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42)
너희들은 변호됐다-443화(442/641)
#443화
“변호사님, 전에 말씀하신 예림이라는 애 말인데요.”
출근길, 눈을 감고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는데 운전하던 태식이 문득 말을 걸어왔다.
“예림이가 왜.”
“그때 혈액형 알아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러고 보니 좀 오래 걸리네.”
“아, 아침에 애들한테 연락 왔어요. RH –B형이라네요.”
이전 삶에서 허민우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뺑소니 사고 직후 기억을 잃고 위조 여권으로 일본으로 넘겨진 아이.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특이 혈액형일 거라 예상했고, 그 예상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굳이 알아봤던 것이었으니.
뺑소니 사고부터 우신의 계획이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리 RH –B형 어린이 장기가 급했다고 해도, 그 대상으로 예림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예림을 장기 매매에 이용하려 했다면 예림이 반드시 살아서 일본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 않은가.
예림은 부모가 있기 때문에 만일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부모를 찾았을 것이고, 구급차를 타고 공식적으로 응급실에 넘어온 환자가 부모를 찾는데 병원에서 그걸 막는 것도 그림이 부자연스럽다.
우신이라면 굳이 감당하지 않았을 리스크인 것이다.
한 마디로, RH –B형 어린이의 장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하필이면 그들 입장에서 운이 좋게도, 그 혈액형을 가진 어린이가 심지어 기억까지 잃은 채로 넝쿨째 우신 병원까지 굴러들어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어린이 환자의 데이터는 전산망에 올라갔을 것이고, 모니터링하고 있던 관련자에 눈에 들었겠지.
필요하다면 누구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갖다 쓴다는 마인드가 역겹기 짝이 없다.
“근데 어제 저녁 드셨어요? 상길이가 안 드셨다고 하던데?”
유난히 차가 밀리는 구간에 접어들었을 무렵, 태식이 물었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안 먹었는데.”
“배고프면 야식 드신다면서요.”
“근데 너무 늦어서 그냥 잤어.”
“배 안 고프세요?”
“아침 먹었잖아, 그래서.”
태식이 혀를 쯧쯧 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떡대가 안 붙지.”
“내가 떡대 키워야 할 이유가 있어?”
“얼굴이 잘생기면 뭐 해요. 몸이 좋아야지.”
“몸 나쁘지 않아.”
“떡대가 없잖아, 떡대가.”
“너처럼 팔이 수박 통 만해야 몸이 좋은 거야?”
“당연하죠.”
태식이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는 오른쪽 팔의 근육을 나에게 자랑해 보였다.
“징그럽다. 치워라.”
“뭐가 징그러워요. 이런 몸이니까 제가 변호사님도 지켜드리는 거죠!”
신호가 바뀌자, 태식은 액셀을 밟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건강 좀 챙기세요. 뭣하시면 보약이라도 지어 드시고. 돈도 많은 양반이 왜 이렇게 자기 몸에 신경을 안 써요?”
“내가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무슨 보약을 먹어.”
“진짜 변호사님 갑자기 픽 쓰러질까 봐 걱정돼요, 저. 밥이라도 좀 잘 챙겨 드셔야지. 맨날 커피, 커피, 커피.”
“왜 이래, 갑자기. 너까지 귀찮게 하지 마.”
“그러다 속 버려요.”
“내 속이지, 네 속이냐?”
“갑자기 픽 쓰러져서 제가 업고 병원으로 뛰어야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러거든요.”
“구급차 있는데 네가 왜 날 업고 뛰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좀.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요.”
태식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주무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봐. 남자 손목이 이게 뭐야. 본인이 무슨 공주예요? 손목 부러지겠네. 누가 확 채가면 끌려가겠어요.”
“내 손목이 왜 부러져. 나는 평균이야. 네가 과하게 두꺼운 거야.”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선바이저를 내려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살이 좀 빠졌나.
저번에 재 보니 체중은 그래도 평균에 속하던데.
“거울은 왜 봐요. 안 봐도 잘생겼어요. 걱정 하덜덜 말아요.”
“살 빠졌나 확인하는 거야.”
“확인은 무슨 확인. 빼빼 말랐는데.”
