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5)
너희들은 변호됐다-436화(435/641)
#436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는지 김찬영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대답을 기다렸고, 김찬영은 낮게 웃음을 흘리고는 곧 대답했다.
─네. 어떻게 아셨대요.
“범우신가 유전 질환이잖아. 좋든, 싫든 너도 그 집안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지.”
─변호사님 정보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근데 너무 깜빡이도 안 켜고 물어보시는 거 아니에요? 원래 그런 성격이신 건 알지만.
“감추고 있는 거였어?”
─뭐, 그 집안사람들은 숨기고 있죠. 저는 뭐 사람들이 그 집안사람인 거 모르니까 굳이 숨겨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빠서 말은 안 하고 있어요.
“기분 나쁠 이유가 있나?”
─음……. 다행히 외형적인 건 엄마를 닮아서 괜찮은데, 그 집안 유전 질환이 저한테도 있다는 건 고상준 핏줄이라는 뜻이니까. 그걸 통감하는 순간이 되니까 기분 나빠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그럴 수도 있겠네.
나는 타고 나길 그렇게 타고났으니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별 고민 없이 물어봤는데.
강민재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럼 기분 나쁜 문답은 안 하고 싶겠네.”
─근데, 변호사님이 갑자기 뜬금없이 물어보신다는 건 뭐 중요한 일 때문인 거 아니에요?
“맞아.”
─으음…….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고. 언제 시간 되세요?
“난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오늘은 제가 약속이 있어서 좀 그렇고, 다음 주 중에 뵐까요?
“그래. 그럼 되는 날짜 정해서 알려 줘. 내가 맞출게.”
─넵.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길게 기지개를 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덧 벌써 저녁 8시.
내가 이렇게 시간이 지날 때까지 집중했나 싶다.
눈도 뻑뻑한 것 같고,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서재에서 나와 거실로 가자, 태식이 소파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내가 1인용 카우치에 풀썩 주저앉자, 태식이 나를 의식한 듯 힐끗 쳐다보았다.
“아니, 오늘 쉬신다더니 서재에서 나오지도 않으시고. 배 안 고프세요?”
“아, 그러고 보니 배가 좀 고프네.”
오늘 첫 끼니를 해결하려는 순간 태식에게 임현일에 대한 정보를 듣는 바람에 밥도 먹지 못하고 계속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뭐 시켜 먹자니 귀찮고.
라면이나 먹어야겠다.
내가 부엌으로 향하자, 거실에서 태식이 소리쳤다.
“변호사님! 라면 드실 거예요?”
“왜, 또 라면 먹게?”
낮에 3봉지나 먹어 놓고 라면을 또 먹겠다는 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태식이 덧붙였다.
“아뇨! 라면 없어요! 아까 제가 먹은 게 마지막이에요!”
“……그럼 사서 채워 놓든가.”
“변호사님이 댁에 계신데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제가 집을 비워요.”
“장난하나.”
“장난 둘.”
“뭐?”
“크크큭,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혼자 배가 째지도록 웃는 태식을 보니 순식간에 회의감이 밀려온다.
저놈 말고 그냥 다른 경호 업체를 찾아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 *
오늘은 김찬영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오늘이 되기까지 동진은 하야시 켄이치가 1저자, 혹은 공동 저자로 되어 있는 모든 논문을 찾아 분석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과 함께 예과부터 함께했던 동기 중에 흉부외과 전문의들을 수소문해서 하야시 켄이치에 대한 정보를 알아본 듯했다.
실제로 신가쿠 대학 병원이 흉부외과로 유명한 만큼, 그쪽으로 유학을 떠난 동기도 있었는데 그중에 하야시 켄이치를 실제로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에게 임현일의 사진을 보여 주니, 외모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긴 하지만 맞는 것 같다는 대답도 들었다고 한다.
동진은 그 사람을 통해 조금 더 알아볼지 물어봤지만, 나는 일단은 홀드해 달라고 말했다.
