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85)
너희들은 변호됐다-485화(485/641)
#485화
최종현의 의뢰로 천사의 집에 교육 봉사를 나가는 연합 동아리는 45년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대형 교육 동아리인 만큼 학생을 대상으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천사의 집 교육 봉사는 그렇게 비중이 큰 행사라고 볼 수도 없다.
서울시의 후원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하기도 하고, 중고등학교에 직접 찾아가 방과 후 독서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방학 때는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을 위한 과학 캠프를 열고 있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서 평이 좋아 해당 캠프의 규모도 많이 키운 상태였다.
과학 캠프 신청자를 모집하면 경쟁률이 20:1을 넘어가는 것도 예삿일이다.
물론 추첨을 통해 모집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이랄 것도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천사의 집 교육 봉사를 상당히 각별하게 생각한다.
이유는 단 하나.
최종현의 어마어마한 지원 덕분이었다.
여태까지 사기업과 지자체를 포함한 온갖 단체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이 정도의 후원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천사의 집에 교육 봉사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사라며 건네준 후원금이지만, 동아리를 위해 써도 상관없다며 그야말로 호연지기를 보여 주었다.
덕분에 동아리에 필요한 전자 기기나 소품들을 넉넉히 구매할 수 있었고, 늘 고생하는 간부들에게 고기도 사 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동아리 예산 집행은 모두에게 투명히 공개되며, 중간에서 가로채려는 마음은 먹은 적 없지만, 여유는 곳간에서 나오는 법 아니던가.
각종 세미나도,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MT도, 교육 봉사에 동원할 수 있는 자재의 질도 높아졌다.
회장과 간부진들은 최종현 기자와의 인연을 가능한 한 길게, 못해도 본인들이 동아리를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이어 나가고 싶었다.
“네. 기자님! 아, 네. 메시지 보내셨어요? 아, 제가 새벽에 자느라 메시지를 못 봤나 봅니다. 아, 네. 아뇨아뇨, 절대 방해 아니었습니다. 그냥 전화 주셨으면 일어나서 받았을 텐데……. 네. 아, 결석이요? 그런 아이는 없었을 것 같은데, 저한테도 딱히 연락 온 게 없었거든요. 네. 꼭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휴대폰 액정에 찍힌 ‘최종현 기자님’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정결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았던 회장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존엄하신 최종현 기자 선생님의 말투는 딱히 화난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빠르게 확인해 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본인들이 놓친 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은 천사의 집 첫 봉사 때만 방문했고, 그 이후로는 천사의 집 교육 봉사를 담당하는 간부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대답해 줬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시 정확한 상황은 알지 못했다.
회장은 재빨리 연락처 목록을 뒤져 전화를 걸었다.
─아, 뭐야. 아침부터…….
“윤지야. 내 말 잘 들어라.”
─아, 왜. 나 새벽까지 술 마셔서 이제 잠들었다고, 개새끼야.
─지금 존엄하고 명예로우신 최종현 기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우리에게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엉? 기자님이 왜? 무슨 일 있으시대? 이제 후원 안 하신대?”
늘어지던 윤지의 목소리도 어느새 상당히 맑아져 있었다.
회장은 피식 웃었다.
욕 좀 들을 각오로 아침 일찍부터 전화한 것인데, 윤지는 기자님 이야기에 바로 태도를 바꿨다.
왜 아니겠는가.
윤지에게도 기자님은 위대하신 분이다.
아마 천사의 집 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던 첫 주의 마지막 날이었을 것이다.
최종현은 고작 대학생 나부랭이에 불과한 그들에게 너무 고생이 많았다며, 천사의 집 봉사 나갔던 친구들이 총 몇 명이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더니, 최종현은 무려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소고깃집에 단체 예약을 넣어 주었다.
가격은 상관하지 말고 배부를 때까지 먹으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사실 최종현이 조봉준이라는 주식 투자자와 함께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을 보았을 땐, 그가 그렇게 돈이 많을 거라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던지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고기 회식이라니?
기자가 원래 돈을 그렇게 많이 버나?
방송 달풍이 그렇게 잘 터지나?
의문은 많았지만, 그들은 그저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그 은혜를 입은 것은 윤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목소리가 경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님이 결석 인원 꼭 체크해 달라고 하셨던 거 생각나지?”
─당연하지. 눈에 불을 켜고 하고 있는데, 지금.
“근데 지금 결석한 애가 있을 거라고 하시거든?”
─결석한 애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고? 이상하다. 나는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연락 돌려 봐. 저번 8일이나 9일 중에 봉사 나간 날 있어? 이때를 집중적으로 봐 달라고 하시던데.”
─있을걸. 잠만, 캘린더 좀 보고. 아! 8일에 나갔어.
“빨리 확인해 봐. 만약에 결석한 사람 있었으면 뒤진다.”
─아니, 없을 거라니까? 하, 일단 물어보고 연락 줄게. 끊어 봐.
전화가 끊긴 뒤, 회장은 초조하게 윤지의 연락을 기다렸다.
천사의 집 교육 봉사를 나가면 소고기 회식이라는 소문 때문에, 동아리 내부에서도 지원자가 넘치는 실정이다.
