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4)
너희들은 변호됐다-44화(44/641)
“태식 씨, 아직 많이 남았어?”
“아뇨! 이것만 하면 됩니다!”
차주한에게 약속한 날이 이틀 남았다.
장태식은 숨 가쁘게 손을 놀리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재판이 끝나던 날, 제대로 쉬지도 않고 바로 삼창동으로 가서 증거를 찾던 두 사람을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인쇄본을 찾아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그다음 날, 그 말을 바로 후회했다.
오랫동안 찾아도 나오지 않은 것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직원 같은 존재가 되어 출력소 안에 마음대로 드나들게 되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태식은 한숨을 쉬었다.
임무 수행은커녕 팔자에도 없는 남의 일이나 거들어 주는 신세라니.
지금 섯다 이벤트 기간인데!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세요.”
그나마 태식과 그의 졸개들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은, 출력소 직원인 하지민이라는 아가씨였다.
친절하고 웃는 얼굴이 예뻤다.
비록 감히 대시할 용기가 나지는 않았지만.
만일 하지민이 아니었다면, 차주한의 지시고 나발이고 애당초 때려치웠을 것이다.
“고마워요.”
“뭘요. 아, 고양이는 찾으셨어요?”
“아뇨, 아직이요.”
“아이구. 빨리 찾으셔야 할 텐데.”
“그래야죠.”
장태식은 하지민이 건넨 팥빵을 뜯어 먹었다.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역시 신세 한탄 같은 것은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소임을 다해야 대한의 젊은이지.
하여튼 요즘 놈들은 하나같이 근성이 없어서 문제다.
“열심히 찾아야지.”
물론, 인쇄본을 말이다.
* * *
“변호사님, 전화 옵니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강민재가 들어와 휴대폰을 건넸다.
그러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 흘긋 액정을 보니 유정원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간단하게 내기나 할까.”
나는 전화를 받기 전에 그를 향해 물었다.
강민재가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금세 얼굴에 장난기가 돌았다.
“나는 고소 취하하라는 쪽에 건다. 강 변은?”
“그럼 저는 뭔가 불안해서 전화했다에 걸겠습니다. 저녁 내깁니까?”
“좋아.”
“소고기 드시죠. 제가 이길 것 같으니까요.”
강민재의 말을 뒤로하며, 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차주한입니다.”
-유정원이에요. 어떻게, 잘 지내셨어요?
“우리가 피차 그런 걸 물을 사이였습니까.”
-어머, 까칠하시네요.
“무슨 일입니까.”
-저희 쪽에서 보내 드린 영감 노트 사본, 잘 보셨나 해서요.
“그걸 묻기 위해 전화했다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영감 노트 사본을 받은 것은 며칠 전이다.
보내 준 당일에 묻든지.
보나 마나 판결 기일에 나올 결과가 명징하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서론을 질질 끄는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강민재와의 내기도 있으니, 나도 본론이 궁금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네, 그럴까요? 어차피 판결 기일까지 2주나 남았는데, 이제 그만하시죠.
“무슨 뜻입니까.”
-고소 취하하시라는 뜻이에요. 아무리 민사가 처음이시라고 해도, 대충 분위기를 보면 아시잖아요. 어떤 판결이 나올지.
“점쟁이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미리 압니까. 판결 기일이 돼 봐야 알겠죠.”
나는 유정원에게 대답하며 강민재에게 손짓했다.
내기의 승자는 나였다.
강민재는 이마를 짚으며 발로 바닥을 굴렀다.
-가뜩이나 심약한 나은성 씨가 판결 기일까지 기다리느라 마음 상하는 거 지켜보느니, 저 같으면 속전속결로 끝내겠네요. 어쨌든, 알겠어요. 판결 기일 날 뵙죠.
유정원은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마따나, 판결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우리는 의거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유사성은 충분히 증명했지만, 그것은 재판장의 재량으로 충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재판만 놓고 본다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으로 결론 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패가 생겼고, 그것은 충분히 다른 기회를 만들고도 남을 만하다.
하지만 유정원이 그것을 눈치챘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들이 무엇을 더 준비한다고 해도, 정혜진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소고기랬나? 가자.”
나는 강민재에게 말했다.
그들이 내민 증거가 거짓임을 발견한 강민재는, 그 사실을 그들에게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그 성취감에 대해 벌써부터 그들이 제 발을 저릴거라는 기대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강민재의 패인이었다.
“아이씨……. 네.”