내가 백찬근에게 임현일에 대해서 물었을 땐, 임현일이 하야시 켄이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만큼이나 그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혹시라도 임현일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단 김찬영에게 어느 정도 선까지의 정보를 들을 수 있을지 확인해 본 다음 정하는 게 나을 듯하다.
“오셨어요?”
김찬영과 만난 곳은 그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 호텔이었다.
김찬영은 지금도 고상준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나와 연락할 때는 대포폰을 사용하고, 만날 때는 외국계 호텔 룸을 이용한다.
김찬영이 회원권을 끊어 놓은 곳이기도 하고, 나를 만나는 일이 아니어도 한 달에 몇 번씩 휴식을 위해 방문하고 있어 고상준의 의심을 피할 만한 장소로는 제격이었다.
“어머님은 잘 계시지?”
“네. 덕분에요.”
“다행이네.”
김찬영은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내 앞에 놓아 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소식이 뜸하시던데. 특히 그때 L&B 얘기 이후로는 방송도 없고요. 저는 그때 L&B 일 커져서 뭐라도 좀 될 줄 알았는데 변호사님 쪽이 조용해서 좀 놀랐어요.”
“아, 그거? 그때 납치당했었어. 그래서 이어갈 수가 없었어.”
“아, 납치……. 네? 납치요?”
김찬영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고상준이 그런 일을 하면서 김찬영에게 말했을 리도 없을 테니까.
“고상준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찬영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미친 새끼. 하,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제 앞에 계신 거 보면 많이는 안 다치셨나 봐요. 다행이에요.”
“죽다 살아났지. 배가 뚫렸었거든.”
“그 정도였다고요? 아니, 왜 안 터트리셨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 어쨌든 그간 놀았던 것만은 아니야.”
“아, 하긴……. 강 변호사님한테 차마 연락은 못 드렸는데, 그런 일도 있었죠.”
“그래. 그것도 고상준 짓인 건 알고 있어?”
김찬영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설마 싶었죠. 제가 고상준을 너무 싫어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나 싶어서 그냥 아니겠지 했는데…….”
“아직 물증은 없어.”
“정말…….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유감이에요. 강 변호사님은 괜찮으세요?”
“안 괜찮겠지.”
늘 밝게 웃으며 하던 아침 인사도 연습하는 놈인데.
어쨌든 강관웅 이야기는 유족도 아닌 내가 떠들어 댈 건 아닌 듯해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너한테 심장 질환 쪽 얘기를 듣고 싶은데. 괜찮겠어?”
“아, 네. 어차피 말씀드리려고 뵙자고 한 건데요.”
김찬영은 서류 가방 안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제 검사 기록이에요. 혹시나 도움 될까 싶어서 가져왔어요. 별건 없긴 해요.”
서울 우신 병원에서 진행한 검사 기록이다.
검사 일자는 7년 전이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나와 있었다.
“다 정상인데?”
“네.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거든요. 7년 전에 받았어요. 심장이식 수술받기 전 기록은 제가 미성년자 때라서 가지고 있는 게 없어요.”
“심장이식 수술?”
범우신가의 유전 질환이라고 해서, 혹시 김찬영이 아는 바가 있나 싶어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엄청난 게 걸려들었다.
“네. 선천적으로 심장에 기형이 있었어요. 어릴 땐 심각하진 않아서 이식까진 필요 없고, 또 기술이 그렇게 발달했을 때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수술만 하고 지냈는데 크면서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이식이 필요한 상황까지 돼서 수술을 하게 됐죠.”
“알아보니까 우리나라 첫 심장이식이 90년대 초에 시작됐다고 하던데, 언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야?”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그때부터 문제가 됐어요. 근데 저는 우리나라에서 받은 건 아니고, 일본에서 받았어요. 2004년에.”
“일본? 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가자고 하니까 갔죠. 그리고 타이밍 딱 맞게, 저한테 정말 잘 맞는 조건을 가진 뇌사자분이 나타나셔서 바로 수술받았어요.”
타이밍 딱 맞게, 김찬영의 조건에 알맞은 뇌사자가 나타났다?
