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66)
너희들은 변호됐다-467화(466/641)
#467화
“백금도로 가 볼래요.”
울음을 그친 김미자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지 20분 만에 돌아와 한 말이었다.
“부모님을 만나겠다고 해서 제가 완전히 그 사람들을 믿겠다는 건 아니에요.”
화장실에서 오래 있었던 이유는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인 듯하다.
일본으로 오면서, 김미자가 아예 동영상을 보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도 고려했던 내 입장에서는 김미자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다행이었다.
“제가 말했듯이, 그 사람들이 저를 팔아먹어 놓고 이웃들 눈치를 보느라 쇼를 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30년이 넘도록 쇼를 할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몇 년 하다가 포기하고 사는 것처럼 해도 남들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강민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네. 그래서 가 보겠다는 거예요.”
김미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어쨌든, 내 말 대로 직접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다고 여긴 것만큼은 확실했다.
“백금도에 가 보시려면 한국으로 들어오셔야 할 텐데, 언제 가능하시겠습니까?”
“오늘은 늦었고, 내일 당장이요.”
시간을 확인한 김미자가 매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아직 오다 사토시한테는 학교에 사표를 낼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적당히 둘러대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나 역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여기고 있긴 했지만, 내일 당장 출국은 오다 사토시의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 이미 한 차례 죽음을 결심했던 그녀의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튈지도 모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스로 사고할 틈 없이 정신없게 진행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의심을 사진 않겠습니까?”
“제가 잘 해 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김미자 씨와 같은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댁과 가까운 곳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디쯤이십니까?”
“아, 저희 집 주소를 불러드릴게요. 가까운 데로 찾아보세요.”
자연스럽게 김미자의, 그러니까 오다 사토시의 집 주소까지 얻었다.
강수일은 김미자가 말해 준 주소를 기반으로 호텔을 찾아 예약했고, 우리는 일단은 헤어져서 김미자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 역시도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인천 공항에 내려서부터는 우리를 쫓고 있을 우신의 눈을 피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 조치를 해 두어야 하니까.
“아, 저녁 식사는 아직 안 하셨죠?”
연구실을 나서려는데, 김미자가 무언가 생각난 듯 우리를 불러 세웠다.
“네. 아직입니다.”
“예약하신 호텔 근처에 맛집을 알아요. 그럴 분위기는 아니시겠지만……. 모처럼 일본까지 오셨으니까 근사한 저녁이라도 드시면 어떨까 해서요.”
“아, 네. 좋죠! 어딘지 알려 주시면 찾아가 보겠습니다!”
강민재가 반색하며 벌써부터 휴대폰으로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예상치 못하게 내일 바로 백금도로 향하게 되었으니, 태식이나 정혁도 많이 지쳤을 것이다.
입에 맛있는 거라도 물려 줘야 할 것 같다.
* * *
김미자가 추천해 준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각자 씻은 뒤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김미자 씨 연락이 좀 늦네요.”
허락을 받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김미자의 말에 금방 연락이 오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자정이 지나도록 휴대폰이 울리지 않았다.
출장을 가겠다는데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오다 사토시가 김미자에게 집착한다는 걸 생각했을 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에 다녀온 지 오래지 않은 시점인 데다, 가뜩이나 지난 방문 때 김미자가 갑작스러운 일정 핑계를 대며 혼자 한국에 머무르기도 했으니 의심스러울 법도 하겠지.
괜찮으려나.
“변호사님, 메시지 온 것 같은데요?”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김미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강민재가 불이 들어온 내 휴대폰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친분이 있는 재성대학교 교수에게 개인적으로 초청 받았는데 잊어버리고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했어요. 내일 나리타 공항으로 갈게요. 나리타 공항까지는 남편이 데려다준다고 하네요. 저는 주로 JAL을 이용해요. JAL 한국행 항공편으로 예약하고 연락드릴게요. 아무래도 출국심사대 너머에서 뵈어야 할 것 같네요.]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
사이 좋은 부부라고 생각해야 할지, 오다 사토시의 의처증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도 게이트 앞에서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김미자는 일본에서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우리와 같이 있었다가는 괜한 목격담이 뜰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행기 내부에서도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모른 체 가는 게 나을 것이고.
