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74)
너희들은 변호됐다-474화(474/641)
#474화
“어머, 안녕하세요!”
무표정으로 서울 우신 병원 1층 벤치에 앉아 있던 윤세연은 사진 속 얼굴의 의사가 다가오기가 무섭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났다.
“아, 혹시 일중일보…….”
“네! 아, 선생님 바쁘신데 제가 괜히 취재한답시고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어떡하죠?”
윤세연은 언죽번죽 의사에게 말을 붙이며 그를 끌고 1층 카페로 향했다.
“커피 뭐 드실래요? 아메리카노? 라떼? 아! 더 비싼 것도 괜찮아요.”
빠르게 말을 쏘아붙이는 통에, 의사는 얼결에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를 골랐다.
윤세연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를 주문한 뒤 카드를 내밀었다.
물론 이 카드는 윤세연의 개인 카드도, 일중일보의 법인 카드도 아니었다.
최종현이 건네준 차주한의 카드였다.
참고로 최종현은 한도가 없는 것으로 추정되니 마음껏 써도 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슬쩍 사도 차주한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도 전에 이 카드를 받아서 쓴 적이 있었는데, 100만 원 정도를 결제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윤세연은 그래서 노트북을 새로 살 생각이었다.
물론 새 노트북은 윤세연의 이름을 빌려주는 대신 받는 포상치고는 차고 넘치긴 한다.
하지만 알 바인가?
어차피 차주한은 부자다.
금전 감각이 약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여태까지 자신이 도움을 준 일도 많으니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넘길 것이다.
새 노트북을 생각하니 이렇게 직접 나와 대신 취재하고, 영업용 미소를 짓는 것쯤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유, 우리 선생님 뵙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어째.”
“아……. 아무래도 선배가 좋지 않은 일로 사망한 일인데, 제가 거기에 말을 얹어도 될지 좀 고민스럽기도 하고요…….”
“또요?”
“또……라니요?”
“방금 ‘하고요’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럼 뒤에 하실 말씀이 더 있다는 뜻 아니겠어요?”
“아, 아뇨. 그런 건 없는데…….”
“음, 있는 것 같은데. 아! 음료 나왔다. 제가 가지고 올게요. 그동안 더 하실 말씀 생각해 두기!”
윤세연은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진동벨을 가지고 카운터로 향했다.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대화 스킬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여러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그녀로서는, 말주변 없어 보이는 젊은 의사를 구워삶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기자 짬이 얼만데.
취재 요청도 재차 거절하던 그와 기어이 만남까지 성사시키지 않았던가.
아주 혼을 쏙 빠지게 해 주마.
“자, 여기 딸기 요거트 프라푸치노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두셨어요?”
“예?”
“저랑 안 만나려고 하신 이유. 원래 말씀하시려고 했던 거잖아요. 근데 뭔가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말문을 턱 막은 거죠. 맞죠?”
“아니……. 뭐, 그렇긴 한데요.”
“막, 막, 엄청난 비밀이에요?”
윤세연이 상체를 낮추고 속삭이며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눈을 끔뻑끔뻑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세연은 귀에 손을 갖다 댄 채 의사에게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들이밀었다.
“저만 알고 있을게요. 기사에 절대 안 낼게요. 아니, 뭐 사정을 알아야 저도 수위를 조절할 수 있잖아요.”
“그건 그렇죠. 음, 그럼 정말 기사에 내시면 안 돼요.”
“네. 약속. 새끼손가락 걸게요.”
윤세연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의사가 어색하게 그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자, 사인. 복사. 공증. 코팅. 됐다!”
의사로선 언제 공증까지 받은 건진 알 수 없지만, 윤세연은 뻔뻔하게 손을 탁탁 털며 다시 몸을 낮췄다.
“자, 말씀해 보세요.”
“위에서 최 쌤 얘기 흘리지 말라고 주의가 내려왔어요. 그러니까, 단톡방으로요.”
“누가 올렸는데요?”
“단톡에는 치프가 올렸는데, 교수님 얘기 듣고 올린 것 같던데…….”
“교수님이면 임현일 교수님?”
“뭐, 그렇죠.”
“그렇구나……. 근데, 왜요? 최재훈 씨는 사고로 돌아가신 거지, 사인은 병원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굳이 이야기 흘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요?”
