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45)
너희들은 변호됐다-446화(445/641)
#446화
“김미자와 접촉할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회의실에 사람들을 불러 운을 떼었다.
그간 내가 알아본 것들은 바로바로 그들에게 공유하고 있었으니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내가 말하기 전에도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강민재와 오 사무장 역시 김미자와 접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별다른 말 없이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역시 일본으로 가는 수밖에 없나.”
“가서 어떻게 만나요?”
“연구실로 연락해야지. 대학 교수잖아.”
“안 만난다고 하면요?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만나 주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강의는 하고 있을 테니까 그냥 무작정 쳐들어가서 죽치고 있는 방법도 있잖아.”
“만나는 것에만 의의를 둔다면 그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우악스럽게 접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김미자에게 우신과의 관계, 그리고 그 요정의 운영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을 건드리러 가는 사람들이다.
김미자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우악스러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여린 살을 건드리게 하진 않을 것 아닌가.
경계심만 키울 뿐이다.
“이 방법은 어때요?”
오 사무장이 입을 열었다.
“이가연 씨 말대로라면, 이세화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일본에서 한일관계가 화제라면서요. 그리고 오다 사토시가 한국계 여성과 결혼했으니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요.”
“그렇죠.”
“일본 여성 잡지와 인터뷰를 한 걸 보면, 오다 사토시 쪽에서도 오다 토미코의 사회적인 위상을 높여 주는 활동은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 잡지에 실린 건 특히, 일본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아요.”
“사무장님 말씀대로인 것 같아요. 검색해 보니까 기사들이 하나같이 오다 토미코를 우아한 느낌으로 포장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한일 관계에서 오다 토미코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해한다는 식으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해서요.”
“음,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만나자고 한 다음에, 거기서 사실대로 정체를 밝히든 해서 얘기를 꺼내면 되잖아요. 어떻습니까, 변호사님?”
오 사무장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다.
“그럼 학교 쪽으로 연락해야 하나?”
최종현이 오다 토미코가 임용된 대학교 사이트에 접속하며 말했다.
“학교보단 갤러리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학교로 연락하면 학교 측과도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고 할 수도 있어요. 차라리 오다 토미코가 있다는 갤러리에 연락하는 편이 직접적일 겁니다.”
“하긴. 근데 이 중에 일본어 잘하는 사람 있나? 거기에 연락하려면 일본어로 메일 보내야 하잖아.”
“영어로 보내는 건?”
“외국어가 가능한 해외사업부도 없는 소형 언론사라고 생각해서 씹으면 어떡해.”
“그건 그렇네요. 변호사님, 일본어는 못하세요?”
강민재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일본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읽는 법 정도는 안다.
그리고 일본 역시 한자 문화권이라 줄글을 대충 읽으면서 의미를 짐작하는 정도지, 할 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못 된다.
“못하는데.”
“저번에 리히텐슈타인 갔을 때도 비행기에서 책 좀 읽으시더니 택시 기사랑 대화하셨잖아요. 공부 좀만 하시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땐 그냥 필요한 회화 몇 가지만 한 거야.”
“흠……. 번역기 쓰면 좀 없어 보일 것 같은데.”
최종현이 중얼거렸다.
“아!”
그때 강민재가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수일이 형이 일본어 잘해요! 일본어 원서도 읽을 수 있다고 했어요. 할아버지 말로는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한다고 하던데요?”
“그래?”
“네. 엄청 잘해요.”
“근데 왜…….”
“네?”
“왜 여태까지 말을 안 했어? 일본어를 그렇게 잘하면 여태까지 우리가 번역기 돌려 가며 더듬더듬 사이트 뒤지는 동안 그냥 강 실장님이 한 번 휘리릭 보면 시간도 단축됐을 텐데…….”
최종현이 불기둥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형형한 눈으로 강민재에게 다가가 그의 두 어깨를 잡고 탈탈 털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번역기 돌려서 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 하하하. 이제 생각났어요.”
