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62)
너희들은 변호됐다-463화(462/641)
#463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자, 강민재는 조금 놀란 듯했다.
나 역시도 큰소리를 낸 뒤, 내가 강민재에게 언성을 높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변호사님, 이런 상태로 어떻게 배를 타요.”
하지만 대답할 틈이 없었다.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흔히들 말하는 폭주하는 기관차가 이런 느낌일까.
빠르게 뛰다 못해 뻥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지금 맥박을 측정하면, 잘 알지는 못해도 가뿐히 250 정도는 넘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그 심박수가 나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심장이 멈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가까스로 호흡하며 심박수를 낮춰 보려고 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호흡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하윽, 으윽…….”
이럴 때 뭘 하라고 했었지.
아, 비닐봉지나 종이백 같은 걸로 산소 포화도를 낮추라고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더듬었다.
왼쪽에 생수를 살 때 받았던 비닐봉지가 있었다.
나는 그 안에 들어 있던 쓰레기 따위를 우르르 쏟아내고 비닐봉지를 입가로 가져갔다.
“뭐, 뭐야.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비닐봉지를 입가에 대고 호흡하기를 반복했다.
체감상 10분 정도는 이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호흡이 안정되지 않았다.
전에 이렇게 하면 나았던가?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호흡이 원래대로 돌아왔었지?
이게 맞는 방법이었나?
……근데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비닐봉지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거지?
볼썽사납게 비닐봉지로 입을 틀어막고 부스럭거리는 내 꼴이 우습다는 생각도 잠시, 아찔한 두통과 동시에 귓가에서 삐, 하는 이명이 들려왔다.
이명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강민재의 목소리가 잠깐 들렸던 것 같은데, 이명에 묻혀 뭐라고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허윽, 윽.”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다잡으려 눈알을 굴렸다.
그러자 조수석에서 뒤쪽으로 넘어오려는 강민재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그런데…….
저게 정말 강민재가 맞나?
애초에, 강민재가 나랑 같은 사무실을 쓰던 변호사가 맞았던가?
구르듯이 뒷좌석으로 넘어온 강민재가 내가 놓쳐 버린 비닐봉지를 다시 내 입에 가져다 댔다.
부스럭, 삐이, 부스럭, 삐이, 부스럭, 삐이…….
시끄러운 소리가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진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되는 것 같아서, 강민재…… 그러니까, 강민재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고집스럽게 내 입에 비닐봉지를 갖다 대었다.
눈앞이 하얗게 질린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질식사할 것이 분명했다.
“……사님, ……면, ……돼요!”
뭐라는 거야.
씨발, 나는 지금 죽겠는데.
누가 내 두개골을 열고 내 뇌를 빠르게 돌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내 이석이 빠져 반고리관에 처박혔거나.
내 뇌가 회전하고 있다는 생각도 잠시, 이제는 내 시야마저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게 가능한가?
나는 차 안이었는데, 어떻게 차가 빙빙 돈단 말인가.
그새 사고가 나서 차가 전복이라도 된 건가?
아, 잠깐.
꿈인가 보다.
꿈이라면 모든 게 가능해지지.
심장이 이미 터졌는데도 내가 살아 있는 것도 가능하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도 가능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내가 우신에 또 납치라도 된 건가?
그것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면 언제?
코끝으로 바다 냄새가 물씬 풍겨져 들어온다.
짧은 호흡을 따라 들어온 냄새가 코안을 들쑤신다.
바다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나는데.
아, 나 혹시 배 위인가.
그런데 왜 움직일 수가 없지?
드럼통 안에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또 언제?
이번 삶에서는 분명히 드럼통에 들어가기 전에 바다에 뛰어내렸는데.
그러면 이전 삶인가?
그때는 분명히 드럼통에 들어갔다.
아니, 그런데 이전 삶은 뭐고 이번 삶은 또 뭐지?
애초에 나는…… 나는 뭐지?
“변호사님.”
그때 강민재가 내 두 어깨를 꽉 붙잡았다.
몸이 한 번 크게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세상이 도는 것 같은 감각이 한층 사그라졌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내 어깨를 붙잡은 손부터 손목, 팔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 끝에는 강민재가 다급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저게 정말 강민재가 맞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 이렇게 낯선 남자를 내가 강민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남자는 내 손을 잡아 내 가슴 위에 얹으며 물었다.
“변호사님, 오늘 무슨 요일이에요?”
그 남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일?
흔히 말하는 요일이라는 것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건 누가 정한 거지?
“…….”
“변호사님, 잘 생각해 보세요. 오늘이 무슨 요일이에요?”
“……금요일, 아니……. 토, 아니다. 일요일인가?”
“맞아요. 일요일이에요. 그럼 여기 어디예요? 우리 어디 가고 있었어요?”
“무평.”
“맞아요. 우리가 왜 무평으로 가고 있었어요?”
무평에 왜 가고 있었지.
무평은 서해안에 위치한 해안 도시다.
그렇다면 배를 타러 갔겠지?
왜 배를 타야 했지.
해외를 갈 거였다면 비행기를 탔을 텐데.
아, 그렇지.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을 가려고 했다.
“……백금도에 가려고.”
“뭐 때문에요?”
“김미자 씨, 하아……. 그래. 김미자 씨 때문에 가려고 했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심장 박동이 많이 사그라진 듯한 느낌이 든다.
