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65)
너희들은 변호됐다-466화(465/641)
#466화
“여기 맞는 것 같네요.”
강민재는 휴대폰 화면에 나온 사진과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모습을 비교하며 말했다.
이곳은 김미자가 교수로 임용된 일본의 대학교였다.
우리는 일요일에 바로 백금도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다음날 저녁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 김미자의 상황을 말하고 자문을 구했다.
물론 강민재의 성화로 나에게 있었던 발작 증상을 말하고 약을 새로 받는 것이 먼저였지만.
어쨌든, 의사는 한결같은 주장을 펼쳤다.
김미자는 명백한 자살 위기자이며, 무조건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는 큰 대학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면 필요한 처치를 해 줄 거라고 말했다.
김미자가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할 것이며, 그녀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라도 입원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해도 의사는 한결같았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김미자의 상황에는 입원이 필요하다 말할 것이라고.
그래도 팁을 주자면, 김미자가 자신의 안에 맺힌 응어리를 다 토해낼 수 있도록 이야기를 계속 들어 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이후에는 입원은 못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최소한 약 처방은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전문가의 의견이 확고한 만큼 나 역시 가능한 한 시도해 볼 작정이었다.
만일 내가 사람을 홀리는 언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전문가인 이상 김미자를 말 따위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백금도에서 알게 된 새로운 정보, 그리고 확보한 영상들이라면 일렁이던 김미자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보기도 했다.
의사 역시도 김미자가 마음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고.
“일본 대학교는 우리나라처럼 캠퍼스가 한 곳에 모여 있는 형태가 아니네요. 이 캠퍼스 맞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형, 우리 잘못 온 거 아니에요?”
강민재는 정문 앞에 놓인 캠퍼스 지도를 살펴보다가, 곁에 선 강수일에게 말했다.
강수일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통역사로서 우리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
강수일은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가 내린 밴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기사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
“본 캠퍼스는 여기 맞다는데. 아까 사이트 확인했을 때 김미자 씨가 있는 과가 본캠에 있다고 했어.”
“흠, 그럼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해요?”
“지도대로라면 여기.”
일본어에 능통한 강수일은 캠퍼스 지도를 살펴보고는 성큼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까막눈이나 마찬가지라, 강수일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조금 걸어가다, 지나가던 학생에게 또다시 물어 우리를 안내했다.
“강 실장님 길치 아니야?”
학생들에게 묻는 빈도가 좀 잦다고 느꼈을 즈음 강민재에게 슬쩍 묻자, 강민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한 건 아닌데, 아주 조금…….”
그래도 캠퍼스가 분산되어 있는 만큼 규모가 크지 않아서, 우리는 오래 지나지 않아 김미자의 연구실이 있는 단과대 앞에 도착했다.
미리 약속을 잡고 왔으므로, 김미자가 건물에서 어떻게 연구실까지 올 수 있는지 일러 준 덕분에 그 앞까지 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근데 저희 다 들어가요?”
노크하려던 강민재가 문득 손을 거두고 물었다.
우리 인원은 나 포함 다섯.
김미자가 돌발 행동을 할 경우를 고려해서,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동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태식과 정혁을 모두 데리고 들어갈 필요는 없겠다 싶어 정혁에게는 바깥을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노크하기가 무섭게 연구실 문이 열렸다.
“아, 오셨어요.”
문을 열어 준 김미자는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비교적 수수한 모습이었다.
옷차림도 그러하거니와, 화장도 많이 옅었다.
특히 화장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그녀로서는 큰 변화를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연구실이 좀 지저분해요. 정리 중이라서.”
김미자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내부에 위치한 소파로 안내했다.
그녀의 말대로, 연구실 곳곳에는 책과 파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쓰지 않는 잡기 같은 것들을 문 앞에 내놓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로 연구실을 뺄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도 드릴까요? 우롱차, 녹차, 블랙커피 있어요.”
“그냥 물이면 됩니다.”
사람도 여럿인데 굳이 시간 낭비할 것 없겠다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묻지 않고 대꾸했다.
그러자 김미자는 소형 냉장고에서 작은 생수병들을 꺼내 우리 앞에 놓아 주었다.
“이분은……. 아, 그때 축하연에서 뵌 것 같아요. 맞나요?”
