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4)
너희들은 변호됐다-455화(454/641)
#455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김찬영은 불안해졌는지 나를 보채기 시작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아직 확실하진 않아.”
“뭐가요? 우신이 장기 매매를 한다는 게요?”
“아니. 네 심장을 장기 매매를 통해 얻은 건지, 아니면 그냥 적법한 절차에 의해 기증된 장기를 단순히 순번만 앞당겨서 너한테 이식한 건지.”
김찬영은 이마를 짚으며 신음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해묵은 기억을 들춰 보는 듯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을 당시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듣진 않았는지, 수상한 점이 있진 않았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엄마도 그런 건 전혀 모르는 것 같았는데.”
“모르셨겠지. 고상준이 그런 걸 알렸을 리가 없잖아.”
김찬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변호사님,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아니, 변호사님이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아무리 고상준이라고 해도, 이건……. 이건 좀 그렇잖아요. 안 그래요?”
“나도 이런 짓까지 했을 거라곤 생각 안 했어.”
“우신이 장기 매매를 하고 있다는 근거가 대체 뭔데요?”
나는 대답 대신 김찬영의 앞에 USB를 내려놓았다.
어차피 김찬영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려면 우리가 여태까지 얻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구체적인 정보를 다 읽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축약해서 파악하기 좋게 정리한 것들이 담긴 USB였다.
김찬영은 내가 USB를 테이블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낚아채서 자신의 노트북에 연결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파일들을 샅샅이 읽기 시작했다.
축약했다고는 해도 그 방대한 내용을 전부 확인하려면 시간은 좀 걸릴 터라,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김찬영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노트북 화면을 보는 동안,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강민재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찬영이한테 말씀하셨어요? 찬영이 어때요, 괜찮아요?]내가 오늘 회의실에서 김찬영과 만나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을 때, 우리 모두는 김찬영을 가장 걱정했다.
김찬영은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나를 찾아와서 명화제약의 정보를 제공했던 사람이라, 김찬영이 내 제안을 거절할 거라는 걱정은 없었다.
다만, 가뜩이나 고상준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던 김찬영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는 게 아닌지 염려했다.
자신의 몸에 고상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역겨움을 느끼는 김찬영이, 자신이 살아 있도록 만드는 심장마저 남을 죽이고 강탈해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는가.
그래서 나 역시 오랫동안 망설였던 것이다.
결국 김찬영이 이 사실을 영원히 모른 채로 살아갈 순 없다는 판단하에 이 자리에 오게 됐지만.
[충격은 많이 받은 것 같은데, 일단 축약본 읽고 있]아직 메시지를 다 작성하기도 전이었다.
“우윽…….”
노트북을 보던 김찬영이 별안간 신음을 흘리더니 입을 틀어막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욕실을 향해 달려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반응에 덩달아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는데, 김찬영은 변기 앞에 옹송그리고 앉아서 구토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김찬영은 변기 모서리를 붙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음식물이 역류한 탓에 앞으로 쏠린 얼굴로 피가 몰렸는지, 얼굴은 새빨개졌다.
잠깐 들어 올린 안면에는 생리적인 이유로 흐른 것 같은 눈물과 콧물이 낭자했다.
김찬영은 숨을 몰아쉬며 변기 물을 내렸지만, 깨끗한 물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다시 구토했다.
이런 이유로 토할 때도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등을 두드렸다.
“하아, 이제……. 이제 괜찮아요.”
김찬영은 끝이 삼각형으로 접힌 두루마리 휴지를 뽑아 얼굴을 대충 닦고, 변기에 버린 뒤 다시 물을 내렸다.
그리고 세면대로 가서 수도꼭지를 제일 오른쪽으로 꺾어 연거푸 세수했다.
나는 말없이 그를 보며 한쪽에 개어진 수건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괜찮겠어?”
“뭐가요. 제 마음이요?”
“네 마음이야 괜찮을 리가 없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냐고 물으시는 거면, 네. 이어갈 수 있어요. 제정신으로 말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김찬영은 앞서서 욕실을 나섰다.
다시 카우치 앞에 앉은 김찬영은 노트북을 그대로 덮었다.
구토까지 한 것을 보면 우신이 장기 매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확실하게 인식한 것 같았다.
내가 준 축약본은 이해를 돕기 위해 성매매에 대한 건을 먼저 다뤘고, 그다음에 장기 매매에 대해 기술하고 있었다.
그가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정보를 확인했을 거라 가정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장기 매매는 확실히 벌어지고 있어. 거기에 적어 놓진 않았지만, 희귀 혈액형이고, 급하게 필요한 경우라면 부모가 있는 아이라고 해도 여권 위조해서 데려가기도 하더라.”
