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4)
너희들은 변호됐다-435화(434/641)
#435화
나는 태식에게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들을 나에게 보내라고 말한 뒤 서재로 들어왔다.
태식이 수집한 자료에는 임현일의 한자 이름과 나이, 거주지, 그의 학력 사항과 그가 거쳐 갔던 병원들이 나와 있었다.
그가 사용하던 통칭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한자 이름을 주목해 보기로 했다.
재일 교포들에게는 통칭명을 만드는 보편적인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한자 문화권이라, 굳이 새 이름을 만들지 않고 한국 성의 한문 표기를 일본식으로 읽는 방법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성씨에 사용되는 한자가 일본에서도 사용되는 한자가 아닌 경우도 존재한다는 게 변수긴 하지만 말이다.
임현일의 호적에 등록된 한문 표기는 林賢一.
일본어 사전을 통해 확인해 보니 전부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용한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을 그대로 일본식으로 읽으면 하야시 켄이치라는 이름이 된다.
나는 이 이름을 국제 포털에도 검색해 보았다.
흔한 이름인 모양인지 여러 사람이 떴다.
물론, 임현일이 다른 통칭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태식이 알아 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듯하니, 그때까지 이 이름으로 추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정말로 임현일의 통칭명이 하야시 켄이치가 맞다면, 그만큼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동진에게 받았던 의학 논문 검색 사이트로 들어가, ‘kenichi hayashi’라고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흉부 학과 학회에 제출한 다수의 논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다.”
최신 논문은 2010년으로, 바로 작년이다.
논문 저자 정보를 열람하니, 소속은 일본 신가쿠 대학교 흉부외과로 되어 있었다.
공동 저자들도 전부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에 소속되어 있었다.
서울 우신 병원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임현일의 프로필을 보면 국내에서만 활동한 것으로 나올 뿐, 신가쿠 대학 병원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시간의 공백 역시 없다.
우신 장학생답게, 백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외과 레지던트 생활부터 시작해서 모든 커리어가 전부 우신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만일 내가 찾은 논문 저자 하야시 켄이치가 정말로 임현일이 맞다면, 그가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에 있는 동안의 공백을 우신 측에서 우신 병원에 속해 있던 것으로 처리해 줬을 것이다.
즉, 하야시 켄이치가 신가쿠 대학 병원에 속해 있다는 저자 소개가 임현일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진 못한다는 뜻이다.
하야시 켄이치와 임현일이 동일인이라는 증거를 얻으려면 역시, 하야시 켄이치의 정보를 추적해 보는 수밖에 없겠지.
“흐음…….”
나는 신가쿠 대학 병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의료진 목록 검색창에서 하야시 켄이치라는 이름을 입력하자, 프로필 하나가 나왔다.
다른 의료진들과 달리 사진은 나오지 않았지만, 약력은 찾아볼 수 있었다.
[하야시 켄이치 (조교)백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가쿠 의과대학 히토즈치 의료 센터 초기 임상 연수의
신가쿠 의과대학 병원 심장혈관 외과 대학원
메시지 : 현재 출장 중입니다.]
백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이로써 확실해졌다.
신가쿠 대학 병원 심장혈관 외과, 즉 흉부외과에 소속된 하야시 켄이치는 임현일이 맞다.
하야시 켄이치의 논문 공동 저자들이 모두 신가쿠 대학 병원 소속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 의사들도 모두 임현일을 알고 있으며, 그가 지금 신가쿠 대학 병원에서 활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인지하고 있다는 결론이 선다.
현재 서울 우신 병원에 속해 있는 임현일을 지금까지 공식 사이트에서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 의사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가쿠 대학 병원 역시도 그의 신분을 세탁해 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흉부외과의 다른 조교들의 프로필에는 외래 날짜가 소개되어 있는 것과 달리, 하야시 켄이치의 프로필에는 외래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다.
출장 중이라는 메시지를 남겨 의심을 피하려고 한 듯하다.
완벽하게 세탁하려면 백인대를 졸업했다는 사실도 숨겨주는 것이 나았겠지만, 그러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가쿠 대학 병원 쪽에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한 걸음 물려 놓은 것일지도 모르고.
예컨대, 논문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다른 이유로 하야시 켄이치가 주목받는 상황이 나오면 그에 대한 정보가 탈탈 털릴 텐데, 위조된 학력으로 소개해 놓으면 후에 신가쿠 대학 병원 측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테니까.
“이건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으니, 이제 임현일이 하야시 켄이치라는 이름으로 어떤 논문을 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장기 이식에 대한 논문이 있다면 심증을 확증으로 굳혀도 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강민재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에게 임현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그의 이름으로 된 논문을 전부 열람한 후, 동진에게 메일로 전송했다.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나 혼자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동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주한아.
“지금 바빠?”
