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1)
너희들은 변호됐다-422화(421/641)
#422화
한 달이 넘도록 사무실을 비웠으니, 모처럼 일찍 일어나 출근도 일찍 했다.
하지만 나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이 있었다.
“변호사님! 드디어 오셨네요!”
강민재였다.
오늘부터 출근한다는 말을 듣고 사무실을 쓸고 닦고 있었는지, 손에는 대걸레가 들려 있었다.
“사람 쓰는데 청소는 뭐 하러 해.”
“그래도요. 변호사님 오랜만에 출근하시는데 반짝반짝하면 좋잖아요.”
그러잖아도 사무실을 살펴보니 구석구석 청소를 마친 듯 먼지 하나 없었다.
“오늘 할아버지하고 약속 있는 거 안 잊으셨죠?”
“안 잊었지.”
“무슨 용건이실까요. 궁금하네.”
“강 변한테도 따로 말씀 없으셨어?”
“네. 궁금하게 만드시는 데는 뭐 있다니까요.”
뭘 알고 있는 듯한 눈치라고 했으니, 관련자나 관련 자료가 아닐까 싶다.
강관웅이 사건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처음이라, 어느 정도 규모일지는 예상이 가지 않는다.
“강 실장님이 뭐 힌트라도 주신 건 없어?”
“수일이 형 이런 덴 얄짤없어요. 뭔가 그 일 관련해서 할아버지 도와드리는 것 같긴 하던데……. 무슨 자료라도 주시려는 게 아닐까요? 제가 성매매 얘기 꺼내자마자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 성매매와 관련된 자료일 수도 있고요.”
“오늘 만나 뵈면 알게 되겠지.”
“좋은 아침입니다!”
데스크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오 사무장이 커피 세 잔을 들고 나타났다.
“제가 1등으로 올 줄 알고 커피 사 온 건데, 변호사님들이 먼저 오셨네요.”
“오랜만에 출근이라서 일찍 와 봤습니다.”
“커피 이미 드신 거 아니죠?”
“다행히 아닙니다.”
오랜만의 출근인 데다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보니 오 사무장이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따로 의뢰인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 한가했다.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그간의 조사로 얻게 된 정보들을 이야기하며 상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가정이 있는 오 사무장에게는 정보 공유가 바로바로 되지는 않는 상황이라, 오 사무장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놀라고, 또한 분노했다.
“아, 잠깐만요. 전화가 와서.”
한창 오 사무장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강민재가 휴대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얼핏 본 화면에는 ‘수일이 형’이라고 적혀 있었다.
“네, 형. 저요? 저 사무실이죠? ……네? 뭐라고요?”
기분 좋게 전화를 받았던 강민재의 얼굴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어딘데요, 어디예요?! 용인 우신 병원이요? 지금 바로 갈게요. 네, 지금 바로요.”
강민재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의자에 걸쳐 놓은 겉옷을 들어 올렸다.
“무슨 일이에요?”
“……할아버지가 피습당하셨대요. 칼에 찔리셨대요! 지금 당장 가 봐야 해요!”
“네? 피습요?”
피습?
나는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른 피습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실제 피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일치하는지 일순간 고민했다.
강관웅이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대체 누구에게?
그리고 왜?
“강 변, 같이 가.”
나와 오 사무장 역시 빠르게 겉옷을 걸치며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강민재의 뒤를 쫓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오 사무장은 사무실 문단속을 마쳤고, 강민재는 퍼렇게 질린 얼굴로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강민재가 운전석의 문을 열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운전하지 마. 사무장님, 대신 운전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민재는 복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뒤에 타.”
강민재가 뒷자리에 타기가 무섭게 차가 출발했다.
오 사무장은 빠르게 용인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강민재는 휴대폰을 쥔 채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르신은 항상 댁에 계시는데, 피습이라니.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아침에 어디 가신다고 경호팀이 움직이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근데……. 하,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수일이 형도 정신이 없는 것 같았어요. 얼른 오라고 말하고 나서 의사가 불렀는지, 어쨌는지 전화 끊겠다고 하더라고요.”
강관웅은 90대의 고령이다.
칼에 찔렸다면 어느 부위라고 하더라도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혹시 벌써 보도가 되었다면 다른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웅 전 대통령이 용인의 한 묘원에서 피습을 당하여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현재는 의식이 없는 상태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생명에 지장이 있는지의 여부는 아직 뚜렷하게 드러난 바가 없습니다.]타이밍 좋게 강관웅의 피습 소식이 뉴스를 타고 나왔다.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말에 강민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괜찮으실 겁니다, 강 변호사님…….”
오 사무장이 한마디 보탰지만, 그런 말이 지금 강민재의 귀에 들어오지 않으리란 건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을 터다.
한참을 말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용인 우신 병원 앞에 다다랐다.
강민재는 응급실 앞에 차를 멈추자마자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나 역시 오 사무장에게 주차를 맡기고 강민재를 쫓아 달려갔다.
“강 변호사님!”
입구 쪽에서 강민재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호원 한 명이 허겁지겁 응급실로 들어서는 강민재를 붙잡았다.
강민재는 그를 알아보고 물었다.