나는 이전 삶에서 겪었던 예림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의 예림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우신이 필요하다면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려 주고 싶었다.
“변호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뭘.”
“제 심장이요. 누구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충분한 정보가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을 내리는 편은 아니야.”
“그래도 우신이 장기 매매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제 심장 생각도 하셨을 거 아니에요.”
그는 알지 못하겠지만, 순서는 반대다.
우신이 장기 매매를 하고 있다는 추측을 먼저 했고, 김찬영의 심장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당연히 김찬영의 심장 역시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천사의 집 아이의 것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9 대 1 정도의 비율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
“변호사님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니까요.”
“우신 문제에 있어선 나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사고하는 편이야. 우신이 나쁜 쪽으로.”
“그럼 이번에도 그러셨어요?”
“내 생각에 네 판단을 좌우하지 마.”
“아뇨, 전 그냥 확인받고 싶어요. 지금 한 99% 정도의 확률로 제 심장이 천사의 집 아이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게 갑작스럽게 저를 찾아온 비극 때문에 저를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은 같잖은 자기 연민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요.”
“자기 연민이 아니라고 생각해.”
김찬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 지금……. 손끝까지 다 차갑게 식었어요.”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고상준이……. 저를 살리려고 사람을 죽인 거잖아요. 그렇죠? 제 목숨과 다른 아이 목숨을 바꾼 거잖아요.”
“네 심장이 그런 루트로 제공되었다는 가정하라면, 그렇지.”
“그 인간이 얼마나 사람 목숨을 하찮게 보는지 알겠어요. 아니, 진짜 놀랍네……. 내가 그 인간, 아니……. 짐승에 비유해도 짐승한테 미안할 것 같은 그런 놈한테 실망할 게 더 남았다고요? 전 제가 실망한 것도 신기해요. 어떻게 실망을 하지. 최소한의 기대치는 있었어야 실망이라는 것도 하는 거 아닌가? 저 그 새끼한테 뭔가 기대하고 있었나 봐요. 하하……. 그랬나 봐요.”
김찬영은 자신이 그를 완전히 내려놓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또다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김찬영이 고상준의 몰락을 바라는 것은 진심이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한 사실이고, 지금 당장 또 확인할 수도 있다.
김찬영이 치가 떨릴 만큼 고상준을 싫어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전에 이미 그러고 있었고, 김화영에게 있었던 사건을 겪고 나서 그는 한층 더 독기를 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라는 존재는 고상준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자기혐오가 생기기 전에 지금까지 자신이 확인한 것이 고상준의 바닥이길 바라는 마음은 분명히 있을 터였다.
“지금보다 더 쓰레기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더, 더 쓰레기라고요? 아니, 쓰레기 수준이 아니잖아. 씨발, 개좆같은 새끼잖아요.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새끼잖아요? 살을 발라서 젓을 담가도 억울할 거 하나 없는 새끼잖아요, 그거. 아니, 저 이 정도로 표현이 안 돼요. 이렇게 말해도 부족해요. 그냥……. 그냥 형언이 안 돼요. 제가 여태까지 접한 사람 중에 가장 악해요.”
고대인이라면, 아니, 하다못해 100년이라도 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현대화되지 못해 그런 것이니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크게 분노할 테지만.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21세기에도 그런 짓을 뻔뻔하게 자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김찬영의 말대로 여태까지 접했던 사람 중에 가장 악하다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고상준은 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질병적 의미의 사이코패스일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지금요? 지금 생각으로는 제 생살을 찢어서 이 심장을 꺼내고, 이미 백골이 되었을 원래 심장 주인한테 돌려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그 애가 다시 살아날 수만 있으면……. 아니, 살아나지 못해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김찬영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턱을 들어 올리고 눈을 연신 깜빡였다.
울고 싶지 않은 것은 알겠지만, 이런 내막을 접하고도 울지 않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살인자가 된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과 같은 천재지변을 겪은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김찬영이 미리 이식받을 심장의 출처를 알았더라면, 결단코 그 심장을 이식받으려 하지 않았을 테니까.
“고상준은 자꾸 저를 죄인으로 만드네요. 태어난 것만으로도 죄인처럼 살게 하더니……. 또, 또 저를……. 그 좆같은 유전병까지 물려 줘서 또 저를…….”
“나는 타인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네가 죄인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어.”
“네. 정말 그렇게 느껴져요. 변호사님 일 아니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요.”
“하지만 네가 정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면, 그래서 속죄를 해야겠다면 방법은 있어.”
내 말에 김찬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세수하듯 얼굴을 감싸 눈물을 닦고, 그는 축축한 눈으로 나와 시선을 한데 모았다.
“제가 알아볼게요. 오카시마 병원. 어떻게 해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