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89)
너희들은 변호됐다-489화(489/641)
#489화
김미자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들이 들어와 테이블 가득 요리들을 진열하기 시작했다.
요정 초창기에는 요리 본연의 맛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코스 형태로 제공했는데, 접시를 나르는 직원들이 빈번하게 출입해서 자꾸 대화의 흐름이 끊긴다는 불만 때문에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직원들이 테이블에 요리를 진열하는 동안, 그들은 직원들이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개는 다른 정치인의 험담이나, 본인의 자랑 따위로 이루어진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요리를 전부 세팅한 직원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을 때, 그들은 비로소 본론에 접어들었다.
“아까, 천사의 집이 감시받고 있다는 건 무슨 소립니까?”
오노데라가 위스키가 담긴 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전에 한국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는 말씀을 전해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오다 사토시가 난감하다는 듯 물었다.
오다 사토시는 우신의 일본 사업 확장을 위해 여러 정치인에게 다리를 놓아 주는 사업 파트너였다.
물론 그 대가로 정치 자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국에서 일 처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다.
요즘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일본 측에서 불만의 소리가 새어 나오면 그들을 달래는 것은 자연스럽게 오다 사토시의 몫이었고, 근래 그런 일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본인의 잘못이 아닌, 오로지 우신 측의 실책 때문에 이 정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본인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간 받아먹은 게 많아 어쩔 수 없이 감당하곤 있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우신과의 협력관계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고상준과 따로 얘기할 일이고.
지금은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
“자세하게 듣진 못했습니다만…….”
“아까 이시다 의원님이 말씀하신 그대롭니다. 고 회장이 우신 복지 재단 돈을 좀 빼돌리면서 뒷주머니를 차고 있는데, 그걸 어떤 변호사한테 들킨 모양입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고 회장 자식들 줄줄이 감옥 보냈다는.”
“아, 예. 들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요.”
“네. 그런데 그 변호사가 냄새를 맡고 천사의 집에 사람들을 풀어놓았답니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사람들을 풀었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천사의 집은 우신의 관할이 아닙니까? 어떻게 일개 변호사가 사람을 푸는 게 가능합니까? 쫓아내면 그만 아닙니까.”
오노데라가 한층 불쾌해진 목소리로 묻자, 오다 사토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교육 봉사를 해 주겠다면서 대학생들을 동원했답니다. 양질의 교육을 받기 힘든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다는 목적으로요. 천사의 집으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죠. 심지어 기자까지 끼고 와서 언론에 보도까지 한 마당이라, 천사의 집 측에서 일방적으로 중단하려고 하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을 겁니다.”
“하, 고작 대학생들이 드나드는 걸 감시라고 한 겁니까?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뒷주머니 찬 것만 의심받는 거라면 고 회장도 이렇게까지 쩔쩔매진 않았을 겁니다. 그 변호사가 천사의 집에서 우리나라로 유학 왔던 사람과 접촉까지 했답니다.”
“아, 혹시 그 전 대통령한테까지 손을 써야 했던 그 일 말씀이십니까? 고 회장에게 대충 설명은 들었습니다만…….”
오다 사토시가 무겁게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오노데라는 희끗희끗 뿌리가 센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한숨을 토했다.
“그러니까, 그 변호사가 유학이라면서 여기로 애들을 데려오는 게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물론 스페어 장기로 쓰는 것에 대해서는 모를 겁니다. 하지만, 이곳으로 유학을 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던 년 하나가 후원자들에게 인사하는 자리가 있었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 분위기까지 자세히 말했다고 하니, 아마 접대가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겁니다.”
“말씀하시니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을 정리하지 않았습니까? 자료가 새지 않게 하려고 죽인 거고, 그럼 이제 자료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뭐가 무서워서 이렇게까지 일을 미루는 겁니까? 눈치를 채건 말건,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오노데라의 언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술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까와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에 선대 회장이 계속 일본에 여자들을 공급했다는 걸 알고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때도 선대 회장이 전 대통령 비서를 처리하고 조사를 막았고요. 그렇게 끝인 줄 알았는데, 아까 말씀드린 그 변호사 놈 있잖습니까. 그놈 밑에 그 전 대통령 손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대통령도 계속 그 변호사 뒤를 봐 줬…….”
“아니. 내 말을 들어 보세요. 오다 의원님 말씀은 나도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전 대통령을 죽여서 재임 당시에 확보해 놨던 증거 자료들이 넘어가지 않게 막은 거 아닙니까? 그럼 됐잖습니까. 그놈들이 아무리 의심해 봐야 의심에서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오다 사토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고상준은 예상외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 변호사 때문에 아들 셋을 감옥에 보냈고, 직접 대국민 사과까지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했다.
하지만 그 변호사가 아무리 날뛰어 봐야 결국은 일개 변호사 아닌가.
언론을 등에 업을 것 같으면 언론의 입을 막으면 되고, 그것도 안 될 것 같다면 죽이면 그만이다.
고상준도 시도는 해 봤다고 말했지만, 실패로 끝났다고 말했다.
오다 사토시는 죽을 때까지 시도하라고 말했지만, 고상준은 그렇게 밀어붙이다간 오히려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거라고 말했다.
“의심을 받는 것 자체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 놈들한테 의심을 사고, 추적을 당하는 것쯤은 우리나라에도, 미국에도, 그 어디에도 흔하게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야 음모론으로 만들어서 혼자 소설 쓰는 바보 만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품을 들일 일입니까? 그냥 죽이면 되잖습니까.”