“할아버지는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런데 이분은…….”
뒤이어 따라온 나를 바라보던 경호원이 말끝을 흐리자, 강민재는 손을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얼른 할아버지한테 안내해 주세요.”
강관웅은 응급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경호원이 주변을 지키고 있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니, 강수일과 경호팀장이지 싶은 사람이 의식을 잃은 강관웅 옆에 서 있었다.
강관웅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상처 부위를 압박하는 의료진이 없었다면 의식이 없다기엔 그저 가만히 잠을 자는 사람 같았다.
“동의서에 서명했어. 이제 곧 수술 들어가실 거야.”
강관웅이 강수일을 입양했기 때문에 동의서에 서명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생명에는 지장 없는 거죠? 수술하시면 살 수 있는 거죠?”
“그건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모양이야.”
“하아, 대체…… 대체 누가 이따위 짓을 벌인 거래요? 대체 왜!”
강민재가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쳤다.
“아직 몰라. 경찰에 넘겼으니까 확인될 거야. 민재야, 일단 진정하고…….”
“어떻게 진정이 돼요……. 어떻게……. 할아버지가 이렇게 다치셨는데…….”
그때 커튼을 젖히고 의사 여러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수술실로 이동하겠습니다.”
“선생님, 저희 할아버지 생명에는 지장 없으신 거죠?”
강민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사의 팔뚝을 붙잡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도 자신 없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환자분께서 워낙 고령이시고, 상처 부위도 급소 주변이라 어떻게 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수술하겠습니다.”
그리고 의료진이 병상을 잡고 수술실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강민재는 그 뒤를 따라 달려갔고, 나와 강수일, 그리고 경호팀장도 그 뒤를 따랐다.
벌써부터 응급실 문밖엔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기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상황이었다.
응급실 내부 사람들도 안쪽 병상을 향해 힐끔거리고 수군거리고 있었기에, 이곳에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아 보인다.
“민재야, 어르신 괜찮으실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강수일은 그렇게 말하며 강민재의 어깨를 감쌌지만, 강민재는 쉬이 긴장이 놓이지 않는 듯 문이 닫힌 수술실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말씀 좀 해 주세요. 오늘 할아버지가 외출하신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강민재는 거듭 마른세수를 하며 바닥에 옹송그리고 앉았다.
“어르신 집권 당시에 비서실장이셨던 분이 계셔. 그분 성묘 갔다가……. 어르신이 잠시 비켜 달라고 하셔서 나도, 경호팀도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괴한이 달려와서 어르신을 공격하는 걸 바로 막지 못했어. 범인이 옆에서 헌화하던 사람이어서, 더더욱이 그럴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미안하다, 민재야.”
강수일의 말에, 곁에 서 있던 경호팀장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강 변호사님.”
강민재는 복잡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고 수술 시간이 적힌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수술 길어질까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그럴 거라고 하더라.”
“경찰에서 연락 온 건 아직 없나요. 범인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라도 알아야 속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아요.”
강민재의 말을 들은 강수일이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는지, 강수일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경찰한테 연락이 와 있었어. 수술실 오느라 못 받은 것 같아. 다시 전화해 볼게.”
강수일이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았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네, 아버님 수술실로 옮기시느라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네. 아들 본인입니다.”
입양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칼같이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본분을 지키던 강수일이 경찰의 앞에서 ‘아들 본인’이라는 말을 꺼내자, 그의 슬픔이 전해지는 듯했다.
강민재 역시 그 부분에서 입술을 사리물었다.
“네.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좀 더 자세히 조사되면 또 연락 주십시오.”
강수일은 전화를 끊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강민재는 다급한 얼굴로 강수일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왜요, 경찰이 뭐라는데요?”
“범인이 범행 동기를 토설했어. 이상운 전 대통령은 암 투병을 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었는데, 어르신이 강건하게 살아 계신 게 참을 수 없어서 그런 짓을 저질렀대.”
이상운 전 대통령은 강관웅과는 정치적인 숙적이었다.
이순신과 원균에 비교되기도 했다.
물론 강관웅 지지자들에게 이순신은 강관웅이었고, 이상운 지지자들에게 이순신은 이상운이었다.
이상운이 사망한 것은 3년 전.
국장으로 치러진 이상운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강관웅도 참석했고, 이상운 지지자들은 어딜 오냐며 비난하기도 했다.
강관웅과 이상운 중 누가 이순신인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대충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그것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이상운 지지자의 손에 강관웅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이가 없네…….”
강민재가 헛웃음을 지었다.
강수일이 처음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나서의 반응과 동일했다.
“그때가 언젠데 지금 와서…….”
강민재는 이마를 짚으며 벽에 기대섰다.
40년이나 해묵은 원한 관계다.
그의 말대로 인제 와서 피습의 이유로 대기에는 너무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일단 민재야.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어르신 깨어나시는 것만 생각하자.”
강수일은 강민재를 달랬고, 강민재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강민재를 보며 벽에 기대섰다.
시도 때도 없이 우신의 짓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말을 꺼낼 수 없었지만, 강관웅이 오늘 우리를 불러 우신의 성매매와 관련된 무언가를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