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0)
너희들은 변호됐다-431화(430/641)
#431화
새벽 2시.
“허억, 허억!”
강민재는 발작하듯이 잠에서 깨어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또다시 악몽이다.
미친 듯이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다시 자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그 역시 실패했다.
강민재는 머릿속을 폭파시킬 것처럼 터져 나오는 생각들을 다시 욱여넣을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이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방 안을 서성였다.
차라리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자는 게 나을까.
그러다 한두 잔 마시다 보면 알코올 없이는 잠들지 못하게 될까 봐 손대지 않았었는데, 역시 오늘만큼은 마셔야 할 것 같다.
그는 1층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잠든 시각.
강관웅이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조용했을 시간이지만, 강민재에게는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집이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숨이 막힌다.
퇴근하고 나면 강수일과 마주 앉아 화기애애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강수일은 오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지만, 잘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우울감이 강민재를 덮친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잠이 오더라도 악몽을 꾼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은 차라리 간접적이어서 다행이지만, 할아버지를 용인의 묘원으로 보내던 아침이, 그날의 기억이 직접적으로 꿈에 나타날 때도 있다.
꿈속의 강민재는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다.
할아버지가 용인 묘원에 가면 피습당한다는 사실도, 그렇게 용인 우신 병원에 실려 가면 결국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도.
결국 할아버지는 피습당하고, 병원으로 달려간 강민재는 피범벅이 된 할아버지를 목도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강민재의 꿈속에서 칼에 찔리고, 찔리고, 찔리고, 찔리고, 또 찔린다.
그 모든 꿈에서, 강민재는 단 한 번도 할아버지를 구하지 못한다.
“…….”
1층으로 내려간 강민재는 부엌으로 가려다 서재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우두커니 서재 문 앞에 섰다.
지금이라도 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데, 이제 저 방에선 할아버지의 체취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지면 서재에 들어가 보려고 그대로 뒀던 것인데, 강민재는 강수일이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곤 문을 열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어 있는 의자를 보는 것이 괴로워서, 정말로 할아버지가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엄습한다.
강민재는 문 위에 떨리는 손을 얹었다.
그래,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아니라 우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방아쇠를 당긴 건 자신이 아니라 우신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우신의 총구 앞에 할아버지를 세워 놓은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도저히 떠나질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망가지면 안 돼. 술 마시지 말자. 술 마시지 말자. 정신 똑바로 차려.’
강민재는 부엌으로 가려던 걸음을 되돌렸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침대가 아닌 책상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한쪽에 쌓아 둔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새벽 3시, 4시, 5시가 되도록 골무가 끼워진 그의 엄지는 멈추지 않았다.
사락, 사락, 페이지 넘어가는 소리가 이어지고 5시 40분이 되었을 즈음 강민재는 책상 위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
그리고 눈을 뜨니 7시 반.
슬슬 일어날 시각이다.
알람 없이는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잠에 드는 것조차 고역이다.
지금 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처럼,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서 하루라도 이르게 고상준을 찢어발겨야 할아버지에게 겨우 속죄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하…….”
마른세수를 하고 욕실로 들어가 씻었다.
겨우 2시간쯤 잔 것 같지만 졸리진 않았다.
피로를 느끼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지도 않는 잠을 자겠다고 억지로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일을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강민재는 거울 속 충혈된 자신의 눈을 확인하고는 한숨 쉬었다.
회사 사람들이 눈치채면 안 되는데.
사람들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인공 눈물을 양 눈에 넣은 뒤, 강민재는 다급하게 욕실에서 나왔다.
이럴 때가 아니다.
얼른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민재 잘 잤어?”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오자, 신문을 읽고 있던 강수일이 강민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근데 너 혹시 새벽에 1층 내려왔었어?”
“네? 왜요?”
“아니, 잠결에 발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요즘 잠 못 자니?”
“아, 자다 깼는데 배고파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라면 먹었어요.”
“왠지 저녁을 너무 조금 먹더라.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 밥 먹으러 가자.”
강수일은 강민재를 향해 웃어 보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근데 너 눈이 좀 충혈된 것 같다?”