[항공편 예약하시고, 좌석 배정까지 하신 후에 편명 알려 주시면 저희도 맞춰서 예약하겠습니다. 게이트 뒤에서도 서로 모르는 체하는 게 좋겠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신 후에도 저희에게 아는 척하지 마시고 쭉 나오시면 저희 직원들이 차량으로 모실 겁니다. 재성대학교까지 모셔다드릴 거고,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으신 뒤 다시 저희가 준비한 차량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그때 타실 차량이 뭔지는 직원들이 알려드릴 겁니다.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김미자가 학회 출석이나, 인터넷으로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일정으로 둘러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오다 사토시가 설마하니 한국에서까지 사람을 붙일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재성대학교까지 들어가는 모습까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김미자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JL5119352편, 1A석이에요.]우리는 연락을 받자마자 김미자와 같은 항공편을 예매했다.
한국 도착 시각이 오후 4시경이라, 내일 바로 백금도로 갈 순 없을 것 같고 무평까지 이동한 후 1박하고 다음날 가장 빠른 배를 타는 게 좋겠다.
대충 계획을 수립한 후, 태식은 직원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김미자의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그녀가 한국으로 들어올 것이며 모레 백금도로 함께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일 그날 김미자가 가족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던 가족들에게 얼굴 한 번 정도는 보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 *
“저쪽, 김미자 씨랑 오다 사토시 같은데요.”
나리타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공항 입구 쪽으로 선글라스를 낀 김미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옆에는 오다 사토시가 있었고, 그 뒤로 김미자의 캐리어를 대신 끌고 수행원이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서둘러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 수속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흘긋 돌아본 곳에 보인 김미자는 체크인을 하는 내내 오다 사토시와 팔짱을 낀 채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티켓과 여권을 보여 주고 게이트 너머로 들어가려는 순간, 김미자 역시 게이트에 줄을 섰다.
김미자는 오다 사토시와 포옹하고, 가볍게 뺨에 입을 맞춘 뒤 손을 흔들었다.
오다 사토시 역시 멋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김미자의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보기 좋은 한 쌍의 부부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 기가 막혔다.
“차량 준비됐는지 확인해 봐.”
한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태식에게 물었더니, 그는 잠시간의 통화 후에 대답했다.
“공항 주차장에 저희가 탈 차는 대기 중이고요. 김미자 씨가 탈 차는 김미자 씨 나오면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김미자 씨가 탈 차량 번호랑 차종은?”
“9017, 벤츠요.”
“누가 왔어?”
“대섭이랑 형진이요.”
“그럼 한 명은 차에서 대기하고 한 명은 입국장에 나와서 김미자 씨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엇갈릴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그 길로 인천공항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고, 차에 탔을 즈음 김미자와 대섭이 만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신이 우리의 뒤를 밟고 있다면, 우리가 일본으로 향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고 긴장하고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각자 흩어져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김미자가 재성대학교를 찍고 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테니, 우리 역시도 집에 들렀다가 차를 바꿔 타고 무평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진영 휴게소에서 접선하기로 했다.
“검은 차 따라오네요.”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동안, 태식은 사이드미러를 여러 번 확인하며 말했다.
“뒤에 까만 차 보이시죠. 아까부터 계속 따라와요.”
“강 변하고 강 실장님 쪽에도 붙었겠는데.”
