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4)
너희들은 변호됐다-425화(424/641)
#425화
강민재는 1시간 간격으로 강수일에게 전화를 걸어 강관웅의 용태를 물어보았고, 강수일에게서는 번번이 그대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강민재도 지쳤는지, 강수일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며 전화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괜히 나까지 마음이 편치 못한 티를 내면 강민재가 더욱 신경 쓸 것 같아서, 싱글 침대에 누워 벽을 향해 모로 누운 채 자는 체했다.
밤 11시쯤 강민재는 작은 볼륨으로 뉴스를 틀어놓고 담배를 피웠고, 12시쯤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욕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욕실에서 들려오는 것은 물소리가 아닌 울음소리였다.
나는 닫힌 욕실 문을 흘긋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강수일이 있다곤 하지만, 강관웅은 강민재에게 유일하게 남은 친족이다.
고령의 강관웅이 영원히 살 거라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타이밍이 지금이 될 줄은 몰랐을 터.
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강민재는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용인 우신 병원 건물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변호사님.”
등 뒤에서 강민재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잠을 자고 있었더라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자는 체했다.
강민재도 마음을 정돈할 시간이 필요할 테고,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면 이야기를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하…….”
강민재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내 옆에 놓인 침대에 눕는 듯했다.
침구가 사박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곧 룸 전체의 불이 꺼졌다.
나는 뒤척이는 척 강민재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강민재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모로 누워 있었다.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듯 휴대폰 불빛이 보였다.
강관웅에 대한 기사도 찾아보고, 용의자의 새로운 정보가 뜬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듯했다.
그러다 강민재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새벽 2시쯤 되었을까.
고르게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제풀에 지쳐 잠든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욕실로 들어가 휴대폰을 확인하니, 강수일에게 메시지가 한 통 와 있었다.
[변호사님. 민재는 좀 어떻습니까? 민재는 괜찮다고 하는데 걱정이 되네요.]30분 전에 온 메시지였다.
강수일은 쪽잠을 자며 계속해서 제반 상황들을 살피는 것 같았다.
[좀 힘들어하긴 하지만 방금 잠들었습니다.]나는 간단하게 답장을 보내고, 아직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최종현과 조봉준, 오 사무장, 윤세연 기자, 이예진, 뉴스를 뒤늦게 본 듯한 동진, 심지어는 부모님에게서도 강민재가 어떤지 물어보는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차례대로 답장을 보내 주고 나는 욕조에 걸터앉아 이마를 짚었다.
‘정말 우신의 짓일까.’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든 상황이지만, 나는 꽤 타당성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신의 짓이 아니길 바란다.
고상준이 쌓고 있는 업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신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고통을 또 겪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강관웅이 사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대안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다.
내 앞에, 아니, 우리 앞에 당면한 과제가 너무 많다.
L&B를 통한 비자금 축적 건과 천사의 집 아이들을 이용한 성매매까지.
밝혀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어떻게든 밝혀내야 할 문제들이다.
그런데 강관웅이 정말로 사망한다면, 나는 이게 우신의 짓이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까.
나는 여태까지의 성공이 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미래 지식이 없는 상태로도 사건을 더러 해결하긴 했지만,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사이즈가 커져 가고 있다.
어쨌든 부딪혀 봐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 나에게 두 번째 삶을 부여해 준 사람이 신이라면, 그 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겠느냐고.
“…….”
한참 동안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일단 몸을 일으키기로 했다.
옷가지를 벗어 놓고 샤워 부스로 들어갔다.
추레한 모습으로 있을 순 없으니 씻고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욕실 밖에서 강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욕실에 비치된 시계를 보니 4시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드라이기를 끄며 욕실 문을 열었다.
“벌써 일어났어? 드라이기 소리가 너무 컸나?”
“아뇨, 그냥 깼어요. 목도 마르고…….”
강민재는 생수병을 까서 물을 마시며 대답했다.
“더 자. 아직 해도 안 떴어.”
“더 잠 안 올 것 같아요. 그리고 충분히 잤고요.”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든 것을 알고 있는데, 계속 자는 척을 했기 때문에 반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러냐고 대꾸하며 머리를 말렸다.