“그럼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번역기가 되어 주셔야겠네……. 자료 조사에 참여해 달라고 말해 줄래?”
“……네. 어, 어쨌든 수일이 형한테 번역해 달라고 할까요?”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최종현의 고함에 강민재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뭐, 진작 알았다면 그의 말대로 시간은 어느 정도 단축됐겠지만 그렇다고 강수일에게 조사를 전부 맡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뭐가 됐든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다는 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뭐라고 메일 보낼지 문장 써 주시면 수일이 형한테 번역해 달라고 할게요.”
“그런데 대형 언론사인 척하려면 메일 도메인도 그 언론사 도메인을 달고 있어야 하고, 담당 부서 연락처 같은 것도 첨부해야 할 텐데. 안 그러면 의심하지 않겠어?”
내 말에 강민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요?”
“그냥 갤러리로 전화 거는 게 낫지.”
“아, 하긴 그렇네요. 그럼 수일이 형 여기로 오라고 할까요? 거기 직원이랑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니까 우리가 다 모여 있는 데서 통화하는 게 낫잖아요.”
“얼른 오시라고 해.”
강민재는 강수일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강수일은 어차피 집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며 바로 출발하겠다고 대답했고, 1시간 뒤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 좋네요.”
강수일은 사무실을 구석구석 구경하다, 데스크 뒤편 벽에 걸린 정도의 BI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 섰다.
강관웅이 직접 써 준 글씨였기에, 그 역시 잠시 감상에 잠긴 듯했다.
“시간이 없어요, 형.”
강민재는 그러한 강수일의 동요를 느낀 듯, 그의 팔을 잡아끌며 회의실로 들어왔다.
강수일은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오 사무장을 처음 본 것이 아니었으므로 오랜만에 뵙는다는 간단한 인사를 남긴 뒤 착석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통역해 드리면 되죠?”
“통역이 아니라 형이 직접 통화를 해 줘야 해요.”
강민재는 오 사무장이 제안한 접근 방식을 설명했다.
강수일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는 어떤 것을 쓰면 되냐고 물었다.
우리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번호일 것으로 추정되는 조봉준의 휴대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지면 어떡하죠? 구체적인 질문 사항이 뭐냐고 묻는다거나.”
“그건 취합해서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식으로 말을 돌려야지. 그리고 어차피 인터뷰 성사되면 질문지는 나중에 받아 보거든.”
“그럼 여기, 이 번호로 걸면 되죠?”
강수일은 노트북 모니터에 떠 있는 갤러리 전화번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국제전화 특유의 연결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쇼조 갤러리입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대진일보 진대준 기자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저희가 한일관계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 네.
“여러 가지로 조사를 진행하다, 쇼조 갤러리의 대표이신 오다 토미코 대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일본 현지에서도 오다 사토시 의원이 한일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에 가교 역할을 할 거라는 기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오다 사토시 의원에 대한 인터뷰 기사는 워낙 많아서 저희는 오다 토미코 대표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다 토미코 대표님이 해 오신 여러 가지 활동에 대해서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꽤 계셔서요.”
─아, 네. 그러셨군요. 대진일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능하시다면 저희가 일본으로 찾아뵙고 직접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가능한 빠르게 날짜를 잡을 수 있을까요?”
─으음, 지금 대표님이 휴가차 오다 의원님과 함께 부부 동반으로 한국에 방문하신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가능하실지에 대한 답변이 늦어질 것 같은데요. 괜찮으실까요?
“한국에 계시다고요? 휴가차 나오셨다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신 김에 저희한테 잠깐 시간을 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글쎄요……. 휴가를 보내신 이후에는 주한 일본 대사관 주최로 열리는 천황 탄일 축하 리셉션에 참석하시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오시는 일정이라 한국에서 뵙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아, 그렇습니까…….”
