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ve Been Defended RAW novel - Chapter (490)
너희들은 변호됐다-490화(490/641)
#490화
“지랄하고 자빠졌네.”
김미자가 보내 준 도청 파일 재생이 끝나자, 조봉준이 소리쳤다.
“죽여? 지가 죽여 준다고? 씨발, 사람 목숨을 뭘로 알면 죽여 준대?”
“게다가 자기 손주가 제대로 뛰지 못하는 건 가슴 미어지는 것 같고, 천사의 집 아이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소름 돋습니다. 어떻게 저런 마인드를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고상준처럼 쓰레기 같은 생각을 가진 인간이 이 지구에 더 있을 수가 있죠? 그것도 저렇게나 많이…….”
오 사무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우신이 나를 매번 놀랍게 만드는 것도 신기했다.
난 두 번의 삶을 겪으며 그들이 벌여 온 미친 짓들을 두루, 반복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접해 왔다.
애초부터 쓰레기라는 걸 알고 있고, 쌀 한 톨만 한 기대감조차 없음에도 매번 충격을 받게 한다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 아닌가.
“차라리 김미자 씨가 번역을 잘못해 주신 거였으면 좋겠네. 대체 몇 명의 아이들이 고상준 배를 불려 준 거야?”
그녀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매우 정성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한국어로 번역한 스크립트까지 동봉해 주었다.
누구보다 우신의 몰락을 바라는 그녀가 번역을 고의적으로 틀리게 했을 리 없다.
자잘한 실수는 있었어도, 내용만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리고 어르신 얘기도, 정말……. 너무, 하, 씨발. 내 짧은 어휘력 어떡할 거냐. 그러니까 너무, 너무 마음이 안 좋아. 민재 괜찮아?”
조봉준이 강민재를 돌아보며 묻자, 최종현도 강민재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그의 팔뚝을 슬슬 문질러 주었다.
그러자 강민재는 애써 굳었던 표정을 펴고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그놈들이 할아버지가 저희한테 협조하는 거 막으려고 손 썼다는 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놀랍지 않아요. 아뇨, 차라리 잘됐어요. 할아버지가 이상운 지지자한테 살해당한 게 아니라, 우신이 죽인 거라는 증거가 생긴 거잖아요. 지금까진 심증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다행히 강민재는 충격에 오랫동안 매몰되지 않고 빠져나오려는 시도를 보였다.
강민재는 참 단단한 사람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강민재가 죄책감에 잠식되지 않게 하겠답시고 그를 몰아붙였던 게 조금 겸연쩍기도 하다.
누가 누구한테 잔소리를 한 건가 싶어서.
“이미 희생된 아이들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오래전에 공녀 사건 조사하시다 돌아가신 비서실장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희생되었을 사람들까지……. 너무 많은 피해자가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일은 분노에서 멈추는 게 아니잖아요.”
강민재는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이런 말 좀 그럴지 모르겠지만,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에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되살릴 순 없잖아요. 대신 앞으로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게 힘쓰고, 그 새끼들이 전부 정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 같아요.”
“그래, 민재 말이 맞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김미자 씨가 보내 준 파일이 꽤 유의미한 증거가 되어 줄 거야. 민재 참 대단하네. 많이 컸어, 내 새끼.”
최종현이 강민재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자, 강민재가 ‘뭐예요’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맞다.
언제까지나 분노와 안타까움만을 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분노와 탄식을 내뱉으며 흘려보내는 시간마저도 우리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데에 써야 한다.
“김미자 씨가 덧붙인 말로는, 오노데라가 차기 총리로 유력한 인물 중 하나라는데. 그래서 저 오다 사토시랑 다른 놈들이 쩔쩔매는 거 아니겠어? 특히 저 자리에 있던 이시다라는 놈은 전 총리 아들이고 지도 꽤 먹어 주는 놈인데도 저러잖아.”
“맞아요. 정치적 기반이 아주 단단해서 총리가 되는 건 단순한 시간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하던데요. 수일이 형이 그러는데, 일본에는 삼반이 갖춰져야 권력을 쥘 수 있다는 말이 있대요.”
“삼반?”
“3개의 반이라는 뜻인데, 일본어로 지반, 간판, 가방. 이 세 단어 끝음이 반으로 끝나서 삼반이라고 부르나 봐요.”
“그러니까 세습 받은 지역구하고 지명도, 그리고 자금력을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저 삼반이 아주 강력한 사람이 오노데라인 거죠. 생각해 보니 저도 한창 일본 정치인들 검색해 볼 때 저 이름을 봤던 것도 같아요.”
“찾아보니까 오노데라가 장기 이식을 시켜 주려는 그 손주가 막냇손자인가 봅니다. 나이가 있어서 다른 손자들은 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데, 몇 년 전에 막내딸이 늦둥이를 낳아서 아주 어린 손자가 생겼답니다. 근데 그 손자를 너무 예뻐해서 지역구 행사 때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네요.”
오 사무장이 노트북 화면을 우리를 향해 돌리며 말했다.
일본에서 발행된 기사 페이지였는데, 상단에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는 오노데라의 모습이 상단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 말고도 손자와 함께 찍힌 사진이 꽤 많은 모양이다.
얼마나 손자를 아끼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러니 나를 대신 죽여 주겠다는 말까지 해 가면서 고상준을 압박하는 거겠지.
“그런데 김미자 씨가 우리한테 보내 준 메일을 보면, 차 변 걱정하는 느낌이 많이 나는데. 괜찮겠어?”
“오노데라가 절 대신 죽여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 닌자가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하란 소리겠죠.”