“그래도 병원에 소속된 사람이니까 괜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병원도 같이 묶여서 얘기가 나와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근데 병원 측에서도 최재훈 씨 추모하는 내용의 글 SNS에 게시도 하고 그랬던데. 정말 병원이랑 묶이기 싫었으면 어차피 언론에는 모 대학 병원 의사라고만 공개된 건데, 굳이 추모글 안 올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럼 모를 사람은 몰랐을 거고.”
윤세연의 말에 의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요. 근데 뭐, 최 쌤 돌아가신 게 막, 그러니까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뭐, 치프 말로는 자꾸 병원으로 기자들이 전화가 오는 것 같대요. 현장 가스 농도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현장 가스 농도’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의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 문제 때문에 기자들이 물고 늘어지는 건데, 혹시 윤세연이 그 사실을 몰랐다면 자신이 괜히 소스를 준 셈이 되는 것이 아닌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쩔 줄을 모르는 그를 향해, 윤세연은 손을 휘휘 저었다.
“걱정 마세요. 어차피 알고 있었으니까. 제가 명색이 일중일보 기자인데 그걸 몰랐으려고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저희 일중일보하고 우신이 어떤 사이예요.”
“그, 회장님 아내분이 일중일보 직계 가족이라고 들었는데…….”
“그쵸! 그니까 뭐라도 우신에 불똥 튈 만한 기사는 절대 안 쓰죠. 솔직히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온갖 언론사 기자들이 들쑤시려고 난리인데, 그쪽으로 기사가 나가면 자극적일 거 아니에요.”
“네, 그렇겠죠…….”
“근데 우리 쪽에서 나가면 순화돼서 나갈 거고. 그럼, 사람들도 어느 정도 궁금한 것도 풀리니까 납득을 하겠죠.”
“그렇긴 하죠…….”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죠? 익명성은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또, 선생님이 내지 말라고 하신 건 안 낼 거고, 제가 봤을 때도 좀 거시기 한 건 또 알아서 거를 거예요. 어차피 저희 윗선에서 우신에 흠집 나는 기사는 컨펌도 안 해 줘요.”
의사가 윤세연의 말에 감기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처음 만났을 땐 ‘하도 난리라서 일단 만나는 준다’라는 표정이었는데, 이제는 슬슬 입이 근질근질한가 보다.
“저희가 취재를 하게 된 계기도 그거예요. 그냥 가스 농도가 어떻고, 이런 떠도는 논란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기사를 쓰자. 그러니까 일단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해 주시고, 제가 적당히 잘 엮어 볼게요. 알았죠?”
“네…….”
“그럼 일단 시작해 볼게요. 녹음할 건데, 이건 일중일보 윗선에 보고되는 건 아니에요. 제가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녹음하는 거거든요. 사실 동의 없이 녹음해도 되는데, 안 그래도 선생님이 힘들게 시간 내 주신 건데 제가 도의적으로 허락 받는 게 맞겠다 싶어서. 괜찮으시겠어요?”
윤세연의 물음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윤세연이 상당히 인터뷰이를 보호하고 싶어하고, 큰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일단……. 최재훈 씨가 상당히 실력 있는 의사였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어떠셨는지, 일화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맞아요. 최 쌤은 정말 타고난 써전이었어요. 전설이었죠. 진짜 빨리 배우고, 수술도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시고. 저희한테도 팁을 알려 주신 적이 있는데, 그걸 눈으로 분명히 봤는데도 따라 할 수 있는 애들이 별로 없었어요.”
“와, 그러셨구나. 그럼 아무래도 환자들이 아주 믿음직스러워했겠네요.”
“음……. 그렇, 죠. 아무래도.”
의사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윤세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혹시 아닌가요?”
“네?”
“사실 뛰어난 의사라고 해서 환자와 관계가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음, 최 쌤이 문제가 있었다기보단 친절한 성격이 아니시다 보니까 환자분들이 선호하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뭐 이 정도예요.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정말로요.”
“아하. 그러고 보니, 최재훈 씨가 좀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은 뭐랄까,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렵잖아요. 대하기 어려우셨겠어요.”
