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84)
너희들은 변호됐다-484화(484/641)
#484화
예상이 맞았다.
최재훈은 임현일과 통화한 직후,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블로그에 일기를 썼고, 거기에는 남들이 보기에도 장기 매매를 연상하게 할 만한 구절들이 있었다.
임현일은 최재훈에게 뇌사 상태가 아닌 환자의 장기를 적출할 것을 지시했고, 최재훈은 이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최재훈이 남긴 일기에는 임현일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문단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임현일에게 퍼붓는 저주와 욕설뿐이었다.
그렇기에 최재훈이 산 사람의 장기를 꺼낸다는 사실에 윤리적 거부감을 느껴 불응한 것인지, 정지민에게 버림받을 것을 염려해서 그런 것인지는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는 임현일이 장기 매매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오 상한다’고 표현했을 뿐, 지나치게 비도덕적이라고는 비판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그날 정지민에게 ‘내가 너를 위해 뭘 포기했는 줄 아느냐’고 물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임현일에게 장기 적출을 지시 받은 그 수술방에서 상당히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기의 맥락으로 파악하기로는 그때 당시에는 이 수술이 병원의 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하다.
즉, 임현일의 지시에 따르며 편하게 병원 생활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정지민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어쨌든 임현일은 최재훈이 자신의 지시에 곧장 따르지 않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끝내 따를 수 없다는 대답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최재훈을 설득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그럼 어쩔 수 없지’라며 상황을 마무리한 듯하다.
9일의 통화 기록을 보면 임현일은 최재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최재훈의 심경에 변화는 없는지, 자신이 내린 지시에 대해서 향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떠보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재훈은 ‘어떻게 나에게 그런 수술을 시킬 수 있냐’고 따졌다고 하니, 임현일은 ‘역시 최재훈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터.
임현일은 이를 장기 매매 사업 관리자에게 보고했을 것이고, 결국 그들은 최재훈을 죽이기로 결의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를 효시로 최재훈의 죽음에 미스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허민우 역시 경찰 측이 본격적으로 임현일을 조사하게 만들 수 있을 터.
물론 중간에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겠지만.
분명 나에게는 기쁜 일이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그때 그 수술방에 누워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
그 수술방에 누워 있던 사람이 천사의 집에 있던 아이일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는 대학교 연합 동아리를 통해 천사의 집 아이들의 동태를 체크하고 있고, 누군가가 유학을 간다거나 사라졌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때에 천사의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을 잡아다가 거기 눕혀 놨다고 하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천사의 집을 감시하고 있으니 일부러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거라면, 우신에게 희생양을 ‘조달’할 집단이 또 있다는 뜻인가?
설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지금도 대한민국 각지에서는 새로운 실종자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안 그래도 천사의 집이 감시받고 있으니, 시선을 돌릴 겸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적합한 사람들을 조용히 납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천사의 집처럼 희생을 위해 세워진 집단이 또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특검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고상준에게 기름을 뿌린 뒤 불이라도 붙이고 싶어질 테니까.
‘일단은 그건 뒤로 미뤄 두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조건이 되는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는데…….’
나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보드마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일기가 작성된 날짜인 9일은 사고 3일 전이다.
그리고 지금은 가스 폭발 사고로부터 열흘이 지난 22일이다.
임현일이 최재훈에게 수술을 지시한 날짜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그간 들었던 최재훈의 행적을 살펴야 한다.
이전에 윤세연이 우신 병원 레지던트에게 받아 온 증언에 따르면 최재훈은 사고 4일 전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즉, 소개팅을 받은 날짜는 8일이라는 뜻이다.
지난 8일은 평일이었고, 관행에 따라 퇴근 이후 시간인 저녁에 소개팅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뒤틀린 윤리관을 가진 최재훈이라고는 해도, 사실상 수술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지시했던 임현일을 향한 분노 때문에라도 마음 편히 소개팅에 나갈 수는 없었을 테고.
본인이 동요하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으니, 소개팅 상대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러므로 임현일이 최재훈에게 장기 적출을 지시한 건 소개팅이 끝난 다음인 8일 저녁 이후부터 9일 오전 사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어디였을까.
우신 병원은 아니었을 것 같다.
임현일이 최재훈이 장기 매매 사업에 함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뒤 3일이 지나서야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했으니, 그 사이에 누군가에게 발설할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았을 리 없다.
무엇보다 병원은 밤이 된다고 불이 꺼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에게 목격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임현일은 아마 다른 장소로 최재훈을 데리고 갔을 것이다.
따라서 최재훈도 그 상황에서 장기 적출을 임현일 개인이 지시했다고 여겼을 뿐, 병원의 의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임현일은 최재훈을 보낸 뒤 직접 장기를 적출했을까?
“흐음…….”
아니, 왠지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은 장기 이식 수술을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다.
김찬영도, 고윤성도 오카시마 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았던가.
굳이 품을 들여 오카시마 병원까지 가는 건 분명히 한국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가 꼬투리가 잡힐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재훈은 그날 일본에 가지 않았다.
소개팅이 끝난 후, 바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하여 오카시마 병원으로 이동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도착해서 집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시간이 충분치 않다.
