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46)
너희들은 변호됐다-447화(446/641)
#447화
강수일의 말대로, 일본 대사관 측에서는 강민재가 참석 의사를 밝히자 허겁지겁 초대장을 보내왔다.
오죽하면 혹시라도 강민재가 수령하지 못해서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까 봐 대사관 측에서 직접 사람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래서 강민재는 오랜만에 말쑥한 파티 참석용 정장을 차려입고 남산에 위치한 한 호텔로 발을 디딘 참이었다.
강민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주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할 거라는 응원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변호사님. 저 지금 들어가요.”
─잘하고 와.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게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쩌겠어요. 대의를 위해서라면……. 근데 기사 뜰까 봐 무섭네요. 우리 이미지 안 좋아지면 어떡해요.”
강민재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호텔 바깥에는 온갖 언론사에서 총출동했는지, 언론사 차량이 줄줄이 주차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얼마 전 국가장 때문에 얼굴이 크게 알려진 강민재가 기자들의 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하는 날엔, ‘강관웅 대통령이 어떤 분이신데 손자라는 놈이 일왕 생일을 축하하느냐’며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몰래 잘 들어가 봐.
“그냥 행사장에 입장은 안 하고 그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김미자 씨 나오면 접근해 볼까 봐요. 화장실 한 번을 안 가겠어요?”
─안 갈 수도 있지. 욕먹을까 봐 걱정돼?
“저 하나 욕먹는 건 괜찮은데 할아버지랑 변호사님까지 싸잡히는 게 싫어서 그렇죠.”
─욕먹는 건 잠깐이야. 그리고 사람들 네 얼굴 까먹었을지도 몰라. 그때 잠깐 시선 모이고 그 뒤로는 딱히 밖에서 사람들이 강 변 쳐다보지도 않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우리 이미지 나빠져서 좋을 게 뭐예요. 나중에 욕할 빌미 주는 거 아니에요? 그냥 수일이 형만 가라고 할까요?”
─강 실장님도 같이 갔어?
“네……. 왠지 일본어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옆에 서 있던 강수일은 ‘나?’ 라고 물으며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강민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호텔 입구 부근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일왕 생일 축하 파티가 웬 말이냐’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힐끔 바라보았다.
애초에 강수일이 대사관과 통화하는 내내 일왕을 ‘천황님’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해 주었을 때부터 기분이 나빴는데, 저걸 보니 더더욱 양심에 찔렸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위해 친일파인 척 연기했던 분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런 분들에 비하면 자신이 하는 일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제 결심이 곧 애국이겠죠?”
대단한 애국심으로 우신을 잡겠다고 나선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신의 행태가 이러하니 애국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강민재는 애써 자신을 포장해 보았다.
─뭐, 의도치 않았지만 그런 결과로 이어지긴 하겠네.
“그럼 친일파인 척하는 독립운동가가 되어 보겠습니다.”
─그 정도까지야?
“……비슷한 마음가짐으로요.”
─걱정하지 마. 이렇게 걱정하다가도 막상 닥치면 잘하잖아.
“그 말이 듣고 싶었어요. 행사장 나와서 연락드릴게요.”
강민재는 전화를 끊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만일 자신의 참석 여부가 알려진다면 갖은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언젠가 모든 상황이 드러나게 되면 사람들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믿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 특히 어르신 걱정은.”
“그래도요. 손자가 이런 데에 출입한다는 게 알려지면 할아버지 지지하던 분들마저도 할아버지 욕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얼굴 안 보이게 내 뒤에 딱 붙어 있어. 사람들이 내 얼굴까진 잘 모를 거야.”
“네…….”
아직 로비에도 들어서지 않았지만, 강민재는 강수일의 등 뒤에 찰싹 붙었다.
정관재계 인사들이 출입하는 장소인 데다, 반일 정서를 직격하는 행사다 보니 테러가 있을 것을 염려했는지 공항에서나 볼 법한 보안검색대까지 있었다.
이렇게 걱정까지 해 가면서 굳이 왜 우리나라에서……?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런 생각은 이미 너무 많이 했고 해 봤자 분노로 마무리 지어질 뿐이라 그만두기로 했다.
“초대장 보여 주시겠습니까?”
행사장 앞에 도착하자, 입구를 통제하는 가드들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혹시라도 김미자가 일찍 자리를 뜰 것을 예상해서 행사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는데, 그 때문인지 눈부시게 플래시를 터트려 대는 기자들은 몇 없었다.
사진을 찍으려던 기자들도 강민재는 알아보지 못한 듯, 강수일의 등장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양이었다.
초대장을 확인한 가드들은 환영하는 말과 함께 가슴팍에 꽃을 달아 주었고, 강민재는 도망치듯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행사장 안에는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아직 참석자들이 다 도착하진 않았는지, 한적한 분위기였다.
기자들에게도 초대장을 발송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강민재는 기자들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생각해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런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사람들이 못 알아볼 외모는 아니었지만, 내심 자신이 차주한처럼 보자마자 ‘얼굴 미쳤다!’하고 탄성이 나올 정도의 외모는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강 변호사?”
