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69)
너희들은 변호됐다-470화(469/641)
#470화
“이, 이럴 것이 아니여. 미자야, 밥은 묵었냐? 아침부터 배 타고 오니라 밥도 못 묵었을 것 가튼디……. 잠깐만 있어 봐야. 엄마가 우리 미자 좋아하는 서대 궈 줄라니까. 내 강아지 아직도 서대 좋아하제잉?”
“아니야, 엄마. 힘들게 뭐하러 그래요. 그냥 앉아 있어.”
“아니여. 엄마가 어제 시장 가갖꼬 미자 줄라고 사왔응께 쫌만 기다려잉. 선상님들도 아직이지라? 쫌만 계시쇼. 금방 차려서 올라니까.”
“그런데 자리가 없어서…….”
김미자가 부엌으로 향하는 모친의 뒤를 따라가려고 대청 밑에 놓인 하이힐에 발을 넣자, 모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를 다시 앉혔다.
“우덜은 아침 묵었응게 선상님들하고 같이 묵어야. 선상님들 서대라고 알랑가 모르것네. 우리 미자는 기양 궈 묵는 걸 좋아혔는디, 간장에 졸여서 묵어도 별미여.”
“아유, 어머님 힘드신데. 안 그러셔도 돼요. 저희는 그냥 근처에서 사 먹고 올 테니까 가족분들끼리 식사하세요.”
“잉? 아녀. 우리는 묵었당께.”
모친의 머리 위에 거짓 글자가 떠올랐지만, 나는 잠자코 강민재의 팔뚝을 잡았다.
아무리 김미자가 오해를 풀었다고는 해도, 갑자기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불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집을 비우는 건 좋은 선택 같지 않다.
“저희는 방에 들어가 있으면 됩니다. 변호사님들 미자랑 같이 식사하세요. 저희 어머님 음식 솜씨 좋으세요.”
“그려요. 아니, 변호사 선상님들이 우리 미자 찾아 주신 은인들이신디 다른 건 모대도 밥 한 끼는 대접해야지라. 뒤에 계신 분들도 언넝 올라오시쇼.”
장남과 차남이 마당에 서 있던 우리를 끌어당겨 대청에 앉히며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부친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이쪽을 보고 앉았다.
“아따, 집이 좁아갖꼬 불편했는디 인자 미자가 나타나서 이사도 갈 수 있것다. 나랑 성이 쩌참부터 쩌그 무평에 아파트 하나 얻어갖꼬 모시려고 혔는디 안 된다고, 안 된다고, 미자 언제 올지 모른다고 하셔갖꼬 이사를 못 갔당께.”
“……그랬어? 내가 너무 늦었네. 미안해, 오빠.”
“아녀, 아녀. 나는 엄마, 아버지가 역시 옳았다 싶다니께. 지성이믄 감천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여. 참말로……. 나가 환영을 보는 건 아닌가 싶다.”
“나 진짜야, 오빠.”
김미자가 풋 웃으며 넉살 좋은 차남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차남이 크게 웃으며 김미자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아따, 손도 조막만 허고. 어렸을 때랑 똑같네잉. 참말로, 어찌게 미자를 이렇게 다시 만나냐잉. 나 시방 꿈꾸는 것 아녀? 옴마, 왜 갑자기 다시 눈물이 나고 지럴이여…….”
차남은 코를 훌쩍였다.
그러자 김미자도 겨우 그쳤던 눈물이 다시 맺히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몰라. 오빠 때문에 나도 눈물 날 것 같잖아.”
“인자 우리 연락도 허고 살자. 잉? 일본에 산다고 혔응게 자주 보진 모더것지만, 그래도 미국같이 먼 나라가 아닌 게 을매나 다행이여. 일본은 가깝잔애. 한 번씩 얼굴도 보고……. 그러고 살자. 우리도 인자 엄마, 아버지 무평으로 모셔야 쓰것다. 이렇게 미자 만났응게.”
“응……. 그러자.”
“아, 글제. 미자가 우리 일본으로 초대도 해 줘야제. 가서 매부 얼굴도 보고, 우리도 일본 구경도 허고 그래야제.”
“그래야지…….”
