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8)
너희들은 변호됐다-48화(48/641)
그들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려 버렸다.
김홍길 재판장이 그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까닭은 작품의 유사성은 명징하나, 의거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황상 정혜진이 먼저 집필한 것이라 볼 수 있으니, 표절은 성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선후 관계가 정리되었다.
의거성이 생겼고, 유사성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증거를 제출한다면 아무리 김홍길 재판장이 그들에게 매수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변론을 재개하게 된다면 우리는 당연히 USB 안에 들어 있던 모든 파일을 언급할 것이다.
그러면 정혜진은 <당신과 나의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네 개의 작품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하고, 어쩌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긴 공방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그녀의 작품 대부분이 모두 표절로 드러나면, 이를 묵과한 푸른섬 미디어도 더이상 회생의 여지가 없다.
정혜진은 작가로서 완전히 끝인 것이다.
“하지만. 저희의 요구대로 합의해 주신다면, 고소를 취하할 생각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들이 한숨을 돌렸다.
“……고소를 취하하면, 오늘 말씀하신 그 주장들은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유정원이 물었다.
그녀는 핏기가 가신 얼굴이었고, 입술을 하도 깨물어서 피가 비치는 지경이었다.
“고소 취하하면 그쪽의 증거 조작과 다른 부정들도 모두 수면 밑으로 사라지겠죠. 사람들은 그런 걸 합의, 라고 하고요.”
내 말에, 유정원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 말씀하세요.”
“먼저, 저희가 고소장에 청구한 금액을 전부 배상하십시오. 그리고 나은성 씨를 공동 작가로 올려 주십시오. 또, 앞으로 <당신과 나의 거리>의 지속적인 판매는 허락하나, 앞으로 분기마다 판매 수익의 30%를 나은성 씨에게 지급하십시오.”
“……뭐라고요?”
기가 막힌다는 듯, 푸른섬 미디어 대표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은 당장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정혜진은 얼이 빠진 듯 의자 등받이에 기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만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이번 주 금요일까지 답변 주십시오.”
* * *
우리는 개처럼 싸울 준비도, 억만금을 손에 쥐고 물러날 준비도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은성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대로 재판까지 끌고 가서 승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받게 될 손해 배상금은 터무니없이 적어질 것이다.
본래 소송을 걸 때, 손해 배상 금액은 우리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높게 부른다.
그리고 재판부의 조정을 통해 그 금액을 본래 원하던 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었다.
이번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70%라는 비율이 높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간의 판례대로 요구하면 배상 금액이 그 밑으로 떨어질 공산이 컸다.
게다가 그간 내가 조사했던 판례에서, 표절로 단정지어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가뜩이나 재판장의 성향상, 잘해야 리메이크작이라는 판결을 내줄 듯하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받아 낼 수 있는 배상금은 3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은성이 <당신과 나의 거리>라는 초대박 드라마의 공동 작가가 되고, 억만금을 손에 쥔 채앞으로 작품 활동에 몰두할 수 있게 되는 게 더 좋은 결과일 것이다.
“슬슬 다음 사건이 들어올 때가 됐는데 말입니다.”
아직 푸른섬 미디어와 완전히 결론을 낸 것도 아니건만, 강민재는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 뒷정리까지 해야지.”
공동 작가로 이름을 올리는 순간, 여론은 정혜진이 표절을 인정하고 합의한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쉽게 결정 내릴 사안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과의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총 다섯 개의 대박 작품이 전부 표절로 낙인찍히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나을 테지만.
돈이야, 이미 넘치게 벌었을 것 아닌가?
“이번 일로 홍보가 잘된 건 맞지만, 아무래도 저희 광고 같은 거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요?”
“광고?”
“아니, 지금이야 규모가 작으니까 한 사건씩 맡는 게 좋긴 하지만……. 원래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게, 한 번에 여러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홍보가 잘 안돼서 그런가, 나은성 씨 이후로 찾아온 사람도 없고.”
강민재는 턱을 괴며 심란한 듯 말했다.
가만히 놔뒀다가는 TV 광고라도 하자고 할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답변 받고 생각해. 그전까지는 변론 재개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해이해지지 마.”
“……넵.”
강민재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변호사님.”
“왜.”
“사람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리야?”
강민재는 안경을 끼며 뚱하게 대답했다.
“사람 아니고 로봇 맞는 것 같아서요. 감정이 없으십니까?”
“감정이 왜 없어.”
“안 기쁘십니까? 증거 찾았을 때도 별로 기쁜 내색 안 하시고. 푸른섬 미디어에 한 방 거하게 먹였는데도 별로 기분 좋아 보이지도 않으시고.”
“기분 좋았는데?”
“그게 좋은 거였어요?”
“티 냈잖아.”
“그게 티 낸 거였어요?”
강민재가 경악에 물든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답할 말을 잃고, 강민재에게서 시선을 떼어 냈다.
왠지 아직도 끈질기게 그의 시선이 나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지만, 외면했다.
이튿날, 오후.
갑자기 태식이 똘마니들을 이끌고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미리 연락 좀 하고 방문하지 그래.”
커피를 마시며 푸른섬 미디어의 연락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김이 새버렸다.
“변호사님 연락 잘 안 받으시잖아요. 왜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십니까? 그러니까 찾아 왔죠!”