김미자는 강수일을 보고는 아는 체했다.
그때 강민재는 김미자를 압박하는 대화는 1대1로 했다고 말했는데, 김미자는 그때부터 이미 행사장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나 보다.
“저를 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네, 거기서 뵈었죠.”
“그때 강 변호사님이랑 같이 오셨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비서분이세요?”
김미자가 강민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 그건 아니고 말씀드리자면 복잡한데…….”
“강관웅 전 대통령님 비서관이었습니다.”
“아, 강관웅 전 대통령님 아드님이신가 봐요. 기사로 봤어요. 강 변호사님이 저한테 접근하셨을 때 닥치는 대로 관련 기사를 찾아봤었거든요.”
“오늘은 통역사로 왔습니다. 여기 두 분이 일본어를 못하셔서.”
“일본어를 못해서 점성술을 볼 때 통역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니, 이미 통역사분이 계셨네요.”
김미자를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했던 말이었는데,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점성술 통역은 제가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작게 웃던 김미자가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며 물었다.
“변호사님,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셨죠. 만드셨나요?”
“일요일에 백금도에 갔습니다.”
“제 목걸이를 던질 만한 곳을 찾아보려고 가셨나 봐요.”
“그런 목적도 있었지만, 결국 찾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내 대답이 의외라는 듯, 김미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서해 방향이면 어디든 상관없는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걸 찾아서요.”
나는 강민재가 들고 온 가방을 열고, 노트북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가득 쌓인 서류 더미 위에 올려놓았다.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에는 싸늘한 적막이 감돌아서 위잉, 하는 팬 소리만 연구실 안에 울려 퍼졌다.
김미자는 내가 뭘 찾았다는 건지 유추해 보려는 듯했고, 강민재는 부쩍 긴장한 듯 물을 마셔 댔다.
나 역시 가족을 보자마자 배에 칼을 꽂아 넣겠다던 김미자가 혹여라도 보지 않겠다고 할까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런 걱정 때문에 일부러 일본으로 온 것이기도 했다.
내가 일본에 오지 않고 동영상을 보내며 확인해 달라고 하면, 김미자는 끝까지 보지도 않고 꺼 버릴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으니까.
“김미자 씨.”
“네?”
“지금부터 뭘 보여드릴 겁니다.”
“뭘 보여 주실 건데요? 설마……. 제가 나고 자란 ‘아름다운 섬’ 백금도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향수를 자극하겠다……. 뭐, 그런 건 아니시죠?”
“그런 건 아닙니다. 백금도에 다녀오긴 했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만한 여유는 없었습니다.”
“그럼요?”
“제가 보여드리는 게 뭐가 됐든, 견디기 힘들더라도 참고 끝까지 봐주십시오. 돌발 행동은 안 하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대체 뭔데 그런 약속까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김미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보여 주려는 게 가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그녀의 눈빛은 순식간에 방어적으로 바뀌었다.
“아뇨, 저 약속 안 할래요.”
“김미자 씨, 정말 잠깐이면 돼요.”
강민재는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미자는 고개를 외로 틀며 한숨을 쉬었다.
“……저 그 사람들 소식 궁금하지 않아요. 그리고 절 말리시려고 여기 오신 거 아닌가요? 오히려 그 사람들 이야기는 저를 자극할 뿐이에요.”
“저도 압니다. 그래도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봐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김미자는 손톱을 톡톡 깨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단정한 톤의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던 손톱이 휑했다.
그녀가 매니큐어를 지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는 잠깐 감상에 빠졌다.
“하, 그래요. 어차피 볼꼴 못 볼 꼴 다 보고 살았는데 죽기 전에 그런 장면 하나쯤 더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죠. 이왕이면 그 사람들이 거지 같은 꼴로 근근이 사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속은 좀 시원해질 것 같아요.”
김미자가 대답하자, 나는 맞은편에 위치한 그녀의 곁으로 옮겨 앉아서 노트북 속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가장 첫 장면은 당시의 시간을 보여 주는 시계와 백금도로 향하는 티켓의 모습이었다.
“저희는 그제, 그러니까 일요일 2시 배를 타고 2시 50분경 백금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뱃멀미 때문에 고생하는 강 변 때문에 편의점에서 잠깐 쉬다가, 바로 택시에 탔습니다. 저희는 원래 파출소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기사님이 섬에 온 목적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미자 씨를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김미자 씨를 안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촬영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님에게 촬영 직전에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영상입니다.”
