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2)
너희들은 변호됐다-453화(452/641)
#453화
김미자에게 만일의 상황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옆 객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식의 직원들 둘을 붙여 두었다.
김미자가 객실을 떠나는 즉시 붙어서 뒤를 밟게 했다.
그녀가 돌발 행동을 할 경우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강민재와 나는 호텔에서 그대로 헤어졌다.
할 얘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 우신과 그 ‘고객’들의 만행이 상상 이상으로 추악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 각각 녹음기를 지참해서 김미자와의 대화를 녹음해 두었으니, 함께 있지 않아도 생각을 정리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변호사님. 김미자 씨가 지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데요. 어떻게, 일본까지 쫓아가라 그래요? 근데 일본에 기반이 없어서 그렇게 해 봤자 효율이 떨어질 텐데.”
샤워하고 나왔더니 카우치에 앉아 있던 태식이 자신의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
“아냐, 됐어.”
김미자가 오다 사토시에게 허락받은 시간은 하루뿐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행동할까.
오다 사토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으니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되겠지만, 확률이 높아 보이진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학력 위조와 요정 운영을 언급하며 접촉했고, 만나서 한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협박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녀가 자조적으로 한 말처럼, 나를 포함해 나와 뜻을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을 전부 죽이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우신이 과연 그렇게 할까?
그들은 강관웅이 알고 있던 자신들의 인신매매 정보가 우리에게 흘러 들어갈 것을 염려해 강관웅을 살해했다.
전 대통령에게 손을 댈 정도로 과감한 그들이 나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외부 시선을 의식하는지 알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정도 식구들, 최종현과 조봉준, 그리고 김정우가 전부 죽으면 분명히 의심을 살 게 분명하지 않은가.
6명, 뭐…… 본인들이 회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대충 서너 명만 죽인다고 쳐도 화살이 자신들에게 쏠릴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의심받는 리스크를 부담했는데도 이 모든 사실이 세상에 풀리지 않을 거란 장담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들 역시도 자신들이 파악한 인원 외에 우리에게 동료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예상 정도는 할 텐데.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뭘요?”
“우신이 만일 우리를 다 죽이려고 들면…….”
“변호사님이 말하는 우리가 어디까진데요? 설마 저랑 저희 애들까지요?”
태식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흠……. 너까지는 포함될 수도 있겠다. 음, 상길이도 좀 위험할 수도 있겠고?”
“아니, 제가 왜 죽어요! 죽으려면 변호사님 혼자 죽어요!”
“아무튼 우리가 갑자기 죽으면 여태까지 조사했던 것들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조치하고 싶어.”
언론사에 전부 뿌려지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우신이 입을 틀어막아서 소형 언론사에서만 조금 깔짝대다 마는 건 곤란하다.
“아, 국정원이 있었지.”
“걔는 왜요?”
“국정원 정도면 우리가 다 죽으면 대형 포털에 우리가 조사한 것들이 대문짝만하게 걸리도록 할 수 있겠지? 해킹 같은 거 해서.”
“저는 콤푸타에 대해선 잘 몰라서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돈 주면 뭐든 할걸요. 전에 술 마시면서 얘기한 거 들어 보니까 북한 사이트 해킹한 적도 있다던데. 진짠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좀 만들어 놔야겠다. 아, 동영상도 찍어 놓는 게 좋으려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자료를 공개하면 줄글로 된 건 읽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넘기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차라리 인터뷰 형식의 동영상을 남겨 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줄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갑자기 대문짝만하게 누군가의 얼굴이 뜨면 궁금해질 것이다.
“나랑 강 변, 최 기자님이랑 조봉준 씨가 그나마 알려진 얼굴이니까 영상으로 남겨 놓는 것도 좋겠네.”
“무슨 유언 남기는 것도 아니고……. 기분 싱숭생숭해지게 왜 그래요.”
태식이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탈골되는 줄 알았다.
“유언이랑 다를 건 없지. 우리가 죽으면 뿌려질 거니까.”
