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39)
너희들은 변호됐다-440화(439/641)
#440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것까진 좋았다.
그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발설한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나 역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그뿐만 아니라, 최종현이 막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나의 충고가 강민재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었으며 그것이 강민재가 한결 죄책감에서 벗어날 기회가 되었다는 점 역시 만족스럽다.
그러나 여기서 부작용이 하나 발생했다.
그건 바로…… 강민재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외계인이냐고 물어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변호사님, 진짜 말해 주세요. 저 집에서도 마음의 준비했어요. 변호사님이 외계인이라고 해도 예전과 다르지 않게 변호사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요.”
“하,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외계인이야.”
“평행 우주에서 오셨으면 외계인이죠!”
“내가 그냥 가정이라고 했잖아. 평행 우주는 무슨,”
“헉. 쉿! 쉬잇!”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강민재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눈을 부릅떴다.
오 사무장이 내 방문을 노크했기 때문이다.
“네.”
강민재는 내가 응답하기가 무섭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서 몇 발짝 떨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일도 없었고, 강민재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군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 강 변호사님, 여기 계셨어요?”
“네. 뭐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강민재는 오 사무장 몰래 나에게 눈짓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고, 오 사무장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두 분 화해하신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화해는요. 그냥, 그냥 자잘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뿐이죠.”
“어쨌든, 무슨 일이십니까?”
“아,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언제 식사하실지 여쭤보려고요.”
벌써 그렇게 됐나.
출근하고 나서 강민재에게 시달리기만 했는데, 점심시간이 되었다니.
시간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갖다 버린 기분이라 썩 유쾌하진 않았다.
“시켜 먹을까요? 저 변호사님이랑 조금 더 할 얘기가 있어서요.”
“아, 그러세요? 그럼 어떤 거 드실래요?”
“아, 전 강 변이랑 할 얘기 없습니다. 나가서 드시죠.”
“음?”
오 사무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 강민재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강민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강 변호사님은 하실 말씀이 있어 보이는데요?”
“없습니다. 나가시죠.”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코트를 꿰어 입었다.
오 사무장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방을 나갔고, 강민재는 나에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니, 저를 헷갈리게 하신 건 변호사님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으려고 하세요? 적어도 명쾌한 답은 주셔야죠!”
“외계인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내가 외계인이면, 배 뚫렸을 때 평범하게 치료받았던 건 뭐로 설명할 건데?”
“외계인인데 신체 구조가 인간하고 똑같은 걸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어제 검색을 해 봤거든요? 외계인은 4차원의 존재일 수도 있대요. 그리고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아니, 특수 상대성 이론인가? 제가 문과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4차원의 존재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대요. 모든 시간을 펼쳐서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변호사님은 미래를 이미 알고 계시고, 미래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여태까지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내가 미래를 모두 알고 있었다면 뭐 하러 개고생해서 조사하고 증거 찾으러 다녀? 어차피 다 알고 있는데.”
“그건 변호사님이 오신 평행 우주에서 미리 일어날 사건들을 다 알고 오셨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우주에서는 손에 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증거를 손에 넣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왜냐면 입증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결과는 알고 있지만, 과정은 변호사님이 채워야 하는 상황인 거죠! 또, 변호사님은 평행 우주에서 겪은 시행착오가 있었잖아요? 안트로졸 알파 출시를 미리 막지 못했다거나, 등등이요. 그런 시행착오를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조사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똑똑한데?
전부 다 맞는 말이다.
조금 더 보충하자면, 내가 이곳에 와서 미래를 바꿔 버리는 바람에 내가 기존에 알던 지식으로는 모든 사건을 해결하기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긍정할 순 없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소설 재밌다. 우신 망하면 SF소설 작가가 되어 보는 건 어때?”
“소설이라뇨! 진짜잖아요! 아니면 시간 여행자 아니에요?”
방을 나서려는 나를 강민재가 졸졸 쫓아오며 소리쳤다.
정말 밤사이에 오만 생각을 다 한 모양이었다.
몇 시간 동안 내가 왜 외계인인지에 대해 떠들어 댔는데도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강 변 시간 많은가 봐? 장기 매매 건에 대해 조사해도 모자랄 시간에 외계인이네, 4차원이네, 상대성이론이네 하는 이야기만 주야장천 찾아본 걸 보면 말이야.”
“아니……. 그건,”
“나는 하루하루가 치열한데, 강 변은 내가 외계인이라는 망상을 펼쳐나갈 여유가 있나 봐. 부럽네.”
“아니, 그건 아닌데……. 변호사님이 먼저 의심하게 만들었잖아요!”
“나는 어디까지나 가정이라고 했고, 외계인이 아니라고도 말했어.”
“근데 변호사님이 그렇게 섬세한 공감과 빙의한 듯한 감정 묘사가 가능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가능해.”
“아뇨? 완전 사회성은 0에 수렴하고, 어떻게 해야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 아니, 애초에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본인 하고 싶은 말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잖아요!”
“지금 나 욕한 거야?”
“……아뇨. 죄송합니다.”