나는 간략히 직전 상황을 설명했다.
백금도에서 내린 시간과 동영상에 찍힌 시간 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김미자가 그 짧은 사이에 택시 기사에게 거짓 증언을 종용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긍께로……. 방금 나가 말한 거를 다시 말하면 된다, 이거제. 이거를 미자 누나가 보는 거여?]노트북에서는 뒷좌석을 돌아보는 택시 기사의 모습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김미자는 ‘미자 누나’라는 호칭에 흠칫 놀란 듯했다.
가늘게 어깨를 떨더니, 화면 속 택시 기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미자 누나! 나여! 길두여! 이거 보고 있는가!]“……길두?”
김미자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 듯했다.
“기억하십니까?”
“얼굴도 같이 보니까 알 듯 말 듯 해요. 그 길두가 맞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마저 재생하겠습니다.”
[흠흠, 긍께……. 미자 누나가 사라지고 나서 양 온 동네가 뒤집어져부럿지. 딸랑 하나 있는 딸내미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부렀응게. 삼십 년이 넘게 지났는디 그 난리통이 시방까지도 기억이 난당게. 오메오메, 말도 모대. 미자 누나 아버지가 고기도 안 잡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님시롱 우리 미자 숨겼으믄 당장 내놓으라고 넘의 집을 뒤지고 양…….]김미자는 택시 기사의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팔아먹어 놓고 쇼를 했나 보네요. 하긴, 그렇겠죠. 어린 딸이 사라졌는데 난리 안 피우면 그게 어디 사람 새끼겠어요? 이웃들한테 괜한 오해 안 받으려면 당연히 그런 쇼라도 해야죠.”
지금 뭐라고 해도 의미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계속해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시방 미자 누나네 집으로 바로 갈라니까, 파출소는 안 가도 되겠지라?]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는 그리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촬영을 그만둔 상태였다.
나는 다음 영상을 틀었다.
김미자의 모친이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촬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도 시간을 화면에 담아 두었다.
“택시로 20분쯤 갔을 때 가족분들이 살고 계신다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시간 확인하시면 아시겠지만. 바로 어머님 모습이 나옵니다. 놀라실 수도 있으니 미리 말씀드립니다.”
김미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다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
김미자는 화면 속에 모친의 모습이 나오기가 무섭게 손을 떨었다.
하지만 잠깐 확인해 본 그녀의 눈빛에서는 분노만이 읽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오랜 세월 원망했다고 해도,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 정도는 깊은 곳에 남아 있긴 했을 것이다.
특히 김미자는 모진 성격이 못되니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엄청 늙었네요.”
김미자는 모니터 속 모친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긴,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까요. 집도 그대로예요. 지붕이 달라지긴 했는데.”
“개량 사업 때문에 지붕을 교체했을 겁니다.”
“다른 건 다 그대로네요. 저 팔아먹고 받은 돈으로 집 하나 새로 마련 안 하고 다 어디다 썼는지…….”
그녀는 헛웃음을 지으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느덧 영상 속 모친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모친이 김미자를 그리워하며 쏟아냈던 말들을 들으며 자꾸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을 보면, 울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까까지의 기색으로는 모친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며 반박할 법도 한데, 그녀는 입 한 번 떼지 않고 동영상에 집중했다.
[선상님, 이게 뭔지 알어요? 우리 큰아들이 서울서 그 과자 봉지에 자석 이자분 사람들 신청하는 거를 해갖고, 과자 봉지에 우리 미자 나온 것들 내가 갖고 있는 거여요. 나는 이 평생을 이 과자만 먹었어라. 수십, 수백 봉지를 먹었는디 가끔 미자 얼굴이 여기 나오면 나가 이거를 다 하나하나 물에 씨차갖고 말려갖고 이렇게 모아둔 거여요.]“…….”