예전에 오 사무장에게 내가 죽으면 공개될 유언장을 넘겨주긴 했지만, 거기엔 ‘내가 죽었다면 그건 살해된 것’이라는 말과 내 재산의 쓰임새만을 적어 놓았을 뿐이다.
우신에 대한 정보가 담기진 않았다.
언제 그 카드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준비 안 해 놨다가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것보단 그게 낫겠지.
“변호사님 피곤하지도 않으세요?”
카메라는 컴퓨터에 내장된 캠으로 충분한지 생각해 보고 있는데, 태식이 한숨을 쉬며 따라붙었다.
얘는 왜 요즘 들어 자꾸 날 걱정하지.
“저야 뭐, 어쩌다가 코가 꿰어서 이렇게 되긴 했지만……. 솔직히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말씀해 주셔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냥 ‘우신 조진다’ 이거 하나만 안단 말이에요. 그리고 대충 돌아가는 상황 보니까 우신은 조져지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이렇게 붙어 있긴 한데요.”
태식이 말을 골랐다.
설마 우리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걸까.
태식은 이전 삶에서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사람 중 하나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를 도왔다고 해서 이번 삶에서도 같은 마음일진 알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전 삶보다 2년이나 이르게 그에게 접촉했고, 그에게 시킨 일도, 일의 강도도, 협력 형태도 많이 달라졌으니 변수는 얼마든지 존재했다.
그가 너무 든든하게 내 곁을 지키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성공했으면 좋겠거든요. 저도 손 씻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죄를 지었으니까 정의 구현에 아버지?”
“이바지.”
“네. 아무튼 그거 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변호사님은 저 같은 놈은 생각도 없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
“의외네요. 하여튼, 저는 변호사님이든, 강 변이든, 사무장님이든, 최 기자 형님이든, 봉준 형님이든……. 일일이 꼽기엔 너무 많네요. 하여튼 모두가 안 다치고 잘 끝났으면 좋겠단 말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 같은 건 하지 마세요. 제가 죽게 안 놔둘 거고, 변호사님이 죽으면 솔직히 좀 울 것 같거든요?”
태식이 뺨을 긁적이며 다른 데를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예전에 이정찬 살해 용의자로 강관웅의 집에 숨어 있었을 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믿어 주고 내 걱정을 해 주던 그의 음성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니까 그런 가슴 철렁하는 얘기 좀 하지 마요. 존나 짜증 나니까. 그리고 변호사님 죽어 버리면 돈 나올 구멍 없어서 곤란하다고요. 아, 왜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해?”
태식은 갑자기 성질을 부리며 테라스로 뛰쳐나갔다.
내 주변에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내 행동에는 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식처럼 무조건 믿어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 * *
김미자와 호텔에서 접선한 뒤 사흘이 흘렀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일본으로 넘어간 김미자로부터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김미자와 접촉했던 날 저녁, 강민재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녹음 파일을 오 사무장, 최종현, 그리고 조봉준에게 공유해 주었기 때문에 모두가 김미자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체 대화방에 불이 났다.
각종 쌍욕과 울분에 차다 못해 차마 형언할 수 없었는지 ‘미넝ㅁ니ㅏ언미ㅏ엄ㄴ머모애2ㅑ븝ㄴ미나ㅓㅇ’ 같은 말이 수십 개나 올라왔다.
나는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을 전한 뒤, 그들을 회사로 불러 모았다.
“왜 벌써들 오셨습니까?”
1층에서 오 사무장과 마주쳐 함께 올라왔는데, 아직 문이 열리지도 않은 사무실 앞에 최종현과 조봉준이 서 있었다.
그들은 퀭한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일찍 왔겠어. 문이나 좀 열어 줘 봐. 커피 없어?”
“오늘 커피 당번 강 변호사님이에요.”
오 사무장이 사무실 보안을 해제하며 대답했다.
“일단 회사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내려서 먹어야겠어요.”
