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58)
너희들은 변호됐다-459화(458/641)
#459화
명절에도 이 정도 양의 음식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식탁 다리가 휘진 않았는지 슬쩍 고개를 내려 확인했다.
산처럼 쌓인 LA갈비와 구릉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잡채, 피라미드 형태로 쌓인 조기구이는 물론이고, 제법 손이 많이 갔을 법한 음식들이 끝도 없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는 밥공기를 보고 대충 어디에 앉으면 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태식의 밥그릇은 돌쇠가 먹었다는 고봉밥이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얼른 앉으세요.”
부지런히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국자를 놀리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건넨 국그릇을 식탁에 놓는 아버지를 보며 강민재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도와드릴 건 없냐고 물어댔다.
태식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나는 그의 다리를 지그시 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편하게 있어. 강 변 앉아. 내가 도와드리면 돼.”
내가 일어나자 아버지가 내 앞에 국그릇을 놓아 주시며 맞은편에 앉았다.
“아냐, 다 됐어. 주한 엄마, 얼른 와.”
외아들인 탓에, 가족끼리 모이면 셋이 앉아 말없이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손님이 둘이나 왔으니 꽤나 시끌벅적해졌다.
우리끼리 쓰기엔 크다고 생각했던 식탁도, 어쩐지 좁아 보이기까지 했다.
“어머님, 언제 이렇게 다 준비하셨어요. 이렇게 많이 준비하실 줄 알았으면 저희가 좀 더 일찍 와서 도와드릴 걸 그랬어요.”
강민재의 말에 어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우리는 명절에 전도 안 부치거든. 그냥 맛있는 거 좀 하는 정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음식을 해 봐.”
“어유, 고생 너무 많이 하셨겠어요. 저희 다음에는 근처에서 외식해요. 오면서 보니까 맛집 많아 보이던데.”
“그래도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내 손으로 밥해 먹여야지. 자, 얼른 먹자. 태식 군도 많이 먹어요.”
집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만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큰절을 올린 태식 덕분에 어머니는 극한의 부담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티를 내고 있진 않지만, 두 분 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하실 것이다.
대체 저 친구는 뭔데 내 아들이 집에 데려왔는지.
“음식은 입에 맞아요?”
어머니의 물음에 허겁지겁 먹던 태식은 입을 가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진짜 너무 맛있습니다, 어머님!”
“다 씹고 대답해도 돼.”
“하하, 맛있다니까 다행이네요.”
“태식 씨, 어머님 음식 솜씨 장난 아니죠. 저 나중에 어머님 가게 차리시면 변호사 때려치우고 거기 지배인 할 거예요.”
물론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음식을 잘하는 입주 가사도우미를 쓰는 강민재의 입에서 저런 말을 들으니 그 정도인가 싶다.
“그런데 태식 군은 우리 주한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아까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던데.”
아버지의 물음에, 마침 물을 마시고 있던 태식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변호사님 경…….”
“저희 사무실 정보원이에요.”
태식이 나를 경호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아서 잽싸게 말을 가로챘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태식에게 미리 언질을 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정보원? 무슨 정보원?”
“아, 저희가 의뢰인을 받잖아요. 그럼 재판에 필요한 정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변호사가 알아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까 이런 정보원을 고용하기도 해요. 태광에도 정보원이 있었어요.”
“아, 그런 거였구만. 난 정보원이라는 게 있는지는 또 몰랐네.”
“하하, 네. 근데 요즘 태식 씨가 워낙 활약을 많이 해서 저희가 큰 도움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변호사님이 초대하고 싶으셨나 봐요.”
강민재는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태식도 자신이 경호원인 것을 알려선 안 된다는 걸 눈치챘는지, 강민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한 건 없는데……. 변호사님한테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젊은 친구 같은데, 그런 일도 하고. 대단해요.”
어머니의 말에, 태식이 겸연쩍게 웃었다.
흥신소 하던 짬밥이 어디 가겠냐는 말은 못 하겠다는 모양이다.
