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1)
너희들은 변호됐다-452화(451/641)
#452화
내가 일어나자, 강민재는 나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나는 짧게 묵례하고 룸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때, 김미자가 다급하게 다가와 내 손을 붙잡았다.
“변호사님, 변호사님 잠깐만요!”
내가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다른 한 손은 입으로 가져가 쉬지 않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무나도 불안해 보이는 기색이라, 강민재는 김미자를 달래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김미자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변호사님, 제가 가엾지도 않으신가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 여태까지 충분히 힘들게 살았어요. 아시잖아요. 여태까지 다 들으셨잖아요.”
강민재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김미자를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김미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무릎걸음으로 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울며 말했다.
“한 번만……. 한 번만 제 처지를 더 생각해 주세요. 저 이제야, 이제야 겨우 사람답게 살고 있어요.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에 나름대로 만족이라는 걸 하고 살고 있다구요. 제가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고통받았는데요. 다 들으셨잖아요. 더 자세히 말씀드려야 하나요? 제가 어떤 세월을 보냈는지? 제가 그 인간들한테 어떤 취급을 받으며 견뎠는지?”
“충분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뇨……. 아뇨. 아직 제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저한테 지금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한테 선택하라고 하시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저한테서…… 모든 걸 다 빼앗겠다고 하시는 거 아닌가요?”
김미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매우 익숙해 보였다.
그럴 것이다.
몇 번이나 그 인간들에게 살려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말하며 울었을 테니까.
그녀에게 이런 행동이 익숙한 것조차도 안타까웠다.
“절 동정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제가 불쌍하지 않으세요? 그러면 제발…….”
“제가 김미자 씨를 동정하는 게 실례가 아니라면, 동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요. 왜 저한테서 이 모든 걸 다 빼앗겠다고 하시는 건데요!”
김미자는 그 어떤 선택지도 받아들일 수 없어 차라리 감정에 호소하는 편을 선택한 듯했다.
자신이 힘들게 거머쥔 지금의 삶이 곧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변호사님은 비웃으시겠지만,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저 정말……. 이 사람 저 사람 비위 맞춰 가면서 버텼고, 겨우…… 이제 겨우 살 만한데……. 저를 봐서라도 봐 주실 수 없는 건가요. 크게 바라지 않을게요. 적어도 저랑 제 남편만이라도…….”
“김미자 씨. 스스로 오다 사토시하고 도매금으로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묶이지 않으면요! 그 사람이 없으면 전 아무것도 아니에요. 차라리 교수직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어떻게든 그렇게 해 볼게요.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집에서……. 그냥 그렇게 살게요…….”
교수직에서 내려와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고 집에만 있겠다는 말은, 명예는 포기할 수 있어도 부는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 쪽으로 붙으면 그녀는 모든 것이 안정될 때까지는 평온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오다 사토시와 이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혼이 쉽게 진행될지 알 수 없고, 지금 임용된 대학교 측에서 소송을 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영진여대 출신도, 교수도, 오다 사토시의 아내도 아닌 자신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듯했다.
일본 법률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해 이혼할 때 그녀가 재산 분할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부로 산 시간이 짧으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일본에서 계속 살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한국으로 넘어오자니 우신이 정말로 망하긴 할지 잘 모르겠고.
자신이 뭘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을 것이다.
우신과 그 ‘고객’들은 13세 때부터 누군가에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 그녀에게 자립의 의지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돈 하나가 걱정이라면 어느 정도, 일정 기간 동안 지원해 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녀를 설득하기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또 자신을 나에게 맡겨 버릴 것이다.
“이제야 사람처럼 사는 것 같다구요…….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 저는 마흔이 넘어서야 그렇게 살고 있어요. 저한테도 사람처럼 살 자격은 있는 거잖아요. 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자격 정도는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빼앗아 가지 마세요, 제발…….”
“김미자 씨 말씀을 들으면 금전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은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거라는 것처럼 들립니다.”
“……네?”
“김미자 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겨우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게 김미자 씨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언제 학력 위조가 들통 날지 불안해하고, 그 요정을 운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
“전 아무것도 빼앗지 않습니다. 모든 걸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것뿐입니다.”
“원래 자리가 어딘데요. 그 요정이요? 그 남자들한테 몸이나 팔아야 하는 게 제 자리인 거예요?”
“아뇨. 김미자 씨가 그런 일을 겪기 전. 그때가 김미자 씨가 있어야 할 원래 자립니다.”
“전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그땐 가난했기 때문입니까?”
“…….”
“그럼 결국 김미자 씨는 역시 중의원인 오다 사토시의 아내라는 타이틀과 그의 재산이 좋으신 겁니다.”
김미자는 맥이 풀린 듯 끌어안고 있던 내 다리를 놓았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김미자 씨가 지금 누리고 계신 건 강도가 훔친 돈으로 빚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강도에게서 다시 재산을 몰수하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겁니다. 이게 빼앗는 겁니까? 강도에게 돈을 뺏긴 피해자들은 돈을 다시 돌려주더라도 강도당했다는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단 말입니다.”
“…….”
