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2)
너희들은 변호됐다-433화(432/641)
#433화
동진은 다행히 수술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으며, 백찬근 과장 역시 오늘 저녁까지 쭉 병원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겉옷을 집어 들고 차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운 대학 병원에 도착한 나는 동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주차를 하고 1층으로 들어가니 동진이 의사 가운을 입은 채 병원 로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어, 주한아!”
동진이 손을 흔들자, 나는 동진을 향해 다가갔다.
나를 기다리며 산 것인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있었다.
“과장님 외래 날이라서 지금 외래 보고 있어. 좀 기다려야 할 거야.”
그는 나에게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말했다.
“그때까지 잠깐 걸을까?”
“그래.”
내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백찬근 과장은 지방대 출신으로, 실력 하나로 명운 대학 병원 신경외과 과장 자리까지 꿰찬 인물이다.
트리플 보드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무슨 과 트리플 보드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너희 과장 트리플 보드라고 했었지?”
“엉.”
“전부 다 백인대 병원에서 딴 거야?”
“아니지. 원래 백인대에서는 GS였는데 타 대에서 CS랑 NS 딴 것 같던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GS면 일반외과?”
“응.”
임현일도 일반외과 전문의였다.
장기이식이 외과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인 만큼, 일반외과 전문의만 땄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우신이 임현일을 장기이식 센터장으로 앉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종현의 말대로 범우신가에 심장 관련 고질적인 유전병이 있으니, 임현일이 고상준의 눈에 띈 까닭도 어쩌면 흉부외과 전문의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40대 후반인 임현일의 연배상 고상준 일가의 심장 수술을 직접 집도했을 확률은 낮지만, 우신이 당장 지금 세대만 바라보는 미시적인 사람들도 아니고.
임현일이 GS, CS 더블 보드일 것 같단 생각에 검색도 해 봤지만 달리 나오는 자료는 없었다.
심평원에서 조회할 방법이 없는지 확인해 봤지만, 그 역시도 힘들었고.
백찬근에게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의 성품이 어떨진 몰라도, 같은 학교 동기가 어떤지 정도는 알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이 바닥에 직접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있어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지 않은가.
백찬근에게도 그걸 기대하는 수밖에.
“네 부탁이라 일단 과장님한테 말은 해 뒀다만, 네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흡연구역 앞에 멈춰선 동진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흐음, 입이 많이 무거운 타입인가.
“과장님도 뭐 딱히 널 만나는 게 싫은 느낌은 아니었으니까 아는 건 말해 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일반적으로 같은 학교 출신이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의사면 서로 알고 지낼 가능성이 있나?”
“그렇지, 아무래도? 특히 우리 과장이 나온 백인대는 워낙 사회 진출해서 잘 먹고 잘사는 졸업생이 많지 않다 보니 의외로 네가 말한 그 임현일이라는 의사랑 끈끈할 수도 있어.”
그런 가능성은 이미 동진에게 연락했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백찬근이 임현일과 친하고, 임현일에게 연락해서 차주한이라는 변호사가 찾아와 너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말해 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어쩌겠는가?
한 번 나를 죽이려다가 실패했던 우신은 당분간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임현일을 통해 강관웅을 죽인 게 사실이라면 더더욱 일을 키우지 않으려 할 게 뻔하지 않은가.
우신도 알고 있다.
우리가 꽤 많은 정보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다만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지 못하니 그들은 잠자코 우리가 내미는 패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내가 납치되었을 때 외부에 이를 알리지 않은 이유를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우신도 섣불리 움직이진 못하리라.
내가 백찬근에게 대단한 걸 묻는 것도 아니고, 백찬근이 설사 임현일에게 말을 전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은 ‘차주한이 너에 대해 알아보고 다닌다’가 전부일 터.
오히려 임현일이 죄를 지었다면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뭐, 그래도 내 느낌이지만 우리 과장은 좀 아웃사이더 같은 성향이 있기도 하고, 인맥 관리를 거의 안 하는 것 같아서 또 모르지.”
“너는 임현일이란 의사에 대해 전혀 몰라?”
내 물음에 동진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음, 처음 듣는 것 같아. 특히 나랑은 접점이 없잖아. 대학교도 다르고, 같이 일해 본 것도 아니고. 네 말 듣고 너 오기 전까지 좀 찾아봤는데 그렇게 뭐 엄청 유명한 논문도 없던데. 이번에 서울 우신 병원 본원으로 넘어간 것도 좀 신기하긴 해.”
