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5)
너희들은 변호됐다-456화(455/641)
#456화
[찬영이 만나고 나오는 길입니다.]내가 단체방에 메시지를 보내자, 빛의 속도로 숫자가 사라졌다.
[강민재 : 찬영이 괜찮아요?ㅠ최종현 : 괜찮겠냐 에휴……
강민재 : 그건 그렇지만…… 너무 충격이 클까 봐요……
조봉준 : 찬영이는 뭐래?]
내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두가 빠르게 답장을 보내왔다.
오 사무장도 메시지는 읽었으나, 아직 답장을 못 하는 상태인 것 같았다.
[충격을 많이 받고,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지켜봐야 할 정도의 수위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찬영이가 이번에 전략실로 이동했답니다. 고상준의 신뢰를 많이 얻은 모양입니다. 찬영이가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답장을 쓰고 조수석에 앉았더니, 다시 메시지가 주르륵 도착했다.
[오양훈 : 다행이네요…… 그래도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걸 보면……강민재 : 그러게요… 전화라도 한 통 해 봐도 되려나ㅠㅠ
최종현 : 애 심란할 텐데 괜히 연락하지 말고 좀 있어 보자
오양훈 : 변호사님은 바로 댁으로 가십니까?]
나는 그렇다고 답장한 뒤 안전띠를 맸다.
“심심해 죽는 줄 알았네요.”
태식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그래도 차 안에서 잠들진 않았던 건지, 연락하지 않고 내려왔는데도 태식은 눈을 껌뻑껌뻑 뜬 채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라디오 뉴스를 켰다.
여태 김찬영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지만, 오늘처럼 구토까지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의 걱정이 되었다.
김찬영이 우리의 전력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가연이나 김미자 같은 피해자의 한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찬영이라는 애랑 얘기가 잘 안 됐어요? 표정이 왜 그렇게 구려요.”
신호에 걸린 사이, 태식이 흘긋 나를 훔쳐보며 물었다.
“얘기는 잘됐어.”
“근데 왜요.”
어쨌든 김찬영이 전략실로 이동하면서 우신 그룹 전체 내부 자료에 대해 접근 권한이 커졌기 때문에, 어쩌면 오카시마 병원에 대해 알아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김찬영이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을지도 걱정되지만, 앞으로 우리의 조사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다.
김미자를 협박해 아군으로 포섭하는 계획을 중단했으므로, 우리의 조사 방향은 장기 매매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오카시마 병원은 김찬영에게 맡겼고, 신가쿠 대학 병원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한국에서 벌일 수 있는 한계치까지는 진행한 상태가 아닌가.
새로이 조사할 방향을 정해야 할 때인 것이다.
천사의 집에 보내놓은 봉사활동 동아리로부터 매주 사라진 아이들은 없는지 보고를 받고 있고, 유학에 대해 언급한 아이는 없는지 묻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그런 낌새도 없었다.
뭘 해야 할지 정해져 있다면 그대로 움직이면 되지만,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다소 막막하게 느껴진다.
어느 구역 모래를 파야 하는지 알지 못하니, 구역 지정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아…….”
“왜 한숨 쉬세요.”
“할 게 너무 많아서.”
“하나씩 하고 있잖아요.”
“할 게 많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코카콜라로 정해요.”
“코카콜라로 정할 수도 없어, 지금.”
“할 게 많은 거 맞아요?”
워커홀릭의 기질 때문일까.
사실 며칠 정도 여유를 가져도 되지만, 하루라도 우신의 약점을 취하는 데 도움 될 만한 일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이제 주말인데,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었다가 월요일에 생각해요.”
“뭐 하면서 쉬는데?”
“그야, 변호사님 취미?”
“그런 거 없는데.”
내 말에 태식이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는 듯 안면을 일그러트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취미가 없어요? 뭐 좋아하는 거 없어요? 영화 보기, 게임하기 등등.”
“없어.”
“좋아하는 게 없다고요? 평소에야 뭐 일하느라 놀 시간 없다 쳐도, 일할 때 그런 생각 안 해요? 아, 일 끝나고 뭐 하지? 이런 거.”