호흡도 점점 편안해졌다.
산산이 부서져 조각들이 어지러이 나부끼는 듯했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땅에 가라앉은 조각들이 착착 정리되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조립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온몸에 꽉 주고 있던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지만, 반쯤 눕듯이 앉아 있던 자세를 정리했다.
창밖을 바라보니, 시내의 어느 갓길에 차가 세워져 있었다.
시선을 움직여 차 내부를 확인했다.
내 옆에서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 강민재와, 놀란 듯이 나를 돌아보고 있는 태식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강민재가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주워 나에게 건넸다.
나는 뚜껑을 열어 입안 가득 물을 쏟아부었다.
물을 삼키고 나니 과호흡으로 바싹 말라 있던 입안과 목구멍이 젖어 들며 한결 나았다.
“20분 정도 지났어요.”
“약효가 빨리 돌았나.”
“20분 정도인 것 같아요. 변호사님 발작 시간. 전에도 그 정도였어요.”
“……그래. 20분이면 낫는구나.”
앞으로는 이런 증상이 오면 20분만 버텨야겠다는 생각부터 해야겠다.
“차가 조금이라도 더 작았으면 저 뒷좌석으로 넘어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담 오는 줄 알았다고요.”
강민재는 지쳤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등받이에 쓰러지듯 기댔다.
“태식 씨. 변호사님 모시고 서울로 올라가세요. 저 혼자 백금도 갔다 오면 되니까요.”
강민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나 역시 시간을 체크했다.
아직 1시 15분이다.
배 시간엔 늦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 같이 가.”
“변호사님! 배를 타야 해요. 바다만 보고도 이렇게 증상이 오는데, 배는 어떻게 타시려고요! 그때 일 때문이잖아요. 우신 새끼들이 납치했을 때, 배에 싣고 가서……. 그래서 그러신 건데, 대체 어떻게 배를 타시려고요.”
“약효 돌았어. 그리고 내가 가야 해.”
“거기 사는 사람들한테 김미자 씨 아냐고 묻는 것 정도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변호사님 지금 컨디션 나빠요. 배 탈 상황 아니에요.”
“그럼 내가 저 좆같은 바다를 볼 때마다 숨도 못 쉬고, 소리도 제대로 못 듣고, 사람도 못 알아봐야 해?”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태식아, 무평항으로 가.”
내 말에 태식은 난처한 표정으로 강민재를 바라보았다.
아주 나를 환자 취급하는 것은 둘이 똑같았다.
정말 나를 퇴원시켜도 되냐고 보호자에게 확인받는 의료진의 표정이다.
“지금 당장 기어 바꾸고 액셀 밟아. 아니면 해고야.”
“태식 씨, 안 돼요. 저 택시 타고 무평항으로 갈 테니까 변호사님 모시고 서울 가세요.”
“그럼 너도 해고야.”
내 말에 강민재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돼먹지 못한 어린 애처럼 고집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매번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상황을 면피할 순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고, 나는 더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될 텐데 고작 이따위 일로…….
“무평항으로 가서 또 증상이 올라오면 서울로 올라갈 테니까, 일단 가.”
거기서 또 발작이 오면 나 역시 밀어붙일 생각은 없다.
그렇게 된다면 백금도에 들어간다고 해도 제대로 된 조사는 하지 못하고 걸림돌만 될 테니까.
태식과 강민재는 시선을 주고받았고, 결국 태식은 다시 무평항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다시 창문을 열고 눈을 감았다.
* * *
“변호사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무평항에 도착해서, 백금도로 향하는 세 명 몫의 티켓을 끊어 온 강민재는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가끔 증상이 올라오는 것,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것, 나약한 나 자신을 목도해야 하는 것, 모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어 나 때문에 일에 차질을 빚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다행히도 무평항에 도착해서 바다와 배를 보았는데도 달리 반응은 없었다.
낚싯배를 보았을 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 외에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복용한 약이 나를 잡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진 알 수 없었다.
“괜찮아.”
무엇보다 다행인 건, 내가 혹시 몰라 필요시 약을 더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나는 밖에 나갈 때마다 약을 챙긴다.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날에는, 외박하는 날짜와 개수를 맞춘다.
혹시라도 약을 챙기지 않고 나온 날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가지고 나올 정도였다.
어제 몫으로 챙긴 것을 먹지 않았으니, 하나 더 남아 있다.
“변호사님 병원 가셔야 하는 건 아니고요?”
승선 시간을 알리는 직원의 신호에 몸을 일으키던 태식이 문득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어서.”
“그건 변호사님 생각이고. 강 변 생각은 어때요.”
“그건 변호사님 말이 맞아요.”
강민재가 대꾸하자, 태식은 그제야 내 말을 믿는 모양이었다.
“정신과엔 성격 더러워서 성격 고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농담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지며, 태식이 한숨을 쉬었다.
나는 대답 대신 승선하는 줄 뒤에 섰다.
“나 참, 나도 모르겠다. 백금도에 병원 있어요?”
태식의 말에 강민재가 휴대폰으로 검색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님 또 그러시면 저 변호사님 질질 끌고 병원 갑니다. 안 간다고 하셔도 갈 거예요.”
태식은 뚱하게 말하더니 배 위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