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
너희들은 변호됐다-45화(45/641)
-벼, 벼, 벼, 벼, 변호사님!
심하게 말을 더듬는 태식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울렸다.
“똑바로 좀 말해 봐.”
-저, 저, 저 엄청난 걸 차, 차, 찾은 것 같은데요!
“엄청난 걸 찾았다고?”
-네, 네!
“뭔데. 나은성 씨 대본 찾은 거야?”
그 말에 강 변은 물론, 조감독도 놀란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차, 찾은 것 같습니다. 찾은 것 같아요!
“인쇄된 걸 찾았단 말이야?”
-인쇄된 건 아니고, 이, 인쇄소 사장이 USB를 갖고 있었는데……. 거기에 대본들이 몇 개 있었는데, 나은성 대본도 드, 드, 들어 있었어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태식이 소리쳤다.
-이거 어떡하죠? 이거 어떡할까요? 일단 사무실로 가져갈까요?
“그렇게 해.”
나는 전화를 끊었다.
푸른섬 미디어와 거래 중인 출력소 사장이 그 파일을 갖고 있었다면, 당연히 푸른섬 미디어가 그 파일을 인쇄하기 위해 전송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은성의 원고가 2차 선발에 들었다는 의미였다.
이것을 재판에 쓰기 위해서는 출력소 사장을 설득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재판 전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푸른섬 미디어와의 관계 때문에 섣불리 접근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실물 증거가 있음을 알고 있지않은가.
아무래도 정황상 출력소 사장은 의도치 않게 파일을 지우지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래 인쇄 작업이 끝나면 의뢰받은 파일은 바로 지워야 한다.
오래전 파일을 남겨 두었다가, 몰래 해외에 판매하다 걸린 인쇄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사장님이에요? 찾았대요?”
“인쇄본을 찾은 건 아니고, 파일을 찾았다는데.”
“파일이요?”
“그 인쇄소에 대본을 넘겼다는 증거가 되겠지.”
“하, 하하! 와! 와아!”
강민재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나를 얼싸안고 펄쩍 뛰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런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뭐해?”
“네?”
“뭐하냐고.”
“……죄송합니다.”
그제야 강민재가 자신의 만행을 깨달았는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며 고개를 숙였다.
“뭔가 증거를 발견하신 겁니까?”
소파에 앉아 있던 조감독이 반색하며 물었다.
내가 잠시 대답하지 않자, 조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 스파이 같은 거 아닙니다.”
[진실]딱히 의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좋은 확인이 되었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대꾸했다.
“스파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잠시 정리하느라. 네, 저희 조사원이 뭔가를 발견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제가 불출석한 것 때문에 뭔가 대단히 어그러지는 건 아닌가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조감독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겉옷을 챙기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야구 모자를 벗으며 눌린머리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예, 들어가십시오.”
화색이 만연한 얼굴로 강민재가 허리를 접으며 소리쳤다.
조감독 역시 함께 인사하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감독님.”
“네. 말씀하세요.”
“음, 잠시 가지 마시고 계십시오.”
“……네? 혹시 제가 할 일이 있나요?”
그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강민재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만일 증인으로 불출석하신 게 정말 미안하시다면. 만회할 기회를 드릴까 싶어서요.”
“……만회할 기회요?”
“어려운 건 아닙니다. 피해가 가실 일도 아니고요.”
“뭡니까?”
“그건,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식이 도착했다.
그는 아기를 품듯이 누가 봐도 수상하게 USB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었고, 강민재는 평소 그를 두려워하던 것도 잊고 그에게 달려갔다.
“사, 사장님!”
“강 변호사…….”
두 사람은 사무실 한가운데서 와락 껴안았다.
조감독은 흐뭇하게 웃었고, 짜증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만하고 USB나 줘 봐.”
“네.”
태식이 강민재와 빠르게 떨어지며 나에게 USB를 넘겼다.
USB를 컴퓨터에 연결하자, 그 안에는 딱 하나의 폴더만 있었다.
폴더의 이름은 P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은성의 대본을 포함해서, 푸른섬 미디어 공모전에 출품된 네 개의 원고 파일이 담겨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치 않게 파일이 남아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태식아.”
“예, 변호사님.”
“출력소 사장, 영어 잘하냐?”
“아뇨. 그냥 평범하게 무식한 아저씨예요.”
그렇다면 P라는 폴더 이름도, 푸른섬 미디어의 P가 아닐까 싶다.
물론, 영어로 표기할 거라면 블루 아일랜드라고 번역해서 B라고 하는게 더 맞겠지만, 출력소 사장은 평범하게 무식하다고 하지 않은가.
이것은 출력소 사장이 모종의 이유로, 의도적으로 보관해 둔 것이다.
“이 USB, 어디서 발견한 거야?”
“사장 책상 서랍에서요.”
“책상 서랍은 어떻게 열었는데.”
