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76)
너희들은 변호됐다-476화(476/641)
#476화
[한영 카드 7*0*승인차*한
1,497,000원 일시불
04/18 14:28
한영스토어]
갑자기 울린 휴대폰 알림에 문자를 확인했더니,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한영스토어라면 한영전자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인데, 여기서 갑자기 일시불이 왜 긁혔지.
이제 사용하는 카드가 많아져서, 이게 무슨 카드였는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 이름으로 문자가 왔으니 법인 카드는 아니겠고.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개인 카드는 한영 카드가 아니니까 제외하고.
태식과 상길에게는 체크 카드를 줬으니 일시불로 긁힐 리가 없고.
문자함을 위로 쭉 올려 보며 결제 내역을 확인해 보고 나서야, 나는 예전에 최종현에게 방송에 필요한 게 있으면 사라고 주었던 카드였음을 깨달았다.
이제 방송으로도 어느 정도 벌리는 데다, 국정원이 만들어 준 사이트에 광고를 달아 어느 정도 수익이 생겼으니 카드는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혹시 모르니 갖고 있으라고 했더니, 역시 쓸 일이 생겼나 보다.
그럴 만도 하다.
그때 L&B 건을 터트리려다 내가 물고기 밥이 될 뻔한 이후로, 최종현과 조봉준은 추가 조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겠다는 짧은 공지만을 남겨 둔 채 방송을 켜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달풍선 수입도 없고, 방송이 뜸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적어졌다.
그러니 사이트에 달아 놓은 광고 수익도 예전만 못할 수밖에.
조봉준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돌아오라는 시청자들의 댓글이 달린다고 한다.
그들에게 우리가 무얼 하고 있는지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할 따름이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딱히 방송에 필요한 물건을 샀을 것 같진 않은데.
뭐, 필요한 데 썼겠지.
“변호사님, 윤 기자님한테 소식 없었어요?”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갑자기 강민재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이제 노크도 안 하네.”
“아, 죄송합니다.”
강민재는 열린 문 위를 노크한 뒤 뻔뻔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라도?”
“됐어. 아무튼 아직 연락은 없네. 알아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야.”
“며칠 지났는데 아직도요? 윤 기자님 성격에 벌써 취재 나갔을 텐데.”
“그러게. 정보가 잘 안 모이는 건가.”
“중간 보고도 없어요?”
윤세연과의 통화는 우리 대신 일중일보 기자 신분으로 취재를 해 달라고 말하기 위해 연락한 게 마지막이다.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강민재는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로 고개를 푹 숙였다.
“기자 이름 달고도 취재가 어려운 거면, 우리가 직접 나서도 확인하기 어렵겠는데요?”
“시간이 오래 흐른 것도 아니고, 뭐 취재차 만나기로 한 사람이랑 약속 잡기가 힘들어서 아직 못 만난 걸 수도 있지.”
“하긴 그렇네요. 그럼 얌전히 기다려야겠다. 슬쩍 연락해서 어느 정도 조사 됐냐고 물어보면 좀 그렇겠죠?”
“괜히 보채지 마.”
“넵.”
강민재가 사무실을 나설 무렵, 컴퓨터 화면에 작은 알림창이 떴다.
윤세연으로부터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었다.
바깥으로 한 발을 내디뎠던 강민재는 알림 소리를 들었는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누구 연락이에요?”
“윤 기자.”
“헐. 드디어 뭘 건진 건가? 저도 같이 봐요.”
강민재가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 와 붙어 앉았다.
나는 그에게서 조금 더 거리를 두기 위해 의자를 왼쪽으로 옮긴 뒤, 메일함을 열었다.
[제목 : ㅎㅎ~내용 : dd
첨부파일 : 5개]
제목도, 내용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첨부파일을 열어 보면 알 수 있을까 싶어, 첨부파일을 모조리 다운받았다.
음성 파일 4개와 문서 파일 1개였다.
아무래도 문서 파일을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싶어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는데, 갑자기 내선 전화가 울렸다.
“네.”
─변호사님. 윤세연 기자가 왔는데요.
“여기 말입니까?”
─네. 어, 윤 기자! 막 들어가면.
“변호사님! 메일 받으셨죠?”
오 사무장이 말릴 새도 없었다.
사무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윤세연이 힘차게 안으로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오 사무장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지금 문서 파일 열었습니다.”
“네에. 아, 제가 노트북을 새로 샀더니 메일도 빨리 가고 정말 좋네요.”
“그러셨습니까. 어쨌든, 내용을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스크롤 내리면서 대충 훑어보니 그사이 조사를 많이 하신 것 같네요.”
“어머. 진짜 모르네.”
“뭘 모른단 말입니까?”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통화로 설명드릴까 하다가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밥도 얻어먹을 겸 직접 왔어요. 수고비는 이제 그거면 되거든요.”
윤세연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 수고비를 줄 순 있겠지만, 준다면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밥만 사 주면 되는 정도라면, 평범한 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꽤 비싼 걸 사 줘야겠는데.
“근데 최 선배는 언제 오시지? 여기 오면서 연락드렸는데.”
“최 선배 여기 있다.”
그때 내 사무실 문이 빼꼼 열리며 최종현이 얼굴을 쏙 내밀었다.
“회의실로 갈까?”
