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77)
너희들은 변호됐다-477화(477/641)
#477화
“그럼 최재훈이 지우라는 남자하고 그런 관계라는 거예요?”
강민재가 놀라서 언성을 높였다.
윤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애자가 아니었던 거죠.”
“두 사람이 확실히 그런 관계인 건 맞아요? 그냥 친구일 수도 있잖아요.”
“친구한테 더러운.”
“어어어어! 하지 마! 하지 마!”
윤세연이 앞서 예시를 들었던 욕을 다시 입에 올리려 하자, 조봉준이 벌떡 일어나며 허공에 팔을 마구 저어댔다.
그러자 윤세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도 두 사람이 난리를 피우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런 욕을 할 리가 없잖아요. 아무리 봐도 성관계를 맺은 사람한테 할 법한 욕이라고 했다고요.”
우리나라 욕설에는 다분히 성적 비하의 의미가 담긴 말이 많긴 하지만, 콕 집어 성관계를 맺은 사람한테 할 법한 욕이라고 했으니 최재훈과 지우라는 사람은 연인 혹은 이에 준하는 관계였을 거라 본다.
“녹음 내용 전체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최재훈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본인이 솔로라고 말했고 소개팅도 여러 번 나갔다고 했어요. 동성애자인데 외부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렇게 연막을 친 거라고 하면, 꽤 그럴싸하지 않나요?”
“하긴, 그렇네. 그래서 지우라는 사람은 찾은 거야?”
윤세연은 대답 대신 음성 파일을 마저 재생시켰다.
[─아무튼, 그럼 지우라는 분은 최재훈 씨하고 어떤 관계였는지 아세요?─글쎄요? 엄청 친한 친구 아니면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자주 드나들었나 봐요.
─네. 차 빼 달라고 연락하면 301호분 대신에 그 사람이 나올 때도 있었고, 가끔 같이 어디 가는 건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적도 몇 번 있었어요. 그때 둘이 대화할 때 301호분이 그 남자분을 지우라고 불러서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고요.
─흠, 그러셨구나. 그 지우라는 분 연락처는 혹시 따로 모르시고요?
─아, 차 빼는 문제 때문에 그분하고 통화한 적도 있었는데……. 아마 좀 찾아봐야 할 거예요. 따로 번호를 저장하진 않아서, 통화 목록을 뒤져 봐야 해요.
─헉. 그러시면 번호 한 번 확인해 주시고 저한테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아까 제가 명함 드렸죠? 거기로 보내 주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말씀하세요.
─지우라는 분이요. 혹시 직업이라든가, 외모라든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외모는 일단 되게 잘생겼고요. 아니, 근데……. 이런 거까지는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넙죽넙죽 대답 잘하던 남자는 윤세연의 질문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사적으로 바뀌자 의심스럽다고 생각한 듯했다.
지금까지 듣던 음성 파일은 여기서 끝났고, 윤세연은 다음 파일로 넘겨 다시 재생시켰다.
어떻게든 잘 무마시킨 모양인지 자연스럽게 증언이 이어졌다.
[─아무튼, 예. 말씀드린 대로 되게 잘생겼어요. 그리고 엄청 꾸미고 다닌다? 대놓고 말하면 좀 노는 사람 같았어요. 몸에 문신도 잔뜩 있고요. 키는 한 178 정도 되려나? 180은 좀 안 되는 것 같았고요. 제가 176인데 저보다 조금 큰 느낌이었으니까요.─아하. 연령대는 어느 정도로 보였어요?
─제가 그런 걸 잘 못 알아보는 편이라 틀릴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20대인 것 같았는데.
─20대. 그럼 그 지우라는 분한테서 혹시 폭행의 흔적 같은 게 보인 적은 없었나요?
─폭행의 흔적이요? 그러니까, 지우라는 분이 맞은 걸 말하는 거죠? 때린 게 아니라.
─그렇죠.
