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5)
너희들은 변호됐다-426화(425/641)
#426화
삐─
절망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의료진이 소생을 시도한 지 체감상 40분 정도를 넘겼을 시점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본 강민재의 눈에서는 눈물 한 줄기가 흘렀고, 의료진은 심장충격기를 거두고 무언가를 기록한 뒤, 힘없이 중환자실에서 빠져나왔다.
“2011년 10월 20일 6시 7분, 강관웅 님 별세하셨습니다.”
의사가 강민재를 향해 힘없이 말했다.
강민재는 그 순간 주저앉았다.
경호팀장과 경호원이 주저앉은 강민재에게 튕기듯 달려가 그를 부축했고, 강민재는 그들에게 의지해 힘겹게 일어났다.
피습 이후 내내 침착한 모습을 보였던 강수일 역시 눈물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들어가도 되나요.”
강민재가 의사에게 물었고, 의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재는 떨리는 손을 모아 쥐며 천천히 병실로 들어갔다.
강수일과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강민재는 천천히 병상 앞으로 다가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는 강관웅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하지만 강민재는 마치 강관웅의 답을 기다리듯 애타게 강관웅을 바라보기만 했다.
끝내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고, 강민재는 강관웅의 손을 붙잡으며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할아버지, 제가 부르잖아요. 제가, 제가 불렀잖아요…….”
말끝에 울음이 배어났다.
강수일은 흐느끼기 시작했고, 강민재는 점점 더 어린아이처럼 보챘다.
“할아버지, 제가 불렀잖아요. 제가 불렀는데 왜……. 왜 대답 안 해 주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강민재는 그대로 침상 옆에 무너져 강관웅의 육신에 얼굴을 묻으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제가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얼른…….”
“민재야.”
강수일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강민재는 더욱 소리 높여 울었다.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저는 어떡해요! 100살 넘게 사시기로 했으면서……. 그랬으면서……. 왜 약속 안 지키세요! 왜 약속 안 지켜요, 할아버지! 이거 아니잖아요. 아니잖아요!”
강민재는 강관웅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차마 보고 있기가 힘들어, 나는 고개를 외로 틀었다.
고개를 튼 곳에 서 있던 경호팀장 역시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멀리서 흐느끼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아마 강관웅은 경호팀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럴 것이다.
강관웅은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할아버지……. 제가 못한 말이 있는데, 너무 많은데…….”
살갗이 비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강민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흑, 제가, 많이 존경하는 거 아시죠?”
강민재는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강관웅의 뺨을 매만지며 말했다.
“제가 많이 사랑해요, 할아버지……. 저희 할아버지가 되어주셔서,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꼭, 꼭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지내시고……. 그리고…….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흑, 그때도……. 그때도 꼭 제 할아버지로, 흑, 제 할아버지로……. 꼭 다시 만나요……. 꼭, 꼭 다시 만나서……. 만나서…….”
강민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다시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더는 자리를 지키고 있기 힘들어 병실을 나왔다.
병실 문을 열어 놓은 탓인지 복도에서도 강민재의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벤치에 쓰러지듯 앉아 이마를 짚었다.
강관웅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순 없었지만, 분명 나의 큰 조력자였다.
무엇보다, 내가 이번 삶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들었던 동료인 강민재가 가장 의지하고 따르던 존재였다.
내 마음도 이렇게 공허한데, 강민재가 느낄 슬픔은 이루 짐작할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닌데. 이건 아닌데.
같은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차 변호사님.”
그때, 강수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듯한 강수일이 붉어진 눈가를 닦으며 나를 불렀다.
경호팀장도 함께 있었다.
“아까 새벽부터 청와대에서 비서관님이 나와 계셨는데 잠깐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지금 다시 모셔 오려고 하는데, 잠시 민재 좀 부탁드립니다.”
“네.”
강수일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코너를 돌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유리 너머로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이제 오열하는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강민재는 여전히 강관웅의 육신에 얼굴을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강민재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지금 당장은 해 줄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분쯤 흘렀을까.
“민재야.”
강수일이 청와대 비서관과 함께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
강민재는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청와대 비서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관웅 전 대통령님께선 많은 정치인과 법조인의 귀감이 되셨던 분입니다.”
비서관의 말에, 강민재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변호사님께서 고인을 떠나보내신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당에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장례 방식에 대해 염두에 두신 점이 계십니까?”
“아뇨, 아직…….”
“유족의 뜻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고, 국가장으로 진행하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얼마 전에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병합해 시행하는 것으로 법률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국장이나 국민장이 아닌 국가장으로 고려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혹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기를 원하시는지 지금 알 수 있을까요? 만일 국가장으로 진행하신다면 정부 측에서도 준비를 해야 해서요. 더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말씀 주셔도 됩니다.”
강민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강수일을 바라보았다.
강수일은 전적으로 강민재의 의견을 따를 모양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침묵에 잠겨 있던 강민재는 곧 입을 열었다.
“국가장으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많은 분이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고,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싶으신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국가장 장례 위원회가 편성될 거고,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께서 위원장을 위촉하실 겁니다. 위원회에서 제반 업무를 관장하게 될 거고요. 자세한 부분은 실장님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힘드신 와중에 실례 많았습니다. 다시 한번…… 강관웅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강 변호사님께서도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랍니다.”
“네.”
청와대 비서관이 자리를 떠난 뒤, 강수일은 강민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강민재는 공허한 눈으로 강관웅을 바라보았다.
가족을 잃는 일에는 상상 이상의 고통이 따른다.
나 역시 이번 삶에서 부모님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을 정도로.
