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9)
너희들은 변호됐다-49화(49/641)
[‘당나거’ 정혜진, 지망생 나은성씨 측 의견 받아들이나?] [<당신과 나의 거리>에 공동 작가로 표기된 ‘나 씨’는 누구?]푸른섬 미디어가 약속한 조건을 이행하는 데에는 약 한 달이 걸렸다.
모든 포털 사이트와 방송국 작품 홈페이지에는 나은성의 이름이 함께 올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정혜진 측에서는<당신과 나의 거리>가 나은성과의 공동 작품이라는 짤막한 기사를 냈다.
경위 설명은 길지 않았다.
그저 서로 작품 기여도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있었을 뿐이며, 지금은 잘 해결되었다는 내용뿐이었다.
하지만…….
[혜진이가 지망생 원고 표절한 거 맞는 듯 ㅋㅋㅋㅋㄴ이해도 차이라고 해서 뿜음ㅋㅋㅋㅋ 강 인정하고 합의 잘해서 공동 작가로 올려 준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ㅋㅋㅋㅋㅋ
ㄴ네티즌이 바본 줄 아시나ㅋㅋㅋ
ㄴ방송사랑 대기업이 계약서상 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삼. ㄱ-
ㄴ한마디로 갑질한 거네여ㅋ_ㅋ
ㄴ나은성은 계약 안 했으니까 갑도 을도 아니삼 뭘좀 알고 말하삼
ㄴ혜진이 왔니?ㅋㅋㅋ]
그리고 놀랍게도, 갑질이라는 단어가 본래보다 3년이나 일찍 등장하게 되는 상황을 내 눈으로 목도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묻혔지만 말이다.
고작 단어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용어의 파장은 그정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단어가 가진 힘은 강력해서, 어떠한 행위가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권력자들의 횡포가 갑질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순간, 여태까지 미묘해서 넘겨 왔던 모든 것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갑질을 규탄하는 사회적 운동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화할 수도 있다.
물론, 전체적인 역사를 놓고 볼 때 반드시 필요한 흐름이기는 하다.
그것이 사회 정의이고, 내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 일이 아니더라도 몇 년 뒤에는 저 단어가 탄생할 것이다.
그것을 내가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은 오만이 아닐까.
나는 우신 그룹을 무너트리려 했던 것이지, 역사를 바꾸겠다는 대단한 목표의식은 없었으니까.
‘어쨌든 분위기는 괜찮네.’
나는 포털 사이트를 끄고 잠시 베란다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리고 난간에 기대어 서서 잠시 상념에 잠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작은 행동이 나비 효과처럼 번져 역사를 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뭐, 이미 살인범이 될 뻔한 김연준을 구했고……. 표절당한 채 어떻게 살았을지 모르는 나은성을 도왔으니 이미 바꿔 버린 거지만.’
나는 모순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우신 그룹에 복수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적어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안다.
유명세를 얻기 위해 큰 사건을 맡으려는 것도, 국민에게 선한 이미지를 남기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한낱 검사로 살다가 억울하게 죽은 나의 과거를 바꾸는 일이다.
내가 이전의 삶과 똑같이 살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든 억지로 흐름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하아…….”
우스운 일이었다.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이미 이전의 삶과 다르게 살고 있는데, 이제 와서 흐름을 바꾸는 것에 부담을 느끼다니.
나는 내 눈앞에 있는 불의에 처한 이를 그냥은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어리석게도, 아직도 이 빌어먹을 사회에 남아 있는 티끌 같은 정의를 믿기 때문이었다.
“변호사님, 무슨 생각하세요?”
강민재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는 내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심각한 얼굴의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이런저런.”
“사건도 잘 마무리됐는데, 괜히 그러시네요. 아, 혹시 이것도 기분 좋은 표정입니까?”
“그래. 기분 좋은 표정이야.”
“아, 진짜 이상한 분이라니까.”
강민재가 웃었다.
“강 변.”
“예?”
“만일 김연준 씨가 우릴 만나지 않았더라면, 계속 옥살이를 했을까.”
“글쎄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럼 나은성 씨는. 나은성 씨도 억울하게 표절당했다는 걸 밝히지 못하고 안고 살았을까.”
“우리 말고 다른 사무실에 찾아가서, 거기서 이겨 줬을 수도 있죠. 뭐,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나은성 씨 말로 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요.”
강민재의 말이 맞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2018년까지의 미래다.
그다음은 알지 못한다.
김연준이 재심 신청을 해서 풀려날 수도 있고, 나은성도 뒤늦게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해서 정혜진의 만행을 알릴 수도 있다.
당장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자조했다.
“사실, 그건 우리가 알 바가 아니지.”
내 말에 강민재가 조금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당장 눈앞의 불의를 해결해 주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외면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생각해 보면, 나는 검사 시절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왜 이 사회에서는 불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왜 정의는 지속성이 없는 것인지 고심하고 한탄했다.
계속 범인을 잡아들이고는 있지만, 불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더 큰 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의미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눈앞에 불의가 있는데, 그걸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면서 외면하는 게 더 잘못된 거야. 완전히 불의를 뿌리 뽑을 수는 없겠지만, 정의를 위해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 사회에서 정의의 합이 더 커지는 날이 기는 할 테니까. 수학적으로 말이야.”
“…….”