─아, 멍 같은 걸 좀 달고 다녔던 것 같은데. 얼굴에도 밴드를 많이 붙이고 다니고요. 그래서 좀 양아치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리고 항상 밤에 나가고 아침 일찍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분도 가끔 거기에 주차했었는데, 밤에는 차가 없고 아침에 저 출근할 때 보면 그때는 차가 들어와 있고 그랬어요.]
녹음은 여기에서 끝났다.
가만히 듣고 있던 최종현이 수염이 삐쭉하게 솟은 턱을 쓱쓱 문지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지우라는 남자, 혹시 화류계 쪽인가?”
“저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요. 밤에 일하고, 되게 잘 꾸민 잘생긴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호빠 선수 같은 거 아닐까 싶어서요.”
“게이 호빠 선수면 최재훈이 거기 손님으로 갔다가 뭐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걸 수도 있지. 그리고 그런 욕 들으면서, 맞으면서까지 최재훈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한 걸 보면 최재훈이 스폰 같은 거라도 했던 거 아니야?”
“왠지 그랬을 것 같죠?”
“그래서. 그 지우라는 사람 번호는 받았어?”
윤세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리 시원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받았는데, 번호를 바꿨어요. 전화해 보니까 없는 번호래요. 이 주민분이랑 마지막 통화한 게 사고 나기 한 8일 전이라고 했거든요. 그럼 최근까지도 그 번호를 썼다는 건데. 아무래도 최재훈이 죽자마자 번호를 바꾼 것 같아요.”
“그럼 진짜로 스폰 같은 거 받는 선수였을 것 같긴 하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번호 바꿔도 기존에 쓰던 번호 안내해 주는 서비스를 쓰는 경우가 많잖아.”
“그쵸. 근데 그런 서비스도 등록 안 했나 봐요. 그래서 일단 지우라는 사람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어서 여기서 스탑하고 가져온 거예요.”
최종현과 윤세연의 추측은 백 퍼센트 맞다고 생각하기엔 어렵지만,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처음에 주민의 증언만 들었을 땐 지우라는 사람이 소위 ‘날티 나게 생긴’ 사람이고, 밤에 일하는 직업을 가진 모양인데, 그것만으로는 화류계 종사자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재훈이 죽자마자 번호를 바꿔 버렸다면, 그의 죽음과 엮이기 싫어서 그랬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가.
물론 화류계 종사자가 아니어도 엮이기 싫을 순 있지만, 일반적인 연인 관계에서 보일 법한 행동은 아니다.
“저는 저 지우라는 이름도 어쩌면 예명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러게. 선수들은 자기 이름 안 쓰잖아. 이야, 그럼 더 찾기 힘들어지겠는데. 어디 호빠 밀집 지역에 규모 있는 가게 마담한테 부탁해서 정보 캐는 식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태식 씨한테 좀 알아보라고 해 볼까요?”
아무래도 이런 분야는 흥신소를 운영했던 태식이 전문이긴 하다.
“태식이 들어오라고 해 봐.”
“넵.”
태식이 나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회사에 태식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회사 입구와 가장 가까운 방을 골랐고, 밖에서 누군가 침입해 오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따로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진 않았다.
다만 무음 모드로 휴대폰 게임을 했다.
나에게 점수를 경신할 때마다 자랑하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트를 달라며 졸라 대어 귀찮았기에 차라리 영화를 보라고 했지만, 그는 귀는 언제나 바깥을 향해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뭐가 다른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바깥소리도 잘 안 들릴 텐데.
아무튼 강민재는 곧 태식을 데리고 들어왔고, 그는 윤세연에게 이런저런 자료를 받아 챙긴 뒤 지우라는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아, 그리고 임현일과 최재훈의 관계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라고 하셨잖아요.”
태식이 다시 나간 뒤, 윤세연의 브리핑이 재개됐다.
윤세연은 처음에 소개했던 레지던트와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다고 해서 대충만 말해 달라고 하는데, 이렇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좆뺑이 치게 만들었다, 이 소리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임현일의 태도예요. 네가 이것까지 버티나 어디 한번 보자, 이런 느낌이었다잖아요.”
