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87)
너희들은 변호됐다-487화(487/641)
#487화
─사모님,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김미자의 차량이 요정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경비를 서고 있던 직원이 운전석 쪽으로 뛰어와 창문을 노크했다.
원래는 눈인사만 하고 바로 지나치곤 했는데 별일이다 싶었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어 한쪽에 놓으며 창문을 내렸다.
“당분간 못 나오실 것 같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학교 기말고사 출제 때문에 조금 바빴는데, 다행히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어요.”
“아,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물러서자, 김미자는 그새 열린 게이트 사이로 액셀을 밟았다.
사실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운전도 할 수 없었고, 개인 자산도 가질 수 없었다.
외출하려면 언제나 오다 사토시가 붙여 준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움직여야 했고, 무언가를 사야 할 때도 오다 사토시의 카드를 써야 했다.
카드 사용보다는 현금 거래가 더 익숙한 일본에서는 매우 불편했지만, 자신이 어디에 돈을 쓰는지 오다 사토시가 감시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했다.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디에 쓰는지 미리 말해야 했고, 거래 후에는 반드시 영수증을 받아 와야 했다.
다만 그런 제약도 그녀가 사회 진출을 시작하고부터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일개 신입 큐레이터가 기사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뒷말이 나올 것을 염려한 오다 사토시가 그때서야 겨우 운전면허를 딸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월급을 받게 되었으니 또한 자연스럽게 자산이 생겼고, 오다 사토시에게 일일이 보고하기도 번거로운 지출이 생기고부터 오다 사토시는 이제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요정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뒷문을 열어 주는 것뿐이었는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도망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었을 때 이미 그녀는 모든 의지를 상실한 다음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녀는 이제 가족을 만났고, 돌아갈 곳이 생겼고, 양심껏 살고 싶다는 의지를 다졌다.
차주한을 만난 뒤에는 요정에 드나드는 데에 신물이 나서 대학교 일을 핑계로 출입하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는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김미자는 전용 자리에 주차하고 요정 안으로 들어갔다.
미리 게이트 직원에게 연락을 받은 듯, 요정에 상주하는 직원들은 김미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늘 그렇듯 김미자가 지나가는 복도 양옆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오늘 오시는 고객님들 명단 확인해야겠어요. 내가 부르면 그때 내 방으로 가져다줘요.”
김미자는 그렇게 말하고 훌쩍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기모노로 환복한 뒤에는 차주한에게서 받은 도청기와 카메라를 꺼냈다.
이미 학교에서 한 차례 성능을 확인해 봤지만, 이곳에서도 잘 작동하는지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
작동법은 충분히 익혔으니, 따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김미자는 새끼손톱만 한 카메라 몇 개를 작은 주머니에 담아 소매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제어 기기는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 단단히 숨겨 두었다.
차주한이 염려했던 대로, 요정도 도청을 방지하기 위해 단단히 대비한다.
요정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휴대폰을 직원들에게 한데 맡겨 두었다가 나갈 때 돌려받아야 한다.
당연하게도 전파 탐지기로 몇 차례 몸 주변을 훑는 절차 또한 밟는다.
방 내부도 예외는 아니다.
손님들이 오기 전 방안을 전파 탐지기로 세세히 확인한다.
다만, 차주한은 2010년에 새로 나온 전파 탐지기가 아니라면 이 도청기는 감지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 사용하는 전파 탐지기가 얼마나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뭔가 트집을 잡아서 구매 내역이라도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데.
“타카하시 씨, 오늘 오시는 손님 명단 가져다줄래요?”
김미자가 인터폰을 들고 말하자, 곧 문밖에서 다다미 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고, 김미자가 없을 때 요정의 살림을 맡아 보는 중년의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건넨 명단을 살피던 김미자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오늘 까다로운 분들이 오시네요. 가이세키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고베규를 메인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밖에는 따로 리스트를 올려드릴까요?”
“고베규라니요? 오노데라 의원님 소 알레르기 있는 거 설마 모르는 건 아닐 테고요.”
“아……. 죄송합니다, 사모님. 오노데라 의원님은 오랜만의 방문이시라 미처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하시는 것과 체크하지 못한 게 무슨 상관이 있죠? 게다가 오노데라 의원님은 가뜩이나 모시기 힘든 분인데, 내 얼굴에 먹칠할 셈인가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대게 요리로 준비하세요. 오노데라 의원님은 대게를 좋아하세요. 그리고 방……. 혹시 꽃장식도 했나요?”
“아, 네. 했습니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오노데라 의원님은 꽃가루 알레르기도 조심하셔야 해요. 알레르기가 많은 체질이셔서 각별히 유의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하는 건가요?”
김미자는 그대로 일어나 방을 박차고 나갔다.
중년의 직원이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화실和室에 도착한 김미자는 방 내부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만일 오늘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노데라 의원님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병원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이 되었겠네요. 만일 그렇게 됐다면 타카하시 씨는 단순히 해고로 끝나지 않았을 거고요.”
김미자는 신경질적으로 방 안 곳곳에 장식된 화분들을 테이블 위로 옮겼다.
타카하시가 어쩔 줄을 모르고 김미자 대신 화분을 옮기려고 하자, 김미자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됐어요. 내가 할게요. 당신 손에는 못 맡기겠어요.”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데이터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서…….”
“변명인가요?”
“전임자에게서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 오노데라 의원님은 처음 오시는 상황이고, 또…….”
“됐어요. 계속 변명만 할 거면 됐으니까 그만 나가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타카하시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섰다.
김미자는 테이블 위에 나머지 화분들도 전부 옮겨 놓은 뒤, 테이블 가장 깊은 곳에 도청기를 붙였다.