조봉준이 회의실 쪽을 턱짓하며 말했고, 우리는 모두 그쪽으로 이동했다.
윤세연은 회의실에서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빔 프로젝터와 연결하기 시작했다.
애지중지 다루는 것을 보면 이게 그녀가 말한 새 노트북인가 보다.
“그럼 시작할게요. 차 변호사님한테 4개의 음성 파일을 보내드렸거든요. 그건 전체 대화 내용이니까 필요하실 때 천천히 들으시면 되고, 이 문서 파일에는 중요한 내용만 뽑아서 정리해 뒀어요.”
윤세연은 휴대용 레이저 포인터를 꺼내 들고 스크린에 띄워진 이미지를 가리켰다.
“일단 제가 처음 만난 사람은 우신 병원 외과 레지던트로 있는 이 사람이에요. 차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최재훈은 병원에서 거의 성인군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었고요. 능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세연은 파일 중간에 삽입된 짧은 음성을 재생시켰다.
레지던트가 했던 증언의 일부를 잘라 놓은 것이었다.
“이렇게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성적인 욕설을 하면서 그간 폭행해 왔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로 그 욕설은 약간 이런 느낌이라고 봅니다.”
그 밑에는 ‘ex)’ 표시와 함께 온갖 성적인 욕설이 적혀 있었다.
저런 단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나? 싶은 정도의 욕설이었다.
만일 내가 검찰에 있을 때 성범죄나 성매매 쪽 수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면 그때나 겨우 들어 봤겠다 싶은…….
“야, 너는 무슨 저런 욕을 삐 처리도 없이 그냥 썼냐.”
최종현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자, 윤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맞받았다.
“뭐가 어때서요? 조사에 필요한 내용이니까 쓴 거잖아요.”
“그러니까 자음 처리 같은 걸로 적어 놔도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알아들어요.”
“아닌데. 차 변호사님은 모르셨을걸요?”
그녀의 말에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자음으로 바꿔서 적어 놨다면 유추하는 데 시간은 걸렸겠지만, 성적인 욕설이라는 힌트가 있었기 때문에 알아듣긴 했을 것이다.
“하긴. 저 천연기념물은 몰랐을 것 같다.”
유추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해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왜 천연기념물이지.
다들 그렇지 않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윤세연은 나를 보고 한숨을 쉴 뿐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런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하면서까지 최재훈과 만난 사람이 누구일지 찾아보기로 했죠. 그분이 차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그 분출구일 것 같아서, 그분을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일단 그분 이름이 지우라는 정보는 레지던트를 통해서 입수한 상태였고요. 또, 최재훈은 그분과 집에서 데이트를 자주 했거나 동거를 한 걸로 추정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윤세연은 페이지를 넘겼다.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던 빌라의 현재 사진이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있는 형태를 갖추진 못했다.
“이 빌라에 최재훈과 함께 거주한 사람들을 찾아서 연락을 좀 돌려 봤어요. 다행히 최재훈을 봤다는 사람이 몇 있었어요. 폭발 사고 때문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 분들이라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했나 봐요. 협조를 잘 해 주시더라고요. 이건 그중에 가장 쓸모 있는 증언입니다.”
그리고 윤세연은 다시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이번엔 비교적 길었다.
[─여자요? 301호분 여자하고 같이 있는 거 본 적 없는데요. 사실 주차 자리 때문에 여러 번 차 빼 달라고 연락하고 그러느라 번호도 저장해 놓고 종종 통화하고 그랬었거든요.─그럼 최재훈 씨 집에 여자분이 집에 온 적이 전혀 없단 말씀이세요?
─네. 뭐, 있었다고 해도 아무튼 저는 본 적 없어요. 그 사고 일어난 집이 3층인데, 3층에는 두 세대밖에 없거든요. 근데 제가 4층에 살아서, 엘리베이터 타면서 3층에 내리는 분들을 꽤 봤는데……. 301호가 사고 일어난 집이고, 302호는 아줌마랑 아저씨가 둘이 살아요. 만일 301호분 집에 드나드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제가 한 번이라도 3층에서 젊은 여자가 내리는 걸 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아예 못 보셨어요? 젊은 여자 내리는 모습?
─네. 저도 그 301호분 차에 병원 스티커도 붙어 있고, 부동산 사장님이 그분 의사라고 말해 줘서 여자 친구 있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안 데려오네,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아! 그렇다고 제가 뭐 음침하게 막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
─아, 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이상하다……. 집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전혀 모르겠어요.
─그럼 지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없으세요? 최재훈 씨가 지우야, 라고 부르는 사람이요. 혹시 여자 친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연상일 수도 있으니까 좀 나이 많은 여성분이라도 본 적 없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지우요?
─네. 지우.
─예? 누가 지우라는 사람이 여자 친구라고 했어요?]
음성 파일 속 남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러자 윤세연이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라. 아니에요? 아, 물론 여자 친구라고 땅땅 한 건 아닌데요. 지우라는 분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고 알고 있거든요.─엥? 밀접한 관계요? 어떤 식으로요?
─그냥, 여자 친구라고 생각할 만큼의 밀접한 관계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아, 네. 알죠. 근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남자는 ‘희한하네’하고 중얼거렸다.
[─왜 그럴 리가 없어요?─301호분 집에 드나들던 지우라는 사람은 남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