그러던 김미자가 돌연 스페이스 바를 눌러 영상을 멈춘 것은, 그녀의 모친이 과자 봉지가 든 지퍼백을 꺼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 하나하나 김미자의 어릴 적 사진이 담긴 과자 봉지 속 유통기한 표시를 체크하는 모습이 화면 속에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것이 2009년까지가 유통기한인 상품이었습니다. 저희가 따로 체크해 보니, 이 업체에서 과자 봉지에 실종 아동 사진을 싣는 사업을 시작한 게 2008년부터였습니다. 아마도 장남분이 해당 사업을 시작하는 걸 알자마자 신청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그냥……. 저를 팔아넘겨 놓고 시간이 지나니까 죄책감이 들어서, 그래서 찾으려고 그런 거겠죠…….”
김미자는 여러 감정에 휩싸인 것 같았다.
가족이 자신을 버리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는 희망, 동시에 부모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속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충분히 이해한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가 자신을 팔았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기존의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나는 대답 대신 영상을 마저 재생했다.
[글면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것어요? 나도 우리 미자 보고 자픈디…….]“흐윽…….”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모친의 모습이 나오기가 무섭게, 김미자는 결국 흐느꼈다.
갑자기 그녀의 모친이 갑자기 다가오는 바람에 화면에 얼굴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리라.
삼십 년 이상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검버섯과 주름이 잔뜩 들어선 그 얼굴은 생면부지의 내가 봐도 울림이 있었다.
“앞에 택시 기사분도 그렇고, 방금 어머님도 그렇고 계속 현수막 이야기를 하셔서 저희가 대화가 끝난 뒤에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동영상은 그대로 이어져, 김미자의 집 뒤쪽에 위치한 창고에 다다랐다.
창고 문을 열자, 이런저런 물건 뒤로 어마어마하게 쌓인 현수막 더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하나 다 펼쳐 보았다.
[미자를 찾아 주십시요!김미자 (女, 13세)
1967年 3月 12日生
실종 당시 모습 : 귀밑까지 오는 단발.
꽃무늬 티에 까만 바지를 입고 있었음.
코에 점이 있음.
실종 위치 : 백금도] [하나뿐인 내 딸, 미자를 찾아 주십시요!
김미자
1967年 3月 12日生
실종 당시 나이 13세
현재 나이 14세] [미자야! 보고 싶다!
김미자
1967年 3月 12日生
실종 당시 나이 13세
현재 나이 17세]
가장 오래된 것은 잉크가 날아가 많이 바랬지만, 글자를 식별할 정도는 되었다.
이런 현수막이 매년 현재 나이를 갱신하며 계속해서 화면 속에 비쳤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면은 우리가 다시 무평으로 돌아와 무평항 인근에서 발견한 새로운 현수막이었다.
[실종된 김미자를 찾아 주세요!김미자
1967년 3월 12일생
실종 당시 나이 13세
현재 나이 46세
<실종 당시 모습>
<성장 가상 모습>]
실종 당시 사진과 프로그램을 이용해 현재 모습을 유추한 가상의 사진을 나란히 인쇄해 걸어 둔 현수막이었다.
이 현수막을 촬영한 뒤, 우리는 그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 김미자의 모친이 알려 준 장남의 전화번호로 연락하여 그를 만났다.
그곳에서 장남의 요청으로 동영상 하나를 더 찍었다.
우리가 준비한 마지막 동영상이었다.
[미자야.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큰오빠야. 어릴 적에 너한테 책도 읽어 주고, 시계 보는 법도 알려 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네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변호사님들이 알려 주지 않으셔서 오빠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정말로 맹세코, 우리는 삼십 년이 넘도록 너를 기다렸다.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미자야! 이걸 보면 꼭 돌아와 줘. 엄마, 아버지도 이제 많이 늙으셨다. 정 돌아올 수 없거든, 엄마, 아버지 먼 곳 떠나시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 번만 보여 줬으면 좋겠다! 미자야, 보고 싶다.]“…….”
“큰오빠분은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2007년부터 광고 배너에 실종 아동 사진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미자 씨의 사진을 바로 넣으셨다고 했습니다. 저희도 사실로 확인했고요. 김미자 씨 입장에선 쉽게 믿으실 수 없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직접 확인해 보실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김미자의 얼굴은 눈물로 낭자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참 동안 소리 죽여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민재도 몰래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보고 싶어요, 흐윽, 엄마랑, 아빠랑, 흑, 오빠들이랑 다 보고 싶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부모를 잃어버린 열세 살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