“며칠 전 밤에 급한 인쇄 건이 들어왔는데 직원들이 다 퇴근하고 저만 뒷정리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장이 지금 가는 중이라고, 책상 서랍에서 열쇠 꺼내서 기계 전원 켜놓으라고 했었어요. 그때 책상 서랍 열쇠 있는 곳을 알려 줬었습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USB를 보관해 둔 책상 서랍을 남에게 열게하다니.
그것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태식에게.
그때 한 번은 너무 급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는 태식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자신이 급하게 출력소로 가는 중이었으니 켕기는 점이 의심받을 거란 생각을 못 했겠지.
하지만 그 이후로는 열쇠를 다른 곳에 보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때 제가 열쇠를 복사해 놨습니다. 흐흐흐.”
아. 그랬지…….
내 생각보다 태식은 철저한 놈이었다.
“이 정도면 모유 체결에 적절한 상대죠? 예? 하하하하!”
“모유? 그게 무슨…….”
감독은 태식의 개소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폴더 안의 파일을 살폈다.
나은성의 시나리오는 그녀가 우리에게 처음 가지고 왔던 공모전 제출용 그대로였고, 회당 줄거리도 그대로였다.
그 아래로 보이는 타 작가의 파일 역시, 나은성의 원고와 같은 서식으로 작성되어 있었다.
다만,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이것도 나은성과 같은 방식으로 표절당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는데…….
“감독님.”
“네.”
“한때 드라마국에 계셨다고 하셨죠?”
“네. 그랬죠.”
“이것 좀 봐 주시겠습니까?”
내가 조감독에게 남으라고 한 이유는 이런 상황을 예견했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조감독은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와 원고들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건 정혜진 작가 <당신은 그곳에>하고 똑같네요. 이건, <운명이 가리키는 너>랑 똑같고……. 흠, 이건 으음, 그렇게까지 똑같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참고했을 게 분명해 보이는데요. <너의 집 앞에서>랑 비슷해요. 그리고 이건, <오프 더 라디오>랑 똑같고요.”
조감독이 줄줄이 드라마 이름을 읊기 시작했다.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제목은 들어 본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모두 정혜진이 히트시킨 드라마들이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네요.”
어느새 우리 곁으로 온 강민재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나은성 원고의 인쇄 이력을 찾아 헤맨 까닭은 단순했다.
만일 본 것을 잊어버려서 그냥 썼다고 해도, 이렇게나 똑같이 썼다면 무의식중에 기억한 것을 써 내려간 비고의적 표절에 해당한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마치 옆에 두고 쓴 것처럼 모든 회차가 똑같이 진행되며, 대사까지 똑같은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피고가 원고의 각본을 읽은 사실까지 드러났으니 표절임이 확실하다.
인쇄 이력은 이런 주장을 가장 잘 뒷받침해 주는 근거였다.
설령 그들의 주장대로 정혜진이 표절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내용의 각본이 누군가에 의해 먼저 쓰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수정했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이렇게 되면, 유정원이 이하영을 동원해서 그녀가 성민정의 증언을 의미 없게 만든 것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다.
일이 조금 커지긴 하겠지만, 내가 저 파일 속의 지망생들을 전부 찾아가면 어떨까.
한 푼도 받지 않겠다, 대신 손해배상금을 전부 받게 해 줄 테니 성명서를 작성해 달라, 그렇게 말한다면?
정혜진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물론, 이번 재판의 양상도 뒤바뀔 것이다.
정혜진에게 전과 비슷한 것이 생기는 셈이므로.
“강 변, 잠깐 나 좀 보자.”
나는 그를 데리고 베란다로 나왔다.
생각한 것보다 패가 많아졌다.
물론, 일단은 저 패를 우리 손에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저 USB, 출력소 사장한테 받아내야 해.”
“네. 그런데 출력소 사장이 저걸 왜 보관하고 있는 걸까요?”
“폴더 이름이 P야. P는 푸른섬 미디어의 이니셜 같은데.”
“네, 그런 것 같아요.”
“푸른섬 미디어의 약점이 될 만한 원고를 전부 보관해 놨어. 전부 정혜진이랑 연관이 있긴 하지만, 만일 정혜진한테 원한이 있다면 폴더 이름을 J라고 해 놨을 거야.”
나는 침음했다.
푸른섬 미디어와 오랜 시간 거래해왔던 출력소가 약점이 될 만한 원고를 보관해 놓은 이유는 알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약점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뭐든, 직접 확인해 보면 알 일이다.
“일단 출력소 사장을 만나야겠어.”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차피 이걸 그대로 증거로 쓸 순 없어. 입수 경위를 훔쳤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태식이는 앞으로도 계속 써먹어야 해서 직원 폭로라고 할 수도 없고.”
나는 팔짱을 끼며 난간에 기댔다.
내가 조감독에게 도움받으려는 까닭은 사장과 USB를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아마 조감독에게도 나쁘지 않은 거래일 것이다.
사무실로 들어가며 나를 멀뚱히 보고 있는 태식에게 말했다.
“태식아. 출력소 사장 이쪽으로 오라고 해. 그리고 너는 지금부터, 갑자기 출력소에 들이닥친 나한테 협박 받아서 USB 바친 걸로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