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6)
너희들은 변호됐다-437화(436/641)
#437화
“이만 가 볼게.”
김찬영에게는 생각한 것 이상의 정보들을 얻어 내었다.
그에게 들은 것을 기반으로 다른 정보들을 캐낼 수 있을 것 같고, 이 이상으로 질문할 점도 지금은 없다.
내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김찬영이 함께 일어서며 내 팔목을 잡았다.
“아니, 일방적으로 질문만 하고 가시면 어떡해요. 저한테도 알려 주셔야죠.”
김찬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의 심장 기형조차 고상준의 흔적이라고 혐오하는 김찬영에게 ‘사실 네 심장의 주인은 뇌사자가 아니라, 무고한 천사의 집 아이다’라고 하기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물론 모든 정황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지만, 김찬영의 공여자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정보가 없고, 만에 하나 정말로 갑자기 뇌사자가 등장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김찬영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안겨 주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듯하다.
“갑자기 심장 얘기는 왜 꺼내신 건데요.”
김찬영은 말이 없는 나를 보며 재촉하듯 물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강관웅 전 대통령이 사망하기 직전에 응급 수술을 했던 집도의가 임현일이라는 의사야.”
“그런데요?”
“강관웅 전 대통령의 시신을 부검했을 땐 아무 문제도 나타나지 않아서 넘어갔지만, 혹시 임현일이 고상준의 지시를 받고 수술대 위에서 무슨 짓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그 임현일이라는 의사가 심장병이랑은 무슨 상관인데요?”
“그래서 임현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 지금은 서울 우신 병원 외과 교수로 있는데, 알아보니 재일 교포 출신이더라고. 그래서 일본에서 활동했을 때 이름이 따로 있었고, 그 이름으로 다시 추적해 봤어.”
“……그게 하야시예요?”
“그래. 그래서 그 사람이 일본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찾아봤고,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신가쿠 대학 병원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 주로 연구하던 분야는 인공 심장이나 심장이식에 대한 것이었고, 그때 범우신가에 유전병이 있다는 게 떠올라서 우신이랑 뿌리 깊은 커넥션이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야.”
김찬영은 미간을 짚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했던 말을 정리해 보려는 듯했다.
“그러니까, 저를 돌봐 줬던 그 하야시라는 의사가 알고 보니 고상준 따까리였고, 고상준의 명령으로 강관웅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맞아. 그런데 내가 알아본 걸로는 임현일이 일본에서 활동한 병원은 신가쿠 대학 병원이었거든.”
“아, 들어 봤어요. 제가 옛날에 찾아봤다고 했던 심장이식으로 유명한 병원중에 그런 이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네가 신가쿠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지. 왜냐면 신가쿠 대학 병원에서도 임현일의 신분 세탁을 돕고 있었거든. 근데 오카시마 병원이라며?”
“네. 그런데 신가쿠 대학 병원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던 임현일이 왜 오카시마 병원에 있었던 거죠?”
“그건 알 수 없지. 지금 생각으로는 신가쿠 대학 병원하고 오카시마 병원 사이에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긴 한데. 어쨌든 그래서 너한테 확인받고 싶었어.”
김찬영은 팔짱을 낀 채 소파에 깊이 기대며 침음했다.
“근데 어쨌든 저나 고윤성이나 오카시마 병원에서 심장이식을 했다는 건 거기에 공여자가 나타났다는 거잖아요. 제 생각이 맞다면, 저나 고윤성은 순번에서 한참 밀리는데도 고상준이 수를 써서 순번을 앞당겼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통하려면 오카시마 병원이 기존에 우신과 커넥션이 있는 걸로 보이는 신가쿠 대학 병원과 연관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겠지.”
“어쨌든 이 상황만 놓고 봐서는 임현일이 우신 따까리는 맞는 것 같고, 그럼 자연스럽게 강관웅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을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
“맞아. 아무튼, 궁금한 거 풀렸으면 이제 가 봐도 되나?”
“아, 네.”
김찬영의 흉곽 안에서 박동하는 심장이 누구의 것인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어차피 모든 사실이 물 위로 끌어 올려지기 전에는 김찬영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생각이고.
그때 김찬영이 받을 충격은 크겠지만, 어쩌겠는가.
김찬영은 일전에 고상준의 핏줄로 태어난 것 자체가 본인의 원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만일 김찬영의 심장이 천사의 집 아이의 것이라면, 김찬영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순간 김찬영의 기구한 삶을 연민했다.
* * *
주말 동안 나는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오카시마 병원은 신가쿠 대학 병원과 연관이 있었다.
오카시마 병원 사이트에는 신가쿠 대학 병원과 협력 기관이라는 소개가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 정도에서 그쳤다.