출입국 기록이 있었다면 허민우가 진작 말해 줬을 것이고.
만일 우신 병원이 아닌 국내의 모처였다면 이곳이 어딘지 알아내는 것으로 장기 매매 사업의 새로운 증거를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최재훈의 당일 위치 정도야 허민우가 휴대폰 GPS 조회를 해 보거나,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테고.
아, 그것도 사전에 휴대폰을 꺼 두거나 다른 차량을 이용하게 하는 것으로 차단해 놓았으려나.
어쨌든, 분명한 건 그때 수술방에 누워 있던 사람은 국내에서 장기를 적출당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왜 이례적으로 국내에서 장기를 적출당해야 했을까.
케이스는 2가지로 나뉜다.
1. 마침 장기 이식이 필요했고, 겸사겸사 최재훈을 테스트해 보려고 했음.
2. 다른 이유 없이 최재훈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음.
1의 경우, 마침 장기 이식이 필요했다면 최재훈의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임현일은 바로 희생자의 장기를 적출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연히 사망했을 테고.
하지만 장기 이식이 필요했던 상황이라면, 고객 중 누군가의 요청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케어를 해 주어야 했을 텐데, 유수의 병원에서 극진히 모셔도 모자랄 판이 아닌가.
그런 시설이 한국에 있었다면 애초에 고윤성과 김찬영은 오카시마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게 있었다면 오카시마 병원보다는 그 병원의 보안을 더 신경 쓸 텐데, 그런 곳에 사업에 합류할지도 확실치 않은 최재훈을 데려갔을 리 없다.
그곳에서 장기를 적출해서 바로 장기를 비행기에 태워 오카시마 병원으로 보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공식적으로 기록이 남는다.
이 모든 장애물을 넘어 일본에 보낼 방법이 있다고 해도, 장기마다 다르지만 신장을 제외하면 대개는 아무리 길어야 24시간 전후가 보존 한계이므로 이 역시 큰 모험이다.
그러나 2의 경우, 단순히 테스트 용도였다면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굳이 죽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살려서 다시 보냈을 수도 있다.
어차피 마취 상태였을 테니 본인이 어디에서 어떤 위협에 처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살해하고도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하고 반응할 놈들이지만, 동시에 사업가이기도 하다.
사람 하나하나가 자원인데 목적 없이 죽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장기부터 각막까지 하나하나 뜯어서 ‘고객’님들 몸에 나눠 주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역시 케이스 2가 맞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살아 있으려나.
나는 어느덧 검게 물든 화이트보드를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머릿속이 어지럽지만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어, 차 변.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는데도 최종현은 깨어 있었나 보다.
전화를 걸자마자 그는 멀끔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뭐 찾은 거 있어? 그 정지민인지 하는 놈하고 대화한 건 다 들었는데. 야, 씨. 생각도 못 했다. 최재훈이 정지민 때문에 임현일 제안 거절했을 줄은.
“블로그는 보고 계십니까?”
─파일 받은 지 며칠 지났으니까 당연히 꽤 많이 봤지. 근데 생각해 봤는데, 사실 최재훈이 2005년에 쓴 일기는 굳이 지금 볼 필요가 없잖아. 임현일 전에 있던 교수도 장기 매매하고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그래서 그쪽은 정우한테 미루고 임현일이 본원으로 올라오고 난 다음에 쓴 일기부터 보고 있었어.
“그럼 9일 일기 보셨습니까? 아, 이번 달 9일을 말하는 겁니다. 사고 3일 전.”
─9일? 아직 거기까지 못 갔는데. 아니, 허 경위는 일주일에 한두 번꼴이라고 해서 금방 따라잡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그건 그냥 평균치고, 임현일이 본원으로 올라온 다음부터는 아주 그냥 일주일에 네다섯 개는 기본이야. 하루에 몇 개씩 올린 날도 있더라니까.
“그럼 전화 끊으면 9일 일기 먼저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확인해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지금 천사의 집에서 봉사 나가는 연합 동아리 회장한테 연락받으신 거 없습니까?”
─동아리 회장? 아니, 연락 따로 없었는데. 있었으면 바로 말했지.
“9일 일기 보면 아시겠지만, 천사의 집에서 아이 하나가 사라졌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정확히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천사의 집에서 사라진 사람이 없다면 추가로 조사가 필요합니다.”
─왜, 누구 이식 수술하는 데에 불려 가기라도 했대? 아니, 근데 최재훈은 수술 거부했던 거 아니야? 정지민 말 들어 보면 그런 것 같던데. 9일 글이라고 했지? 지금 한번 봐야겠다.
“일단 한시라도 빨리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동아리 회장한테 연락해서 한번 물어봐 주십시오. 유학이 목적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어떠한 이유에서든 수업에 단 한 번이라도 빠진 아이는 없는지 체크해 달라고요. 그리고 빠진 아이가 있다면 천사의 집 측에서 그 이유를 뭐라고 했는지, 며칠부터 자리를 비웠는지, 돌아왔다면 언제 돌아왔는지. 이런 거 전부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