“김미자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미자 씨도 피해자입니다. 지금 김미자 씨의 말과 행동은 마치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진 사람 같습니다. 왜 가해자의 편이 되시려는 겁니까. 그리고 왜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십니까. 교수가 아니어도, 정치인의 아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요…….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중학교도 나오지 않은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평범하게 살면 됩니다. 왜 교육받지 못하면 무조건 질 낮은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 어머니도 중학교까지만 나오셨습니다. 하지만 전 어머니가 질 낮은 삶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호사님 어머님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압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퍼스트 클래스 비행기를 예약하고, 특급 호텔에 묵고,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삶만이 인간다운 삶이 아닙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니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김미자 씨는 잃어버린 세월을 물질적인 것들로 채워 넣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럼 전……. 무슨 수로 평범해지나요. 오다 토미코로 사는 게 아니라면, 전 아무것도 없어요. 가진 건 너덜너덜해진 몸뚱이 하나뿐이에요. 근데 제가 무슨 수로…… 무슨 수로…….”
46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30대라고 해도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외모는 분명히 ‘고객’들 사이에서 셀링 포인트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김미자에게 원하는 것은 오로지 몸뿐이었고, 대단한 지식과 센스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에게 그림 그리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을 것이고.
자신이 무얼 할 수 있는지 탐색해 볼 시간조차 없었겠지.
무기력한 마음은 이해한다.
“제가 모든 것을 약속드릴 순 없지만, 김미자 씨가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 드릴 순 있습니다. 그리고……. 김미자 씨의 가족도 찾아드리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미자가 웃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거리다가, 결국에는 깔깔 소리 내어 웃었다.
심지어는 눈물까지 흘렸는데, 그 눈물이 아까 울 때 맺힌 것인지 지금 웃어서 맺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아……. 가족이요? 차라리 저를 창녀 보듯 쳐다보는 오다 사토시의 자식들을 가족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네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가족이 절 이렇게 만든 거예요. 그 가족들이 절 우신에 팔아넘겼다구요! 그 사람들을 굳이 찾아 주신다면 제가 할 일은 그 사람들의 배에 칼을 쑤셔 넣는 것뿐이에요.”
김미자는 씩씩대며 말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진실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가족이 우신에 김미자를 팔아넘겼다고?
그건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강수일이 우리에게 강관웅이 조사했던 자료들을 넘겨주면서, 그 당시 우신이 아이들을 모집한 방식으로 일러 준 것 중에 매매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건 김미자 씨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오다 사토시와 그 자식들이 반드시 김미자 씨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새로 가정을 꾸리셔도 됩니다.”
“저 같은 거랑 누가 결혼을 해 주는데요. 전 이미 늙었고, 가진 것도 없고, 변호사님 말씀대로 모든 걸 증언하고 나면 공공연히 아무한테나 몸을 허락한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요? 변호사님이라면 저 같은 여자랑 결혼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왜 못 합니까. 제가 김미자 씨를 사랑한다면 하겠죠.”
“그러니까, 누가 저를 사랑할 수 있냐는 말이에요. 누가 저를……. 대체 누가…….”
“김미자 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분히 생각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답을 주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은 흥분하신 상탭니다.”
그녀의 두서없이 쏟아지는 생각들을 받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달래 주길 바란다면, 나는 그런 것을 잘 못 하니 그 분야에 특기가 있는 강민재에게 맡기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가 오다 사토시를 버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 의견을 배제하고 말하려고 해도 그쪽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김미자에게 증거를 제시하게 할 수 있다면, 그래야 하는 게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김미자를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뜻밖에는 되지 않는다.
김미자가 나중에 우리의 설득에 넘어가 결정을 내린 뒤,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쨌든 변호사님은……. 끝내 그 일을 터트리겠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전 변호사님이 죽어 버리길 바라야 하나요.”
김미자가 자조하듯 말했다.
“제가 죽어도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끝까지 밝힐 겁니다.”
“…….”
“그리고 우신은 계속 절 죽이려고 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여기서 김미자 씨와 함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쉽게 죽진 않을 모양입니다. 그러니 요행에 기대지는 마십시오.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강민재에게 눈짓했다.
강민재는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김미자를 일으켜 세워 카우치에 앉혀 주었다.
“김미자 씨. 명함 잘 가지고 계세요.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누구한테라도 말할 사람이 필요하면 저한테 연락 주셔도 됩니다. 하지만 꼭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 내리셔야 합니다.”
강민재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자신의 명함을 꺼내 내 명함 옆에 내려놓았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김미자는 더는 우리를 잡지 않았다.
강민재는 객실 문을 닫은 뒤 복도에 서서 한숨을 쉬었다.
“김미자 씨가 의뢰인은 아니지만, 변호사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게 참 힘드네요. 변호사님은 어떻게 거리 조절을 그렇게 잘하세요?”
“나도 못 했어.”
김미자에게 오다 사토시와 함께 공멸하거나, 증언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할 때 나 역시 그녀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사실 우리는 우신의 몰락을 향해 달릴 것이고, 김미자에게 미리 귀띔해 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김미자가 겪은 세월이 너무 끔찍해서, 그녀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었지만, 그녀가 지금처럼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맞지 않나 스스로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절대자가 있다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시간도 되돌려주었으면 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때로.
그녀의 가족이 그녀를 버리기 전으로.
기억은 남아 있어 그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나보다 그녀에게 더 절실할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