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28)
너희들은 변호됐다-429화(428/641)
#429화
나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책상 한쪽에는 강수일에게 받았던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강관웅이 공녀 사건이라 이름 붙인 이 사건은, 이전 삶에서는 전혀 대두되지 않았던 문제였다.
당시에 나와 최종현이 천사의 집을 주목했던 것은 천사의 집에 기거하고 있는 아이들의 명의로 고상준이 차명계좌를 만들어 썼기 때문이지, 공녀 사건 때문은 아니었다.
시야가 좁았던 모양이다.
L&B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니.
무엇보다 오늘 강수일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이 인면수심의 강제 성매매가 80년대, 아니,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
처음 우리가 공녀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이가연과 김승희를 만났을 때도 물론 한두 해 이런 짓을 벌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2011년이다.
80년대 이전부터 일어났던 일이라면 못해도 30년 동안 이런 일이 벌어져 왔다는 것이다.
“…….”
나는 말없이 쌓아 놓은 서류 가장 위에 놓인 신상명세서를 들어 올렸다.
누렇게 변한 종이에 적힌 글씨, 흑백으로 찍은 증명사진, 그 안에 적힌 사람의 생년월일을 보면 나보다도 나이가 많다.
가장 위에 놓인 사람은 지금 45세.
처음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3세 때로 나온다.
32년이라는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을, 혹은 어쩌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처음 성상납을 시작했을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일까.
이가연은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나이부터 일본인 고위 관료에게 술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 흑백 사진 속 그녀도 그런 삶을 살았을까.
나는 그날, 산처럼 높이 쌓인 신상명세서의 3분의 1을 보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 * *
“변호사님 오셨어요?”
오늘 가장 먼저 출근한 것은 오 사무장이었다.
차가 퍼져서 오기도 불편했을 텐데, 늘 가장 먼저 나와 빈 사무실을 지키는 그를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차도 못 쓰게 되셔서 불편하셨을 텐데, 천천히 오시지 그랬습니까.”
나는 물을 마시며 대꾸했다.
그러자 오 사무장이 손사래를 쳤다.
“하는 일 없이 월급을 이만큼이나 받아먹는데 출근이라도 빨리해야죠.”
“아, 그렇지.”
오 사무장의 대답에 나는 무언가 생각나 프론트 데스크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법인 차량 키가 담긴 서랍을 열었다.
“당분간 이 차 쓰십시오.”
“이거 법인 차 아닙니까?”
“네. 어차피 저도, 강 변도 다 차가 있고 법인 차 쓸 일이 없으니까요. 편하게 쓰시다가 나중에 차 뽑으시면 그때 돌려놓으시면 됩니다.”
“아이고, 그래도 법인 차량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이용합니까. 그것도 로펌에서요.”
“그럼 상여금 조로 차를 한 대 뽑아드릴까요?”
“예? 아닙니다! 제가 얼른 차 뽑겠습니다. 그때까지만 그럼 법인 차 잠깐 쓰겠습니다. 하하.”
“예. 아, 그리고…….”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끝을 흐렸다.
오 사무장은 궁금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곧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민재를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강 변도 왔으니 오랜만에 회의 한 번 하시죠. 그리고 최종현 기자님과 조봉준 씨한테 지금 사무실로 오라고 연락 좀 돌려 주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현과 조봉준은 우리가 주문한 커피 5잔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강민재가 회의실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민재의 격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으윽!”
“민재 얼마나 고생했어, 그래. 얼굴이 반쪽이 됐네, 우리 민재.”
나가 보니 조봉준이 강민재를 피도 안 통할 정도로 꽉 끌어안고 있었다.
강관웅의 장례식장에서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얼마 머무르지 못했고, 그 뒤로는 통화로만 인사를 주고받았던 탓에 강관웅 사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최종현은 조봉준과 강민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함께 끌어안으며 그들을 흔들어 대었다.
강민재는 숨이 막히는 듯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변호사님, 살려 주세요!”
조봉준과 최종현은 강관웅에게 일이 있고 나서, 강민재에게 직접 연락하기 조심스러워서 안절부절못하며 나에게 소식만 전해 들었었다.
누구보다 강민재 걱정을 많이 했을 것이다.
“민재한텐 이제 형들밖에 없어. 형들이 보살펴 줘야지. 안 그래, 최 형, 차 형?”
조봉준이 최종현과 나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강민재는 그 순간 나를 바라보았다.
늘 나를 형으로 부르고 싶어 했던 강민재는 얼른 나에게 그렇다고 말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제가 왜 형입니까. 전 선배입니다.”
강민재에게 슬픈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강민재에게 형 소리 듣고 싶진 않다.
호칭이 바뀌면 관계도 바뀐다.
형, 형, 하며 들러붙을 것을 생각하면…….
“진짜 매몰차다니까. 아무튼, 무슨 일로 우리를 다 호출하셨어?”
최형과 조형이 강민재에게 어깨동무하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다시 움직여야죠, 우리.”
회의실에 자리 잡은 뒤, 강민재가 말했다.
“제 일 때문에 저희 조사하던 거 전부 중단됐잖아요. 모든 일은 타이밍인데, 저 때문에 타이밍을 놓칠까 봐 걱정돼요.”
“야, 민재야.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며칠이나 지체됐다고.”
“그래도요. 우신 새끼들이 변호사님 납치했을 때도 타이밍이 끊겨 버렸는데, 또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아냐.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어.”