“아니, 지금 그런 농담으로 받을 때야? 김미자 씨가 그러잖아. 오다 사토시도 오노데라는 정말 수틀리면 저지를 놈이라고 했다고.”
어쩌면 소식을 접한 고상준은 오노데라가 정말 나를 죽여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대놓고 ‘그럼 당신이 대신 죽여 주시오’라고 하면 본인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까 봐 차마 그렇게 말은 못 하겠지만, 조금 더 시간을 끌다 보면 정말 죽여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고상준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설령 나를 살해한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그 배후는 오노데라이고, 우리나라에선 그 사실이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오노데라를 데려와서 수사하기 힘들 것이다.
“정말 오노데라가 변호사님을 죽이려고 할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고상준은 우리가 도청을 통해 그들의 작당 모의 증거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내가 죽어도 본인에게 흙탕물이 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오노데라를 더 자극해서 정말로 나를 제거하려고 들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경호를 강화하는 게 좋겠어. 갑자기 총이라도 쏘면 태식이가 곁에 있어도 소용없을 거잖아.”
최종현이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변호사님 앞으로 방탄복이나 방검복 같은 걸 항상 입고 계셔야겠어요.”
“그걸로 될지 모르겠네. 저번에 고상준은 집에서 자고 있던 차 변을 납치해서 공구리치려고 했잖아. 한 번 뚫린 집인데, 이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건은 관리 업체 측이 현관문하고 방범 시스템을 최상급으로 교체해 줬고, 테스트도 거쳤습니다. 그러니 집에 침입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다가 한 번 고상준이 써먹었던 방법인데 통하지 않았으니까, 오노데라가 또 같은 방법을 쓰진 않을 것 같고요. 어디로 이사하든 벙커에 살지 않는 한 똑같을 겁니다.”
“좆같네, 이거. 차라리 호텔에서 사는 건 어때. 거기가 더 보안 빡세지 않을까?”
“돈만 내면 아무나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인데 더 위험하지.”
“하, 그냥 경호 업체를 끼고 경호원 수를 늘리는 게 어때?”
그것도 방법일 순 있겠지만, 단기간만 그렇게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항상 그렇게 살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때 우르르 움직이면 오히려 더 눈에 띈다.
무엇보다 우신 측에서 내가 경호 인력을 늘린 것을 보고 정보가 새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리스크는 항상 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저뿐만이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그건 그런데, 우리는 순위가 좀 밀리잖아. 1순위 차 변, 2순위 민재. 이건 정해진 거 아니야? 우리는 차 변하고 민재가 죽으면 그때쯤부터 대비하면 된다고.”
“씁쓸한 농담이네요…….”
강민재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오노데라가 절 죽이든, 어쩌든. 고상준은 오노데라를 잃지 않기 위해서 곧 천사의 집 아이를 일본으로 넘기려고 할 겁니다. 당연히 오카시마 병원에서 수술할 테고, 심장이식이라고 했으니 그 분야 전문가인 임현일이 동원될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 전 가스 폭발 사고로 사망한 최재훈의 블로그를 통해, 임현일이 최재훈에게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 적출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잡았다.
그 밖에도 우신이 장기 매매를 자행하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들은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정도만 가지고는 그들이 장기 매매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걸 완벽히 입증할 수 없다.
의심받게 하는 것 정도는, 어쩌면 특검을 여는 것까지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처벌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고상준은 곧 오노데라의 막냇손자를 위해 심장이식 수술을 준비할 테고, 이 과정을 우리가 전부 조명해야 한다.
곧 천사의 집에서 오노데라의 막냇손자와 엇비슷한 나이대의 아이가 일본으로 보내질 터.
대학생들이 파견되어 있으니, 사라지면 바로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임현일의 출장도 같은 시기에 잡힐 테니, 허민우를 통해 임현일의 출국 여부를 조회할 수 있다.
임현일과 희생될 아이, 오노데라의 손자는 모두 오카시마 병원으로 모이겠지.
여기서 덜미를 잡아야 확실하게 장기 매매를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계까지 가려면 아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리 오노데라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해도, 고상준이 당장 수술 스케줄을 잡을 것 같진 않다.
고상준이라면, 아까 예상했던 대로 정말로 오노데라가 날 죽이기로 마음먹을 때까지 시간을 끌 테니까.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찬영이한테 오카시마 병원 조사 맡긴 건 어떻게 됐어?”
“아직 소식이 없는데,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우리가 시선을 집중해야 하는 곳은 오카시마 병원, 임현일, 그리고 천사의 집. 이렇게 세 군데입니다.”
“맞아. 우리가 기존에 최재훈 수사를 하면서 임현일 조사를 하고 있었잖아. 오카시마 병원은 찬영이, 천사의 집은 대학생 애들한테 맡겨 놨으니까 우린 임현일에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때 임현일이 최재훈한테 유종은이라는 아이의 장기를 적출하라고 지시했던 장소가 어디인지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허 경위님에게 연락 넣겠습니다.”
만일 운이 좋아 오노데라의 손자의 심장이식 수술 전에 임현일이 장기 매매에 연루되어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일이 쉬워진다.
임현일이 출국해서 오카시마 병원으로 가는 목적이 보다 명확해지기 때문에, 수사 기관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임현일의 개인 범죄를 조사하는 것처럼 해서 상부에 보고를 올리면, 경찰 측에서도 겁먹지 않고 지원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임현일 한 명의 꼬리를 잡으면, 우신까지 줄줄이 딸려 나오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특검으로 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