“일 끝났으면 밥 먹고 자는 거지.”
“아니, 퇴근하고 와서 밥 먹고 자기 전까지 서재에 들어가 있잖아요. 그때 취미 활동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때도 일하는데?”
“진짜 토 나온다.”
태식이 구역질하는 흉내를 내었다.
“저는 변호사님이 서재에서 안 나오길래 거기서 게임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게임은 무슨.”
“그럼 자요.”
“자는 데도 한계가 있잖아.”
“인생 진짜 재미없게 사네. 그럼 여자친구 만들러 다녀요. 그 얼굴에 그 키, 그 스펙 가지고 여자 안 꼬시고 뭐 하는 거예요. 나라면 진작 하렘 왕국 건설했다.”
나는 다른 말보다 태식이 ‘하렘’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이 더 신기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아랍 문화권에서 유래된 단어라서 더욱 그랬다.
“관심 없어. 지금 그럴 때가 아니기도 하고.”
“아무리 변호사님이어도 나이 먹으면 그냥 영감이에요. 그 외모가 빛을 발할 때가 얼마나 남았을 줄 알고 계속 썩혀요?”
“지금 상길이까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내가 애인까지 만들어서 그 사람도 위험에 처하게 해야겠어?”
“……하긴, 뭐. 생각해 보니 검사 시절에도 지금이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는데 몇 년 지난다고 금세 폭삭 늙진 않겠죠.”
하지만 태식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누가 보면 변호사님은 무슨 어디 성당 신부님인 줄 알겠어요.”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은 줄 알아?”
“그럼 이렇게 살지 마요. 조사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워요. 변호사도 그만둬요. 그냥 지금까지 쌓아 놓은 돈으로 놀고먹으면서 살면 딱 좋겠구만, 뭐.”
“그건 안 돼.”
“그럼 어쩌라고. 그럼 살던 대로 살아요.”
태식은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고상준을 욕하는 내용으로 어느덧 가득 차 버린 메시지 방을 훑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어머니였다.
“네.”
─주한이니?
“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내가 아들한테 전화도 못 해?
“그건 아니고요. 잘 지내시죠?”
─아니, 못 지내.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의례적으로 잘 지내냐는 질문을 건넨 것이지만, 못 지낸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조금 놀라서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일으켰더니, 태식이 나를 조금 의식했다.
─아들 보고 싶어서 못 지낸다.
“놀랐잖아요.”
─내일 뭐 해? 주말이잖아. 일해?
“글쎄요…….”
─바쁜 일 없으면 집에 들러. 하루 자고 일요일에 올라가면 되잖아. 안 본 지 오래됐기도 하고…….
─내일이요?
“응. 바쁘니?”
바쁘냐고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부모가 자식 만나고 싶다는데 조심스러울 건 또 뭐란 말인가.
어머니가 이런 사소한 일로 눈치를 보게 만든 것 같아서, 나는 어머니는 볼 수도 없는데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갈게요.”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가 해 놓게. 오늘 장 보러 가야겠다.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아, 그런데……. 좀 양을 많이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왜?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아뇨, 좀 많이 먹는 놈을 데려갈 거라서요.”
나는 앞차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리는 태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태식이 입 모양으로 ‘왜요?’ 하고 물었다.
“누군데? 민재?”
─아뇨. 말고, 다른 놈 있어요.
“그래, 알았어. 내일 출발하기 전에 알려 줘. 그래도 저녁 전엔 와야 한다?”
─네. 내일 봬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태식이 맹렬하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내일 저 어디 가요? 어디요? 많이 먹는 놈 저예요? 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우리 부모님 댁 갈 거야.”
“……예? 갑자기요?”
“오라시네. 안 뵌 지도 오래됐고. 그리고 너도 할 거 찾아보라며.”
“그렇긴 한데……. 근데 변호사님 부모님 성격 어떠세요?”
태식이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그냥……. 평범하신데?”