그리고 밖에서 대기 중인 직원들을 불렀다.
“테이블 위에 화분들 다 가지고 나가 줘요. 그리고 환기를 해야겠어요. 손님들 오시기 전까지 창문을 다 열어 놓으세요.”
“네, 사모님.”
“그리고 타카하시 씨.”
“네, 사모님.”
“지난 4년간 예산 집행한 내역 전부 가지고 내 방으로 와요.”
“4년간이라니요, 갑자기 그건 왜…….”
“당신을 못 믿겠어요. 가장 중요한 접객에도 문제가 있는데, 요정 살림은 제대로 했겠어요?”
“사모님께서 항상 확인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분기별로 보고서도 따로 올렸고, 그때는 따로 말씀이 없으셨는데…….”
“내가 모든 걸 다 확인한 건 아니잖아요? 학교 일 때문에 당신한테 일임해 둔 것도 많고요. 계속 당신한테 일임해도 될지 검토해야겠어요. 자료 정리해서 갖고 오세요.”
김미자는 화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화실을 빠져나왔다.
직원들은 넓은 방에 각각 흩어져 환기하기 시작했고, 타카하시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가까스로 숨기고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방을 떠났다.
타카하시가 4년 동안의 자료를 준비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김미자는 그동안 도청 장치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다다미에 닿는 발소리나 창문을 여닫는 소리는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 정도면 그 인간들의 대화 소리는 아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미자가 다시 제어 기기를 숨겨 놓았을 즈음,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타카하시였다.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확인해 볼 테니 이만 나가 봐요.”
“사모님, 오노데라 의원님의 알레르기를 체크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다른 일에서 실수한 적은 결단코 없습니다. 믿어 주세요.”
“그건 내가 살펴보면 알 수 있겠죠. 나가세요.”
김미자는 타카하시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고,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기가 무섭게 전파 탐지기 구매 내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비품 구매가 꽤 많아서 찾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거의 40분 가까이 살피고 나서야, 김미자는 2009년을 마지막으로 전파 탐지기를 구매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적당히 자료를 더 살피는 척하다, 김미자는 방 밖으로 나갔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요정 내부의 조명을 밝히는 모습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토미코 씨.”
불손한 말투의 한국어였다.
이 목소리 주인의 생김새가 불쑥 머릿속에 떠오르자 순식간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김미자는 찡그렸던 표정을 펴며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실장님.”
“너무 잡는 거 아니야? 아무리 부리는 사람이라고는 해도 타카하시가 너보다 10살이나 많은데.”
“나이가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죠. 이곳에 그런 쓸모없는 사람은 필요 없어요.”
김미자가 단호히 말하자, 한 실장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단숨에 김미자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아주 잘났어. 사모님, 사모님, 하니까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적어도 너보단 타카하시가 훨씬 깨끗한 사람이야. 무슨 말인진 너도 알지?”
“뭐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부리는 사람이 일을 못 해서 가르쳤을 뿐이에요. 과거가 무슨 상관이죠?”
“그 여자 딸이 내 이거야.”
그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김미자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김미자는 그 순간 표정을 관리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한 실장은 그녀가 처음 일본에 끌려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넘어온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때가 벌써 33년 전이니, 그의 나이는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적어도 육십은 되었다는 소리다.
그 당시에도 군대를 다녀온 성인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타카하시의 딸과 그런 관계라고?
하긴, 저따위 질 낮은 깡패에게 대단한 윤리관을 기대하는 것도 우습다.
“저 아줌마가 집에서 딸년한테 신세 한탄이라도 하면 그년이 나한테 와서 앵앵대니까 말이야. 듣기 싫다고.”
“저하고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건방진 년. 오다 사토시하고 결혼했다고 뭐라도 된 줄 아는데, 착각하지 마.”
한 실장은 김미자의 턱을 던지듯 놓아 주며 손을 탁탁 털었다.
“요즘 어떤 미친 변호사 새끼 하나가 천사의 집을 감시하고 있어서 신삥들도 못 데려오고 있어. 그것 때문에 손님들도 불만이 많은 상황이라고. 씨발, 그 변호사 새끼가 뭘 알아서 그러겠어? 그냥 씨발, 회장님 뒷주머니나 털려고 하는 거겠지. 근데도 등신같이 쫄아서는……. 하여튼 윗대가리 놈들도 다들 겁들만 많아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한국 사정이 안 좋다는 건가요?”
“그것까지 네년이 알 건 없고.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너까지 거슬리게 굴지 말라는 뜻이야. 알았어?”
미친 변호사라는 말에 김미자는 저도 모르게 소매 안에 넣어 놓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차주한을 일컫는 듯했다.
천사의 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올 때가 아니라면 한국 상황엔 관심도 없는 한 실장이 알 정도라면, 확실히 우신에서 차주한을 상당한 위협으로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직 우신은 차주한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것도 그에게 알려 주면 좋을 것이다.
한 실장은 삼류 양아치 같은 놈에 불과하지만, 이 사업에 꽤 깊숙이 연관되어 있고 아주 오랫동안 관여해 왔다.
그러니 한 실장도 이 사업에 한해서는 우신의 내부 사정을 잘 알 것이다.
살살 건드리면서 내부 사정을 캐내는 데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알았냐고, 이년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한 실장이 김미자의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김미자는 어깨가 떠밀려 벽에 몸이 부딪혔지만,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모든 게 세상에 까발려지는 날이 오면, 저놈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33년을 기다렸다.
몇 년 더 기다리는 건 일도 아니다.
김미자는 사라지는 한 실장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세게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