“언제부터 같이 일했어요? 그때 정도 개업식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아, 제가 그런 자리는 좀 부담스러워서 안 갔습니다. 같이 일한 건……. 음, 언제쯤이더라.”
“저랑 거의 비슷해요. 두 번째 사건 할 때부터 같이 일하기 시작했어요. 저작권 소송 기억하세요? 그, 정혜진 드라마 말이에요.”
“아, 기억하지. 되게 오래됐구나. 오래 일했는데 우리는 태식 군에 대해서 들은 게 없네요. 주한이가 워낙 말이 없어서……. 주한이가 잘해 주죠?”
“아유, 당연하죠. 엄청 잘해 주십니다.”
평소에 나를 싸가지라고 부르는 태식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니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 맞다. 주한아, 동진이는 잘 지내니?”
“동진이요? 그냥……. 그냥 살던 대로 살지 않을까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아서 잘 지내는지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따로 다른 말은 없었으니 문제없이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동진 형님 엄청 잘 지내십니다.”
“어머, 태식 군도 동진이 알아요?”
“네. 동진 형님한테 얼마 전에 신세를…….”
“태식 씨가 한 번 사고가 크게 나서 다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동진 형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강민재가 태식이 다른 소리를 하기 전에 빠르게 말을 받았다.
태식이 동진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내가 납치당했을 때였기 때문에, 여차하면 그때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태식은 머리를 비상하게 굴리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숨기려고 해도 말에 구멍이 있어서 질답이 반복되면 들키기 십상이다.
“어쩌다가 사고를……. 지금은 괜찮아요?”
“아, 네. 지금은 멀쩡합니다!”
“다행이네. 어, 벌써 다 먹었네? 밥 더 줄까요?”
“넵, 어머님.”
태식이 두 번째 고봉밥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은, 내가 밥을 반도 채 먹지 못했을 때였다.
정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는다는 말은 태식을 위한 관용어구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주한이 이사한 집에는 언제 가 볼 수 있는 거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살던 오피스텔에는 오신 적이 있었지만, 지금 사는 빌라에는 오신 적이 없다.
빌라로 이사한 이후부터 바쁘기도 했고, 지금은 아예 태식과 상길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모실 수 없는 상황이다.
“나중에요.”
“맨날 나중에. 엄마, 아빠가 가서 청소도 해 주고 그래야 하는데.”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 계세요.”
“그래도. 집 구경도 좀 시켜 줘야지.”
“나중에 여유 생기면 그때요.”
“어머님, 제가 사진 몇 장 찍어 놓은 거 있는데 보여드릴까요?”
강민재가 휴대폰을 꺼내며 물었다.
대체 우리 집 사진은 언제 찍은 거지?
내가 묻기도 전에, 강민재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로 다가가서 사진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집 좋네.”
“근데 집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텅텅 빈 느낌이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어요.”
“우리가 서울 살았으면 아무 때나 시간 될 때 가 보는 건데. 멀리 사니까 한 번 올라가려면 마음먹고 가야 해서 그게 쉽지 않네.”
나름대로 효도하려고 내려온 건데, 불효자식이 되어서 올라가게 생겼다.
“민재는 요즘 어떻게 지내?”
“저요? 저도 일하고, 집에 가서 자고. 똑같죠.”
강민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뭉뚱그리는 기색이었다.
“혼자 지내는 거야?”
“아뇨, 뉴스에서 보셨을진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입양하신 삼촌이 있어요. 저는 형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아무튼 그 형이랑 같이 있어요.”
“잘됐네. 다행이야. 혼자 있으면 많이 외로울 텐데.”
“괜찮아요. 하하. 그리고 변호사님이 잘해 주셔서 그런 생각은 이제 잘 안 해요.”
“주한이가 잘해 줬다고……?”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네. 제가 힘들어하니까, 힘들어하지 않게 잘 잡아 주셨어요.”
“주한이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부모님마저…….