“아, 라면 먹고 나니까 속이 더부룩해서 바로 안 잤거든요. 잠을 덜 자서 그런가 봐요.”
“다시 일하려면 체력 분배 잘해야지.”
“그래야죠.”
사실 수일은 눈치채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은 번번이 그럴싸한 거짓말을 늘어놓지만, 눈치 빠른 수일이 모를 리 없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역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떠나보내는 고통은 그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수일은 자신이 먼저 말해 주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알아서 컨트롤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은 이런 것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나약한 놈 같다는 자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다녀올게요.”
“왜, 더 먹지.”
“배불러요.”
“죽이잖아. 배 금방 꺼져.”
“어차피 출근하면 또 금세 점심때 돼요.”
강민재는 서류 가방을 챙겨 들고 차고로 향했다.
강수일은 수저를 내려놓고 그의 뒤를 따랐다.
“형 먹던 거 마저 먹어요.”
“너 가는 것만 보고.”
“제가 애예요?”
강민재가 피식 웃으며 강수일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강수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어라. 웬일로 애 아니라고 해 줘요?”
“애는 아니지만, 우린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배웅해 주는 거지.”
강수일의 말에 강민재는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 같아서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리고 리모컨으로 차 문을 열며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저 갈게요.”
“응. 운전 조심하고.”
“네.”
강민재는 사저를 뒤로한 채 출근길에 올랐다.
사무실이 있는 교대까지는 45분이 걸렸다.
깔끔하게 주차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그는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이목이 끌렸다.
아무런 표정 없이 굳게 닫힌 얼굴은 누가 봐도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강민재는 거울을 보고 두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변호사님! ……아닌데. 흠. 흠. 변호사님! 이 톤인가.”
목소리를 잘 정돈하고 나니 표정도 어딘가 이상하다.
역시, 눈은 그대로고 입만 웃고 있다.
강민재는 눈매를 접으며 웃었다.
“좋은 아침! ……이거 같은데.”
“뭐야. 강 변, 아침 인사를 연습까지 해?”
갑자기 옆에서 불청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재는 반사적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언제 도착한 건지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었고, 열린 엘리베이터 앞에는 차주한이 서 있었다.
“어, 변호사님…….”
“왜 연습한 아침 인사 안 해 줘.”
“네?”
“연습한 아침 인사.”
“어……. 조, 좋은 아침!”
차주한은 강민재를 삐딱하게 바라보더니, 곧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안 내려?”
“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버퍼링이 길어. 안 내리냐고.”
“아, 아. 내려야죠. 근데 변호사님은 어디 가세요?”
“밑에 담배 사러.”
“아아……. 다녀오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반쯤 닫혔을 무렵이다.
차주한이 열림 버튼을 눌렀는지 다시 문이 열렸다.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강민재는 그를 돌아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게 힘들게 연습해야 밝게 인사할 수 있는 거면 그냥 인사하지 마.”
그리고 차주한은 닫힘 버튼을 눌렀다.
* * *
“다들 서류 검토 어떻게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봉준이는 거의 다 봤거든. 서로 크로스체크도 한 번 했어.”
최종현이 서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 30퍼센트가량 남은 상황이라, 최종현과 조봉준이 크로스체크까지 끝냈다는 말이 조금 놀라웠다.
그들이야 남는 것이 시간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다 살펴봤다는 것이 신기했다.
“저는 아직 5분의 1 정도 남았어요.”
강민재의 말에, 오 사무장이 놀란 듯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저는 이제 반 좀 넘게 본 것 같은데, 다들 언제 그렇게 진도가 나간 겁니까?”
“저도 30퍼센트 정도 남았습니다. 강 변은 우리랑 시간도 비슷하게 쓰는데 진도가 빠르네.”
“그냥 빨리 고상준 조져 버리고 싶어서 열심히 했더니 그렇게 됐네요.”
“뭐, 아무튼. 일단 저랑 종현이 형이 알아낸 사실 중에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지점들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조봉준이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설마 ppt까지 준비한 건가.
장족의 발전이다.
그들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니.
“나중에 방송 자료로 쓸 만하게 초안으로 작성해 봤고, 방송 자료로 쓸 때는 정우한테 제대로 부탁할 생각입니다. 일단은 효과나 폰트, 이런 건 그냥 대충 넘어가고 내용만 봐 주세요.”
