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6)
너희들은 변호됐다-46화(46/641)
“사장님, 저 태식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걸 어떡합니까. 갑자기 차주한인지 뭔지 하는 변호사 놈이 출력소에 들이닥쳐서는, 아이고! 아고고!”
태식이 수화기에 대고 화려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저를 막 협박하면서, 이미 다 알고 왔다고, 다 꺼내 오라고, 하드고 USB고 다 내놓으라고, 서랍을 열어라, 캐비닛을 열어라, 난리를 치고 막…….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검사만 하고 돌려준다고 해서! 어흐흑!”
태식의 불쌍한 목소리가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늦은 시각인데, 소음 신고가 들어오진 않을지 염려가 되는 지경이었다.
“저 지금요? 저, 차주한이 사무실에 끌려 와 가지고, 아이고, 사장님. 빨리 오셔야겠습니다……. USB요? 그놈이 가져갔죠!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빨리, 빨리 오세요. 아이고, 이거 놓으세요! 아참, 놓으시라니까!”
태식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허공에 대고 팔이 잡아 당겨지는 듯한 연기를 펼쳤다.
지금 너의 전화는 영상 통화가 아니라고 알려 주고 싶었지만, 그는 몹시 심취해 있었다.
“예, 예! 문자로 주소 찍어 놓겠습니다! 예에! ……흐흐. 다 했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전화를 끊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연기 좀 펼쳤더니 목이 마르네. 물 한 잔 안 줍니까?”
태식의 연락을 받은 출력소 사장은 부랴부랴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사색이 된 채,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 미쳤어?”
악의 축이 된 우리에게 그 화살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일단 진정하고 앉으시죠. 강 변, 음료라도 내드려.”
“예. 주스 어떤 걸로…….”
“됐고, 태식 씨. 태식 씨도 이러면 안 되지. 아무리 협박을 받았다고 해도, 이건 아닌 거야! 대체 뭐라고 협박했길래!”
출력소 사장이 발을 동동 구르자, 거기까지는 생각해 두지 않은 태식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장태식 씨 고양이를 저희가 보호하고 있어서요.”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태식이 고양이를 찾느라고 출력소 주변을 얼쩡거리다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는데, 할 말이 그것 말고 더 있겠는가.
키우던 고양이에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굴었다고 하니, 이 정도면 충분한 명분이 되지 않았을까.
사실 그 명분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둘러댄 것이기는 하다.
출력소 사장이 더 반감을 갖기 전에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니까.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가 푸른섬 미디어와 정혜진 작가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압니다. 뉴스에서 봤어요.”
그는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히며 의자에 앉았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푸른섬 미디어의 치부를 모아 두었다면, 본 사건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겠지.
“그 소송에 사장님의 USB가 필요합니다. 그 안에 저희 의뢰인인 나은성 씨의 원고가 들어 있더군요. 그건, 푸른섬 미디어에서 받으신 거겠죠?”
“아닙니다.”
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순순히 협조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그럼 그 USB에 왜 그 파일이 들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심니까?”
“푸른섬 미디어 담당자가 방문했다가, 놓고 간 겁니다.”
[거짓]옛날 같았으면,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에 떠있는 글자는, 나에게 그런 실수를 하지말라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반짝거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담당자와 대질해도 되겠습니까? 어째서 하필이면 정혜진 작가가 베낀 작품들만 다 모인 USB를 인쇄소에 흘리는 실수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파일을 모아 뒀는지. 그 담당자가 불온한 생각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인쇄소 사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가 이것을 증거로 내어 주지 않으려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하다.
바로 자신이 불온한 생각으로 푸른섬 미디어의 약점을 모으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들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또한,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 푸른섬 미디어가 큰 거래처이기 때문에 밉보일 수 없어서.
둘째, 자신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그때 사용하기 위해서.
“사장님은 평소, 푸른섬 미디어에 불만을 갖고 계셨죠?”
사장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태식도 그런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없었으니, 사장은 여태까지 마음을 숨겨 왔을 것이다.
“사장님, 사람이 상대방의 약점을 모으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언젠가 그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죠.”
처음 태식이 그걸 찾았다고 했을 땐, 실수로 지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P] 폴더 안에 들어 있는 파일을 전부 보고 난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알아보니, 푸른섬 미디어는 갑질로 유명하더군요.”
사실, 그런 소문은 접한 적이 없다.
일종의 유도 신문이기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업계에 그런 소문이 공공연히 나 있을 거란 사실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공모전에서도 갑질, 보조 작가에게도 갑질하는 곳이 아닌가.
다른 거래처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가, 갑질이요? 그게 뭔데요?”
아, 이때는 아직 갑질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기 전이었던가.
