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6)
너희들은 변호됐다-427화(426/641)
#427화
강민재는 약속대로 이틀 뒤부터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가장 먼저 출근해서 청소부가 열심히 닦아 놓은 사무실 전체 책상과 집기들을 마른걸레로 닦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 유리문 너머에서 그를 눈으로 좇았다.
그는 강관웅이 직접 써 준 ‘정도’의 금속 현판을 닦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강민재의 손은 잠시 느려졌지만, 그는 곧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문을 열었다.
“변호사님 오셨어요?”
강민재는 밝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고작 이틀 보지 못했지만, 강민재는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그간 이예진이나 박영기 차장을 통해 강민재에게 감사하다는 연락이 왔고, 목소리가 좋아 보였다는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던지라 그 간극이 눈에 띄게 다가왔다.
“사무장님은 오늘 늦으시네요?”
“단톡 확인 안 했어?”
“어, 단톡이요?”
강민재가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아, 사무장님 차 퍼졌구나. 그 차 퍼질 만도 했죠. 언젠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요. 사무장님 차 너무 오래 타셨어요. 그럼 오늘 늦게 오신대요?”
“응.”
“사무장님 앞으로 출근은 어떡하나. 새 차 나오려면 좀 걸릴 텐데. 교통 애매한 데 사시잖아요.”
“법인 차 쓰시라고 하려고.”
“하긴, 우리 사무실 파리 날리는데 법인 차 사무장님이 쓰시면 좋죠.”
강민재는 걸레를 한쪽에 내려놓고 데스크 앞에 앉았다.
“어, 커피 두 잔 사 오셨네요. 하나는 제 거죠?”
강민재가 내 손에 들린 커피 캐리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내가 커피 한 잔을 건네자, 강민재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예전에, 우리 전 사무실에 있을 때 변호사님이 이렇게 두 잔 사 오신 적 있었는데.”
“그랬나?”
“그때 제가 제 거냐고 했더니 변호사님이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이젠 맞다고 하시네요. 잘 마실게요.”
그런 적이 있었던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캐리어를 접어 한쪽에 놓고,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강민재가 출근하지 않는 동안, 강관웅 피습 사건은 결국 이상운 지지자의 원한에 의한 것으로 정리되어 갔다.
물론 국가적 행사에만 나타날 뿐 외부적으로 정치 활동을 삼가던 강관웅에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각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범인의 집에서는 사저를 계속해서 오간 것과 경호원 교대 시간 따위를 체크한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고.
우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눈에 띄는 곳에선 없는 듯했다.
최종현에게 언론계 쪽에 떠도는 이야기는 없냐고 물어보았지만, 그쪽에서도 우신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민재는 강관웅의 죽음 직전까지도 우신의 소행이라 강하게 믿고 있었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강민재 역시 집에서 쉬는 동안 이상운 지지자의 소행으로 정리되어 가는 상황을 확인해 왔을 텐데 어떤 마음일까.
“변호사님.”
“왜.”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요?”
“출근하자마자 점심을 정해?”
“할 거 없잖아요. 의뢰인도 없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의뢰인은 넘쳐 나는데 우신 놈들 조지는 데에 집중하느라 쳐 내고 있는 거죠.”
“오 사무장님이 하실 수 있는 간단한 것들은 하잖아.”
“아무튼요! 그래서 우리 점심이 뭐가 될지, 그게 중요한 주제가 되는 거라고요!”
강민재는 나를 회의실로 끌고 가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보드 마카를 들고 리스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1번 김치찌개. 2번 제육볶음. 3번 설렁탕. 4번 짜장면. 다른 의견 있으십니까?”
“밖에서 먹게?”
“항상 밖에서 먹잖아요.”
“불편할 텐데.”
“왜요? 맨날 밖에서 먹었는데?”
나는 대답 대신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강민재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아…….’ 하고 탄식을 터트렸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겠네요.”
국가장이 진행되는 동안, 강민재는 전 국민에게 노출되었다.
비서관 노릇을 하고 있었던 강수일이 강관웅에게 입양되어 아들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그 강수일이 유산 상속을 전부 포기하고 상주 자리도 강민재에게 넘겼다는 가정사 역시도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젊고 잘생긴 상주에 대해 궁금해했고, 강민재가 서울 법대를 졸업해 검사로 있다가 태광이라는 거대 로펌에 들어갔을 정도로 수재이며, 지금은 나와 함께 정도에 소속되어 있다는 간단한 신상도 드러났다.
강민재가 강관웅의 손자라는 사실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번 일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강민재가 최종현, 조봉준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던 것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인터넷 기사도 쏟아지면서, 이제 인터넷에 강민재를 검색하면 강민재의 얼굴이 크게 걸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국가장 이후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선, 강민재가 가뜩이나 사람 많은 교대 인근 음식점에 들어가면 시선이 몰릴 게 분명하다.
몇 번 방송에 출연했던 나 역시 방송 직후에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는데, 강민재는 오죽하겠는가.