“저 싫어하시면 어떡해요. 깡패놈이라고.”
“흠…….”
나는 태식의 목덜미를 확인했다.
셔츠를 입고 있긴 하지만 조금 벌어진 틈으로 흉흉한 문신이 드러났다.
게다가 입고 있는 흰 와이셔츠 소매 아래로 팔에 수놓인 문신이 비쳐 보였다.
“내일은 어두운 옷 입고 가.”
“목 뒤에 문신 보이는 건요.”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싫어하시진 않을 거야. 좋아하시진 않겠지만.”
“저 어른 대하는 거 어려운데.”
다른 어른들한테는 눈 하나 끔뻑 안 하더니, 무슨 소리지.
아, 그러고 보니 태식이 유난히 오 사무장을 어려워했던 것이 생각난다.
자신이 막 대하면 안 되는 사람을 어려워하는 스타일인 모양이다.
“그럼 가서 입 다물고 있어. 혼자 갈 순 없잖아.”
“상길이 보고 가라고 할까요?”
“그럼 상길이 잠은 언제 자. 너 가고 나면 상길이가 밤새 보초 서잖아.”
“하……. 알았어요. 파스라도 붙여야겠네.”
뭐, 문신을 가린다고 무서운 인상까지 사라질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오늘 목욕탕 안 가실래요?”
교대 근처를 지날 무렵, 태식이 말했다.
“웬 목욕탕?”
“어른들 만나는 거니까 때라도 빼야 할 것 같아서.”
“너 평소에 안 씻어?”
나도 모르게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나 보다.
태식이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매일 뽀득뽀득 샤워하거든요!”
“근데 왜 목욕탕을 가.”
“그래도 좀……. 저 잘 보여야 하는 사람 만나는 거 처음이란 말이에요.”
“우리 부모님한테 굳이 잘 보일 필요 없어.”
“아, 좀 가자면 가요. 변호사님도 맨날 샤워만 하지, 때 안 밀잖아요.”
“난 때가 없어.”
“밀면 나와요. 하여튼 가요.”
“진짜 귀찮게 하네…….”
“전에 변호사님 댁 근처에 있는 목욕탕 갔다가 빠꾸 먹었거든요. 문신 때문에. 근데 회사 근처 찜질방은 받아주더라고요? 거기로 가요.”
태식은 내가 그러자고 하기도 전에 핸들을 꺾었다.
정말 내 주변에는 제 마음대로 하는 놈들뿐이다.
어쨌든, 태식은 차를 목욕탕 주차장에 대놓고 내렸다.
나도 하는 수 없이 내렸다.
“속옷 여분도 없는데 무슨 찜질방이야.”
“안에서 팔던데.”
결국 나는 태식과 함께 목욕값을 내고 안으로 들어왔다.
락커 앞에서 나란히 옷을 벗는데 순식간에 태식을 향해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긴 했지만, 태식이 빠르게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덕분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물론 마치 긴 팔 티셔츠를 받쳐입은 것처럼 손목까지 문신이 늘어져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 피곤해 죽겠네. 일단 계란이랑 살얼음 식혜 사 올게요. 계란 몇 판 사요?”
“판? 낱개로 안 팔아?”
“파는데, 장난해요? 남자가 무슨 낱개로 먹어요. 한 판은 먹어야지. 매점이 어디 있더라?”
“저기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한쪽 구석을 가리키자, 태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역시 그의 뒤를 따라 매점을 향해 갔다.
검찰에 있을 때 청 근처에 있는 작은 목욕탕은 자주 갔었지만, 찜질방은 오랜만이었다.
한쪽에 안마의자 여러 대가 놓인 구역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그 안마의자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정말 이상하게…… 이상하게 낯이 익은 사람이…….
“어, 강 변이다. 강 변!”
태식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안마의자에서 진동을 느끼고 있는 강민재의 무릎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강민재가 스르르 눈을 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으어어, 태, 식, 씨? 변, 호, 사, 님?”
안마의자에 진동 때문에 제대로 말은 하지 못했지만, 몹시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