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75)
너희들은 변호됐다-475화(475/641)
#475화
쌍욕!
이것이 차주한이 기다리던 분출의 타이밍이 아니었을까?
아랫사람들에게도 화내는 일 없고, 윗사람에게도 깍듯했다던 사람이 타인에게 상스러운 소리를 했다지 않은가.
윤세연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혹시 정확한 내용도 아세요?”
“음, 근데 뭔가 고인이신데……. 괜히 욕보이는 건 아닌가 싶어 가지고…….”
막상 말을 하려니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산 사람 뒷담화도 조심하게 되는데, 죽은 사람 뒷말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윤세연은 어떻게 구워삶아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최재훈의 분출구로 추정되는 것을 찾았다.
그렇다면 분출구가 정확히 어디인지 특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표출했는지 알아내면 차주한이 준 미션을 완수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윤세연은 이 의사가 말한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단서라도 찾아서 돌아가야 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입을 열었다가 괜히 우신 병원 쪽에 불똥이 튈까 봐 염려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가 사실대로 말하는 게 오히려 다른 쪽으로 시선이 돌릴 방법이라고 말해 주면 마음을 편히 갖지 않을까?
“사실, 아까 선생님이 하신 말씀 있잖아요. 현장 가스 농도요.”
“아, 네.”
“다른 기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희 일중일보 쪽에선 원한에 의해 벌어진 사고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예? 원한이요?”
“근데 최재훈 씨는 병원 내부에선 워낙 평가가 좋은 분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병원 내부에 원한을 산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되고요. 그러니까 사적으로 아는 사람 중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렇……긴 합니다만,”
“선생님이 말씀을 꺼리는 이유는 물론 최재훈 씨가 고인이셔서 그분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윤리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겠지만, 괜히 우신 병원에 불똥이 튈까 봐 염려하시는 거잖아요.”
“네, 그렇죠.”
“근데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 쪽으로 조명하면, 우신 병원은 기자들의 이상한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의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우신에 똥물 안 튀기게 하려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사고가 정말 우연에 의한 것인지, 의도적으로 발생된 것인지는 저도 아직 몰라요. 그냥 가능성만 열어 두는 거죠. 그러니까 선생님이 아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시면, 우신에 불똥이 튀지 않게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세연의 진실된…… 것으로 치장된 눈빛을 확인한 의사는 다시 한번 결연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잖아도 우신 병원 이미지 손상은 자신에게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윤세연의 말을 들으면 가스 폭발이 고의적으로 일어난 것이고, 우신 병원 측으로 문의가 쏟아지는 이 상황은 마치 우신 병원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번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익명성도 보장받았겠다, 몇 마디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이 속한 병원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걸 막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의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직접 들은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와전됐을 수도 있어요. 이건 감안하고 들으셔야 해요.”
“그럼요. 원래 말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살이 붙기 마련이죠.”
“네. 음……. 그러니까 최 쌤이 그 상대방이랑 엄청 싸우고 있었다고 해요. 근데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였다고 하거든요. 근데 뭐 씨로 시작하는 욕부터 해서, 성적인 욕설까지 막 있었고요.”
“성적인 욕설이요?”
“네. 그건 제 입에 올리기가 좀 민망한데……. 아무튼, 성관계를 가진 사이에서 상대방을 폄하할 때 쓰는 말 같은 거요.”
“아, 네. 이해했어요.”
“일단 그것부터가 충격이었죠. 성인군자 같던 사람이 그런 욕을 입에 올린다는 게. 그래서 와, 최 쌤도 사람이구나. 근데 좀 생각보다 저급하시구나…….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요.”
“혹시 욕설 말고 대화 내용 같은 건 없었다고 하나요?”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근데 최 쌤이 상대방을 때리겠다고 예고하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대요. 집에서 보자고 하면서요.”
“집에서 보자고 했다고요? 그럼 동거라도 하는 걸까요?”
“그건 모르죠. 근데 최 쌤이 상대방을 때리겠다고 예고한 게 마음에 걸리긴 하거든요. 동거하는 분이든, 아니면 집에서 데이트를 하는 분이든, 어쨌든 여자를 때리겠다고 한 거잖아요. 실제로는 안 때렸다고 해도요.”
윤세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통화 내용이 사실이라고 치면, 밖에선 성인군자처럼 굴고 집안에서는 개가 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최재훈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면, 차주한이 찾으려던 그의 분출구는 여자 친구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최재훈 씨의 여자 친구인 건가요?”
“그럴 것 같긴 한데요. 근데 또 이상한 거는…….”
“이상한 거요?”
“네. 돌아가시기 한 4일 정도 전에 소개팅을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사실 주기적으로 소개팅이나 선 자리가 들어와서 거기 나가시곤 했어요.”
“그 통화는 언젠데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이요. 소개팅을 받았다는 건 본인이 솔로라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소개팅 받은 분하고 이틀 내에 그렇게 험담 오갈 사이가 되진 않았을 거고.”
“흠, 그런데 소개팅을 받는다고 해서 다 솔로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요?”
“왜요?”
윤세연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쉴 뻔했다.
인터뷰이를 잘 골랐다고 안심해야 하는 걸까.
이 의사는 너무나도 순진한 사람인 듯하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연애와 결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 어쩌면 최재훈이 너무 올바른 사람이라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었을 무렵, 의사가 덧붙였다.