내 주변 사람들은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아무튼 다행이다, 좋아 보여서. 정말 걱정 많이 했어.”
“감사합니다. 근데 정말 괜찮아요.”
“괜히 말 꺼낸 거면 미안해.”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말로요. 전 이제 어머님, 아버님을 저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살려고요. 하하.”
“그래. 이제부터 민재는 차민재 하면서 살아.”
“……저도 어떻게 차태식 안 될까요?”
태식이 슬쩍 끼어들며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문신 지우고 오면 생각해 볼게요.”
그러면서, 어머니가 목덜미를 가리켰다.
역시, 태식이 큰절을 하지 않았더라면 두 분 모두에게 문신은 들키지 않았을 듯하다.
“되게 아프다고 듣긴 했는데 레이저 좀 지지러 가겠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긴 식사가 끝나고, 어머니는 언제 준비해 두신 건지 디저트를 가져오셨다.
커피 머신을 선물 받으셨다며, 커피도 여러 잔 내려오셨는데 맛이 썩 괜찮았다.
강민재와 태식이 재롱을 부리는 통에, 부모님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일이 없었다.
저렇게 좋으신가.
나도 늦었지만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아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주한아, 민재랑 태식이 잘 방 좀 봐 줄래? 엄마 설거지하게.”
“어머님!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태식이 잽싸게 두 팔을 걷어붙이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두 팔을 감싼 흉흉한 문신이 드러났다.
“여기도 문신이 있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요즘 문신 있는 사람 한둘인가? 그런데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셨어요?”
“부모님 안 계십니다.”
“아……. 미안해요.”
“헉, 아닙니다! 지금부터 어머님이 저희 어머님이십니다! 혼내 주십쇼!”
그러자 어머니가 태식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때리며 말했다.
“요놈 자식. 어디 엄마 허락도 안 받고 문신을 이렇게나 많이 하고 와서는!”
“흑흑, 죄송합니다.”
“벌로 설거지해.”
“네…….”
“농담이에요. 얼른 올라가서 쉬어요. 설거지는 내가 하면 되니까.”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 설거지 엄청 잘합니다.”
“됐다니까. 얼른.”
태식은 어머니의 성화에 결국 나를 따라 2층으로 올라왔다.
나는 대충 손님용으로 비어 있는 방을 찾아 문을 열어 주었다.
빈방이 더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짐이 쌓여 있어서 잘 순 없을 것 같고.
“여기서 둘이 자면 되겠네.”
“저희 둘이 쓰기엔 침대가 너무 작은데요?”
“한 명은 바닥에서 자야지. 그건 알아서 정해. 난 좀 쉬고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은 알아서 해.”
나는 둘을 내버려 두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방이라 그냥 필요에 따라 쓰시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본가에 아들 집은 있어야 한다며 구태여 남겨 두신 곳이다.
내가 온다고 했더니 침구를 새것으로 바꾸셨는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나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먹자마자 자는 건 역류성 식도염에 좋진 않지만, 역시 피곤하다.
* * *
─변호사님, 변호사님!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방이 어두운 것을 보면 벌써 해가 진 모양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8시가 넘었다.
내가 6시간도 넘게 잤단 말인가.
하긴, 두통이 올 정도로 밤잠을 설쳤으니 그럴 만도 하다.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자, 강민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왜?”
“어머님이 저녁 언제 드실 거냐고 물어보셔서요.”
“난 아직 배 안 고픈데.”
“그래도 일어나세요. 계속 주무실 순 없잖아요.”
“그래야지. 강 변이랑 태식이는 뭐 했어?”
“그냥 어머님, 아버님이랑 수다 떨었는데요?”
남의 부모님이랑 대화하는 게 재미있나?
나는 너무 불편할 것 같은데.
“알았어. 내려갈게.”
“네.”
나는 침대 한쪽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몇 통 도착해 있었는데, 그중에는 내게 저장되지 않은 전화번호도 있었다.
[변호사님, 저 김미자예요. 혹시 이따 11시쯤 통화 가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