“문자? 아침에 분유 찾는 문자 와 있는 거 보긴 했는데, 잘못 보낸 거 아니었나?”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그의 맞은편에 자리했다.
“오늘은 주스 안 주십니까?”
“강 변이 잠깐 자리를 비웠어.”
“변호사님 껌딱지가 어딜 갔습니까?”
“껌딱지는 무슨……. 잠깐 전화 받는다고 나갔어.”
“어쨌든, 분유가 아니라. 모유 말입니다. 우리 모유 체결 어떻게 되는 겁니까?”
“MOU 말하는 거냐?”
“네, 그거요, 그거. 만약 체결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이번 사건 비용도 따로 청구할 거니까 그런 줄 아십쇼. ”
“그럼 청구서 보내.”
“누가 보내라면 못 보낼 줄 알……네?”
“보내라니까?”
태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똘마니들에게 내 말을 잘못 듣지 않았는 지 여러 번 확인했다.
“진짜 돈 주실 겁니까?”
“앞으로도 너희한테 일 맡길 거고, 정당한 금액도 지불할 생각이야.”
“……지, 진깝니까?”
“대신 조건이 있어.”
나는 팔짱을 끼며 찬찬히 이전 삶에서 태식과 있었던 일을 하나씩 회상해 보았다.
내가 태식을 정보원으로 쓰면서, 그가 타인에게 조직 폭력배처럼 비치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생긴 것과 다르게 그에게는 전과가 없었고, 나와 일하게 되면서는 불법적인 일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저지른 불법이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흥신소 하나 운영하면서 할 만한 일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어쨌든, 이번에는 조금 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뭔데요?”
“불법적인 일은 하나도 저지르지마. 너 포함해서 너희 직원들 전부다.”
“저희 불법 안 저지릅니다!”
“섯다도 하지 마.”
“아, 그거 불법 아니라니까요?”
“자잘한 불법도 안 돼. 폭력도 안되고, 언제나 누군가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태식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른세수를 하며 침음하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불법 주차는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변호사님, 혹시 검사 때려치운 일하고 관계 있는 겁니까?”
귀신이다.
평소에는 멍청하게 굴던 놈이, 이럴 때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태식이 나에게 대단한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리고 이전 삶에서, 끝까지 내가 믿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도.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그건,”
그때였다.
사무실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태식에게서 멀어져 책상 앞에서서 전화를 받았다.
“차주한입니다.”
-유정원이에요.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다섯 시 반.
퇴근하기 조금 전까지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시간에 쫓기며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말씀하세요.”
-조정이 가능한지, 그 여부부터 먼저 확인하고 싶은데요.
“우선은 들어 보고 답을 드리죠.”
-하……. 네, 그럼 일단 공동 작가 표기에 대해선데요. 이 조건을 제외하는 쪽으로 조정해 보고 싶은데요.
답변을 기다리면서, 나는 그들이 이 조건을 가장 겁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지를 생각해서 유리한 상황 속에서도 창작 지원금을 지급하려 했던 정혜진이 아니던가.
나는 책상에 기대며 짧게 대답했다.
“그건 조정이 불가능합니다.”
나은성을 공동 작가로 올리는 것은, 수익을 셰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본래는 나은성의 작품임을 밝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감추고 뒤에서 돈만 받는것으로는, 처음 소송을 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수익 셰어 비율을 조정해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푸른섬 미디어는 정혜진 작가님께도 판매 수익의 15%를 지급합니다. 나은성 씨에게 10%를 지급하고, 정혜진 작가님이 5%를 받는 것으로 어떠십니까.
수익 셰어를 30%라고 지른 것은, 소송 때 손해 배상액을 산정할 때와 같은 이치였다.
그들이 깎으려 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높게 부른 것이다.
당연히 10%가 적당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유정원의 굴욕감 넘치는 목소리를 곱씹으며 대답했다.
“13%는 어떠십니까.”
-차 변호사님. 여기 시장 바닥 아닙니다. 피차 심력을 많이 소모했는데, 이러지 마시죠.
유정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좀 심했나.
그녀가 평소 뻗대던 것에 비하면, 나 정도는 충분히 젠틀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율에 대해서는 의뢰인과 상의해봐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푸른섬 미디어에서 최대로 지급할 수 있는 비율을 알아야 하고요.”
-10%입니다. 정혜진 작가님의 작가료는 말씀하신 70%를 그대로 지급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푸른섬 미디어의 손해 배상액에 대한 건입니다마는……. 대표님은 수익의 50%까지 지급하실 용의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 이상은, 차 변호사님도 무리한 조건이었다는 거 아실 겁니다.
본래라면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는 전화 한 통에 대부분 마무리지어졌다.
정혜진 작가에게 지급된 작가료의 70%인 6억 7천만 원과, 푸른섬 미디어가 드라마 제작을 통해 남긴 순수익 100억의 50%인 50억, 그리고 향후 판매 수익의 10%를 분기별로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합의서 작성되는 대로 보내 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럼.”
-차 변호사님.
“말씀하세요.”
-우리 다신, 법정에서 보지 말아요. 그럼, 들어가세요.
유정원이 짓씹듯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내가 좀 심했냐?”
그리고 우리의 전화를 엿듣고 있던 태식에게 물었다.
그러자 태식이 냉큼 대답했다.
“좀 재수 없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