─아니. 오늘 오전까지 애들하고 놀아 주고, 와이프가 애들 데리고 친정 갔다 온다고 해서 혼자 영화 때리고 있었다. 같이 간다니까 좀 쉬라네. 허허.
“모처럼 쉬는 데 방해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하지?”
─야, 인마. 그런 소리 말랬지. 뭔데,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저번에 너희 과장이랑 만나서 얘기했던 임현일이라는 의사에 대해서 더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게 있거든.”
─엉? 뭔데?
“그 사람이 재일 교포더라고.”
─그래? 그건 몰랐네. 과장님도 모르는 눈치였잖아.
“그러게. 그때 강관웅 전 대통령 집도의로 브리핑할 때 한국어 발음이 완벽해서 나도 그쪽으론 생각을 안 했었는데, 일본에서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나왔더라고.”
─고등학교부터 한국에서 나오고?
“어. 아무튼 그래서 일본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따로 있을 것 같아서 더 파 보니까, 역시 있더라고. 그 이름으로 논문 검색하니까 흉부 학과 쪽 논문이 잔뜩 뜨고.”
─이야, 너 대단하다. 별걸 다 알아내네.
“그래서 내가 방금 네 이메일로 그 사람이 낸 논문들을 보냈거든. 나야 의학 지식 쪽으로는 젬병이니까, 네가 어떤 분야 논문인지 대충 주제만 알려 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정도야 껌이지. 언제까지 해 주면 돼?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흠, 잠깐만. 노트북 켜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신 확인 페이지에서 동진이 메일을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그렇게 많진 않네. 어디 보자. 켄이치 하야시? 이 사람이야?
“응.”
─첨부파일로 말고 저 논문 링크 줄 수 있어?
“메일 본문에 있어.”
─아, 그러네. 어디이~ 보자아~ 오, 소속이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네.
“그렇더라고. 유명한 곳이야?”
─어, 유명하지. 일본에서 탑 티어야. 흉부외과로 유명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래?”
─우리 과장님이 말한 그 일본으로 유학 갔었다는 데가 신가쿠 대학 병원인가 보네. 우신 장학생으로 갔다고 했지?
“응. 그런 것 같아. 근데 신가쿠 대학 병원 사이트에서 조회해 보니까 우신 병원에서의 이력은 하나도 없고 신가쿠 대학 병원 얘기만 있더라고.”
─그래? 그건 좀 수상하다. 아, 지금 찾아보니까 신가쿠 의대가 심장이식 쪽으로 유명하네.
“심장이식?”
─어. 이 사람이 쓴 논문도 대충 제목만 훑어보니까 인공 심장이나 심장이식 수술 방식에 대한 게 많아. 나도 내 전공 분야는 아니라서 자세히 봐야겠지만.
이거 굉장한 걸 찾은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
─아냐, 내용도 같이 봐 줄게.
“그래 주면 고맙고.”
─엉. 근데 나도 모르는 거 있으면 흉부외과 쪽 친구한테 물어봐야 할 수도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괜찮아, 얼마든지.”
─그래. 그럼 최대한 빨리 보고 연락 줄게.
“그래.”
─어, 들어가라.
동진과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책상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사한 것들과 내 의견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1. 임현일은 우신 장학생 신분으로 신가쿠 의학 병원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하야시 켄이치라는 이름으로 흉부외과 전문의를 땄다.
2. 하야시 켄이치는 신가쿠 대학 병원 흉부외과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 출장 중으로 표기되어 있어 외래도 보지 않는다.
3. 그는 인공 심장과 심장이식에 대한 논문을 주로 썼다.
4. 신가쿠 대학 병원은 하야시 켄이치가 우신 병원에서 쌓은 커리어에 대해 전혀 표기하지 않고 있다.
5. 우신 병원 역시 임현일이 신가쿠 대학 병원에서 쌓은 커리어를 표기하지 않고 있다.
6. 4, 5번 항목 모두 임현일과 하야시 켄이치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숨겨 주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7. 신가쿠 대학은 우신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8. 임현일이 하야시 켄이치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는 까닭은 3번 항목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정 1. 범우신가의 유전병인 심장질환과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사람으로 임현일을 선택했다?
가정 2. 우신이 일본을 상대로 한 장기 매매 사업에 임현일을 기용했다?
→ 임현일이 천사의 집에 급하게 가야 했던 이유일 가능성이 있음.
나는 보드 마커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범 우신 가의 유전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그 존재를 아는 사람 역시도 드물고, 나는 검사 신분이었기 때문에, 최종현은 우신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기자였기 때문에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우신의 유전병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한다…….
“아.”
그때, 머릿속에 익숙한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왜 이 생각을 이제야 했을까.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전화를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휴대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호사님?
“오랜만이다.”
─진짜 오랜만이네요. 웬일로 연락을 다 주셨대요?
“다른 건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너도 혹시 심장 쪽에 질환 같은 거 있니, 찬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