“그래? 누가 봐도 낙하산 느낌이야?”
“그건 또 아니야. 그냥……. 어느 정도 권위는 있는 논문 실적은 좀 있어서, 그냥 괜찮다 정도? 근데 학부가 워낙 안 좋으니까 사람들한테 뒷말이 나올 순 있겠다 싶은? 우리 과장도 뒷말 장난 아니었거든.”
“그렇구나. 너는 학회에서도 본 적 없고?”
“임현일? 없지. 나랑 분야가 다르잖아.”
“아, 그렇지. 의료계는 워낙 분야가 다양하니까.”
“뭐, 그런 거 아닐까? 너희 변호사 중에서도 저작권 전문 변호사랑 이혼 전문 변호사랑 서로 잘 모르는 느낌?”
“우리는 알려면 다 알지. 어느 분야로 가건 사법연수원을 같이 나오니까.”
“아, 그렇구나. 근데 너는 잘 모르잖아.”
“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지만, 알아보려면 알아볼 순 있어. 강 변도 있고, 이예진 선배도 있으니까.”
흔히들 말하는 같은 ‘사’자 직업이어도 이렇게 다르구나.
“아무튼 임현일에 대한 건 나는 잘 모르겠다. 논문 좀 읽어 볼까 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읽어 보진 못했어.”
“아냐. 그렇게까지 품 들일 필요는 없어. 너희 과장한테 물어 보고 그거로 부족하면 따로 알아보면 되지.”
동진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갑자기 몇 걸음 떨어진 구석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쿡쿡 찌르며 귓속말을 했다.
“근데 저기 저 사람 있잖아. 좀 무섭게 생긴.”
“어디?”
“대놓고 보진 말고 자연스럽게 봐. 2시 방향. 저 사람 아까부터 우리 좀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몸도 묘하게 숨기면서 계속 따라다녀.”
나는 동진이 말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나무 뒤에 숨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상길이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엇, 뭐야. 우리한테 손 흔든 거야? 내가 대놓고 쳐다보지 말랬잖아. 근데 저 사람 자꾸 더 따라다녀. 혹시 우신…….”
“내 경호원이야.”
“……아.”
동진과 30분쯤 시간을 보냈을 무렵, 동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짧게 전화를 받은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외래 끝났대. 올라가자.”
그를 따라간 곳은 백찬근이 외래를 보는 곳이었다.
하긴, 연구실보다는 이쪽이 더 눈에 띄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외래 시간도 다 끝나서 환자들도 많이 빠졌고, 딱히 우리에게 관심 갖지 않았으니까.
연구실 쪽으로 가면 일전에 내가 동진의 누명 건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 때문에 묘한 시선을 받았을 것 같은데.
“과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동진의 노크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에서 ‘들어와’라는 말이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백찬근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백찬근은 나를 발견하고는 일어나 악수를 권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백찬근입니다.”
예전에 동진의 일 때문에 한 번 스치듯 본 것 말고는 만난 적이 없는데, 나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안녕하십니까. 차주한 변호사입니다.”
나는 명함을 건넸고, 백찬근은 명함을 받아들고 잠시 훑어 내리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앉아요.”
백찬근은 자신의 맞은편 의자를 권했다.
그곳에 앉자, 마치 정말 외래를 보러 온 느낌이었다.
동진 역시 보호자 의자에 함께 앉으려다, 백찬근과 내 눈치를 보며 나에게 속삭였다.
“나가 있을까?”
“난 괜찮아. 과장님은 괜찮으십니까?”
백찬근은 잠시 동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양 선생이 들어도 상관없으면 저도 괜찮습니다. 아,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닙니다. 마시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모처럼 일찍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 시간을 많이 지체하고 싶진 않아서요.”
“네. 그럼, 동진이에게 전해 들으셨겠지만 과장님 동기인 임현일이라는 의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기억하십니까?”
백찬근은 내 말에 찬찬히 기억을 되짚는 듯 사선 위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억하죠. 예과부터 몇 년을 같이 보냈으니까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십니까?”
“그렇진 않아요. 가끔 학회 일정이 겹칠 때만 가끔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진실]친한 것은 아닌 듯하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 온다는 것은 백찬근은 딱히 임현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임현일은 백찬근과 연락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듯하고.