“아, 이미 아시는군요. 그렇죠. 좀 어려운 분이었죠. 그러니까 좋은 분이라는 건 알아요. 그냥 환자분들이 원하시는 그 친절한 의사가 아닐 뿐이지, 예의 없으신 건 아니었고요. 저희한테도 잘해 주시긴 했는데 뭔가……. 다가가기 힘든? 친해지기 힘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네. 그리고 보통 다른 쌤들이라면 화를 냈을 타이밍에도 화를 안 내셨어요. 그냥 조용하셨고…….”
“그럼 윗분들하고의 관계도 좋았겠네요. 그러니까, 교수님들이라든지.”
윤세연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의사는 마시지 않던 음료를 오랫동안 빨아 먹었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해도 되는지 가늠해 보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고민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윤세연은 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솔직히 저희 회사에도 최재훈 씨 같은 성격의 선배님이 한 분 계셨거든요. 그분은 윗분들한테도 참 잘했어요. 안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후배들한테도 화를 안 내는 분인데, 윗분들 눈에 거슬리게 구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근데…….”
“그런데요?”
“아니, 그분이 어느 날 갑자기 부장님하고 얘기를 하다가 언성을 높이는 거예요.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 분이다 보니 다 놀라서 쳐다봤죠. 근데 그분이 거기서 책상 위에 있는 걸 쓸어서 바닥에 다 떨어트려 버리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막 그러다가 그 자리에 사직서 올려놓고 짐 싸서 집에 가 버리더라구요! 놀라운 건, 그 뒤로는 아무도 그 선배 소식을 몰라요.”
“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는 완전 아노미 상태였어요. 이게 뭐냐. 저 선배 혹시 귀신 씐 거 아니냐.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그러니까.”
“그러셨겠네요.”
“그게 생각이 나서, 최재훈 씨는 어땠을까 싶었던 거예요.”
사실 일중일보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차주한은 본인이 유추하고 있는 최재훈의 정보를 알려 주었고, 또한 최재훈이 임현일과 어떤 관계였는지를 확인해 보라고 강조했다.
어느 정도 갈등이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하면서.
그래서 윤세연은 의사에게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로 했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사실 사람이란 게. 모두가 감정이 있잖아요. 아무리 착한 사람도 화나는 일이 있고, 그때그때 화를 못 내고 넘어가면 스트레스로 쌓이기 마련이니까. 그 선배는 그런 스트레스를 제때 해소를 못 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터져 버린 거죠.”
“하긴, 그렇네요. 저희도 최 쌤을 보면서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어떻게 저걸 그냥 넘어가나 싶을 때가 많았어요. 집에 임현일 교수님 사진 붙어 있는 샌드백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 아니다, 다트판에 임현일 교수님 사진 붙여 놨을 거다. 뭐, 그런 우스갯소리를 했었죠.”
차주한은 최재훈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분명히 분출구가 하나 있을 거라고.
그게 뭔지 알게 되면, 많은 것을 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럼 임현일 교수님하고 뭐 트러블이 있었던 거예요?”
“임현일 교수님이 본원으로 오신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물론 엄청 실력 있으신 분이고, 결격 사유가 있다,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의사는 자신이 말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덧붙였다.
이것만 봐도 자신이 얼마나 인터뷰이를 잘 골랐는지 알 수 있었다.
말주변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불쑥불쑥하고 싶은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스타일인 듯하다.
“아유, 그럼요. 알죠.”
“근데 그 교수님이 좀 최 쌤한테 고생을 많이 시켰어요. 수술방에서든, 어디서든. 이건 자세히 말씀을 못 드릴 것 같아요.”
“아, 이해하죠. 내부 사정이잖아요.”
“네. 근데 최 쌤답게 잘 버텼어요. 우리 모두 다 교수님이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할 때, 최 쌤 혼자 본인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한 인턴이 그런 걸 들었더라고요.”
의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게 뭔데요?”
윤세연도 자연스럽게 속삭이듯 물었다.
“옥상에서 통화하는 소리요.”
“통화?”
“네.”
“무슨 내용이었는데요?”
“막……. 어떤 사람한테 쌍욕을 하고, 되게 나쁜 말을 하고……. 진짜 수준 떨어지는 내용이어서, 누가 저런 말을 하나 하고 올라가 봤는데 그게 최 쌤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