돌아가셨어야 할 내 부모님은 살렸지만, 오히려 더 살아야 할 강관웅은 사망해 버린 아이러니 속에서 나 역시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 * *
그날 오후, 강관웅의 서거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피습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해진 소식에,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정재계 인사는 물론, 온갖 유명인이 강관웅의 서거에 공개적으로 조의를 표했다.
정부에서는 빠르게 국가장 장례 위원회를 조직했고, 장지는 국립 서울 현충원으로 정해졌다.
서울 현충원의 공간 부족 문제 때문에 대전 현충원 사이에서 갈등하다, 강관웅이 가진 상징성과 더불어 퇴임 후 그의 사저가 평창동에 위치해 있었던 것을 고려하여 묘소가 비좁아도 괜찮냐는 조심스러운 문의 끝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장례는 국가장으로 5일간 진행하고, 영결식은 국회에서 열리게 되었다.
빈소는 용인 우신 병원 장례식장으로 결정되었다.
강민재는 우신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보낼 수는 없다며 울분을 토했지만, 시신을 옮기는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여태까지 전 대통령들은 본인이 사망한 해당 병원에 빈소를 마련해 왔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다는 강수일의 말에 결국 수긍했다.
방송국에서도 강관웅의 서거를 톱 뉴스로 걸었고, 그를 기리는 방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저녁 즈음에는, 용인 우신 병원 측에서 강관웅의 사망과 관련된 브리핑을 진행했다.
강민재는 더는 슬픔에 잠겨 있을 겨를이 없었다.
외아들이었던 강민재의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강관웅의 호적상 둘째 아들인 강수일은 본인이 상주 노릇을 할 수는 없다며 강민재에게 넘겼기 때문에 강민재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물론 위원회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빈소를 지키는 것은 강민재의 몫이었다.
자유정의당계 인사들 중 강관웅에게 가장 많은 신뢰를 받았던 것은 현 대통령인 이세화였지만, 그녀는 현 직책 때문에 빈소를 내내 지킬 수는 없었다.
조의를 표하러 온 정재계 인사들로 인해 빈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변 시선들도 있고, 빈소가 복잡했기 때문에 최종현과 조봉준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나,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지는 못하고 돌아갔다.
대신 나와 오 사무장이 5일 내내 빈소를 지키며 강민재를 살폈다.
어떻게 5일이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빈소를 지키고, 이따금 쪽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영결식이 열리는 국회의사당까지 와 있었다.
내가 이럴 정도인데, 강민재는 오죽하겠는가.
다행히 장례 내내 강민재는 어른스럽게 조문객을 맞았고 엄숙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던 모습을 보았던 나로서는, 강민재가 감정을 꾹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걱정을 거둘 수는 없었다.
아무런 직책도, 유족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현충원 내부까지는 들어가지 못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영결식과 안장식 중계를 보며 언뜻언뜻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강민재의 모습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리고 밤 11시가 되었을 무렵, 강민재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어, 강 변.”
─집에 오자마자 기절해서 자느라 이제야 연락드리네요. 주무셨던 거 아니죠?
“아니야.”
─계속 고생해 주셨는데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린 것 같아서 연락드렸어요.
“내가 뭘 했다고.”
─아니에요. 변호사님하고 사무장님 덕분에 정말 크게 위로가 됐어요. 좀 정신이 없긴 했지만요.
“피곤하겠네.”
─네, 뭐 좀 먹고 또 자야죠.
“그래.”
─할아버지 안 계신 집에 수일이 형이랑 둘만 있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왠지 할아버지가 서재에 계실 것 같아서 자꾸 서재에 들락날락거리게 돼요.
“……차차 적응될 거야.”
내 말에 강민재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저 때문에 우리 하던 조사도 중단되고 폐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해요.
“그런 생각하지 마. 죄송할 일 아니야. 조사는 다시 재개하면 되고, 아주 급한 건 아니잖아. 어르신 보내드리는 게 더 급한 일이지.”
─……네.
“강 변도 마음 잘 추슬러.”
─대통령님이 따로 전화 주셔서 위로 많이 해 주셨고, 많은 분이 할아버지 가는 길 함께 해 주셔서 많이 괜찮아졌어요. 국가장으로 진행하니까, 할아버지가 이만큼 존경받았던 분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가시는 길이 외롭진 않으실 것 같아요.
“그래.”
─하……. 그래도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언젠가는 적응되겠죠. 다들 겪는 일이잖아요. 그쵸?
“그럴 거야.”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나 역시 부모님을 잃은 뒤 나이 서른이 넘었는데도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저 이제 사무장님한테도 연락드려야겠어요. 감사했던 분들이 많아서, 연락 돌리다 보면 날 새겠네. 흐흐.
“일단은 사무장님한테까지만 연락드리고, 내일 일어나서 마저 해. 다 이해해 줄 거야.”
─그럴까요, 그럼.
“그렇게 해.”
─저 출근은 이틀만 더 있다가 다시 할게요. 할아버지 유품도 정리해야 하고…….
“그런 건 천천히 생각해.”
─그래도요.
“어차피 사무실에 파리만 날리는데 출근 좀 늦게 시작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안 해.”
─그러니까 더 출근해야죠. 로펌으로 업그레이드도 했는데 막상 변호는 안 하고, 이래서야 되겠어요?
이제 농담도 시작하는 걸 보면 마음은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하다.
“그래. 어쨌든 늦었으니까 얼른 뭐 먹고 자. 나도 자야겠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아, 수일이 형이 감사하다는 말씀 꼭 전해 달래요. 나중에 따로 연락드린다고는 하는데.
“알았어. 고생하셨다고 전해 줘.”
─네. 끊겠습니다.
나는 전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침대에 누웠다.
종교는 없지만, 두 번째 삶을 겪었으니 흔히들 말하는 내세가 아주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강관웅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