“넵.”
“일단 여기 화면 보시면, 우리가 받은 신상명세서가 약 1,000명분이었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한일 수교는 65년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한일 간에 출입국이 힘들었을 거로 보이고요. 만일 65년 이전부터 공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면 그건 불법적인 루트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쨌든 저희 조사는 어르신께서 주신 출입국 기록 자료를 기점으로 진행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넵.”
“어르신께서 주신 자료에서 최초로 일본으로 건너간 사례는 1972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40년 정도로 잡아서 무작정 평균을 내면 연 25명가량이 우신의 주도하에 일본으로 넘어간 걸로 파악됩니다. 연도 별 정확한 수치는 이후에 다시 말씀드릴 거고요.”
최종현과 조봉준의 조사는 꽤나 구체적이었다.
연도 별 특징, 성비,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넘어갔는지까지 모조리 파악한 상태였다.
이런 양질의 분류를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해 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천사의 집이 설립된 것은 1989년. 이때부터 우신은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가, 91년 무렵부터는 취직을 시켜 주겠다든지 하는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모집하는 위험한 짓은 그만둔 것으로 보이고요. 몇 년간 서너 명만 보내는 것으로 그치다가, 91년부터는 천사의 집에 속한 어린이들을 1년에 10명 남짓씩 일본으로 보내기 시작합니다.”
“그 천사의 집에 속한 어린이들 10명을 전부 유학 목적으로 보낸 건가요?”
“아뇨. 이때부터는 좀 더 복잡해지는데, 우신 병원에서 사망해서 사망 신고가 아직 되어 있지 않거나, 혹은 사망할 것으로 보이는 아이의 이름으로 위조 여권을 발행해서 일본으로 몰래 보낸 케이스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유학 명목으로 나간 아이들은 1년에 끽해야 한두 명이에요.”
“흐음…….”
“성비는 평균적으로 여아와 남아의 비율이 7대 3, 혹은 8대 2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고로 많을 때는 5대 5까지 올라가고요. 하지만 특수한 경우입니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5번 이상으로 올라가진 않아요. 이 반반이라는 비율은.”
“제가 확인해 봤을 때 모집된 인원들의 나이는 여성의 경우 20대 초반까지, 남성의 경우에는 많아 봤자 10대 후반을 넘기지 않던데요. 아시겠지만, 우리가 여태까지 조사를 통해 확인했던 사실은 우신이 일본에 성상납을 하기 위해 아이들을 내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아의 비율이 올라간 해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건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십니까?”
조봉준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슬라이드를 다음으로 넘겼다.
“대단히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일단 다음 페이지를 보면 차 변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다음 페이지에 나타난 것은 일본으로 보내진 사람들의 혈액형 분포도였다.
“자, 일단 가장 위에 배치한 표는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혈액형 빈도야. O형 28%, A형 34%, B형 27%, AB형 11%. 반올림된 값이 포함되어 있어서 합이 100%지만, 희귀 혈액형이 완전히 배제된 수치는 아니야.”
“0.5% 위로 반올림되었을 테니 희귀 혈액형은 많아 봤자 2%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아래 표는 일본으로 보내진 사람들의 혈액형 빈도야.”
O형 40%, A형 27%, B형 15%, AB형 10%, RH- A형 2%, RH- B형 2%, RH- O형 3%, RH- AB 1%, –D—D- 2명.
일반적인 분포와 현저하게 다른 값인 것은 물론, 흔하지 않은 RH-의 비율이 높고, 심지어는 –D—D-라는 특수 혈액형은 2명이나 된다.
내가 찾아봤을 땐 200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D—D-형을 가진 사람은 3명, 전세계에는 110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40년 동안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D—D-형 중 많은 수가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저기 –D—D-는 뭡니까?”
오 사무장의 물음에 조봉준이 대답했다.
“특수 혈액형입니다. RH-보다 더 찾기 힘들어요.”
“RH-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데, 이거…….”
“그래서 저희가 조심스럽게 내려 본 결론은…….”
최종현과 조봉준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다는 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장기매매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