“옛날 상길이만큼?”
“아, 걔는 멸치였고요. 그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툭 치면 쓰러질 것 같긴 해요.”
태식의 기준은 마치 손주 바라보는 할머니와 다르지 않아서,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태식 같은 거구가 툭 치면 누구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오 사무장을 만났다.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오늘은 그가 커피 당번인 듯했다.
“변호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네. 태식아, 네가 커피 들어 드려.”
“아유, 아니에요. 고작 커피 네 잔인데.”
오 사무장이 손사래를 치며 어느덧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회사로 올라가는 내내, 나는 엘리베이터의 큰 거울에 나를 비춰 보았다.
태식이 자꾸 말랐다고 하니 정말로 마른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체력이 받쳐 줘야 조사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왜 살이 빠지는 거지.
“변호사님이 웬일로 그렇게 거울을 보세요?”
오 사무장이 그런 나를 흘긋 보며 쿡쿡 웃었다.
“사무장님.”
“네?”
“제가 그렇게 말랐습니까?”
내 물음에 태식이 풋 웃음을 흘렸다.
내가 자신의 말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 웃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식이 나를 말랐다고 해서 외모를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건강, 그러니까 정신 건강 빼고 육체적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자꾸 보약을 지어 먹으라는 소리를 하니 혹시라도 내가 우신이 망하는 꼴을 보기 전에 픽 쓰러져 버릴까 봐 걱정하는 것뿐이다.
“저번에 같이 사우나 갔을 때 보니까 몸 좋으시던데요.”
“에헤이. 아무리 직장 상사여도 빈말은 정도껏 하셔야죠. 무슨 변호사님이 몸이 좋아요. 말랐구만.”
“아니, 막 몸이 우락부락 좋으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근육도 있고……. 뭐, 슬림한 근육 체형이긴 하죠?”
“그러니까 남자한테 슬림이라는 말이 웬 말이에요. 남자란 자고로…….”
“사무장님 손목 좀 볼 수 있을까요.”
오 사무장이 의아한 듯 나에게 소매를 걷고 손목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 옆에 내 손목을 대 보았다.
“비슷한데.”
나는 회사 앞에 도착해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태식이 소리 높여 웃기 시작했다.
“제가 공주냐고 해서 지금 비교해 보신 거예요?”
“네가 오버했잖아.”
“그런다고 공주 손목이 어디 가요?”
태식은 나를 놀리는 데에 맛이 들린 듯했다.
태어나서 저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
외모에 대해서 듣는 소리는 주로 ‘잘생겼다’이지, ‘예쁘다’가 아니다.
키도 187cm다.
물론 190cm가 넘는 태식이 보았을 때는 내가 작아 보이겠지만, 평균을 훨씬 웃도는 신장이란 소리다.
“누가 공주예요?”
그때, 강민재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물었다.
태식은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변호사님이요.”
“변호사님이 왜 공주예요?”
“손목이 얇은 게 공주 같아서요.”
강민재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나에게 다가와 내 손목을 엄지와 검지로 둘러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도 마찬가지로 확인해 보았다.
“공주는 심했다.”
“봐. 네가 오버한 거라고.”
“공주님이라고 해야죠. 왜 존칭을 안 붙여요?”
“아, 맞다. 그러네. 공주님이었네.”
상대할 가치도 없다.
나는 오 사무장이 들고 있던 캐리어에서 내 몫의 커피를 뽑아 들고 내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태식이 소리쳤다.
“공주님 삐쳤대요.”
“계속 그딴 소리 할 거면 해고야.”
“그러게 누가 밥 굶으래요?”
“너 때문이라도 하루에 다섯 끼 먹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바라던 바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섯 끼를 어떻게 먹지?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코트를 걸어 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습관적으로 메일함을 확인했더니, 오 사무장으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메일을 확인하려는 찰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오 사무장이었다.
“아, 변호사님. 방금 메일 넣어 드렸는데. 확인……. 아, 하시는 중이시네요.”
“안 그래도 열어 보려고 했습니다. 이건 뭡니까?”
오 사무장이 가까이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내 옆에 앉았고, 나는 그가 첨부한 파일을 열었다.