“어쨌든, 역사는 선택의 합이고……. 굳이 잘못된 역사와 같은 선택을 하면서 찌그러져 있을 필요는 없지. 어차피 바꾸기로 한 건데.”
우신은 이전 삶의 내 죽음으로, 2019년, 2020년, 2021년에도 굴지의 대기업으로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 썩어 빠진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불의로 가득한 세상이라면 좀 달라져도 상관없지 않은가.
“안 그래?”
“……잘못된 역사요? 그게 뭔데요?”
만일 내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우신 그룹만 잡겠다는 생각이었다면, 검찰청을 나왔으면 안 됐다.
아버지가 관절염에 걸리기 전에 퇴직하시게 하면 안 되었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으면 안 되었다.
나는 내 과거를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회의 역사는 또한 개인역사의 합이다.
결국, 나는 사회의 역사를 조금씩 바꿔 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떳떳하면 되는 거잖아.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양심에 따라 움직이면 돼.”
“네? 아, 그렇죠.”
나는 우신 그룹을 무너트리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이미 많은 것을 바꿔 왔다.
비록 내 눈은 젯밥을 향해 있었더라도, 그 과정에서 정의에 어긋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강 변.”
“예?”
“포털 들어가서 그 정혜진 기사 맨 위에 뜨는 거 있는데. 거기에 갑질 어쩌고 댓글 달린 거 있거든?”
“갑질이요? 변호사님이 다신 거예요? 그거 변호사님이 만든 말이잖아요.”
“내가 만든 건 아니지만, 어쨌든. 거기다가 동조 댓글 좀 달아 봐.”
“예에? 갑자기 왜요?”
“강 변 그런 거 잘하잖아.”
“하, 정말. 제가 그런 걸 좀 잘하긴 하죠.”
강민재가 능글맞게 웃어 보이더니,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 거창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신나게 댓글을 달고 있는 그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도,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치 선물처럼 나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할 때였다.
역사를 바꾸고 싶지 않다는 나약한 소리나 떠들어 댈 때가 아니었다.
* * *
[방송계의 악습, ‘갑질’ 대체 어디까지인가?] [‘갑질’의 역사] [‘갑질’이라는 대한민국의 환부, 이제 고름이 흘러나오는가]나는 오늘 아침 도착한 조간신문을 읽었다.
갑과 을로 규정되는 사회에서, 권력자들의 횡포에 휘둘려 오던 을들이 조금씩 울분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당한 갑질을 토로했고, 그러한 행동은 동질감을 자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갑을 규탄하게 했다.
나는 신문을 덮었다.
“갑질은 사라져야지.”
오늘은 나은성이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오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정돈된 사무실을 바라보며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알로에 주스가 반 통 남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강민재가 한 손에 편의점 비닐을 든 채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냉장고로 직행해서 주스들을 종류별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이제 새 의뢰인 받을 때가 됐으니까, 다시 냉장고 채워 놓아야죠.”
그는 어쩌면, 변호사보다는 영업 쪽이 더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나은성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언제나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한결 산뜻한 색감의 옷을 입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좋아보였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나은성 씨.”
강민재가 그녀를 소파로 안내했다.
주스를 준비해 주려는 그에게, 나은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이 사 온 커피를 내려놓았다.
“성공 보수 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저희도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쁩니다.”
내 말에 나은성이 뺨을 붉혔다.
“저, 아시겠지만 푸른섬 미디어가 손배액을 나눠서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괜찮습니다. 푸른섬 미디어도 한번에 변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라. 푸른섬 미디어는 10억씩 5개월 변제하겠다고 했었죠. 만일 지체되거나 하면 강제 집행 절차를 밟을 수 있으니 저희 쪽에 말씀해 주십시오.”
“네. 아, 정혜진 쪽에서는 바로 전액 들어왔어요.”
그리고 그녀는 내 앞에 흰 봉투를 내려놓았다.
“푸른섬 미디어가 1차 변제를 했고, 정혜진 쪽에서도 돈이 들어와서 다행히 변호사님께 드릴 성공 보수는 다 들어왔네요.”
“나은성 씨 쓰실 데도 있을 텐데, 저희 쪽에도 나눠서 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그동안 너무 애써 주셨고, 저는 어차피 며칠 뒤면 2차 변제 받을 텐데요.”
나는 나은성이 내민 봉투를 받아들었다.
17억여 원의 수표.
이런 큰돈을 수표로 들고 오다니, 간도 크다.
어쨌든, 이런 작은 사무실에서 성공보수 17억짜리 소송이라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수익 셰어분은 성공 보수에서 제외했어요. 하지만, 생각이 바뀌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그건 온전히 나은성 씨 몫입니다.”
그 뒤로, 우리는 잠시 지난 소송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나은성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오래 있었죠?”
“괜찮습니다.”
“이만 갈게요. 아, 그리고…….”
나은성이 가방을 챙기다 말고 말했다.
“혹시, 이번 주 토요일 점심에 시간 괜찮으세요? 점심 식사라도 할까 하고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내가 강민재를 바라보자, 그가 대답했다.
“그럼요. 시간 됩니다.”
“그게 아니라……. 그, 죄송하지만 차주한 변호사님만요…….”
이번에는 나도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대답 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나은성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이번 주 토요일 사무실 앞 레스토랑 베르딘에서 열두 시에 뵈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고 그녀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강민재가 대체 뭐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