“그 친구와 나는 둘 다 CS, 그러니까 흉부외과 전문의라 같은 학회에 출석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역시, 임현일도 흉부외과 전문의였다.
“그렇게 만나시면 개인적인 이야기도 주고받으십니까?”
“흐음, 글쎄요. 그냥 의학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 같지만 간단한 근황에 대해선 얘기합니다. 이쪽 사회에 진출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지방대 출신이기도 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지잡대라고들 하죠?”
“과장님, 지잡대라니요. 학부가 뭐가 중요하다고요.”
백찬근의 입에서 지잡대라는 말이 나오자 동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몇 마디 던졌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고스펙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학력에 크게 관심이 없다.
딱히 사회적 성공이 학력으로 좌우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게다가 아무리 백인대가 대학교로써 평가가 좋지 못하다고는 해도, 어느 학교든 의대는 높은 성적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이쪽에는 우리 같은 지잡대 출신이 잘 없거든요. 그래서 현일이는 좀 뭉치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저는 일이 바쁘기도 하고 해서 긴 대화는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임현일이라는 의사가 어디서, 어떻게 전문의를 땄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겠군요.”
“음,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백인대 병원에서 일반외과 전문의를 따고, 이후에 일본에서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했다고 하더군요. 이후에 한국에 들어왔던 거로 압니다.”
일본에서?
일본이 의료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하필이면 일본에서 레지던트를 했다는 말이 걸린다.
어쩌면 우신 쪽이 벌이고 있는 일본 쪽 장기매매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이 유복하신가 봅니다. 일본까지 유학을 가시고.”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신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갔다고 했습니다.”
우신 장학생!
이거 괜찮은 정보가 계속 들어오는데.
“우신 장학생인데 왜 우신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지 않고 일본으로 간 건지도 알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논문 같은 것도 일본 쪽에서 썼을 확률이 있겠군요.”
“그렇겠죠. 하지만 대부분 국제학회로 논문을 제출하니까, 찾아보려면 임현일이라는 이름으로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찾아보긴 했지만, 딱히 건질 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우신 장학생이었기에 우신 병원에서 자리를 만들어 줬고, 강관웅의 수술을 집도한 후 우신 본원의 교수 자리를 꿰찬 거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격은 어땠는지 기억하십니까?”
“흠, 글쎄요. 눈에 띄는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학벌 콤플렉스가 심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건 백인대 의대 학생들은 전부 그랬어요.”
“눈에 띄게 출세 지향적이라거나, 그런 점은 없었습니까?”
“그건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 친구만 유독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많은 정보를 들었다.
그의 말에서는 전부 진실 판정이 나왔었고.
백찬근도 아는 건 이게 전부라며 선을 그었으니, 그에게 들은 것을 키워드 삼아 더 찾아보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백찬근이 함께 일어섰다.
“아, 많이 늦긴 했는데…… 이 말을 안 했네요.”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우리 양동진 선생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못 드렸어요. 덕분에 명운 대학 병원이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고맙다는 말도요.”
그때 얘기라면 많이 늦긴 했지만, 딱히 감사 인사를 들을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임현일 이야기가 더 나올 줄 알고 조금 기대했던 건 사실이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나는 동진과 함께 방에서 나온 후, 함께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숨어서 따라오던 상길은 이제 조금 더 가까이 붙어서 걸어왔고, 동진은 그의 존재를 의식하며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차 어디다 대 놨어?”
“다 왔어. 이제 들어가 봐야지, 너도.”
“그래. 너한테 뭐라도 도움이 돼서 다행이다.”
“항상 도움 돼.”
“너한테 은혜 갚으려면 멀었다, 인마.”
동진이 웃으며 말했다.
은혜는 무슨…….
“아, 너희 과장 말이야.”
“엉?”
“너 아끼는 것 같더라.”
“……그래?”
동진은 뺨을 긁적였다.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아무튼 이만 간다. 오늘 고마웠어.”
“그래. 조심해서 가고. 저기, 그, 경호원분도 주한이 잘 부탁드립니다.”
동진이 상길에게 말하자, 상길이 픽 웃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부탁하지 않으셔도 변호사님 목숨은 제가 책임집니다.”
자신의 대답이 상당히 멋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상길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칭찬을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거지.
나는 그를 운전석을 향해 몰아넣으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운전이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