아니길 바라지만, 지금 조사하고 있는 것이 하필이면 그런 쪽이라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김찬영도 내 반응을 의식한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받긴 했는데,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혹시 고상준의 로비가 작용하진 않았을까 싶긴 해요.”
“왜?”
“그냥, 타이밍이 그렇잖아요. 원래 제가 다니던 병원은 우신 병원이었는데, 일본 병원으로 넘어가기가 무섭게 공여자가 나온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혹시 병원에 크게 기부라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래도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다고만 하더라고요.”
병원에 기부한 게 아니라, 천사의 집에 있는 아이 중 한 명이 그 심장의 주인이었다면?
국내는 장기 기증 과정이 복잡한 데다가 아무리 우신 병원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보는 눈이 많다.
그래서 일부러 김찬영을 일본에 넘겼다면?
그리고 그 병원이 그것이 신가쿠 대학 병원이었다면?
신가쿠 대학 병원은 임현일의 신상을 숨기는 데 협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신가쿠 대학 병원이 우신과 연관되어 있었다면, 김찬영의 편의를 봐 주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수술받은 병원이 어디였는지 기억나?”
“당연하죠. 근데 엄청 큰 병원은 아니었어요. 큰 병원이긴 한데, 우신 병원 정도 사이즈는 아닌?”
“대학 병원 같은 게 아니었어?”
“음……. 아니었던 것 같아요. 종합병원이긴 했는데.”
“병원 이름은 기억나?”
“아, 네. 오카시마 병원이었던 것 같아요.”
“오카시마? 어디에 있어?”
“음, 그때 하네다 공항에서 내렸던 것만 기억나는데. 검색하면 나오려나? 잠시만요.”
김찬영은 휴대폰으로 오카시마 병원을 검색해 보고는, 나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여기예요.”
“거기 사이트 링크 좀 나한테 보내 줄래?”
“네. 방금 메시지로 보냈어요.”
“근데, 일본까지 넘어가서 했을 정도면 일본에서 심장이식으로 유명한 병원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쵸. 저도 그래서 일본으로 간단 말 듣고 일본에서 심장이식으로 유명한 병원을 몇 군데 찾아봤었거든요. 근데 찾아본 데가 아니라 다른 데로 가서 좀 놀라긴 했어요.”
“그래서, 그거에 대해선 안 물어봤어?”
김찬영은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려는 듯 생각에 잠겨 있다, 곧 떠오른 듯 ‘아!’ 하고 소리쳤다.
“물어봤어요. 제가 그때도 고상준 싫어했으니까, 혹시라도 저 잘못될까 봐 걱정됐거든요. 근데 엄마가 고윤성도 거기서 심장이식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고윤성?”
“네. 고윤성이 저보다 몇 년 일찍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거든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런 큰 수술을 받고도 그렇게나 마약을 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다른 자식들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다른 자식들은 건강하다고 들었고, 고상준도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기분 나쁜 거죠. 고상준의 좆같은 점이 다른 자식들은 피해 갔는데 저한테 왔다는 게. 고윤성도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저 오카시마 병원에서 너랑 고윤성이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네.”
“너 말고도 다른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가 많았어?”
내 물음에 김찬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VIP 병동에 있었으니까요.”
“흐음…….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자.”
“네.”
나는 휴대폰에서 태식이 보내 주었던 임현일의 증명사진을 찾아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김찬영에게 보여 주었다.
“이 사람 알아?”
“으음…….”
김찬영은 내 휴대폰을 가져가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모르겠다고 할 법도 한데, 김찬영은 한참 동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대답했다.
“알아요.”
“어떻게 알아?”
“제가 그 오카시마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저 돌봐 주던 의사였던 것 같은데. 집도의는 아니었지만, 회진 돌 때 항상 같이 있었어요. 제 상태 살피러 오던 사람도 이 사람이고요. 제가 아는 얼굴보다 좀 늙어서 긴가민가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이름도 기억나?”
“간호사들이 하야시 센세라고 불렀어요. 하야시가 성이겠죠? 이름은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