다행히 지금 요일별로 스케줄이 맞는 사람들이 딱딱 배정된 상태라, 그들이 그만두지 않는 한 새 지원자를 받을 일은 없었다.
그다지 많은 인원이 아니니, 확인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1시간쯤 흘렀을까.
윤지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야. 씨발, 어떡해?
“뭐야. 진짜 결석한 애 있어?”
─아니, 하. 돌겠네. 그날 결석한 애 있었대.
“누군데?”
─유종은이라고, 17살짜리 여자애야.
“아니, 결석을 했는데 왜 얘기를 안 해? 단도리 안 했어?”
─했지, 미친아. 나 봉사 날마다 단톡방에다가 결석한 애 없는지 보고해 달라고 올리는데.
“근데 왜 말을 처 안 했대?”
─아니, 내가 처음에 유학 얘기를 강조하지 않았냐면서 유학도 아니고, 다음에 갔을 때 없으면 얘기하려고 했는데 있어서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단다. 아, 이 새끼 진짜 띨빡한 새낀가 봐. 다른 사람 넣을까 봐.
“하, 그럼 그날은 왜 결석한 거래?”
─애들한테 종은이 어디 갔냐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해서, 직원한테 물어봤대.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 있다고 했다더라고.
“그래? 그 뒤로는 문제없었어?”
─걔가 종은이한테 아픈 건 다 나았냐고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했대. 근데 일상생활엔 지장 없어 보였고 그 뒤로도 잘 지내는 중이라는데.
“하, 일단 너는 애들한테 그냥 무슨 이유든 얼굴 한 번이라도 안 보였다 하면 바로 얘기하라고 해. 그리고 종은이 말고는 또 없었대? 애들이 무심코 넘긴 거 없대?”
─종은이 말고는 없는 것 같아.
“알았다.”
─근데, 기자님 화나셨어?
“아닌 것 같긴 한데, 모르지. 일단 얘기 잘 해 볼게.”
* * *
“결석한 사람 있었대.”
통화를 마치고 회의실로 들어온 최종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름은 유종은이고, 17살짜리 여자애래. 8일에 결석했고, 10일에는 나왔나 봐.”
“그럼 역시 그 종은이라는 아이가 수술방에 누워 있었나 보네요. 최재훈이 수술을 거부하니까, 그냥 그대로 다시 돌려보낸 것 같아요.”
“아니, 그러면 씨발 이 새끼들이 그냥 이유 없이 테스트 목적으로 애를 죽이려고 했다는 뜻이잖아.”
분개하는 조봉준을 보면서, 나 역시 한숨을 쉬었다.
이제 우신의 만행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라고 생각은 했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놈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무의미한 살인을 하진 않을 거라고 예상해 봤는데.
바닥을 봤다고 생각했더니, 그 밑엔 지하가 있었다.
“뭐, 어쩌면 종은이라는 아이가 진짜로 아파서 병원에 데려간 김에 테스트 삼아 볼 생각이었을 수도 있었겠지. 그건 알 수 없는데……. 아무튼 다행이다. 그놈들이 스페어 장기로 여기는 다른 집단은 아직 없는 거잖아.”
“그런 것 같습니다. 주기적으로 감시받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모험을 한 걸 보면.”
“예전에 내가 말했던, 그 소은이라는 애 기억해?”
최종현이 가장 마음을 쓰고 있던 아이이니 당연히 기억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유아인데, 일본으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기도 했고.
“내가 소은이 신경 쓴다는 걸 알고 거기 회장이 봉사 나가는 유아교육과 학생 연락처를 줬거든. 그 학생이 봉사 나갈 때마다 소은이 잘 있다고 말해 주고 있긴 한데, 자꾸 불안해서.”
“특출나게 영재성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었다고 했죠?”
“응. 그 학생은 아직까진 평범한 애기 같다고 하더라고. 그런 애까지 유학을 보내겠다고 했으면, 분명히 그때 어린 ‘고객님’이 있었다는 소리잖아.”
“그렇겠죠. 장기 사이즈가 작으니 이식할 수 있는 환자도 아무래도 제한적이고…….”
“근데 그때로부터 시간이 좀 많이 흘렀잖아. 그때도 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소은이를 보내려고 했던 걸 텐데, 얼마나 기다릴 수 있겠어. 근데 다른 애를 보낸 것도 아니고…….”
“현지에서 다른 기증자가 나와서 이미 수술했을 수도 있죠.”
그런 가정이라면 소은이라는 아이는 일단 살아남았다고 봐도 되겠지만, 천사의 집에 쏠린 이목 때문에 미뤄 뒀을 수도 있으니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다.
“소은이가 나를 잘 따르고, 워낙 애기다 보니까 자꾸 신경이 쓰이네. 그 새끼들이 애를 언제 잡아갈지 모르니까. 사실 잡아간 다음에 애가 실종됐다고 둘러대 버리면 지금 단계에선 우리가 오카시마 병원에 쳐들어가는 거 말곤 소은이를 구할 방법이 없잖아. 허 경위 개인이 뭘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천사의 집 아이들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예방할 수가 없다.
이미 넘어간 뒤 그걸 빠르게 캐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게요…….”
그때, 머릿속에 김미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미자는 그때 분명 우리를 돕겠다고 말했다.
그녀만큼 그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