오카시마 병원은 딱히 장기이식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병원이 아니었다.
보도 자료도 없었고, 대부분의 병원이 자신들의 장기이식 성공 이력을 어필하는 것이 반해, 오카시마 병원은 그저 평범한 종합병원이라는 느낌만을 풍겼기 때문이다.
동진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주변의 흉부외과 전문의들도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오카시마 병원의 연구진들이 학회에 제출한 논문도 없다고 했고.
오카시마 병원은 완벽하게 ‘듣보잡’ 병원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아마 이곳이 천사의 집에서 장기 매매를 위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아이들의 무덤일 것이다.
“변호사님 오셨어요?”
월요일이 되어 출근하니, 프린터 앞에서 내용물을 출력하던 오 사무장이 인사를 건넸다.
나는 회사 내부를 훑어보다, 오 사무장에게 물었다.
“강 변은요?”
“아, 커피 사러 갔어요. 이제 곧 올 겁니다.”
“그럼 최 기자님과 조봉준 씨한테 연락 좀 넣어 주십시오. 회사로 좀 오시라고. 강 변한테는 두 사람 몫 커피도 같이 사 오라고 전달해 주시고요.”
“뭐 새로운 거 발견하셨어요?”
“네.”
나는 가볍게 대답하고 안주머니에 넣어 둔 담배를 들어 올리며 오 사무장에게 한 대 피우고 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사무실 문이 닫힐 때까지 오 사무장이 바쁘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문이 완전히 닫히자 사위가 온통 조용했다.
나는 흡연 구역으로 가는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오늘 강민재에게 강관웅이 어쩌면 죽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상념에 잠겼다.
“후우…….”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켰다.
한 번 깊게 빨아들인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희뿌연 연기가 겨울 공기와 뒤섞여 허공에 흩어졌다.
이제 서서히 강관웅의 빈자리를 인정해 나가고 있을 강민재에게는 모진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조사에서 강민재를 제외하고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강민재가 더더욱 바라지 않는 일일 테니까.
“하.”
새삼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라면 김찬영이 가질 죄책감이나, 강민재가 느낄 애통함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진실을 말해 주었을 것 같은데.
이전 삶의 나이까지는 아직 7년이나 남았는데도,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어 버린 기분이다.
하긴, 생물학적 나이가 그런 것이지 내가 죽기 전인 2018년 이후로 나는 정신적 나이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니 당연한 것일까.
인정에 흔들리는 것은 내 일에 방해만 된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지금 와서는 이런 변화가 나쁘다고 생각되지만은 않는다.
이 길은 혼자 갈 수 없는 길이고, 동료들과 함께 달리는 장기 레이스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유대 관계를 쌓는 것은 중요하고.
분명 인정에 흔들리는 일은 가끔은 방해가 될 수 있겠지만, 다른 장점을 창출해 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변화가 성장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라면, 내가 성장한 만큼 강민재도, 김찬영도 성장하길 바란다.
그들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그 계기가 될 것이다.
“어우, 나 세수 좀 하고 올게.”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최종현이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5분 정도 나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모두가 회사에 모여 있었다.
“어, 차 변 왔네. 나 세수만 얼른 하고 올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다 왔어.”
“알겠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불러서 세수도 못 하고 나왔잖아.”
최종현은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조봉준과 강민재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오 사무장에게 내가 새로운 걸 알아냈다고 말했으니, 그 이야기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변호사님, 커피요.”
강민재는 나에게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웃어 보였다.
오늘의 웃음도 연습한 웃음일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 이제 시작하죠.”
안색이 한결 밝아진 최종현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문을 잠갔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품 안에서 USB를 꺼냈다.
그들에게 브리핑하기 위해 어제 간단하게 만든 PPT 자료가 들어 있다.
“차 변 준비 많이 했네. 이야아.”
내가 PPT를 화면에 띄우자, 조봉준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내가 조사로 알아낸 건 상당히 쓸 만한 내용이지만, 과연 브리핑을 끝낸 다음에도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천사의 집 어린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뒤 수여자에게는 뇌사자인 것으로 고지한 뒤 심장을 적출당해 강제로 공여자가 되었던 사례를 찾았습니다. 아직까지 물증은 없지만, 상당한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내 말에 모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언제 그렇게까지 진도가 나갔어?”
임현일에 대한 조사는 시작 단계에서는 나의 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이 모든 정황을 한데 모아 주는 연결 고리는 임현일. 현재 서울 우신 병원의 일반외과 교수입니다.”
임현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나오기가 무섭게 강민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그가 강관웅의 응급 수술을 집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잠시 확인한 강민재의 얼굴은 단지 굳었을 뿐, 아무런 감정적인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