김미자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결코 가족에게 오다 사토시를 소개해 주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어차피 가족들도 오다 사토시를 마음에 들어 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 겉보기에 번쩍번쩍하다지만, 꽃 같은 딸이 그 영감과 사는 꼴이 마음에 들 리는 없을 테니까.
“아휴, 엄마, 아버지도 인자 큰 병원 가까운 데서 사셔야혀. 연세를 잡수셨응게.”
“그래야지. 근데 그럼 차라리 서울로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서울에는 큰오빠도 있으니까.”
“서울은 비싸잔애. 이 집 팔아 봤자 돈이라도 제대로 받것냐. 팔리지도 않을 거신디.”
“나도 좀 보탤게. 모아 둔 돈 있어. 무평 집값은 잘 모르지만, 나도 같이 보태면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거야.”
“무신 소리여! 네가 뭐땀시 돈을 보태!”
가만히 듣고 있던 부친이 소리쳤다.
“왜요, 아빠. 나도 아빠 딸인데…….”
“안 디야. 그건 안 될 말이여. 우리가 부모라고 해 준 것도 없는디 그런 건 절대 안 될 말이여. 우리 미자가 사우랑 결혼할 때도 혼수도 하나 못 해 줬는디……. 우리가 너 학비를 대 준 적이 있냐, 어른 되고 예쁜 옷을 사 준 적이 있냐. 우리가 뭐 해 준 게 있다고 너한테 돈을 받어. 절대로 안 될 말이여.”
“그래, 미자야. 우리도 그건 좀 불편하다. 그리고 무평에도 도심으로 가면 큰 병원 있어. 무엇보다 친척들이나 지인분들도 다 그 근처에 계신데 갑자기 서울 오시면 좀 불편하실 거야.”
“그런가…….”
미자는 시무룩해졌지만, 서운해할 새도 없이 부엌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 상 차리시나 보다. 오빠들이 갖고 올 테니까 여기 있어.”
장남과 차남이 일어나려고 하자, 내가 태식과 정혁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쏜살같이 부엌으로 달려가 대신 커다란 상을 들고 대청마루에 내려놓았다.
“우리 강아지 째깐할 때 좋아하던 것들로다가 차렸는디, 입맛이 안 바뀌었을까 모르것어. 내 강아지 지금도 소시지 좋아허냐?”
상 위에 오른 생선구이와 해산물들, 각종 나물 등은 향토적인 분위기를 냈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계란 물을 입혀 부친 분홍 소세지였다.
“아따, 그라고 봉께 우리 미자 소시지에 환장혔는디.”
안방에 앉아 있던 차남이 낄낄 웃으며 거들었다.
“엄마가 나랑 성 도시락 싸는디 분홍 소세지 부치믄 미자가 날름 묵어 치워갖꼬 오빠들이 묵을 것이 없었잖애.”
“우리 미자, 얼른 묵어라잉. 나가 죽기 전에 소원이 내 강아지한테 밥이라도 한번 해 묵이는 거였는디……. 이렇게 소원을 이뤄불고……. 아따, 어찌게 이런 일이 다 있냐.”
“변호사님들이 고생해 주신 덕분이에요. 내가……. 내가 엄마랑 아빠 만나기 싫다고 했는데, 변호사님들이 찾아 주신 거예요. 오해 풀어 주시려고, 나 도와주시려고…….”
김미자가 다시 촉촉해진 눈가를 손수건으로 찍어내며 말했다.
그러자 모친이 나와 강민재의 손을 한 쪽씩 잡고 고개를 숙였다.
“선상님들, 참말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게 갚는다요. 나가 참말로 변호사 선상님들한테 큰 빚을 져부렀네…….”
“아니에요, 어머님. 저희도 이렇게 오해 풀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강민재는 연신 허리를 숙여 대는 김미자의 모친을 부축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아따, 엄마! 밥상 앞에서 뭐더는 거여. 밥 다 식것소. 미자야, 선상님들. 언능 식사부터 하소. 엄마는 일로 오쇼. 방해된께로.”
“나가 생선 까시 발라 줘야 쓰는디……. 인자 안 울게. 참말로 안 울게.”
모친은 눈물을 닦으며 김미자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김미자는 천천히 수저를 들어 올렸다.
낯선 환경이긴 했지만, 여기서 식사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나 역시도 수저를 들었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었다.
