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6)
너희들은 변호됐다-457화(456/641)
#457화
“여긴 웬일이에요?”
“두, 분, 이, 야, 말, 로, 으어, 웬, 일, 이, 에, 요?”
강민재가 안마의자 리모컨을 찾아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강민재 대신 안마의자 전원을 꺼 주었고, 등받이가 세워진 의자에서 파묻힌 몸을 일으킨 그는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5분 남았네. 쓰실래요?”
“아니, 됐어.”
“근데 변호사님을 여기서 다 뵙고. 의외네요. 언제 오셨어요?”
“방금 왔어. 강 변은?”
“저도 한 30분 됐어요. 집에서 씻을까 하다가 간만에 세신 좀 받고 싶어서. 두 분은요?”
“저희도 때 밀러 왔는데요.”
“왜요, 뭐 중요한 거 앞두고 있어요? 변호사님 목욕탕 잘 안 가시잖아요.”
검사 시절엔 청에서 밤을 지새는 일이 많아, 피로를 풀러 오 사무장과 함께 근처 목욕탕을 찾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으로 가져와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때처럼 일이 미친 듯이 쏟아지지 않으니 갈 일이 없었다.
강민재가 대답하지 않는 나를 수상쩍다는 듯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태식이 내일 뵐 내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때 빼고 광낸다는 말을 하면, 왠지 강민재도 데려가 달라고 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같이 변호사님 본가에 가기로 했거든요. 잘 보이려고 온 거예요.”
태식은 내가 신호를 보낼 새도 없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강민재는 배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같이 가자고 하셨으면서.”
“오늘 갑자기 결정된 거야.”
“결정된 다음에 연락 주셨으면 됐잖아요.”
“내일 강 변이 어떤 약속이 있을지 모르는데 갑자기 같이 가자고 하면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잖아.”
“아, 그런 거였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 내일 일정 없습니다.”
“너 가면 정혁이도 같이 가야 하잖아.”
나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
태식은 나를 지키고 있고, 정혁은 강민재를 지키고 있다.
강관웅 사후에 당분간은 강민재를 향한 위협은 없으리라 여겨, 불편함을 덜기 위해 정혁을 떼어 놓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거기에서 그쳤다.
어차피 나는 매달 태식의 식구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는데 놀리느니 일을 하게 하는 편이 이득이었고, 점점 우신 측에서도 예민하게 취급하는 정보를 다루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굳이 경호체계를 무너트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는 나처럼 경호의 공백이 없도록 2교대로 운영하진 않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강민재가 일어나 활동하는 시간에는 늘 정혁이 함께 다녔다.
강민재가 개인적인 약속이 있을 때는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반경 내에서 떨어져 있는 정도로 적당히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정혁은 꽤 입도 무겁고 진중한 캐릭터라 강민재가 뭘 하고 다니는지에 대해 들은 적은 없다.
뭐, 애초에 궁금하지 않아서 묻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어차피 태식 씨가 같이 가는데 뭐하러 정혁 씨까지 같이 움직여요. 그냥 정혁 씨는 쉬라고 하고 태식 씨만.”
“하긴, 뭐. 저 혼자서도 20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죠.”
태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들먹댔다.
어쩔 수 없다.
강민재를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던 건 귀찮기 때문이었는데, 그냥 나 대신 부모님께 재롱을 피워 주는 광대 정도로 생각하고 데려가는 수밖에.
“강 변, 우리 계란 먹을 건데. 강 변도 먹을래요?”
“네. 좋아요.”
“얼마나 살까요?”
“음, 한 세 개 정도 먹지 싶은데.”
“진짜요? 보기보다 많이 먹네요.”
“세 개가 많이 먹는 거예요?”
태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점 직원에게 말했다.
“계란 네 판 주세요. 살얼음 식혜도 세 잔 주세요.”
“엥? 네 판?”
“강 변 세 판 먹는다면서요.”
“아니, 난 낱개로 세 갠데…….”
“진짜 변호사님이나 강 변이나 똑같네. 위가 2리터도 안 되겠어요.”
원래 사람의 위는 2리터가 안 된다.
“살얼음 식혜도 크던데. 저랑 변호사님이랑 나눠 먹을게요. 태식 씨 한 잔 다 먹을 거면 그냥 두 잔만 시켜요.”
“진짜 그거 먹고 어떻게 살아요. 강 변도 실망이네요.”
태식은 손목에 끼고 있던 열쇠를 매점 직원에게 건네며 혀를 찼다.
아무래도 태식은 일반적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세상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한 판하고도 여섯 개의 계란, 그리고 1.5리터는 되어 보이는 식혜 두 잔을 안고 우리는 찜질방 한쪽 구석에 앉았다.
사실 나는 얼른 목욕이나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너무 많고, 시끄럽고, 여기저기 아이들이 뛰어다녀서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님 근데 왜 양 머리 안 했어요.”
“그게 뭔데.”
“이거요.”
강민재가 자신의 머리에 씌워진 수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잖아도 어느 순간부터 가끔 찜질방에 가면 저런 터번 같은 것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왜인지 궁금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추측하긴 했지만.