최종현은 문이 열리자마자 커피 머신 앞으로 직행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사흘 내내 우신과 ‘고객’들을 욕하거나, 우신을 더 빨리 몰락시킬 방법은 없는지 하루 종일 씨름하면서 잠을 설친 듯하다.
“솔직히 인간 이하, 아니, 금수만도 못한 새끼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 사람까지 죽여서 장기 떼다 파는 놈들인데, 산 사람이라고 다르게 대접할까. 다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열이 받지?”
조봉준은 회의실 의자를 빼서 앉으며 소리쳤다.
“거기서 욕 한마디 안 하고 버틴 차 변이랑 민재가 신기하다니까? 나 같으면 김미자 씨 말 들으면서 같이 욕했을 것 같은데.”
나라고 뭐가 달랐겠는가.
하지만 그런 모습이 혹시라도 김미자에게 신중치 못한 모습으로 다가와 손을 잡을 상대로 부적합하다 여겨질 것을 염려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앞에 앉혀 놓은 상황이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닥을 잡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다.
그만큼 생각도 정말 많았다.
나는 피해자인 그녀에게 더는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됐고, 동시에 우리 계획에 차질을 빚게 해서도 안 됐다.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강민재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 터다.
평소라면 그는 항상 우는 사람을 달래곤 했는데, 티슈를 뽑아 주거나 그녀를 일으켜 주는 등의 최소한의 행동 말고는 강민재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김미자 씨가 어떻게 나올 것 같아?”
“글쎄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할 테니 괜히 예측하면서 기대감을 갖고 싶진 않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김미자 씨가 협조만 해 준다면 정말 최고일 것 같긴 하거든. 증인이기도 하고, 그 요정을 운영하고 있는 당사자니까 마음만 먹으면 증거도 잔뜩 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거기 드나드는 인간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도 대충 알 거 아니야.”
“김미자 씨가 우리한테 협조해 주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런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었어요.”
그때 회의실 안으로 강민재가 들어왔다.
“차가 밀려서 늦었네요.”
“김미자 씨 연락 온 건 없고?”
“네, 아직이요.”
“하, 나는 차 변이 가족을 찾아 주겠다고 했을 때 이거로 김미자 씨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조봉준이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일본에서 산 세월이 더 긴 그녀로서는 한국을 선택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릴 때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 살 수 있게 되면 어느 정도 자신이 혼자가 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가족이 그녀를 팔았을 줄이야.
“가족들도 진짜……. 아니, 무슨 일제강점기냐고. 아무리 옛날이어도 그래봤자 80년대잖아. 어떻게 자식을 팔지?”
“그래서, 태식이 김미자 씨 가족 찾는 건 어떻게 하려고?”
“일단 계속 찾아보게 하려고요. 혹시 모르잖습니까. 김미자 씨가 본인을 팔아넘긴 가족들 얼굴에 물이라도 끼얹고 싶어질지.”
“하긴…….”
김미자가 우리에게 협조해 주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녀가 원한다면 가족을 찾아 연결해 줄 의사가 있었다.
그리고 김미자에 대해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고 굴리다 보면, 그 끝에는 김미자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가 닿았다.
이가연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중에 잘 풀리면 첩 노릇을 하면서 사는 거라고.
김미자가 잘 풀린 케이스라면, 그보다 못한 상황에 놓였던, 그리고 놓인 사람들도 많다는 뜻이다.
그들은 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까지나 개인의 집합에 불과한 우리가 그들을 전부 다 구해 낼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진 않았다.
국가에게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하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게 내가 할 일이다.
하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당장 그들을 구할 수 없는 내가 무능한 것만 같아서.
“김미자 씨의 부모님은 계속 찾아보는 걸로 하고, 저희는 다음의 일을 해야 합니다.”
“일단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려면 찬영이한테 좀 도움을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오늘 만날 생각입니다.”
“오늘?”
“네.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아서요. 김미자 씨 일 때문에 잠깐 미뤄 두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