100페이지가 넘어가는 파일 안에는, 사진과 각각의 첨언이 붙어 있었다.
“별건 아니고요. 그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거 제가 하기로 했잖습니까. 그 왜, 신가쿠 대학 병원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 정보 검색해 보는 거요.”
“아, 네. 그런데 별로 정보 나온 게 없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때도 간략하게 파일 보내 주셨었는데. 새롭게 찾으신 게 있는 겁니까?”
스크롤을 슥슥 내리며 물으니, 오 사무장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건 아닌데……. 그때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는 사람들 대충 동문회나 그런 쪽 빼고 60명 정도 된다고, 그걸 전수조사하기에는 시간이 좀 아깝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요.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해 봤는데 벌써 이 정도 찼네요.”
오 사무장의 말대로, 파일 가장 앞에는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여 사람별로 목차를 만들어 놓았고, 명예의 전당에 서 보았던 모든 사람이 담겨 있었다.
얼마나 검색을 해 본 것인지, 대충 훑어봐도 그 사람들의 사진과 대외적인 프로필, 연혁과 정보들이 줄줄이 담겨 있었다.
“일본 사이트 찾는 거라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래도 한자가 많아서 더듬더듬 읽다 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또 인터넷 번역기도 잘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찾다 보니까…….”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단순 노동이라고는 해도 외국 사이트를 뒤져가며 문서를 만드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나는 새삼스럽게 오 사무장의 집념에 놀라고 말았다.
새삼 그와 함께했던 중앙지검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도 그는 이렇게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생각해 봤는데, 이 리스트를 이가연 씨 쪽에 넘겨서 추가로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가장 위로 올렸다.
오 사무장은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 순으로 배치해 두었는데, 내리다 보니 가족사진이나 사사롭게 난 스캔들 기사까지 첨부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가족사진은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그냥 검색하다 보니 나오던데요. SNS나, 인터뷰 기사나, 가족들도 덩달아 유명한 경우에는 사진이 많아요.”
“그렇군요.”
한 명씩 뜯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다섯 번째 인물, 그러니까 오 사무장이 생각하기에 명예의 전당 속 인물 중 다섯 번째로 영향력이 큰 사람의 페이지로 접어들었을 때.
“이 사람…….”
공식적인 프로필 사진과 더불어, 아래에 가족사진이 첨부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주인공은 오다 사토시.
일본 중의원 5선 의원이다.
그리고 그 가족사진 속에서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그와는 달리 몹시 젊어 보이고 아름다운 아내가 옆에 서서 웃고 있었다.
“왜요? 아는 사람입니까?”
“오다 사토시는 모르고, 여기 아내 말입니다.”
“아, 이 사람. 아내가 아주 젊죠? 재혼했다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런데 왜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서요. 사무장님은 그런 생각 안 드셨습니까?”
오 사무장은 내 말에 사진을 확대해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자세히 보진 않았는데, 말씀 듣고 보니 뭔가……. 낯이 익은 느낌이긴 하네요.”
“어디서 봤을까요.”
눈을 굴리며 고민하던 나는, 문득 책상 한쪽에 쌓여 있던 신상명세서들에 시선이 갔다.
강수일이 나에게 넘겨주었던, 강관웅의 임기 당시와 임기 이전 우신의 손에 일본으로 넘어갔던 사람들의 신상명세서.
그중에 가장 위에 놓인 프로필 사진 속의 얼굴.
“사무장님.”
나는 그 신상명세서를 오 사무장 앞에 내려놓았다.
“닮지 않았습니까?”
비록 20년 이상의 간극이 있고, 어린 모습이라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정말 많이 닮았다.
가장 첫 페이지에 있던 사람이기에 내가 수십 번, 수백 번은 들여다봤던 얼굴이다.
13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은 45세가 되었을 사람.
그녀는 대체 몇 살 때부터 성 상납을 시작했을지 생각하며 나를 상념에 잠기게 했던 사람이다.
“닮은 것…… 같은데요.”
문득, 머릿속에 녹음파일 속 이가연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 후원자들에게 잘 보여서 첩 노릇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저희처럼 도망쳐서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