─혹시 모르니 대표님께 메모를 남겨 놓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 주시면 대표님께 회신이 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갤러리 공식 메일로 저희 명함 한 장 넣어 놓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수일은 생각보다 긴 대화 끝에 전화를 끊었다.
우리 중 그의 유창한 일본어 대화를 알아들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인터뷰를 할지 말지는 오다 토미코에게 의견을 물어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이었어요?”
강민재의 재촉 같은 물음에, 강수일이 한숨 쉬듯 웃으며 대꾸했다.
“아직 형 말 안 끝났는데.”
“아, 그렇지. 네. 그래서요?”
“지금 오다 토미코 부부가 휴가차 한국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 있다고요?”
“네. 그래서 한국에 온 김에 인터뷰를 진행할 순 없겠냐고 물었는데요.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네요.”
“일왕 생일 파티?”
일왕 생일 파티라.
한국에서 주기적으로 열리고, 한국 보수 정당 인사들이 그곳에 참석하는 일 때문에 제법 이슈가 되곤 하는 일이다.
고상준이 직접 참석한 적은 없지만, 우신 관계자가 얼굴을 비춘 적은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일본 왕 생일을 왜 우리나라에서 축하하고 지랄이야.”
조봉준이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짓씹듯 말했다.
자세히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 일왕 생일 파티에 온갖 대기업이 화환을 보내고 행사가 제법 성대하게 열린다는 것을 알면 뒤로 넘어갈 듯하다.
“흠,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한다면 거기서 접촉할 수 있다는 뜻이네요?”
그때 오 사무장이 말했다.
강수일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굳이 인터뷰 형식을 띄지 않아도 김미자 씨하고 대화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근데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그게 될까요?”
내가 알기로 일왕 생일 파티는 주한 일본 대사관 측에서 초대장을 보낸 사람에 한해 출입을 허가한다.
그 대상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정관재계 인사가 아니더라도 초대장을 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 있다.
기자들에게도 종종 초대장이 나가는 것 같고.
잠시 떠올려 보던 나는, 문득 시선을 강민재를 향해 멈추었다.
“왜요?”
“강 변 정도면 참석 의사 밝히면 초대장 나올 것 같은데.”
그렇잖은가.
강민재는 전 대통령의 손자다.
게다가 변호사라는 그럴듯한 직업도 가지고 있고, 강관웅의 국가장 당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직접 일왕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는데, 일본 대사관 측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초대장을 받을 순 있을 것 같습니다.”
강수일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제로 초대장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저한테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네가 거길 간다고 하겠니.”
“하긴.”
강수일은 노트북을 자신의 가까이 끌어당겨 검색어를 입력했다.
정면에 연결된 화면으로, 그가 무엇을 검색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포털에 일왕 생일 파티를 검색하고 있었다.
“음, 내일모레네요. 남산 쪽 호텔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내일모레?”
“오늘 공식적으로 대사관에 참석 의사를 밝히면 초대장이 나올 겁니다.”
“근데 만나서 어떻게 하죠? 남편이랑 같이 있을 테고, 남편이랑 떨어져 있는다고 해서 거기서 설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 마디만 해.”
내 말에, 강민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요?”
“학력 위조. 성매매 요정. 그럼 알아서 모골이 송연해져서 원하는 게 뭐냐고 할걸.”
그러면 그때 할 얘기가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고 하면 되고,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나와 함께 만나면 된다.
원래라면 일왕 생일 파티가 끝나는 대로 일본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라지만, 자신의 큰 약점이 걸렸는데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원래 일정을 바꿔서 시간을 어떻게 만들지는 내 알 바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몫이다.
“……와.”
강민재가 입을 벌리며 감탄사를 흘렸다.
“왜.”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런데?”
“좀……. 무섭네요. 김미자 씨 입장에선 진짜 무서울 것 같아요.”
무서우라고 그렇게 하는 건데.
나는 강민재가 왜 저런 반응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