나는 강민재에게 차가 따라붙은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대섭에게도 연락하여, 혹시라도 차량이 따라붙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물론 우신에서는 오다 사토시가 집중 마크하고 있는 김미자의 동태까지 일일이 살피지 않을 테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
평소에는 이렇게 눈에 띄게 미행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꽤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인천 공항에서 나가는 도로가 그리 넓지 않은 것도 그들이 발각된 이유 중 하나겠지만, 우리가 일본으로 떠났다는 걸 확인하고 꽤 불안해한 게 아닐까 싶었다.
뭐, 검은 차가 따라다니는 삶은 짜증 나긴 하지만 견디지 못할 것도 없다.
여태까지 언제나 미행에 주의하며 살아왔고, 이전 삶에서도 검은 차가 마치 ‘지금 지켜보고 있으니 개수작은 부리지 않는 게 좋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따라붙는 것은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따돌릴까요?”
계속 뒤차가 거슬렸는지, 태식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이대로 가. 빌라로 들어가서 차 바꿔서 나오면 돼. 빌라에 차 대 놨지?”
“네. 근데 강 변 쪽은 어떻게 하려나요?”
그러잖아도 강민재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희 수일이 형네 들렀다가 가야 할 것 같아요. 수일이 형이 이 차 타고 평창동 들어가고, 저희는 수일이 형 차로 바꿔 타고 그대로 진영 휴게소로 갈게요.. 하 짜증나네요ㅋㅋ]얼추 시간을 맞춰 보니, 늦어도 오후 10시쯤에는 진영 휴게소에 모두 모일 수 있을 것 같다.
퇴근 시간에 맞물려, 서울로 진입할 즈음 차가 더럽게 막혔다.
그 바람에 쉴 시간도 없어서,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싸서 바로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다.
“차 좋네.”
이 빌라 주민이 탈 것 같지 않은 구형 차량은 안 된다고 말해 두긴 했지만, 이렇게 좋은 차를 빌려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리스 차량은 번호판을 보면 티가 나긴 하지만,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절세를 목적으로 리스 차량을 타는 사람은 많으니 이상해 보이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길로 진영 휴게소 쪽으로 향했다.
“……하, 정말 힘들었네요.”
밤 10시 반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모두 진영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미자는 꽤 지친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리타 공항에서는 그야말로 귀부인 같은 옷차림이었는데, 재성대학교에서 갈아입은 옷은 꽤 편해 보였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 같았다.
“김미자 씨, 고생 많으셨죠. 식사도 못 하시고.”
“아녜요, 괜찮아요. 근데 이제 괜찮은 건가요, 미행은?”
“네. 확인해 봤는데 미행은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저는 변호사님들이 이렇게까지 우신의 추적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정말 고생하시네요…….”
“항상 이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도 평소에는 거의 집과 회사만 오가는 편이라 그쪽에서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 때문에 괜히 고생하신 건가요?”
김미자가 미안한 듯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가 하는 일이 있어서 언젠간 일본으로 나갔어야 했고, 우신도 일본 쪽에서 하는 사업이 있으니 제 발이 저린 거겠죠. 다른 일 때문에 스위스에 간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이렇게까지 따라붙진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일단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고 무평으로 가시죠. 무평에 도착하면 아마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일 겁니다. 거기서 잠깐 눈 붙이고 첫 배 타고 백금도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김미자 씨를 여기까지 모신 직원들과는 잠시 헤어졌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실 때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와 동행하실 거고요.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우리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무평을 향해 달렸다.
김미자는 긴장이 풀린 건지 잠들었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나는 찬 바람을 쐬며 집에서 나올 때 챙겼던 알약을 삼켰다.
밤이라 거의 보이진 않겠지만, 곧 바다가 보일 것 같아서였다.
[변호사님, 저희 형제들 다 백금도 집에 모여 있습니다. 미자가 내일 오는 거지요? 변호사님 덕분에 이런 날도 오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밀린 메시지를 확인하다 보니, 김미자의 큰오빠가 몇 시간 전에 보낸 것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계속 미행에만 신경 쓰느라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답장하지 말까 하다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듯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무평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배를 타고 들어갈 예정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