“왜 하는 건데?”
“그냥 간지.”
“하나도 간지 안 나.”
“아니, 한국 사람 맞아요? 어떻게 양 머리를 몰라요.”
“내 여권 봤잖아. 한국 사람이야.”
“수건 줘 보세요. 만들어 드릴게요.”
“난 안 해.”
“참나. 이게 간지인데, 그걸 모르네. 태식 씨도 할래요? 만들 줄 알아요?”
태식은 대답 대신 조용히 자신의 수건을 강민재에게 넘겼다.
강민재가 요상하게 수건을 접고 모서리를 돌돌 마는 동안, 나는 대충 내가 들어갈 만한 사우나를 탐색했다.
땀 흘리는 걸 좋아하진 않아서, 불가마는 못 갈 것 같고…….
온도를 쭉 살펴보니, 나는 편백방 정도가 적당하겠는데.
“다 됐다. 자, 이제 우리 불가마 들어가요.”
“나는 편백,”
“장난해요? 애도 아니고. 여기까지 왔으면 무조건 불가마지.”
90도가 넘는데…….
“강 변이 뭘 아네요. 남자는 불가마.”
그냥 남자 아니어도 좋으니 나는 저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
하지만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태식이 나를 질질 끌고 불가마로 들어갔다.
미친 듯이 뜨거웠다.
돔 형태의 내부를 채운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어, 잘 말라 있던 찜질복이 살갗에 척 달라붙었다.
내부에는 미동도 없이 좌선하듯 눈을 감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 충격적일 정도였다.
“어으, 시원하다. 변호사님 좀 어때요. 생각보다 버틸 만하죠?”
“아니.”
태식과 강민재는 나를 보며 낄낄댔지만, 그냥 나갈 셈으로 허리를 숙인 채로 일어섰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눈을 감고 있던 백발노인이 말을 걸었다.
“젊은 사람이 이것도 못 견디면 어떡해?”
채널을 돌릴 때 스치듯 보았던 찜질방의 전경과 나의 몇 안 되는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청년층보다는 노년층이 불가마에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호흡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변호사야?”
“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대답했다.
“여기 10분도 못 견디는 인내심으로 어떻게 사법시험을 붙었대?”
“그러니까요, 할머니. 어떻게 1분도 못 버틸까요. 하하하, 웃겨 죽겠다니까요.”
“총각도 변호사야?”
“아, 네. 하하.”
“어디서 많이 봤는데. 유명해?”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강민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강민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고개를 틀었다.
이 틈을 타서 나가야겠다.
내가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노인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더 있다 가! 세상 살다 보면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얼마나 많은데 이거 하나 못 견뎌!”
웃음을 견디지 못한 태식이 고개를 숙이며 큭큭댔다.
“아뇨, 어르신. 저는 그만…….”
“가만있어 봐. 아니, 잠깐만. 총각 혹시 우리 강관웅 대통령님 손자 아니야?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예? 아닌,”
“맞습니다, 어르신.”
나는 강민재가 부정하기 전에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아이고, 우리 강관웅 대통령님 손자였구만. 아이고, 그랬어. 내가, 내가 국가장 때 이 늙은 몸을 이끌고 분향소까지 갔던 사람이야, 내가. 아유, 젊은 사람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내가 정말 소식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니까.”
즐거운 복수였다.
나는 그대로 불가마를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비로소 나는 편백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강민재는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다음에야 불가마에서 나왔다.
노인과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채로 한참을 얘기한 다음에야 강민재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변호사님 진짜 너무하시네요. 저는 어디 가서 누가 변호사님 알아봤을 때, 변호사님이 아니라고 하면 그냥 조용히 있었는데.”
“그래서, 대화하기 싫었어? 어르신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분인 것 같았는데.”
“아니,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아, 그냥, 무슨 뜻인지 아시잖아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런데, 아니…….”
“밥이나 먹자.”
“변호사님이 사요.”
강민재는 입을 댓 발 내밀며 메뉴판을 훑었다.
“찜질방은 미역국인 거 아시죠?”
“당연하죠. 저는 미역국이랑 비빔국수랑 뚝불이요.”
“나는 갈비탕.”
“사장님! 저희 미역국 세 그릇이랑 비빔국수랑 뚝불 하나 주세요!”
저게 자꾸 하극상을 벌이네.
“아아, 배부르다.”
나와 강민재가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먹는 사이, 태식은 세 메뉴를 전부 먹어 치웠다.
내가 마지막 숟가락을 뜰 때, 태식이 비빔국수 마지막 젓가락을 입에 넣었으니 조금 더 빨랐다고 볼 수 있다.
“천천히 좀 먹어요, 태식 씨. 우리 기다릴 수 있어요.”
“두 분이 늦게 먹는 거 아니에요?”
태식은 여전히 자신의 기준에 우리를 맞췄다.
아무튼, 그렇게 찜질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목욕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벌써 밤 11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상길은 밤 11시에 우리 집으로 왔다가 오전 8시에 태식과 교대하는데, 좀 늦은 것 같다.