“덕분에 잘 먹었다.”
나는 계산하고 나오는 강민재의 어깨를 두드렸다.
“커피라도 한 잔 드실래요?”
“됐어. 이만 퇴근해.”
“사무실에 가방 놓고 왔어요. 근데, 변론 재개 신청은 언제 넣으시려고요.”
사무실로 향하면서, 강민재가 물었다.
사실, 나는 아직 강민재에게 태식이 출력소에서 증거를 더 찾아보겠다고 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삼창동에서 자신에게 실수가 있었음을 알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흘 뒤에.”
어차피 태식에게는 모레까지 시간을 주었다.
그때까지 찾지 못하면, 그것은 없는 셈 치고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
“그나저나, 조감독은 아직도 연락 안 돼?”
법정에 나타나지 않은 것을 책망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증인으로 나타나기로 한 것 때문에 그가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싶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고.
“오늘 문자 넣어 놨는데, 한 번 걸어 볼게요.”
사무실로 올라가며 강민재가 대답했다.
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을 뒤적이는 동안, 나는 사무실이 있는 5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금세 5층에 우리를 뱉어 내었다.
“어?”
사무실이 위치한 복도에 들어섰는데, 누군가 사무실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먼저 발견한 강민재가 그를 향해 뛰어갔다.
“감독님!”
어두운 얼굴의 조감독이었다.
우리는 도어락을 해제하고 그를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
조감독은 고개를 숙인 채 상담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다.
강민재가 주스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우리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고, 조감독은 그 뒤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할 기회를 주려 했지만, 왠지 그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꺼내지 못하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요.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그것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조감독은 야구 모자를 두 손으로 꽉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푸른섬 미디어에 협박받았습니다.”
강민재가 벌떡 일어서려 엉덩이를 들썩였고, 나는 그의 허벅지를 눌렀다.
그렇지 않아도 상태가 나쁜 조감독 앞에서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썩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어떤 협박을 받으셨습니까?”
“제가 아는 선배가 하는 영화사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랑 정말 친한 선배인데……. 알고 보니까 그 선배 영화에 투자하기로 되어있었더라고요.”
[진실]이런. 그렇게 이어져 있었을 줄은 몰랐다.
“푸른섬 미디어가 영화에 투자한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봐서,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부터 그 사업을 시작하려는 모양입니다.”
푸른섬 미디어의 후신인 WS E&M은 확실히 영화 쪽에서 큰 힘을 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영화 쪽에는 손을 뻗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시작이 지금이라면, 그래서 조감독이 자신이 들어갈 영화사에 페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합니다. 혹시 증인으로 나오려고 했던 사실 하나만으로 불이익을 받으신 게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그냥 나오지만 않으면 된다고 해서요. 오히려 나가지 않아서 투자금을 더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 혹시 저 때문에…… 제가 법정에 안 나가서 재판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조감독이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차질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본래는 평소 정혜진이 표절을 해왔다는 주장은 성민정과 조감독 두사람의 증언으로 뒷받침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불출석하면서 오로지 성민정만의 주장이 되어 버렸고, 그 주장은 이하영에 의해 꺾여 버렸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다행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강민재의 대답에, 조감독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금 타격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강민재는 나를 바라보았다.
안심에 차 있던 조감독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얼룩졌다.
“변호사님!”
“그게 사실이야.”
그의 불출석을 이해해 주는 것과, 아무 차질도 생기지 않은 것으로 해주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가 증인으로 나가려다가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손해는커녕,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죄책감 정도는 가져도 될 것이다.
그것으로 언제, 어떻게 우리가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또, 나는 지난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법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재판과 진술, 증언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간과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나는 수많은 사람이 진술을 번복하고, 별것 아닌 이유로 증언대에 서지 않아 수도 없이 절망했다.
법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이 나라 교육 시스템을 원망했고,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물론, 조감독은 손해와 이득 사이에서의 갈등 끝에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은 그 무게를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그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
딱 그만큼의 무게를.
“하지만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자신 있게 나가겠다고 말해 놓고, ”
“아닙니다. 사과받으려고 사실대로 말씀드린 건 아니었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괜찮습니다. 영화에 투자를 더 받게 되셨다니 좋은 일이죠.”
나는 설핏 웃으며 대꾸했다.
충분히 그에게 알려 주었으니, 더이상 그에게 마음의 짐을 줄 생각은없었다.
지이이잉.
그때였다.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날 찾는 전화가 참 많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장태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