모친은 생선을 하나하나 손으로 발라서 김미자의 밥그릇에 놓아 주었다.
김미자는 고슬고슬한 쌀밥을 떠서 통통한 생선 살과 함께 입에 넣었다.
김미자가 우물우물 음식을 씹는 동안, 모친의 눈은 그녀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김미자는 한참 동안 음식을 씹더니 꿀꺽 삼키고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맛있다.”
“내 새끼, 맛있어?”
“응, 너무 맛있어……. 옛날 생각나. 너무 맛있고, 너무……. 너무 먹고 싶었어.”
“이거 묵고 더 묵어야. 밥 많이 했응게. 잉?”
“응…….”
강민재는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밥을 푹푹 떠먹고 있었지만, 어째 우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장남과 차남은 설거지를 하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우리가 없는 곳에서 김미자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서, 태식과 정혁에게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라고 말한 뒤 잠시 대문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작은 정자가 있어서, 그 위로 올라갔더니 깡통으로 된 재떨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산책이나 좀 하다 들어가면 되겠지 싶어, 강민재와 나란히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김미자 씨.”
“그러게.”
“이렇게 만나고도 오해가 안 풀리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 안 하시겠죠?”
“그렇지 않을까. 김미자 씨가 죽고 싶었던 이유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김미자 씨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았어.”
“그쵸. 그때 호텔에서도, 김미자 씨가 누가 본인 같은 과거가 있는 사람을 사랑해 주냐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어머님, 아버님도 계시고. 오빠들도 있고. 이웃분들도 다 좋은 분들인 것 같아요. 그 길두라는 기사님만 봐도요.”
강민재는 담배 연기를 길게 뱉으며 조용히 재를 털었다.
“생선 가시 발라 주는 어머님 보니까 갑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 있죠. 어릴 때 저희 할아버지도 저한테 생선 발라 주셨었는데.”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알아서 먹겠다며 그만 발라 달라고 했지만 말이다.
부모가 되어 보진 않았지만, 다 똑같지 않을까.
김미자의 부모는 더더욱, 그렇게 아끼는 딸을 33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아무리 마흔여섯이 된 딸이 눈앞에 있어도, 그들의 눈에는 열셋으로 보일 것이다.
일본에서 누가 김미자에게 생선을 발라 주었겠는가.
그녀가 오다 사토시의 생선을 발라 주었다면 몰라도.
“변호사님.”
그때, 등 뒤에서 김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김미자가 정자 위로 올라와서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강민재가 급하게 담배를 끄려고 하자, 김미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그냥 피우세요. 담배 피우는 분들은 밥 먹으면 꼭 피워야 한다던데.”
“아닙니다. 다 피웠어요. 근데 왜 나오셨어요? 부모님이랑 하실 말씀 많으실 텐데.”
“음…….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요.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서, 듣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이네요.”
그녀는 성 착취를 당하며 살아왔던 오랜 세월을 ‘공장과 학교를 다니며 보냈다’는 모호한 말로 둘러대었다.
나 역시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33년 만에 만난 부모에게 바로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털어놓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를 부르는 호칭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런 사람들이 김미자가 모진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면, 정말로 큰일이 날지 모른다.
“감사해요, 정말. 그리고 죄송해요.”
“뭐가 미안하십니까.”
“저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신 것 같아서요.”
김미자는 하이힐 뒷굽으로 바닥에 뭉친 흙을 쪼개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제가 죽겠다는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일본에, 백금도에, 여기저기 오가실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 마음도 무거우셨을 테고…….”
그녀는 손톱끼리 툭툭 부딪치며 발끝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안 해도 되는 고생이 아니라, 하길 잘한 고생으로 만들어 드리려고요.”
김미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제가 필요하시다면,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증언할게요. 필요한 자료도 드리고,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이상의 일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고, 결심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뇨, 저……. 우신이 망할 확률을 더 높이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부모님하고, 오빠들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신이 확실히 망해야 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저도 불안해질 테니까.”
“김미자 씨.”
“제가 도와드리면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게요. 변호사님들이 하시는 일에 꽤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더 이상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는 기존의 의견을 견지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로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굳게 결심한 듯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하는 김미자의 눈빛이 여태까지 그녀에게서 찾아보지 못한 생명력으로 넘쳐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