최종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강민재가 무슨 말이냐는 듯 최종현을 바라보자, 최종현은 명료하게 대꾸했다.
“차 변이 납치당하기 전에 우리가 방송에서 풀었던 걸 생각해 봐. 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한 L&B를 고상준과 이정찬의 비자금을 위한 페이퍼컴퍼니로만 소개했었잖아? 그러다가 차 변이 병원에 있는 동안 우리가 천사의 집 아이들이 L&B와 일중일보를 통해서 일본으로 내보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김승희 씨하고 이가연 씨를 만나서 성상납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냈어. L&B에 엮인 게 훨씬 더 많고, 뭐가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잖아. 어쩌면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걸지도 몰라.”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오 사무장도 동의하고 나섰다.
“여기서 뭐가 더 튀어나올지 모르고, 사건 규모가 얼마나 더 커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사실 저는 L&B의 존재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각 잡고 파면 특검까지 실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님이 일을 당하시고 나서 방송이 끊기고, 그래서 저희 쪽에서 계속 바람을 넣을 수 없게 되자 우신 쪽에서 바로 손을 써서 묻어 버렸어요. 그거 하나로는 부족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사무장님 말씀대로, 그러니까 차라리 팔 데까지 파서 이쯤 되면 우신도 꼼짝 못 하겠다 싶을 때 터트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뭐가 튀어나올 때마다 방송해서 화력을 분산시키는 것보다는 연속적으로 크게 터트려서 화력을 키우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오 사무장과 최종현, 조봉준의 말을 곰곰이 듣고 있던 강민재도 곧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어쨌든 내가 바다 위로 납치되었을 때 흐름은 이미 끊겼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총알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여기 계신 모두가 총알을 더 모아서 한꺼번에 쏘자는 의견이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한테 총알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서거하신 어르신께서 저희한테 남겨 주신 유산입니다.”
“어르신께서?”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오 사무장이 놀란 듯 나와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강민재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저희가 조사하고 있던 우신 성상납 건, 저희 할아버지 임기 당시에도 조사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자료를 남겨 주셨고요. 근데 그 자료를 저희한테 넘겨주시기 직전에 살해당하신 거죠. 다행히 비서관으로 있었던 형이 할아버지를 도와 자료를 가지고 계셨고, 어제 그걸 받았어요.”
모두가 놀란 눈치였다.
강관웅의 임기 당시에도 이 건을 조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도, 그 조사 자료를 우리에게 넘겨주기 직전에 살해당했다는 것도.
여기 있는 모두는 강관웅이 우신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굉장히 공교롭네.”
침묵을 깨고 최종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상준일 겁니다.”
강민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밝힐 방법이 없지만……. 분명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건 우신이에요. 우신은 할아버지 임기 당시에 할아버지가 성상납 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를 매번 방해해 왔고요. 그러다 할아버지가 포기하자 안심했을 거예요. 그러다 우신은 김승희 씨가 우리와 접촉했다는 걸 알게 되고, 김승희 씨가 우리한테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겠죠. 그래서 우리가 성상납 건에 대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우신의 성상납 건을 자세하게 알게 되면 일이 커질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분명 그래서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을 겁니다.”
강민재는 무릎에 올려 둔 손을 세게 주먹 쥐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밝혀야 해요.”
* * *
고용인의 뒤를 따라 40대 남성이 회랑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고, 고용인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걸었다.
남자는 모든 소지품과 신분증을 가드들에게 건네고, 금속탐지기로 확인까지 한 다음에야 이 저택에 들어올 수 있었다.
층계를 올라, 2층 가장 끝 방으로 도달하자 고용인은 걸음을 멈췄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고용인은 그 말을 남기고 굳게 닫힌 방문에 노크를 했다.
“회장님. 용인 우신 병원 임현일 선생이 왔습니다.”
그 말에, 곧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고상준의 신임 비서실장이었다.
고용인은 그대로 물러나 사라졌고, 임현일은 비서실장을 따라 고상준이 앉아 있는 책상 앞까지 다가갔다.
“회장님, 임 선생이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임현일의 목소리에 고상준은 안경을 벗고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임현일을 바라보았다.
“젊은 친구가 고생 많았어.”
고상준의 말에 임현일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회장님!”
“아니야. 임 선생 덕분에 대통령님 좋은 곳으로 보내드릴 수 있었으니, 임 선생 공이 크지.”
고상준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임현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고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부검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지. 우리 최 실장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예?”
“임 선생이 우리나라 최고라고 하던데.”
“듣기 민망합니다, 회장님.”
“아냐, 내 보기엔 임 선생이 우리나라 최고 써전이야.”
“아닙니다, 회장님.”
겸양의 표현이라기엔 임현일의 말은 너무나도 단호했다.
고상준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임현일이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선 아닙니다.”
임현일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고상준은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곰곰이 생각한 고상준이 기분 좋게 말했다.
“그 점이 더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최 실장, 우리 임 선생이 본원에 갈 만한 좋은 자리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장님.”
임현일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만 가 봐. 오늘은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불렀어. 다음에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예, 회장님.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그럼,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방을 나선 뒤, 임현일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방 의대를 갓 졸업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리다.
임현일은 고상준이 제안한 거래를 받아들인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했다.
어차피 강관웅은 오래 살지 않았던가.
마지막엔 고통 없이 가셨으니, 그 정도면 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