“시켜 먹어야겠네요.”
강민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국가장 이후 강민재를 다시 만나고 나서는 일부러 강관웅을 연상하는 이야기는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분위기가 흘러가니, 강민재는 다시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저희 할아버지 수사, 결국 이상운 지지자 소행으로 마무리될 모양이에요.”
강민재가 보드 마카를 내려놓고 한숨을 쉬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대통령님이 전화 주셨더라고요.”
“대통령님은 우신 소행이라는 말씀은 없으셨어?”
“대놓고 그렇게 말씀은 안 하시죠. 근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은 가는데 일단 이번에는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입장이세요. 사람들이 의문을 많이 가지면 수사를 더 진행하도록 분위기를 몰 수 있는데, 우신이 일본과 관련된 상황이나 L&B 연관돼서 변호사님한테도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대통령님도 모르실 거고요.”
만일 강관웅이 아니라 내가 죽었다면, 사람들은 증거가 없더라도 우신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관웅은 다르다.
사람들은 강민재가 나와 함께 우신과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것이고, 자연스럽게 강관웅도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신이 강관웅을 죽였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까……. 무엇보다 지금 당장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수사를 진행하면 지지부진해질 거고, 정부나 할아버지에 대한 민심도 나빠질 것 같다고 하시고.”
틀린 말은 아니다.
무엇보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부에서, 여당 큰 어른의 죽음을 명확하지 않은 근거를 대며 수사를 이어가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구나.”
“언제 변호사님하고 밥 한 번 먹자고 하시던데요.”
강민재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난 사양할게. 강 변이나 가서 먹고 와.”
“왜요. 대통령님이 변호사님 되게 보고 싶어 하시던데.”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세화와 친하게 지내는 게 당연히 좋겠지만, 이세화는 부담스럽다.
“어르신 유품 정리는 다 했어?”
“유품이랄 게 별로 없어요. 아직 이틀밖에 안 돼서 다 보진 못했지만요. 서재는 그대로 두려고요. 할아버지 보고 싶어지면 가게요.”
“그래. 강 변 마음은 좀 어때.”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신 게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달라진 것도 없고. 아, 경호팀이 빠졌으니 달라진 게 없진 않네요.”
“그러네.”
“정혁 씨는 제가 집에 들어가면 퇴근하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태식이랑 얘기해 볼게.”
정혁은 내가 태식 쪽에 말해 강 변에게 붙여 준 개인 경호원이다.
엄밀히 말해, 강관웅의 사저를 지키는 경호원은 강민재의 경호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저로 들어가면 그 이후로는 여러 명의 경호원이 지키기 때문에 정혁은 퇴근시켰었다.
“불편하면 당분간은 혼자 다녀도 될 것 같긴 해. 어르신한테 손댄 우신이 강 변한테까지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아서.”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요. 음, 어쨌든……. 지금은 저랑 수일이 형. 이렇게 둘이 지내고 있는 건데, 할아버지야 항상 서재에 계셨으니까 사실 평소에는 티가 안 나요. 밥 먹을 때 되면 그때 할아버지 안 계신다는 게 확 느껴지는 거죠.”
강민재가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그 집에서 계속 살 거라고 했더니 수일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불편하면 나가겠다고. 수일이 형이 어쨌든 할아버지 비서관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근데 저한테 수일이 형은 그냥 할아버지 비서관이 아니에요. 가족이죠. 그래서 형이랑 둘이 살기로 했어요.”
“잘됐네.”
“네. 수일이 형도 조심스러운가 봐요. 별 얘기가 없더라고요. 그냥 할아버지 유품들 보면서 옛날얘기하고, 할아버지랑 있었던 재미있는 얘기들 하고……. 그러다 보니 이틀이나 지났더라고요. 정리는 그렇게…… 뭐, 그렇게 되고 있어요.”
강민재는 기지개를 켜고는 괜히 배시시 웃었다.
괜찮은 척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강민재는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 다시 시작해야죠.”
“뭘.”
“우신이요. 우리 할아버지 그렇게 만든 놈들. 수사도 못 하게 됐고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결국 이상운 지지자 소행으로 마무리됐어요. 그럼 우신 놈들은 처벌도 받지 않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둬요. 우리 할아버지 이렇게 만든 놈들, 저 가만히 못 둬요.”
강민재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 때문에 제가 위험해질까 봐 빠지라고 하실 건 아니죠?”
이틀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런 고민도 잠깐 하긴 했지만, 나는 곧 그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민재는 이미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과 동료들을 잃으면서 우신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듯이 강민재에게도 나와 같은 순간이 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강민재 역시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까지 온 것이다.
“강 변.”
“네.”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날 부르셨잖아.”
“네. 결국 못 만났지만요.”
“그때 어르신이 우리한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내 기억에 어르신이 준비하시는 걸 강 실장님이 도왔다고 했던 것 같거든.”
“…….”
“강 실장님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아. 아마 장례가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말을 못 꺼내고 있는 것 같은데,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