그때, 정면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강민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일전 태광에서 근무했을 당시, 대표인 윤원형의 소개로 만난 적이 있었던 야당 의원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강 변을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네. 오랜만이야.”
“……하하, 네.”
“조부님 빈소에서 인사했었는데, 기억은 나?”
그의 물음에 강민재는 대답을 미뤘다.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빈소에서 누굴 만났었는지 스캔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 누굴 만났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참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 이상 누가 왔는지 기억할 정신머리는 없었다.
“아, 예. 찾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따로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경황이 없어 놓쳤던 것 같습니다.”
“아니야. 큰일 치렀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연락을 돌리나.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안 왔나 봐.”
그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강민재가 소개받을 만한 인사들은 죄다 여당에 있었고, 여당 인사 중에서 일왕 생일 파티에 참석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 김미자를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했을 무렵, 강수일이 끼어들었다.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아, 자네는…….”
그는 강수일에 대해 떠올리느라 바빠 보였다.
강수일은 그 틈을 타 강민재에게 눈짓했다.
얼른 김미자를 찾아보라는 뜻이었다.
강민재는 그때부터 열심히 행사장 내부를 휘젓고 다녔다.
물론 기자인 것 같은 사람 주변은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민재야.”
그렇게 한참 동안 내부를 누볐을까.
점점 행사장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고, 한눈에 강수일을 찾기 어렵겠다 싶을 무렵이었다.
“아, 형.”
“내부에는 김미자 씨가 없는 것 같아서, 입구 쪽에서 서성거리면서 확인하려고. 찾으면 바로 전화할게.”
“네.”
그렇게 또다시 흩어져서 찾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다.
일왕 생일 파티를 외국에서까지 연다기에, 적어도 일왕의 감사 멘트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단지 주한 일본 대사가 후지산이지 싶은 산이 그려진 걸개그림 앞에 조성된 발언대에서 축사를 몇 마디 했을 뿐이었다.
내빈들을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도 몇 보였다.
고상준의 장인인 일중일보 사주도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얼굴로 주한 일본 대사와 악수를 나누며 일본어로 떠드는 모습을 보니 꼴값도 이런 꼴값이 없었다.
‘에휴, 빨리 찾고 나가야 하는데.’
강민재는 한숨을 쉬며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네, 형.”
─김미자 씨 발견했어. 지금 입장했다. 주시하고 있다가 남편이랑 떨어지면 그때 말 걸어 보자.
전화를 끊고 입구 쪽을 바라보자, 과연 기모노 차림의 김미자가 남편과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강민재는 그때부터 티 나지 않게 김미자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들은 여러 내빈과 인사를 나눴고, 종종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오다 사토시 옆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사를 나누는 김미자는 그녀의 사연을 배제하고 보면 행복해 보였다.
과연 우리에게 협조해 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
그렇게 쫓아다녔더니, 드디어 오다 사토시가 개인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김미자는 샴페인과 주스 따위를 나르는 호텔 직원들에게 빈 잔을 건네주고는 뷔페 주변을 서성였다.
먹을 만한 게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강민재는 빠르게 뷔페 테이블로 다가갔다.
그리고 가까이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핑거 푸드를 집게로 집어 올리는 김미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김미자는 조금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이네요.”
왜 먼저 말을 걸었는데 자기소개도 하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법무법인 정도의 강민재 변호사입니다.”
“아……. 네. 반가워요. 저는,”
“김미자 씨. 맞죠?”
한국 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입가에 걸려 있던 부드러운 미소도 사그라지고,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하는 게 좋겠어요.”
“학력 위조하셨죠.”
“…….”
“그리고 성매매가 자행되는 요정도 운영하시죠? 남편분은 물론, 일본 정계 인사들이 많이 출입하더라고요.”
김미자는 쥐고 있던 집게를 떨어트렸다.
핑거 푸드가 담겨 있던 그릇과 부딪쳐 쨍! 하는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 시선이 쏠리지는 않았다.
강민재는 바닥에 떨어진 집게를 주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원하는 게 뭐예요?”
김미자가 덜덜 떨리는 손을 소매 속으로 숨기며 물었다.
강민재는 명함을 건넸다.
“따로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이유는 김미자 씨가 더 잘 아실 텐데요.”
“…….”
“날짜, 시간 정해서 연락 주세요. 가급적이면 남편분은 모르셨으면 합니다.”
“저는, 저는 오늘 밤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요.”
“일정 변경하시면 되잖아요. 어렵지 않습니다.”
“…….”
“오늘 자정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 이상은 안 돼요. 연락을 주시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김미자 씨가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협박은 굳이 길지 않아도 된다.
김미자는 오다 토미코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이 순간이 올 것을 걱정하고, 또 걱정했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밤 그 걱정이 현실이 되는 악몽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강민재는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고는 그대로 뒤돌아 행사장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