어쨌든 나는 이 정도에서 강민재의 궤변…… 아니, 외계인이라는 점만 빼면 완벽한 추론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식당에서 식사하는 내내 강민재는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잠긴 문 앞에 최종현과 조봉준이 서 있었다.
조봉준이야 그때 별말 보태지 않았지만, 최종현은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으니 연락이 올 때까지 며칠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민재랑 차 변 화해했다며?”
아주 잠깐 침묵이 흐르자, 조봉준이 나와 최종현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며 말했다.
나야 최종현이 했던 말에 대해 별생각 없긴 하지만, 최종현은 머쓱해 하는 것 같았다.
“뭐야, 아직까지 앙금이 남은 거야?”
조봉준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형은?”
“난 여전히 차 변이 민재한테 실수했다고 생각하지만, 민재가 괜찮다면 내가 뭐라고 할 순 없지.”
“하하, 저 괜찮아요. 그리고 변호사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도 알겠고, 저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두 분 서로 포옹!”
……포옹?
“갑자기?”
“원래 화해할 때 그렇게 하는 건데. 서로 안아 주고 내가 미안해 실시.”
조봉준이 한 술 거들었다.
나에게 저런 행동을 하라는 그의 말을 듣고도 차마 내 귀에 들어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지만, 최종현은 얼굴을 붉히더니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뭡니까?”
“하나, 둘, 셋 하면 ‘내가 미안해’ 하자.”
최종현이 뚱한 목소리로 말했고, 나는 역시 그의 말을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했다.
“하나, 둘, 셋.”
내가 동의하기도 전에, 최종현이 숫자를 세었다.
“…….”
“…….”
그리고 우리 중 그 누구도 ‘내가 미안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차 변. 나는 방금 우리 모두에게 실망했어.”
여전히 나를 끌어안은 채로, 최종현이 말했다.
“하하. 이만하면 됐으니까, 우리 얼른 들어가요. 추워요.”
보다 못한 강민재가 회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잽싸게 회의실 문을 열어젖히고는 나와 최종현을 각각 의자에 앉혔다.
“그런데 미리 말도 없이 어쩐 일로 오셨어요?”
강민재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나 역시 궁금하긴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김찬영의 심장이식 이야기를 포함해, 임현일과 하야시 켄이치의 정체를 밝힌 것은 바로 어제의 일이다.
그 사이에 뭔가를 더 알아본 걸까?
“뭐 새롭게 알게 된 거라도 있어요?”
오 사무장도 궁금했는지 그들을 재촉했다.
최종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메고 왔던 가방에서 L자 홀더를 꺼냈다.
“알아낸 게 있지.”
“이거 찾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어.”
그들이 건넨 홀더 안에는 사진이 몇 장 들어 있었다.
사진에는 커다란 벽에 한자가 각인된 동판 따위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게 뭡니까?”
“그때 오카시마 병원이랑 신가쿠 대학 병원이 연관이 있는 것 같고, 또 그 두 병원이 우신이랑 연관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잖아.”
“네.”
“그리고 우신의 장기 매매 사업의 주된 고객층은 한국이나 일본의 재벌이나 고위 관료일 거라고 예상했잖아?”
“그랬습니다.”
“그때 이가연 씨 쪽에서 우리한테 넘겨줬던, 본인들이 성 상납을 했던 일본 놈들 목록 기억나?”
“나죠. 아직 거기까지는 진도가 안 나가서 그냥 훑어보고 말았는데.”
“나도 그랬어. 근데 혹시 정말 연관이 되어 있다면, 그놈들이 오카시마 병원이나 신가쿠 대학 병원에 후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봉준이 말하다 지친 듯한 최종현의 말을 대신 이었다.
“우리나라 병원도 보면, 후원 많이 한 사람들 이름을 명예의 전당이라고 해서 커다란 벽에다가 박아 주잖아. 그래서 이놈들도 그런 걸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리스트에 있던 놈들은 특히 일본 고위 관료인데, 그런 사람들이 병원에 후원금을 기부했다면 그건 칭찬받을 일이니까 몰래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네요, 정말.”
“그래서 이가연 씨한테 오카시마 병원하고 신가쿠 대학 병원에 명예의 전당이 있는지 확인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 한국은 병원 사이트만 들어가도 쭉 목록이 나오는데, 일본 병원은 안 그런 것 같더라고. 우리끼리 찾는 거엔 한계가 있었어.”
“그래서요?”
“이가연 씨가 도쿄에 있는 두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다 주셨어.”
그 말을 듣고 보니, 최종현과 조봉준이 사진에 하이라이트 표시해 둔 부분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가연 씨한테 넘겨받은 명단에 있던 고위 관료 중 세 명 정도가 여기 기부했어. 꽤 큰돈이야. 천만 엔 정도.”
“확실한 고객들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마지막 사진 봐. 이게 대박이야.”
아직 확인하지 않은 마지막 사진 역시 명예의 전당을 담은 듯했고, 그들이 빨간색 볼펜으로 미친 듯이 동그라미 쳐 둔 부분이 있었다.
“헐.”
강민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봉준을 바라보았다.
“미쳤다.”
“대박이지?”
마지막 사진 속 동판 끄트머리에는, L&B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