사장뿐만 아니라,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던 강민재와 조감독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권력을 가진 쪽이 멋대로 군다는 뜻입니다. 뭐, 어쨌든 그런 행동으로 유명하던데. 혹시, 사장님도 혹시 부당한 거래를 요구당하신 사실이 있으십니까.”
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장님. 여긴 변호사 사무실입니다. 부당한 요구를 당하셨다면,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강민재가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일단 던지고 보는 것에는 그를 따라갈 자가 없을 것이다.
나는 사장 옆에 딱 붙어 계속해서 말을 보태는 강민재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며, 사장과 눈을 마주쳤다.
“푸른섬 미디어라는 큰 거래처를 잃을 것이 걱정되어 그러시는 겁니까.”
“…….”
“그것도 저희가 도와 드릴 수 있을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내가 조감독을 바라보았다.
출력소 사장이 사무실에 당도하기 전, 미리 조감독에게 상의해 둔 바가 있었다.
“네, 저희가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푸른섬 미디어와 거래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저희 영화사와 거래하시죠. 저희가 푸른섬 미디어보다 발주량이 더 많을 겁니다. 대표님하고도 상의가 끝난 문제입니다.”
조감독의 영화사는 재판에 증인으로 불출석한 것으로 투자금을 더 받았다.
안 그래도 그의 선배라는 영화사 대표는, 푸른섬 미디어가 그런 일로 투자금을 빼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그 갑질에 분노한 상태였다고 했다.
영화사 대표는 투자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떻게든 엿을 먹일 생각이었다고.
그는 이제 투자금도 받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었다.
“…….”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약속할 수 있어요?”
“네?”
“나중에 다른 말 안 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건 염려 마십시오. 녹취해 두었고, 여긴 변호사 사무실이니까요.”
강민재가 ‘변호사 사무실’이라는말에 강세를 두며 말했다.
사장은 에이씨! 하고 소리치며 이마를 짚었다.
“푸른섬 미디어 그 개새끼들이 계약할 때마다 자꾸 후려쳐서, 해가 거듭할수록 단가는 오르는데 돈은 안 주니까! 그래서 약점을 잡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처럼 영세한 인쇄소가 무슨 힘이 있어요? 아무리 호소해도 말은 안 듣고, 그럼 거래처 옮긴다는 말만 하는데!”
사장이 울분을 토했다.
“그럼, 그 공모전 대본들을 정혜진이 표절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고 보관하신 겁니까?”
속상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얼굴이 벌게진 사장은, 순순히 대답했다.
“우리 직원 중에서 지민이라고, 대본에 관심 있는 애가 있어요. 지망생인가, 그렇다는데.”
“혹시 하지민 씨요?”
구석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지우고 있던 태식이 끼어들었다.
고양이에 사장의 USB를 팔아넘긴 대역 죄인이라 찌그러져 있더니,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 그래. 지민이. 걔가 6년인가를 같이 일했는데…….”
어느 날 그 하지민이라는 직원은 정혜진의 드라마가 방영되자, 작년에 인쇄한 각본이 아니냐며 아는 체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에 인쇄한 것은, 정혜진의 대본이 아닌 공모전에 제출된 지망생의 각본이었다.
정혜진이 2차 선발에 올라온 작품을 표절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사장은, 그때부터 공모전 인쇄 발주가 들어오면,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정혜진의 신작 드라마와 비교하여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작업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하지민이었고 말이다.
그게 벌써 쌓이고 쌓여, [P] 폴더 안에 들어 있는 파일들을 이루었다.
그중 하나가, 나은성의 원고였다.
“근데, 사장님이 이걸 여태까지 모아 놨다는 걸 알면 그쪽에서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불법 증거라고 말이에요.”
문득 생각난 듯, 강민재가 말했다.
그 부분은 문제가 없다.
“푸른섬 걔네, 평소에 원고 웹하드에 다시 을리는 거 귀찮다고 그냥 갖고 있으라고 해요. 발주 끝난 거 재인쇄 시키는 경우가 수두룩해서.”
그건 태식이도 알고 있는 사실일 정도로, 두 업체 사이에서 공공연히 양해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걸로 책을 잡는다면, 사장님이 그간 그쪽의 갑질로 인쇄 단가를 낮춰 주신 불공정 계약을 물위로 끌어 올려서 푸른섬 미디어에게 개망신을 주겠습니다.”
어차피 표절 연타로 개망신을 당할 예정이지만, 그게 정혜진의 단독 행동으로 국한시키고 꼬리를 자른다면 푸른섬 미디어는 회생의 여지가 있다.
이름을 바꾸고 잠시 조용히 있다가, 다시 신작을 제작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번지고 번져 갑질 논란까지 이어진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이 미래가 아니라, 당장 지금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럼 변호사님, 이거랑 그 영감 노트로 변론 재개 신청 넣으면 되겠습니다.”
강민재가 신난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USB를 들어 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조금 더 재미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