“하지만 최 쌤은 여친 두고 소개팅 나갈 인성은 아니긴 한데……. 근데 또 그런 말을 최 쌤이 했다면, 우리가 모르는 얼굴이 있는 걸 수도 있긴 하죠. 사실 저는 지금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최 쌤에 대해 우리끼리 얘기를 맞춰 보기도 전에 사고가 일어나서 저희도 혼란스러운 상태예요.”
“어쨌든 원한 관계가 존재한다면 그 폭언을 했다는 여자 친구분일 수 있겠네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
의사는 여자 친구가 가스 폭발을 일으켰다고 믿는 듯했다.
사실 가스 폭발을 일으킨 것은 우신이긴 한데, 뭐 아직 공개될 단계는 아닌 것 같으니 그냥 알아서 오해하게 놔둬야겠지.
그 오해가 퍼져서 괜히 여자 친구가 의심받는 일이 없도록 의사의 입만 확실히 막아 두면 되는 일이다.
뭐, 의사는 내부 이야기 바깥에 줄줄 흘린 놈으로 찍히기 싫어서라도 입을 다물겠지만.
차주한은 재수 없게도 가스 폭발을 누가 일으킨 것 같냐는 윤세연의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윤세연이 가스 폭발을 일으킨 게 우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촉 때문이었다.
차주한이 가스 폭발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다, 이를 조사하고 있다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는 우신만 물어뜯는 사람이니까.
자신을 이용해 먹으면서도 정보 공유는 전부 다 해 주지 않는 차주한이 원망스러워졌지만, 아무렴 어떤가.
새 노트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멋지게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갈 생각으로 윤세연은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그럼 혹시 최재훈 씨 여자 친구분 정보를 아시는 분은 없을까요?”
“글쎄요……. 저희도 그 통화 엿듣기 전에는 여자 친구 있다는 걸 몰랐고요. 여태까지 여자 친구 얘기하면 최 쌤은 항상 솔로 앞에서 말 삼가라고 장난을 치셨거든요.”
“그러니까, 여친의 존재를 기를 쓰고 숨겼다는 거네요.”
“그렇죠. 아, 근데 그 통화 엿들은 사람이 상대방 이름을 들었다고 했어요.”
“이름이 뭔데요?”
“성은 모르겠고, ‘또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냐, 지우야’라고 했대요. 그럼 이름이 지우인 거 아닐까요?”
윤세연은 수첩에 ‘지우’라는 이름을 받아적었다.
수사기관이 아닌 입장에서 최재훈의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꼭꼭 숨겼다면 그 지우라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차주한이 어떻게든 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어쨌든 그가 준 미션은 완수했다.
최재훈의 분출구는 여자 친구였으니, 그녀를 찾아서 만나 보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
“이제 끝난 건가요?”
윤세연이 수첩을 접자, 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려다 다시 수첩을 열었다.
“아, 마지막으로요.”
“네.”
“임현일 교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최재훈 씨를 괴롭혔는지는 내부 사정이라 말은 못 하겠다고 했잖아요.”
“아, 네.”
“그럼 대충 힌트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인격적으로 모독했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요.”
“음, 음…….”
의사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윤세연은 이제 그에게서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의사는 지금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므로.
“간단하게 말하면 뺑이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약간, 그만두게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하나요. 네가 이것까지 버티는지 어디 한번 보자. 이런 식으로요.”
긴 고민 끝에 의사가 내놓은 말이었다.
이해했다.
윤세연은 수첩에 ‘좆뺑이’라고 적어 놓은 뒤,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오늘 저희 얘기한 거, 특히 여자 친구분 얘기라든가, 가스 폭발이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든가, 그런 건 꼭 비밀로 지켜 주세요.”
“아, 어차피 기자님 만난 얘기 아무한테도 안 할 거예요. 괜히 저한테 불똥 튈 수도 있잖아요. 그 점은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취재 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끝난 건가요?”
“네. 끝났습니다. 근데 혹시 제가 추가로 궁금한 게 생기면 연락드려도 될까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었고, 윤세연 역시 가방에 자신의 물건들을 집어넣으며 흘리듯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때문에 저러나 싶어 윤세연이 빤히 쳐다보자, 의사는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두 주먹을 꽉 쥐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취재 말고 다른 일로도 연락 주셔도 되는데…….”
“……네?”
뭔 개소리지.
윤세연은 굳은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냥……. 아무 때나, 밥 같은 거……. 한 끼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 이 자식 봐라?
예쁜 건 알아 가지고.
여태까지 취재를 다니면서 이렇게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자신의 빼어난 외모 때문이겠거니 생각하고 넘길 수 있다.
그래도 이 의사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다.
이 일 하면서 자신에게 이상한 방식으로 추파를 던진다거나, 심지어는 일중일보 본사 앞에 서서 기다리던 놈도 겪어 봤다.
아, 자신의 자리로 꽃을 보냈던 미친놈도 있었고.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차단하고 자신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다년간 연마했다.
윤세연은 다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취재하다 안 풀리는 거 있을 때! 만! 연락드릴게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감사했어요!”
윤세연은 의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왔다.
하여튼, 친절하게 대해 주면 어떻게 해 보려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꼭 한 명씩은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