“변호사님은 왜 이렇게 일찍 씻으셨어요.”
“일찍 잤잖아.”
“안 주무셨잖아요.”
강민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알고 있었나.
하지만 굳이 긍정하진 않았다.
“잤어.”
“저는 변호사님 숨소리만 들어도 주무시는지 안 주무시는지 알아요.”
“스토커냐. 좀 소름 돋는다.”
“참나. 아무튼 저는 일찍 깼으니까 그냥 바로 씻고 병원 가 보려고요. 변호사님은 조식이라도 드시고 오세요.”
“강 변은.”
“전 뭐가 안 먹힐 것 같아요.”
“그럼 나도 안 먹을래.”
“왜요. 변호사님까지 안 드시면 어떡해요.”
“강 실장님도 빵 쪼가리는 먹었을걸. 강 변도 뭐라도 먹어.”
“전 싫어요.”
“그럼 나도 싫어.”
강민재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강수일이 나에게 강민재와 같이 있어 달라고 한 뜻은, 단순히 있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챙겨 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소식을 듣고부터 지금까지 물과 캔 커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상태로 다시 병원으로 보낼 순 없었다.
만일 강관웅이 오늘 내로 깨어난다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병상에 있어야 하거나 변고라도 생기면 강민재는 정말로 며칠 내내 굶을 것 같았다.
“하, 진짜 왜 그러세요. 변호사님한테까지 폐 끼치는 것 같아서 저 불편해요.”
“강 변도 맨날 나 불편하게 하잖아. 나라고 하지 말란 법 있어?”
“……짜증나.”
“반말?”
“아뇨, 그게 아니라…….”
“저기 룸서비스 목록 있더라. 24시간 하는 것 같던데. 룸서비스 시켜 먹고 빨리 나가자. 조식 시간까지 기다리자곤 안 할게.”
“알겠어요.”
강민재는 결국 의자에 앉아 룸서비스 메뉴판을 확인했다.
메뉴를 고르는 게 아니라 무성의하게 글자만 읽는 것 같았다.
“죽이나 먹어. 빈속이잖아.”
“……네.”
죽 두 그릇과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침대에 앉아 있는데, 강민재가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어차피 여기서는 강관웅의 병실이 어디인지 찾을 수조차 없는데, 강민재는 불이 켜진 용인 우신 병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라고라도 말을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 나는 입을 열었다.
“담배 있어?”
“네? 아, 네. 변호사님 거 다 피우셨어요?”
“어. 한 대만 줘 봐. 강 변도 한 대 피워.”
“네.”
강민재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나는 강민재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다시 내려놓았다.
“강 실장님한테 연락 온 거 없잖아. 굳이 뉴스 보지 마.”
“그래도요.”
“어차피 최신 정보는 강 변한테 가장 먼저 들어올 건데, 뭐 하러 남들이 묵은 정보로 떠드는 거 보면서 리마인드해.”
“……네.”
얼마 지나지 않아, 객실로 룸서비스가 들어왔다.
직원이 밀고 들어온 간이 식탁에 마주 앉아 죽 그릇 뚜껑을 열고, 나는 강민재에게 숟가락을 쥐여 주었다.
“먹어.”
“변호사님 먼저 드세요. 전 천천히…….”
“3.”
“…….”
“2.”
“알았어요. 먹을게요.”
강민재는 삐친 아이처럼 숟가락을 들고 죽을 뜨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앞에 밑반찬을 밀어 주었다.
“변호사님도 드셔야죠.”
“난 밑반찬 안 먹어.”
강민재가 어느 정도 먹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도 식사를 시작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변호사님까지 고생하시네요. 그러니까 댁에 돌아가 계시라니까…….”
강민재는 민망한지 나를 흘긋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죽 그릇 뚜껑을 덮으며 팔짱을 꼈다.
“만일 우리 부모님한테 이런 일 있었으면 강 변이 더 오버하면서 난리 피웠을 거잖아.”
“저야 원래 그런 성격이지만, 변호사님은 아니시잖아요.”
“강 변이 어떻게 알아.”
