김승희는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어린이처럼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우신 본사에서 사람이 나왔어요. 최종현 기자님 만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우신 본사에서요?”
─네. 그러면서 사진을 보여 주는데, 저랑 기자님들 카페에서 얘기하는 모습이 찍혀 있더라고요. 발뺌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요?”
─그래서……. 무슨 얘기를 했냐고 캐물어서, 있는 그대로 말했어요.
“있는 그대로…… 말씀이십니까?”
─네.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어쨌든 우신 돈 받고 사는 사람이고, 기자님 도와드리려다가 직장을 잃을 수는 없잖아요. 사실대로 말하면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해서…….
“……그렇군요.”
최종현과 조봉준에게 사람을 붙인 것인지, 김승희에게 사람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전자인 듯하다.
그래서 사진까지 찍었겠지.
경호원이 붙어 있었다고 해도 작정하고 미행하는 사람을 캐치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이거, 이전 삶에서도 어딜 가나 검은 차가 따라다녔던 경험을 다시 하게 생겼지 않은가.
─아, 혹시나 싶어서 가연이 얘기는 빼고 했으니까 그건 안심하세요. 가연이가 옛날부터 우신 쪽에 자기 얘기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서, 그 얘기는 안 했거든요.
“그러시군요. 잘하셨습니다.”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저 때문에 하시는 일을 망치거나 하신 건 아니길 바랄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염려 마세요.”
─다행이네요. 일단 말씀드렸으니……. 이만 끊겠습니다.
김승희는 아무래도 죄책감 때문에 최종현에게 전화한 듯하다.
김승희가 있는 그대로 말했다면, 우신 쪽에서도 우리가 그들이 천사의 집 아이들을 이용해서 성상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어쩌면 최종현과 조봉준이 일본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던 것도 파악했을지 모른다.
그때 미행은 붙지 않았는지 최대한 살피며 갔으니 이가연 쪽은 걱정 없지만, 우신이 우리가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건 다소 위협적이다.
“하아……. 괜찮나, 이거? 김승희 씨는 그래도 불이익을 받진 않을 것 같긴 한데…….”
“별수 있습니까. 우신이 도청에, 휴대폰 복제에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도 어쨌든 잘 헤쳐 나왔으니 이번에도 잘 넘겨야죠.”
* * *
“어르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됩니다.”
오랜만에 집을 나선 강관웅은 지팡이와 강수일의 부축에 기대 계단을 올랐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가는 길이 좀 축축하네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어르신.”
“그래.”
“좀 마르고 나서 다른 날 올 걸 그랬습니다.”
“아니야. 항상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 년을 못 와 보지 않았어. 마음먹었으면 바로 와 봐야지.”
“저기 보입니다.”
그들이 찾은 곳은 용인에 위치한 공원묘원이었다.
얕게 솟은 봉분들 사이를 지나, 강관웅은 한 무덤 앞에 멈춰 섰다.
강수일은 묘원 입구에서 사 온 꽃을 강관웅에게 건넸다.
강관웅은 꽃을 받아 들고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잠깐 이 친구랑 얘기 좀 하게 자리 좀 비켜 줘.”
“차에 가 있을까요?”
“그래. 자네들도 조금 떨어져 있지.”
강관웅은 강수일 뒤에 서 있던 경호팀에게 말했다.
경호원은 고개를 까딱 숙이고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강관웅은 지팡이에 기대서서 봉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일세, 친구.”
이 무덤의 주인은 강관웅이 대통령이었을 당시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내가 많이 늦었지?”
강관웅은 백발노인이 되었지만, 무덤에 묻힌 비서실장은 아직도 중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가 염원하던 일을 해 줄 다음 세대 아이들이 있어. 자네도 살아 있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강관웅은 말끝을 흐렸다.
비서실장과 동고동락하던 지난 세월이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강관웅은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봉분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눈 감기 전에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똑똑한 아이들이야. 분명 잘 해낼 걸세. 믿어 줘. 그리고 자네가 잘 보살펴 줘.”
강관웅은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자네가 또 보고 싶어지면 한 번 더 옴세. 그때까지 잘 계시게.”
강관웅은 굽혔던 허리를 폈다.
오랜 친구와의 대화가 끝났음을 인지하고 경호 팀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그 순간이었다.
가까운 무덤 앞에 서서 헌화하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강관웅에게 달려든 것은.
“어윽!”
남자는 강관웅의 품으로 달려들어 복부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강관웅은 크게 신음을 내질렀고, 그것은 그에게 다가오고 있던 경호원들이 제지할 틈도 없었다.
“어르신!”
경호원들은 강관웅에게 더 세게 칼날을 박아 넣은 남자를 단숨에 제압했다.
하지만 이미 복부에서 깊은 출혈이 발생한 다음이었다.
“어르신!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어르신!”
경호팀장이 쓰러지는 강관웅을 받아 안았고, 가까이 있던 경호원은 재빨리 강관웅의 상처 부위를 세게 눌렀다.
강관웅은 의식을 잃은 듯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119에 전화해! 얼른!”
강관웅을 받아 안은 경호팀장이 소리쳤고, 다른 경호원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사로잡힌 범인은 경호원에게 짓눌려 바닥을 꿈틀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르신! 어르신!”
묘원에는 강관웅을 부르는 경호원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