“내일 부모님 뵈러 몇 시에 출발하세요?”
“내려가는 데 1시간 반 정도 걸리니까 11시엔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흠. 그러면 집에 가서 옷 챙겨 가지고 변호사님 댁에서 자야겠다. 그러고 아침에 같이 출발하면 되겠네요.”
“왜? 본가 어딘지 알잖아. 알아서 와.”
“같이 차 타고 가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난 잘 건데.”
“태식 씨랑 놀면 되죠. 그쵸, 태식 씨?”
“저야 뭐, 운전할 때 말 걸어 주는 사람 있으면 좋죠.”
시끄러워서 잠 못 자게 생겼네.
왜 하필 오늘 여기서 강민재를 만나서…….
“마음대로 해.”
예상대로, 집에 들어가니 상길이 집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엥, 형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그럴 일이 있었다. 형 간다. 고생해라.”
“고생은요. 영화 때리면 시간 금방 가는데.”
태식이야 나를 따라다니고 운전하느라 바쁘지만, 상길은 모두가 잠든 밤에만 일하기 때문에 사실 별로 할 일이 없다.
내가 밤에 여기저기 다니는 편이면 모를까, 상길이 하는 일이라곤 내가 헬스장에 갈 때 따라가는 것 정도다.
물론 영화를 아주 작게 틀어놓고 보다가 혹시 바깥에서 소음이 들려 오면 칼같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이지만.
“내가 밤에 일할 걸 그랬다. 꿀 빠네, 이 새끼.”
“아이, 그래도 형님이 변호사님 곁에 딱 계셔야 든든하죠.”
“역시 그렇지? 변호사님이 날 너무 좋아하셔서 탈이다. 아무튼 형 간다.”
태식이 나가기가 무섭게, 상길은 카우치에 앉아 눈으로 내 동선을 좇았다.
내 동선이라고 해 봤자 욕실에 들르고,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서 약을 먹은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냥 편하게 영화 봐. 아, 그리고 내일은 출근하지 마.”
“왜요? 저는 다른 얘기 못 들었는데.”
“내일 태식이 데리고 본가에 내려가서 자고 올 거야. 어차피 집에 누가 들어오는지 확인하는 것 정도는 CCTV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굳이 나올 필요 없어.”
“형님도 자야 하잖아요. 그땐 누가 지켜요?”
“부모님 댁 지키는 경호 업체 따로 있어. 무슨 일 있으면 그쪽에서 대처할 거야.”
여태까지 부모님에게 달리 위협은 없었지만, 현재 나에게 가장 큰 약점은 부모님이다.
게다가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본가도 한적한 곳이라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목격자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부모님에게 경호 업체를 붙여 놨다는 것을 알리면 크게 걱정하실 것 같아서, 눈에 띄지 않게 지켜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거기에까지 태식이네 인력을 보내자니, 태식이네 식구들이 다른 업무도 수행하고 있는데 그쪽에 구멍이 생길 것 같아서 그냥 민간업체에 맡겼다.
“변호사님, 대체 경호에 얼마를 쓰시는 거예요. 돈은 어떻게 모아요? 이렇게 돈을 많이 쓰시는데.”
아직도 돈은 많지만, 어차피 나에게는 열심히 채굴 중인 미래 자산이 존재한다.
얼마 전에 국정원이 보내온 보유 코인 현황을 확인했을 때, 내가 18년 무렵 확인했던 가장 높은 가격으로 환산하면 못해도 수천억은 되겠던데.
이 시점에야 기껏해야 1억 언저리쯤 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채굴을 멈추고 18년 그 시기쯤 판다고 해도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단 소리다.
비트코인이라는 게 생기자마자 채굴을 시작했으니 이상할 건 없지 않은가.
18년 이후 가격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엄청난 자산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뭐든 적당하다 싶을 때 그만두는 게 좋다.
아직은 이 일을 함에 있어 나에게 앞으로 얼마가 더 필요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아 계속 채굴을 하고 있긴 하지만, 너무 자산 규모가 커지진 않게 조절할 생각이다.
예전엔 비트코인 개발자 측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적도 있고 말이다.
국정원은 가끔씩 이 많은 전기세와 기기값을 부담하면서까지 별로 돈도 안 되는 짓을 왜 하냐고 묻곤 한다.
나는 언제나 다른 말 없이 여유가 될 때 국정원의 몫을 채굴해도 좋다고 대답해 주는데, 아무래도 그러진 않을 모양이다.
“다 탕진하신 거 아니에요?”
지금의 정도가 생기기 전에 벌어들인 수임료도 아직 잔뜩 남아 있다.
어쨌든 돈에 대한 걱정은 없다.
걱정할 게 너무 많은데, 돈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월급 밀릴 걱정은 안 해도 돼.”
“아, 그런 걱정 안 했어요.”
“아무튼 난 자러 간다. 이따가 강 변 올 텐데, 오면 나 깨우지 말고 아무 데서나 자라고 해.”
“넵.”
침대에 누우니 문득 아까 찬영을 만나고 나오면서 했던 걱정들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식도 주말에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라고 말했다.
그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은 노력은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