“이미 시도를…….”
“실패했으면 죽을 때까지 계속 시도해야죠. 그깟 변호사 하나 죽는다고 뭐가 어떻게 됩니까? 시끄럽게 짖어댈 인간들은 있겠지만, 어차피 그러다 말 겁니다. 한국인들 특유의, 그 있잖습니까. 냄비 근성.”
오다 사토시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그 변호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사해 보았다.
뭐, 이력이 화려하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우신에게 똥물을 튀기는 게 목적인 놈이라는 것도 알겠다.
그렇게 유효타를 몇 번 먹였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고상준이 그렇게까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는 아직 찾지 못했다.
따라서 오다 사토시도 무슨 말로 오노데라를 진정시킬 수 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도 오노데라와 같은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 변호사가 불사의 몸이라도 된답니까? 하,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사업한다는 사람이 장사를 이따위로 합니까!”
“오노데라 의원님, 조금 진정을 하시고…….”
조용히 지켜보던 이소베가 억지로 허허 웃으며 그의 잔에 술을 따랐지만, 오노데라는 쳐다도 보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놈들이 일본에 기반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일단 유학 보낸다고 하고 데려오면 끝입니다. 그놈들이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일본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까지 추적할 수 있답니까?”
“저도 그렇게 말은 했는데, 고 회장이 자꾸…….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면, 고 회장도 계속 시간을 끌진 않을 겁니다. 무슨 수라도 낼 겁니다.”
“이보세요, 오다 의원님. 자꾸 고 회장 핑계를 대시는데, 고 회장을 설득하는 게 오다 의원님이 하는 일 아닙니까? 그럼, 내 손주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오노데라는 그대로 테이블을 엎을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이시다와 이소베가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잡고 진정하라는 말을 반복했다.
“오노데라 의원님, 오다 의원님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닐 겁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앉아서 얘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들은 오노데라를 어르고 달래서 다시 좌정시켰다.
하지만 오노데라는 여전히 마뜩잖은 표정으로 상체를 외로 틀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 회장한테 일 안 맡겼습니다. 그래 봤자 다른 나라로 원정 보내면 그만인데. 자꾸 곧 가능하다, 곧 가능하다 하면서 얼마나 시간을 끌었습니까? 믿고 기다린 내가 멍청했지! 실력 있는 의사? 실력 있는 의사가 한국에만 있습니까?”
오노데라가 지금까지 기다린 까닭은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로 건강한 장기를, 최고의 써전에게 공급받기 위해서였다.
오노데라 스스로가 갖은 알레르기로 고생하며 살았는데, 안쓰럽게도 손자도 같은 체질을 타고나고 말았다.
그로도 모자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심장에 기형까지 있어, 유전자를 물려준 할아버지로서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알아보니 수술 과정에서 사용하는 약물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는데, 조금만 삐끗했다가는 손자를 잃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래서 이식 수술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었다.
무조건 최고여야 했다.
게다가 고상준 집안에도 유전적으로 심장 기형이 있었고,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수술을 시켰다기에 더 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로 원정을 보내는 방법도 물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차지 않아서 일단은 잠자코 기다렸다.
물론 손자의 상태가 그렇게 위급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어린 애가, 한창 뛰놀 나이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헐떡거리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내가 언제까지 그 꼴을 지켜봐야 합니까? 할애비가 돼서, 그런 거 하나 못 해 주는 게 말이 됩니까? 할애비가 이 나라 국회의원인데! 돈이 부족해서 그럽니까? 돈을 더 주면 돼요?”
“아이고……. 돈이 문제겠습니까, 의원님. 제가 어떻게든 고 회장 설득해서 빠른 시일 내로 오노데라 군 수술 일정 잡도록 힘 써 보겠습니다.”
오노데라는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선금으로 지급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총비용으로 낼 만한 돈을 착수금으로 걸었으니, 돈이 부족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오노데라는 차기 총리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서, 고상준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이었다.
그 역시 오노데라의 화를 사고 싶지 않아서 안달이 났을 것이다.
“그 변호사가 문제라면, 내가 죽이면 되겠습니까? 고 회장이 무슨 이유에선지 겁을 집어먹고 그까짓 변호사 하나 못 죽여서 이 꼴이 된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든 대신 죽여 줄 테니까 내 손자 심장이나 내놓으라고 전하세요!”
오노데라는 벌떡 일어났다.
이번에는 이소베와 이시다뿐만 아니라, 오다 사토시도 함께 일어났다.
오노데라는 노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화실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우스꽝스럽게도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치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오노데라의 뒤를 졸졸 쫓아나갔다.
하지만 오노데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소리쳤다.
“차 대기시키라고 해!”
“오노데라 의원님…….”
한참 쿵쿵대며 걸어가던 오노데라는, 여전히 눈치를 살피며 뒤를 따르는 세 사람을 홱 돌아보았다.
“다음에 나한테 연락할 땐, 반드시 수술 날짜를 정하자는 소식을 가져와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덧 요정 앞에 준비된 차량에 훌쩍 올라타고 떠나 버렸다.
그의 뒤를 따르던 이들은 그대로 맥이 풀린 듯 벽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오다 의원님, 고 회장한테 강경하게 얘기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노데라 의원님이 저렇게까지 화내시는 건 처음 봅니다.”
오다 사토시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러다 본인에게까지 화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어떻게든 해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