“그러게.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일 정도면, 임현일은 최재훈이 제 발로 나가기를 바랐던 것 같네.”
제 발로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임현일이 본원으로 오기 전부터 후보자 목록에 올라 있던 최재훈을 봤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최재훈을 배제하기 위해서 스스로 그만두게 할 생각으로 ‘좆뺑이’를 치게 만들었나.
아니면, 일부러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맡겨 최재훈이 실수하게 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재훈과 임현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해졌다.
정확히는, 임현일이 최재훈을 싫어했다는 게 확실하다고 봐야 하지만.
그렇다면, 우신이 최재훈을 제거한 이유가 뭘까.
임현일이 최재훈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장기 매매 사업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제거했다면, 당초 예상했던 대로 최재훈이 장기 매매 사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텐데.
아, 어쩌면 이미 최재훈은 장기 매매 사업의 일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인데, 임현일이 최재훈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사업에서 배제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배제하면 최재훈이 비밀을 누설할 가능성이 있어, 입을 막기 위해 제거했다고 하면 어느 정도 말은 된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아직 장기 매매 사업에 어떤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임현일이 가장 우두머리 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 10년 전만 해도 임현일은 집도는 하지 못하고 환자 케어만 했던 담당의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즉, 임현일은 최재훈이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마음대로 장기 매매 사업에서 제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진 않을 거란 뜻이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라면 가스 폭발 사고를 일으킨 주체는 우신이 아닌 임현일 개인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남의 목숨을 우습게 보는 우신이어도 실력 있고 여러모로 효용성 있는 의사를 그냥 죽이려 들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임현일이 이런 간 큰 행동을 할 만한 급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럼 역시 첫 번째 가정이 맞다고 봐야 하나.’
최재훈이 이미 장기 매매 사업의 일원이었거나, 혹은 장기 매매 사업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사업 내용을 말해 준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는 것.
일단은 이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조사해 보는 게 좋겠다.
“차 변호사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윤세연의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윤세연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저한테 좀 알려 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일단 가스 폭발 사고가 우신이 일으킨 거라고 의심하고 계신다는 건 대충 알고 있어요. 근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신 거죠? 변호사님도 최재훈에 대해 잘 모르니까 저한테 조사하라고 하신 거잖아요. 최재훈에 대해 잘 모르면서 어떻게 우신이 한 거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임현일과의 관계는 왜 확인해 보라고 하신 거고요?”
윤세연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최종현에게도 윤세연에게 장기 매매에 대해서는 알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녀가 의구심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제가 개인적으로 확인해 보니 임현일하고 변호사님들이 엮일 만한 일은, 그러니까…….”
윤세연은 강민재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강민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저희 할아버지 수술 집도의였어요.”
“……네. 괜히 얘기 꺼내서 죄송해요. 하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었어요. 이해해 주세요.”
“괜찮습니다.”
“아무튼 임현일이 변호사님들의 표적이 될 만한 건은 그것뿐이잖아요.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계신 거예요. 저도 좀 알고 싶어요. 그래야 더 잘 도울 수 있지 않겠어요?”
윤세연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점의 의심 없이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신변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입을 다물어 줄지는 모르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괜히 그런 일을 만들고 싶진 않다.
“이만하면 도움 많이 주셨습니다. 이젠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밥 얻어먹고 싶다고 했죠? 밥이나 먹으러 가죠. 마침 저녁 시간이네요.”
“아, 왜 말 돌려요. 저도 알려 주세요!”
“뭐가 좋습니까? 고기? 생선?”
“……생선이요.”
“그럼 잘하는 데 압니다. 거기로 가죠. 짐 챙기세요.”
내가 일어서자, 윤세연이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꿈쩍도 않고 노려보기만 하는 걸 보니 눈빛 광선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노트북 새로 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잘 챙기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으면 그냥 우리 사무실에 기증한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안 돼요!”
윤세연은 노트북을 끌어안으며 끝까지 나를 노려보았다.
최종현과 조봉준 역시도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컵을 정리하며 슬슬 일어났다.
그리고 몹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밥 우리도 사 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