“변호사님 몇 년을 봤는데, 참나.”
“아직 네가 나를 잘 모르는구나.”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대꾸했다.
사실 나도 이렇게 누군가를 챙겨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수일이 신신당부를 해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다 먹었어요. 이제 체크아웃할까요?”
“뚜껑 열어 봐.”
“왜요.”
“열어.”
강민재는 입술을 삐죽이며 뚜껑을 열었다.
죽이 반 정도 남아 있었다.
“다 먹어.”
“아, 저 속 안 좋아요.”
“웃기지 마. 다 먹어.”
“진짜예요.”
“3.”
“…….”
“2.”
“아이씨.”
강민재는 다시 수저를 들고 그릇을 끝까지 비웠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진짜 변호사님 숫자 세는 거 반칙이에요.”
“강 변이 식사 거르는 게 더 반칙이야.”
“그게 왜 반칙이에요.”
“먹성도 좋은 놈이 갑자기 밥 안 먹으면 걱정되잖아.”
“저 걱정해 주신 거예요?”
강민재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얘는 날 뭐로 아는 거지.
“그럼 안 하겠어? 옷이나 입어.”
체크아웃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아직 날이 추워서 그런지 해는 뜨지 않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몇 없었다.
올 때는 15분씩이나 걸렸는데, 잠도 재우고 밥도 먹여서 그런지 오래 걸리지 않아 병원에 도착했다.
중환자실 복도로 접어들자, 벤치에 기대앉아 자고 있던 강수일이 발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다.
“어, 민재야. 왜 벌써 와? 잠은 잔 거야?”
“네, 밥도 먹었어요. 할아버지는요.”
“아직 똑같으셔. 더 쉬다 오지, 왜.”
“아니에요. 저도 가시방석이에요. 억지로 호텔로 보내서 쉬게 했으면 이쯤에서 봐 줘요, 형. 형이라도 어디서 눈 좀 붙이고 오세요. 어차피 경호 팀장님도 계신데.”
“난 좀 잤어. 아직 면회 가능한 시간까지는 한참 남았다, 야. 그때까지 뭐 할래.”
“여기서 할아버지 힘내시라고 기도라도 해야죠, 뭐.”
강민재는 슬쩍 웃어 보이고는 강관웅이 누워 있는 병실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차 변호사님.”
강민재가 그러고 있는 동안, 강수일이 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잠은 좀 주무신 겁니까? 늦은 시간에 답장 주셨던데.”
“못 잤습니다.”
“좀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괜찮습니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있으니, 어느덧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변호사님, 어르신은 좀 차도가 있으십니까?]그때, 오 사무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 사무장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일찍 일어난 것 같았다.
[아직 큰 차도는 없으신 것 같습니다.] [아이고…… 얼른 깨어나셔야 할 텐데요. 아, 사무실로 들어오는 문의들은 계속 쳐낼까요?] [그렇게 해 주십시오.] [네. 근데 변호사님은 좀 쉬신 거예요?] [네.] [저도 이따 오후쯤 병원에 들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강 변한테도 말 전해 놓겠습니다.]답장을 보내고 나서 벤치에 기대자, 조금씩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강 변.”
“네?”
“나 잠깐만 눈 붙일게.”
“네. 아, 어디 편히 주무실 데 없는지 물어볼까요?”
“아냐. 그냥 잠깐이면 돼.”
나는 눈을 감았다.
밤을 꼴딱 샜더니 금세 몽롱해졌다.
그렇게 잠에 빠졌다.
─삐삐삐삐!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중환자실 복도에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코너 쪽에서 의료진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강민재도 나와 같은 타이밍에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병실 창가로 달려갔고, 벽에 기대서 있던 강수일도 마찬가지였다.
의료진은 재빠르게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병실 문을 닫으려는 의료진에게 강민재가 정신없이 물었지만, 의료진은 대답 대신 병실 문을 닫았다.
나는 강민재 옆으로 다가가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병실 안에서 난 것으로 추정되는 기계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의료진이 강관웅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가려져 강관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 복도를 방송 소리가 가득 메웠다.
─GS ICU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심장마비로 인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 발동되는 코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